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70-2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불해야 할 피해보상금 2억 달러 육박!
29일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미국 전역의 석간신문 머리기사는 당연히 ID 테크놀로지의 승리였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억9천4백만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을 토해내게 생긴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9일 즉각 반발했다. 배상금과 벌금이 너무나 과중하다고 항소하겠다고 발표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위기는 이번 패소뿐만이 아니었다.
유재원이나 게리 킬달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횡포에 당했던 소규모 기업과 영세 개발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존재감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더이상 소송전 무패의 회사가 아니다.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내부의 조직력도 붕괴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임스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추악한 면을 알고 있는 내부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들은 중 몇이라도 들고 일어서서 합세하면 제국의 붕괴는 명백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파산 심각하게 고려!
붕괴의 징조는 불과 하루도 안 되어 현실화가 되었다.
ID 테크놀로지와 항소심을 가고, 최종심인 연방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이기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의 음성 파일은 너무도 완벽한 증거였던 탓이다.
스모킹건이다. 지옥의 악마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는 변호사라도 이건 무너뜨리지 못할 만큼 너무도 명백했다.
이런 상태로 최종심까지 가면, 재판 비용만 더 들어간다. 게다가 소비자와의 신뢰가 박살 난 상황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출시한다고 예전처럼 잘 팔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MS-DOS가 완벽한 독점 체제를 구축한 상태라면, 이를 기반으로 재기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안드로이드라는 강력한 대체재가 존재했다.
악재들이 쌓이고 쌓였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곳은 바로 주식시장이었다. 12월 초만 해도 1주당 54센트였던 주가가 재판 결과가 나온 29일 막판에 급하락했다. 순식간에 40센트 밑으로 떨어졌고, 최종 38.35센트로 마감되었다.
89년 12월 초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총액은 56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장이 종료된 시점에서 39억 달러로 내려 앉았다. 너무도 초라한 액수였다. 그나마 연말이라고 주식시장이 쉬어서 다행이다. 평일처럼 거래가 계속 이루어졌다면, 주가총액은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졌을 게 틀림없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 중에 대기자들에게 순서대로 털리기보다는, 파산 신청으로 챙길 건 챙기자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반대로 인수 의향이 있는 투자회사나 기업에 매각하는 방법도 제법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어찌 되었건 남은 건 파국뿐이고, 게이츠와 스티브에게 남은 선택이란 파산이냐 매각이냐를 고르는 것 뿐이다.
“파산이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식을 들은 유재원은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게이츠 게이트’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진짜로 망했다.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번진 제임스와 게이츠의 음성 파일은 유행가처럼 번지고 있다. 오죽하면 이사회마져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이사회에서 파산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겠는가.
“이거, 잘하면 뭔가 될 거 같은데?”
거덜이 난 마이크로소프트지만, 먹을 건 많았다.
무려 70년대 말부터 오늘날까지 PC 운영체제를 독점한 기업이었다. 가지고 있는 자산도 많았다.
특히 세계 곳곳에 만들어진 유통망도 탐스러워 보였고, 게이츠의 심한 삽질로 제대로 된 빛을 못 보고 있는 개발진이지만 그들의 수준도 최고였다.
“가만, 지금 내 돈이 얼마 있지?”
31일이 되기 전에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 앉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호텔까지 가져온 에그 PC를 켜고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곤 ID 톡을 켜서 회사 재무와 관련된 문서를 열고 투덜거렸다.
“음, 생각보다 좀 적네?”
최강욱이 들었다면 기가 찰 소리였다.
ID 테크놀로지에는 지금 돈이 넘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인베스트먼트의 이름으로 받은 토지 보상금이 지금 490억 원 정도였다. 여기서 로데오 거리 건물을 사고 남은 돈 430억 원 정도가 고스란히 수출입은행 통장 안에 모셔져 있다.
고금리 시대인지라 월 금리가 1%가 넘었다. 은행에 두 달 정도 놓기만 했는데도 이자가 9억 정도 들어와서 440억 원에 가까워진 상태다. 이걸 모두 달러로 바꾼다면 7,000만 달러다.
울펜슈타인의 정산금으로 받은 것 중 ID 테크놀로지 몫은 1천만 달러였고, ID 오피스의 전 세계 매출액이 2,500만 달러인데 여기에서 마케팅 비용과 생산 비용 등등을 빼고 난 순 수익금은 2천2백만 달러 정도다.
스테디셀러로 내려온 키보드 워리어도 꾸준히 팔리면서 지금도 수익이 났다. 여기에 키보드워리어의 배경 이야기가 얼라이브(ALIVE)라는 제목의 소설책으로 나와서 20만 부 정도 팔렸다. 그리고 이지스 쉴드의 로열티도 제법 쌓여 있다. 이러한 부수 수익을 다 더하면 600만 달러 정도는 될 거 같다.
