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14화 (114/1,007)
  • [114]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

    #71-1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마돈나는 과연 일류였다.

    오늘 행사는 그녀의 말대로 실리콘밸리의 잘 놀줄 모르는 샌님들이 많이 참가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ID 테크놀로지의 시큐리티 챌린지의 종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IT 종사자들이 더더욱 많았다.

    나쁘게 말해서 너드(Nerd) 성향이 강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데, 마돈나는 이런 이들을 이끌고 자신의 콘서트처럼 열광적인 분위기로 만들어버렸다.

    “이제부터 시큐리티 챌린지 종료 선언과 결산을 발표하겠습니다.”

    우어어어!

    덕분에 새벽 1시가 되어 ID 테크놀로지가 바통을 넘겨받았음에도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는 건 없었다.

    준비한 기기들도 잘 작동해서 건물에 걸린 프로젝터 화면도 바뀌었다.

    유재원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화질이 좋지 않아서 나쁜 점도 많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뽀샤시한 효과가 절로 들어가서 민얼굴보다 잘생기게 나왔다는 거다.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상금 1천만 달러의 주인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큐리티 챌린지의 정답을 응모는 오직 ID 테크놀로지가 운영하는 사설 BBS의 게시판이다. 거기에 형식에 맞춘 정답과 내용을 올려야 응모가 완료된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응모된 게시물의 내용을 자동으로 판단하는 별도의 모니터링 프로그램도 실행하기 때문이다. 매일 수천, 수만 개의 글이 올라오는 데, 이걸 언제 사람이 일일이 열어서 정답을 확인한단 말인가.

    게다가 직원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면, 그 사람이 외부의 사람과 짜고 시큐리티 챌린지에 성공한 것처럼 꾸밀 수도 있었다.

    직원들의 능력과 열정을 믿고 일을 맡기는 유재원이지만, 돈은 믿지 않는 유재원이다. 돈에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응모를 받게 했다. 메인프레임의 강점이 보안성이다. 메인프레임을 관리하는 직원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메모리에 상주해 작동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렇게 작동을 시작한 모니터링 프로그램은 게시판에 정답을 담은 게시물이 올라오면, 즉각 알람이 울린다. 하지만 새해가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으니, 보안 전문가와 해커의 도전은 끝내 패배했다.

    ID 테크놀로지가 진정한 디펜딩 챔피언이 된 것이다.

    “그럼, 여러분들이 그렇게도 알고 싶은 IDW 파일을 열 수 있는 암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유재원의 말과 함께 거리에 걸린 스크린의 화면도 바뀌었다.

    컴퓨터와 바로 연결된 화면이다. 부팅이 막 끝난 안드로이드 알파의 고해상도 스크린이었다. 플래시 소리와 함께 방송국 카메라들도 전부 무대 뒤 스크린으로 향했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기본 배경 사진인 덕진리 내오마을 뒷산 모습이 세계에 송출되는 순간이다. 곧이어 유재원은 IDW를 실행했고,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하얀 바탕에 큼지막한 문자들이 입력되기 시작했다.

    ‘WoR1DBest$ecuritylDOfFice.EVer!!!’

    스크린에 암호가 뜨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엠바르카데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대문자와 소문자, 숫자 특수문자가 골고루 들어간 32자짜리 암호였다. 특수문자가 섞였지만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문장형 암호이기도 했다.

    물론 문법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세계 최고의 보안은 ID 오피스이고 영원할 거라는 대단한 포부가 바로 느껴진다.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은 ID 오피스로 해당 암호를 넣어서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ID 오피스가 설치된 고성능 에그 PC도 준비했다. 바로 열어서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보여주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진 파일을 직접 열어보는 게 더 대단한 임팩트를 줄 것이기에, 약간의 대기 시간을 가졌다.

    우와!

    실리콘밸리의 괴짜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대중화는 되지 않았지만, 일단 욕심을 내면 구할 수는 있는 고성능 노트북을 들고 행사장에 온 사람도 있다. 심지어 데스크톱 컴퓨터를 직접 들고 이 자리에 나온 녀석들도 있었다. 당연히 이들의 컴퓨터 안에는 ID 오피스와 시큐리티 챌린지용 IDW파일이 들어 있었다.

    마이크도 그런 괴짜 중 하나였다.

    마이크는 생애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등 뒤로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었고, 마이크는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암호를 넣었다.

