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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16화 (116/1,007)

[116]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

#72-1

“사모님, 손님 오셨습니다. 사모님?”

휑했던 공간에 가구와 집기가 들어오면서 사무실이 만들어지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김말숙은 황재홍의 몇 번 이어진 부름에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김말숙은 아직도 사모님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그렇게나 어색했다.

재원이를 낳고부터는 재원이 엄마라고 불렸다. 유봉만과 막 결혼했을 땐 능서댁이었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말숙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사모님 소리를 들어보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컴퓨터만 잘하는 줄 알았던 재원이가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사업이라는 걸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통령까지 만나고 왔다.

집안 풍경도 그때부터 훅훅 바뀌기 시작했다. 김말숙의 사정 역시 상전벽해를 이뤘다. 대호 전자의 가전제품을 파는 주부 사원을 그만두고 땅을 사러 다니는 일이었다.

갑자기 다른 일을 하려니 어색했다. 하지만 자기 아들이 세운 또 다른 회사인, ID 인베스트먼트 소속인 황재홍이 매번 나서서 도와주니 이제는 제법 땅 좀 볼 줄 안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최근엔 서울의 강남 로데오거리에 커다란 건물을 샀다.

지금 1층은 가게, 2층은 사무실로 꾸민다고 인테리어 공사 중인데, 김말숙이 관련된 일을 주도 하고 있다. 물론 직접 손을 거드는 건 아니고, 지금처럼 업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는 게 다다. 그래도 주인이 지켜보고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기에 열심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알아듣기 힘든 게 있으면 늘 붙어 있는 황재홍에게 물어보거나, 말을 붙이긴 좀 어려운 느낌이지만 항상 친절한 최강욱에게 전화해보면 만사형통이다.

하여튼, 이렇게 달라진 김말숙의 일상이었으니, 당연하게도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다.

지금 건물로 들어선 고봉순도 최근 알게 된 사람이다. 이 건물 맞은편에서 커피숍을 하는 사장이었다.

“사모님, 저 왔어요.”

"아, 어서와요."

나이는 고봉순이 2살 많았음도, 김말숙에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임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매입으로 들어 왔다는 것에서 한 번 놀라고, 유재원의 부모라는 것에서 두 번 놀란 후부터다.

보통은 이렇게 고봉순이 먼저 김말숙을 찾아 왔고, 그럴 때마다 조각 케이크와 커피를 가지고 왔다. 매번 받기 미안한 김말숙은 인테리어 작업 중인 사람들 숫자에 맞게 커피를 몇 번이고 주문해서 나눠 주기를 반복했다.

순진한 김말숙은 고봉순이 커피를 팔려고 자신에게 친하게 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고봉순의 태도는 평소와 좀 달랐다.

“이것 좀 보세요.”

고봉순이 작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 김말숙에게 보였다.

“사진이네요?”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들이 하나 같이 담고 있는 건 곱게 자란 부잣집 막내딸인 모양이다. 시골에선 구경할 수 없는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예쁘장한 여자아이다. 사진마다 담겨 있는 아이의 모습이 다 달랐다.

나이는 유재원보다 2~4살 많아 보였다.

“뭔가요?”

“아, 글쎄 제가 사모님과 친하다고 알려진 모양인지, 자기들 딸을 사모님께 소개해 달라고 막 부탁을 해오지 않겠어요. 다들 어디 어디 사장님들이라서 차마 거절을 못 하고 이렇게 가져와 봤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콕 찍어가며 여자아이의 부모에 대한 신상을 줄줄 읊는 고봉순이다. 여긴 대명건설 사장 딸이고, 이건 성영토건 회장 손녀니 하는 식이다.

아무리 순진한 김말숙이라도 이쯤 되면 딱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제 아들인 재원이와 선을 보고 싶다는 집안이다.

“아이고, 우리 재원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선이에요? 이제 겨우 중학교 올라가는데요.”

김말숙은 손사래를 치며 사진을 고봉순쪽으로 밀어냈다.

“사모님, 재벌 집안은 태어나기 전부터 짝을 지어준대요. 아직 아드님이 재벌 반열엔 오르지 않았지만, 미리 듬직한 처가를 잡아 놓으면 앞으로 사업하기에 훨씬 수월할 거예요.”

고봉순이 은근한 말로 김말숙을 꼬드겼다.

“저는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하는 법이라 배웠어요. 재원이도 그렇게 컸고요. 무엇보다 재원이 마음도 모르고서 억지로 짝을 지어주고 싶진 않아요.”

김말숙은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다.

재원이는 스스로 성장했다. 아직 엄마 손에서 투정부릴 아이가 순식간에 자신의 품을 떠난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벌써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큰 사업을 하는 게 대견스럽기도 했다.

“또, 이런 거 들고 찾아오면 다신 안 만나 줄 거예요.”

아들을 믿는 김말숙은 단호히 말했다.

그런 김말숙의 옆에서 대화를 황재홍도 반성했다.

저런 뚜쟁이들이 사모님께 얼씬도 못하게 자신부터 철벽을 치겠다고 말이다.

비슷한 시각.

“둠둠, 둠둠둠둠~! 둠둠, 둠둠둠둠~!”

유재원은 팔자에도 없는 약혼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는 걸 모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ID 소프트웨어와의 이야기는 성공적이었다.

