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18화 (118/1,007)

[118]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

#73-1

수많은 꿈, 욕망이 어우러진 콘크리트의 정글, 뉴욕이다. 미국 최대의 도시답게 가장 번화하고, 가장 유명하다.

전 세계의 문화 패션 정치 금융 예술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이며, 유엔 본부까지 있어서 세계의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금융과 문화 부분에서 부동의 1위를 자랑했기에, 뉴욕에서 월 스트리트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그런 월 스트리트를 굽어보듯 서 있는 마천루 중 제일 유명한 것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아데르코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고,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마천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73년 완공된 이후 그 타이틀을 넘겨줬지만, 위상은 아직 변하진 않았다.

완벽한 상업 시설로 저층에는 쇼핑몰과 식당이, 고층에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어제 에드윈 풀러와 미팅 약속이 잡힌 곳이 바로 이곳,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펜트하우스였다.

“헤리티지 재단에는 돈이 넘쳐나나 보네요. 이사장에게 펜트하우스까지 내주고.”

“어쩌면 보스에게 세게 보이려고 여기로 약속을 잡은 것인지도 모르죠. 원래 재단 본부는 워싱턴 DC에 있거든요. 여기 ESB는 헤리티지 재단과 큰 상관은 없습니다.”

유재원의 말은 에드윈 풀러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펜트하우스를 가지고 있을 만큼 돈이 많으냐는 물음의 의미였고, 레밍턴은 허세일 거라는 합리적인 추리였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니 레밍턴의 말도 맞는 것 같다.

“가시죠.”

유재원은 레밍턴과 김대석 그리고 뉴욕 입성할 때 특별히 고용한 경호팀과 함께 로비로 입성했다.

“어서 오세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스카이라인 입장권은 이쪽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유명한 관광명소였다.

로비 직원들도 친절하게 막 들어선 유재원 일행에게 옥상으로 올라갈 티켓 구매처를 알려주었다.

관광객으로 착각한 모양인데, 글자들이 금박으로 박혀있는 초대장을 보여주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곧장 안내를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내부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경비인지 덩치가 미식축구선수처럼 커다란 사람 둘이 양쪽에 무게를 잡고 있었다.

“위에 연락했습니다.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해 위에서 사람이 내려올 겁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안내를 마친 직원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라 엄청나게 화려하진 않았다. 그래도 금도금인지, 아니면 진짜 금인지 모를 정도로 고급스러운 금빛이 나는 포인트가 많았다.

띵~!

맑은 종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빈 엘리베이터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화려한 장미처럼 빛나는 20대 금발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유재원 일행을 맞이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보는 미녀였다.

“ID 테크놀로지 유재원 사장님이시죠?”

“네.”

“반갑습니다. 저는 샤일라 돌리하고 합니다. 에드윈 이사장의 비서죠. 이분들은?”

“제 수행단입니다. 레밍턴 부사장, 김대석 대리. 그리고 경호원들.”

“아, 네. 그럼 다 함께 오르시죠. 에드윈 이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행단 숫자가 예상보다 많아서 당황했나 보다. 그래도 능숙하게 유재원 일행을 이끄는 샤일라였다.

“어려운 걸음 해주어서 고맙네. 내가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에드윈 풀러일세.”

에드윈 풀러가 유재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기억의 궁전을 통해 봤던 그대로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의 수장답게 백인이었다. 나이는 1941년생이니 지금은 49살이다. 원래는 검게 보이는 머리카락 색이 지금은 반쯤 백발로 변했다. 덩치가 크고 검은색에 회색 스프라이트가 들어간 양복을 입고 있어서 덩치가 더 커 보였다.

아, 금테 안경도 그의 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반갑습니다. 유재원입니다. 여긴 레밍턴 부사장, 그리고 제 비서와 경호원들이지요.”

"다들 반갑네."

에드윈 풀러는 유재원과 먼저 악수하고, 레밍턴과 김대석도 빼놓지 않았다. 격을 따지는 고루한 면이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직급 따지는 것 없이 다 악수를 하니 유재원이 보는 에드윈의 인상이 약간은 좋아졌다.

첫 대면을 마친 그는 김대석과 경호원들은 거실에 두고, 유재원과 레밍턴을 서재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서재라고 하면 낡은 책 냄새가 물씬 나는 곳 같았지만, 여긴 아니다.

물론 서재라는 곳의 이름이 부끄럽제 않게 책도 가득했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이라 퀴퀴한 냄새는 없었다. 오히려 티 테이블에서 미리 준비한 차가 은은한 향기를 내고 있었다.

특이하게 티 테이블 주변으로는 딱딱한 의자 대신 푹신한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다.

테이블을 두고 1인석 소파도 있고 몇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소파도 2개나 있었다. 그러니

7, 8명의 인원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 자네의 위명은 많이 들어서 충분히 알고 있다네. 직접 만나보게 되어 영광일세.”

"과찬이시네요."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지만, 충분히 유재원을 존중하는 태도였다. 자리 배치도 그랬다.

구도로 보면 1인석 소파가 상석이다. 그런데 에드윈 풀러는 1인석 소파 대신 유재원 일행과 마주 보는 다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나저나 홍차를 마실텐가? 아니면 커피?”

“커피로 주세요.”