    도대체 유재원이라는 꼬마 천재가 1천만 달러를 걸고 누구든 뚫어보라면서 뿌린 IDW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아오! 이봐 또 틀렸잖아. 내가 불러줄 테니까 너는 입력만 해! 대문자 E, 대문자 V, 소문자 e. 그리고 느낌표 3개!”

    더듬거리며 입력하다가 오타가 여러 번 나자, 조바심이 난 옆 사람이 옆에서 직접 불러줬다.

    “됐다!”

    덕분에 한결 수월히 입력한 노트북의 주인이 떨리는 손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암호가 틀렸다는 메시지 대신 해독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몇 초가 지났을까. 드디어 화면에 뭔가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과 하나의 그림이었다.

    -우리는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대가 불굴의 위대한 도전자이기에, 우리는 더욱 완벽해졌다.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쓴 승리자이다.

    뭔가 현학적인 문장이었다. 하지만 시큐리티 챌린지만 놓고 보면, 수많은 참가자 덕분에 AES-256암호 체계가 더욱 공고해지고, 신뢰성을 얻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이와 함께 유재원은 ID 오피스의 암호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걸 문장을 통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첨부된 그림은 뭔가를 잘했다고 할 때 엄지를 척 들어주는 제스처를, 단순하고도 귀엽게 아이콘화시킨 것이었다. 일명 따봉 아이콘이다.

    작성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단순한 해킹을 넘어서, 심리적 과학적 추리에도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다.

    같은 시각, 마이크처럼 직접 ID 오피스를 실행해 암호를 입력해 해보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숫자로 치면 100만은 쉽게 넘었을 거다.

    파일 안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해서 샌프란시스코 새해맞이 축제 실황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면서 암호를 받는 사람들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직접 암호를 입력한 수많은 이들이 문서 안의 내용을 보고 감동했다.

    뭔가 거대하고도 중요한 프로젝트에 자신들도 한 손을 거든 것 같은 뿌듯함이다.

    감동을 느낄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생각한 유재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비록 ID 오피스의 보안체계를 뚫진 못했지만, 유용한 보안 수단과 최적화 방법 등을 제시한 공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ID 테크놀로지는 AES-256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데 공헌해 주신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정의 상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1천만 달러는 고스란히 세이브다.

    그렇지만 그걸 그대로 다시 주머니에 넣는 것보다, 일부를 떼서 공헌자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ID 테크놀로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게 남는 장사라는 유재원의 판단이다.

    공헌자를 뽑는 것도 간단했다. 회사의 BBS에 올라온 게시물은 모두 추천 기능을 통해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일간, 주간 추천 10위 이상에 오른 모든 이들에게 주는 거다. 그리고 전 기간을 통틀어 10위 안에 오른 이들은 특별히 대우하는 거다.

    당연히 일간, 주간 순위마다 상금의 차이가 있다. 일간은 100달러, 주간은 1,000달러다. 모든 기간을 적용한 종합 순위는 10만 달러다.

    당연히 각 포상 중복이 나올 수 있는데, 당연히 상금은 누적된다.

    “BBS의 쪽지 기능을 통해 개별 통보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공헌 순위 1위에 오른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의 리처드 스톨먼씨가 대표로 수상하겠습니다.”

    상금은 321,100달러다.

    상금만 봐도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시큐리티 챌린지에서 리처드 스톨먼의 활약이 없었으면 무척이나 심심했을 거다.

    무대 위에 오른 리처드는 ID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명 밑에 $321,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커다란 수표 모형을 받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유재원과 악수했다.

    이것으로 성대한 89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만든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의 막이 내렸다. 누구나 웃을 수 있는 최상의 마무리였다.

    다음날.

    새해맞이 축제부터 시큐리티 챌린지의 피날레까지, 완벽하게 끝낸 유재원은 늦잠을 잤다. 자는 동안 전 세계 뉴스로 ID 테크놀로지의 소식들이 쉬지 않고 보도되었지만, 유재원에겐 보고되지 않았다.

    ID 테크놀로지는 정보통신기업답게 종무식이나 시무식 같은 행사도 없다. 그냥 1월 1일과 2일은 그냥 쭉 쉬는 거다.

    느지막이 일어난 유재원은 가벼운 옷을 차려입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 이제 일어나셨군요.”