차기작으로 전설의 둠이 결정된 것만 봐도 올겨울, 아니면 내년 초 게임 시장은 다시 한 번 ID 소프트웨어가 압도할 거다.

그만큼 둠은 대박이다.

아니 대박으로도 묘사가 부족하고,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둘 게 확실한 타이틀이다. PC뿐만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기는 물론, 온갖 신기한 컴퓨터 시스템에 포팅될 정도로 인기였다.

더욱이 이제부터 둠을 만들 ID 소프트웨어의 역량은 전생과 달랐다.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어마어마한 자본력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울펜슈타인의 성공으로 ID 소프트웨어의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유능한 개발자들을 모집하는 게 훨씬 쉬워졌다.

존 카멕은 개발팀의 숫자를 거의 3배로 늘려서 총 30명에 이르는 대군단을 꾸렸다. 울펜슈타인은 겨우 8~10명으로 만들었다면 둠은 3배다. 여기에 유재원 본인이 꼼꼼하게 검수를 할 작정이니 최종 완성될 둠의 퀄리티는 전생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을 거다.

그러니 ID 소프트웨어에서 일을 잘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위해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절로 흥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 그게 무슨 노래인가요?”

둠둠이라고 흥을 내는 중이었는데, 너무 소리가 컸던 모양인지 옆자리의 김대석이 조용히 물었다.

“이게 무슨 곡이냐 하면……”

신나게 설명을 하려던 유재원이 순간 합죽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흥얼거렸던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5년쯤 후에 시작될 아이돌 시대의 대표 노래였기 때문이다. 둠둠이라고 반복되는 후렴구가 특징인데 중독성이 엄청났다.

조금전 부르던 건 핑크밸벳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둠둠'이라는 노래인데, 아주 큰 히트를 친 곡이었다. 얼마나 강렬히 머릿속에 박혀 있었으면, 둠하니 둠둠이 떠오르는 거다.

“음, 정식 곡은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 즉흥적으로 흥얼거린 것뿐이에요.”

아이돌 노래는 지금 사람이 절대 이해 못 할 스타일이었으니, 그냥 얼버무리는 게 최선이다.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공항에 곧 도착했고, 바로 다음 행선지인 맨해튼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기 위해서 짧은 대화는 종료되었다.

맨해튼.

뉴욕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자치구였다. 허드슨 강에 있는 섬들을 포함해서, 그 위쪽으로 몇 블록이 더해진 지역을 말한다.

특히 유명한 건 맨해튼 남부에 있는 월 스트리트였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곳이었고, 여기엔 수많은 금융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물론 나스닥, 아메리카 증권거래소 등등 유명한 거래소들의 본사도 맨해튼에 있다.

그런 맨해튼에 자리한 ID 테크놀로지의 플래그쉽 스토어의 입지는 최상위였다.

맨해튼에서도 집중도가 높은 센트럴 파크 근처이니 단번에 거리의 명소로 떠올랐다. 여기에 시대를 앞서간 인테리어는 물론, 지금도 예약이 밀려 있는 에그 PC를 방문만 하면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까지 있다.

무엇보다 ID 오피스로 만들어진 파일은 10장까지 무료로 인쇄해주는 서비스는 주머니 가벼운 학생이나, 급히 문서를 뽑아야 할 직장인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사장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덕분에 맨해튼 지점의 매니저는 간부들과 함께 떳떳한 자세로 유재원을 맞이 할 수 있었다.

“환대 고맙습니다. 그런데요, 앞으로는 이렇게 나오지 마세요.”

전 직원이 우르르 나와서 고개를 숙이는 한국의 재벌식 의전보다는 훨씬 가벼운 응대였지만, 이것도 허례허식으로 보이는 유재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본사와 끝에서 끝에 있어서 소통이 어려울 텐데도, 잘 꾸려오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매니저를 어르고 달래기가 일품인 유재원이다.

유재원 일행은 그의 안내로 플래그쉽 스토어 안으로 들어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실리콘밸리의 플래그쉽 스토어랑 같았다. 유리와 원목, 그리고 에그 PC를 통해 따듯하고도 미래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풍겼다.

대신 공간감이 조금 달랐다. 실리콘밸리 지점은 정사각형이지만, 가로로 넓은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안쪽으로 길었다. 맨해튼의 건물들이 입구는 좁고 안으로는 긴 형태라서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안에 있던 손님 중에는 유재원을 알아보는 이들이 상당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새해 행사는 전국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로 방송되었다. 그것이 시큐리티 챌린지까지 이어졌으니 유재원의 얼굴은 전 세계에 팔린 것이다.

21세기였다면 스마트폰에 카메라를 들고 유재원을 따라다녔을 텐데, 다행히 지금은 카메라도 필름 카메라가 대세인 시절이라서 사진을 막 찍으면서 따라오는 이들은 없었다.

“좋네요.”

미국의 양 극단에 있는 플래그쉽 스토어였지만, 운영 방식이나 직원들의 태도는 똑같았다. ID 테크놀로지의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똑같이 공유했다. 업무적인 면에서도 횡령이나 배임 등의 흔적은 없었다.

기본급도 다른 매장에 비해 높았는데, 열심히 일한 만큼 인센티브도 확실히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직원들은 다들 성심성의껏 일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기 전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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