유재원의 요청에 움직인 건 에드윈 풀러였다. 보통은 비서, 아니면 버틀러가 차를 내오는 데, 여긴 그런 게 없나 보다. 커피도 에소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그냥 드리퍼로 내린 것이었다.

“다행이군. 요즘 내게 붙은 취미가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것이라네. 원두는 콜럼비아 수프리모 메델린으로 다크로스팅을 해봤는데 자네 입맛에 들지 모르겠군.”

커피를 받은 유재원은 감사하게 마셨다.

한국의 커피문화는 커피믹스였다. 호텔 혹은 드문드문 있는 커피 전문점에 가야 겨우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 수프리모처럼 고급 원두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묵직한 바디감에 쓴맛도 적절하게 있는 다크로스팅도 유재원 취향이었다.

“딱 제 취향입네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나중에 카페를 열어서 바리스타를 하셔도 크게 성공하실 거 같습니다.”

“허허, 칭찬 고맙군.”

본론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이 아저씨가 좋아지려고 하는 유재원이다.

“카페라. 은퇴 후에 손이 심심해지면 꼭 고려해보지. 하여튼, 작년부터 명성이 자자한 자네를 직접 보니 참 반갑네. 우리 재단에서도 혜성처럼 등장한 ID 테크놀로지와 유재원, 자네의 행보를 매우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래요?”

“특히 시큐리티 챌린지를 시작할 때, 난리가 났지.”

“왜요?”

“왜냐니? 강력한 암호 체계는 그 나라의 안보 수준과 직결되는 일일세. 그런데 그 체계를 동방의 조그만 나라, 그것도 14살? 아, 그때는 작년이니 13살일 때군. 하여튼 어린아이가 만들었으니 우리 같은 안보연구 단체가 놀라 뒤집힐만한 일이지.”

“후훗, 제가 좀 잘나긴 했죠?”

유재원은 겸양의 말 따윈 하지 않았다.

겸양은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 나라에만 통용되는 문화였고, 미국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능력은 곧 몸값과 가치로 이어진다. 아시아권과 달리 능력이 출중한데도 겸양의 말을 하면 자신감 부족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부정할 수 없지. 정확히 하자면 보통 잘난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유니크하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지. 그런데 말일세. 비대하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우리 정부는……. 아이고! 혹시 부시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내가 이런 소리 했다는 말은 비밀로 해주게.”

“물론이죠.”

“허허, 고맙네. 하여튼 공룡처럼 크기만 하지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지. 덕분에 자네가 만든 암호체계의 우수함이나 무결성, 보안성을 관계자들에게 입이 닳도록 설득해야 했네. 다행히 우리 재단과 행정부 사이에 그나마 끈끈한 유대감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런 게 있어서 제때에 도입할 수 있었지.”

호오.

에드윈 풀러라는 아저씨도 역시나 고단수다. 그러니까 작년 연방정부가 ID 오피스도 사고 AES-256의 라이센스도 사간 게 다 자신들의 공이라는 걸로 포장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의 실력을 얕보다가 큰코다친 게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지 않은가?”

“흐흐, 확실히 그곳은 좀 그런 티가 나더군요.”

게이츠와 스티븐이 ID 테크놀로지가 조그만 회사라고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기울였다면 재판의 향배는 지금과 좀 달랐을 거다. 하지만 약간의 방심은 결국 그들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배포금지 처분이 풀린 안드로이드 알파는 무서운 속도로 PC 운영체제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델과 컴팩, 심지어 HP 같은 커다란 컴퓨터 제조 업체들은 개인용 제품에 한해 안드로이드 알파를 탑재한 모델을 주력으로 띄웠다.

MS-DOS 최신 버전인 4.0이 ID 테크놀로지를 견제한다고, 온갖 할인 정책을 남발해서 한 카피당 40달러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렇지만 안드로이드 알파는 애드웨어 버전은 무료였고, 거대 밴더에 납품되는 광고삭제 버전의 경우 1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저렴한데, 기능적으로는 MS-DOS보다 나은 면이 훨씬 컸다. 리본 인터페이스와 글라이드 X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무기였다.

이제는 ID 테크놀로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프트웨어 제조사들도 리본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패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서 점유율의 급성장으로 나타났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마이크로소프트의 점유율이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문젠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의 재단의 최대 후원자 중에 하나라서 본인이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저런, 안 되셨네요.”

“괜찮네. 자유 경쟁시장에서 기업끼리 경쟁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부침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말일세.”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적이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였다.

시장의 경제 논리를 무척이나 따르는 곳이라서,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가 승리한 것을 두고 민족주의 같은 걸 들먹이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에 관해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게 있다고요? 여기에 회사 운영에 몇 가지 조언도 해주시고요?”

에드윈 풀러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한 끝에,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유재원을 부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수에 대한 귀중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네. 그런데 우리 재단이 해주는 컨설팅 비용은 제법 비쌀걸세.”

에드윈 풀러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ID 테크놀로지보다 규모가 몇십 배는 큰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할 여력은 있느냐는 질문은 전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윈 풀러가 걸프전쟁을 이용한 석유 선물 투자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고,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괜찮아요. 들어보고 괜찮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부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강력한 ID 테크놀로지의 서포트가 들어갈 테니까요.”

유재원은 얼른 보따리를 풀어보라며 통 큰 후원을 언급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으로 가기 전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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