    레스토랑에 가 보니 다행히 회사 사람들 몇이 파스타와 라자냐 같은 간단한 음식을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 중이었다.

    어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으로 뒤풀이를 크게 했다. 다만 그 장소는 유재원이 묶는 호텔로 돌아와서 했기에, 아직 체크아웃하지 않은 이들이 남아 있었다.

    레밍턴과 섀넌, 엘런 그리고 로저스 정도다.

    “다들 생생하시군요.”

    유재원은 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의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간소하게 먹으려고 주문도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인 파니니 하나만 시켰다. 음료도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로 선택했다.

    가장 어린 유재원은 파김치 상태인데, 다른 임원들은 바로 일을 시켜도 될 만큼 생생했다. 분명 오늘 새벽 3, 4시까지 놀고먹었는데도 멀쩡하다.

    “허허, 회사가 잘 되니까 활력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어제 그 열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엘런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여기 있는 이들은 유재원과 만난 뒤로 인생이 180도 달라진 사람들이다.

    이전의 일들은 지루했다면, 지금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과 같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도 제법 유능하다고 알려진 엘런이지만, 가장 크게 맡아 본 사건은 겨우 몇십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무려 2억 달러짜리 사건을 맡아서 진행했고, 승리까지 따냈다. 그 짜릿한 감정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큐리티 챌린지도 그랬다. 판돈이 1천만 달러짜리 승부였다. 유재원이 절대 뚫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혹시나 하는 두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벤트도 결국 유재원의 장담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89년도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연 올해 90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컸다.

    엘런이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마침 유재원이 주문한 파니니가 나왔다.

    배가 고픈 유재원은 일단 받아서 크게 한입 물었다.

    역시나 평범한 파니니의 맛이었다. 재료가 신선하긴 했어도 맛은 다 아는 평범한 종류였고, 조리법도 간소했으니, 그냥 보통의 파니니 맛이다. 그릴 자국이 없었으면 그냥 샌드위치다.

    유재원이 평범한 맛이라고 투덜거리는 건, 작은 조각 4개로 나온 파니니 한 접시 가격이 25달러였기 때문이다. 오렌지 주스 한 컵은 5달러였는데, 그나마 직접 짜낸 주스라서 상큼하긴 했다. 팁 포함, 두가지 가격이 33달러다.

    미식가의 미각이 있었다면 평가가 좀 달라졌을까? 하여튼, 호텔이란 장소가 가격대성능비 빵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나저나 BBS를 닫았는 데 반발은 없었나요?”

    접시에 있던 파니니 4개 중 두 개를 해치워 허기가 좀 사라진 유재원이 로저스에게 물었다.

    시큐리티 챌린지가 끝난 만큼, BBS는 더 운영할 이유가 없었다. 메인 프레임에서 BBS 게시판은 내렸고, 지금은 ID 톡 가입용 화면과 서버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이죠. 오늘은 회사가 쉬는 날이라고 공지했는데도 회사로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거든요.”

    프로그래밍 팀장 겸, 서버 관리 책임자이기도 한 로저스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시물은 그대로 보존 중이지만, 접속할 수 없으니 참가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놀이터가 사라져버린 느낌일 거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메인프레임의 성능은 크게 잡아먹으면서, 회사의 업무에는 도움이 안 되는 BBS를 계속 운영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BBS의 금단 증상이 생긴 유저들이 다른 컴퓨서브 같은 PC 통신을 찾으면서 가입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아시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PC 통신 서비스를 시작할 거 같아요.”

    케텔 인수 건에 대해서 ID 톡으로 미리 고지를 했기에 다들 아는 내용이다.

    “한국에 서비스하는 김에, 미국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죠. 그러니까 조만간 정식 BBS가 열리니 기다려달라고 하면, 유저들이 좀 진정될 겁니다.”

    “와, 그렇군요! 좋은 소식입니다!”

    “엘런 씨가 미국에서 정식 PC 통신 서비스를 하는 데 필요한 법적인 업무를 맡아 주세요.”

    “예. 문제없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사설로 운영한 BBS에 미국 연방정부의 딴지는 없었다.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이전과 달리 유료 서비스를 하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엘런에게 임무를 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서버로 사용할 컴퓨터를 사야겠어요.”

    “서버 말씀이십니까? 컴퓨터라고 하시면 x86 서버겠네요?”

    컴퓨터라고 하니 로저스가 반색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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