한국의 판매금도 빼놓을 수 없다. 89년도 최종 매출을 보면 ID 워드프로세서 라이트만 3만 장 가까이 팔렸고, ID 오피스도 5천 카피는 나갔다.
“음, 다 더해보면 1억1천5백만 달러인가?”
죄다 현금 정산이라서, ID 테크놀로지에는 지금 돈이 넘쳐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1억1천2백만 달러도 89년도에 벌어들인 금액이라는 것이고, 작년에 넘어온 사내유보금은 또 따로 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받을 보상금도 더해야지.”
징벌적 배상금만 1억9천4백만 달러다. 여기에 재판 비용도 돌려받게 되니 2억 달러는 넘게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돈을 ID 테크놀로지가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함께 연합한 게리 킬달에게 분배를 해줘야 한다.
계산은 쉽다. 게리 킬달을 끌어 들을 때부터 8:2로 분배를 하자고 합의했다. 재판의 준비나 변호사들 비용, 결정적 한 방인 제임스 어거스틴까지 모두 ID 테크놀로지가 준비했고, 게리 킬달은 그저 이름만 올리는 수준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20%의 수익도 굴러들어온 것이니 그저 만족했다.
기리 킬달에게 20%로 약속한 4천만 달러를 주고 나면 1억6천만 달러가 남는다. 그렇지만 이것도 온전히 ID 테크놀로지의 몫은 아니다.
세금을 빼야 한다. 상해나 사망에 대한 피해보상금이면 세금이 붙지 않는데, 이번 건은 회사의 이익활동에 대한 배상금이라서 세금이 세게 붙는 거다.
“그러면 실제 손에 쥐는 건 1억2천만 달러인가? 그놈의 세금이 무섭네.”
이걸 다 합해보면 ID 테크놀로지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나온다.
“동전 한 푼까지 다 쥐어짜 내봐야 2억3천만 달러 정도네.”
개인의 처지에서 보면 억 소리가 날 만큼 큰돈이다. 하지만 기업 단위로 가보면 그다지 큰돈은 아니다.
주가가 뚝 떨어진 마이크로소프트를 사기에도 많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렇다고 유재원은 실망하진 않았다. 회귀하고 나서 1년 하고도 몇 개월 지났을 뿐이다. 맨주먹으로 이만큼이나 일궈냈으니 자랑할 만한 숫자였다.
잔고를 확인한 유재원은 프로그램을 닫고, 컴퓨터도 껐다.
총알이 많이 부족하긴 한데, 마이크로소프트를 충분히 사정권 안에 넣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유재원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긴 후, 눈을 감았다. 마음속 장바구니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30일이 지났고, 드디어 89년의 마지막 날인 31일이 왔다.
미국의 새해맞이 명소는 뭐니뭐니해도 뉴욕 타임스퀘어였다.
그렇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새해맞이 축제 역시 화려함은 타임스퀘어에 못지않다.
엠바르카데로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HAPPY NEW YEAR 축제는 금문교와 항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자리였기에 마천루가 즐비한 타임스퀘어와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우와와아!
엠바르카데로 거리는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특히나 올해는 작년과 달리 사람들의 숫자가 배는 많아 보인다. 실제로 작년엔 경찰 추산 10만 명이 몰렸다면, 89년 올해는 20만 명 이상이 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의 축제가 작년과 다른 건 바로 ID 테크놀로지의 후원과 시큐리티 챌린지와의 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ID 테크놀로지에서 폭죽값은 물론 거리 곳곳의 무대 설치 비용까지 1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으며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는 축제를 만들었다.
가장 공을 들인 건 대형 프로젝터를 이용해 만든 스크린이다. 엠바르카데르 거리에서 잘 보이는 높은 건물에 스크린용으로 하얀 막을 걸어 놓고 스크린을 만들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6대나 된다.
이렇게 만든 스크린으로 메인 무대 위 화면이 비춰진다. 이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축제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었다.
LED 조명은 상용화 전이라서 빛의 축제로 꾸미진 못했지만, 최신의 장비를 대거 동원해서 실리콘밸리답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나중에 새해맞이 축제의 근황을 정리한 CBS, NBC 뉴스를 보면 둘 사이에 일명 '때깔'의 차이가 너무도 명백하게 보일 정도다.
가장 중요한 메인 게스트는 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마돈나를 불렀다. 음향이며 조명이며 콘서트 수준으로 준비했기에, 그녀의 공연 수준은 최고였다.
물론 돈 낭비만 한 건 아니다.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틈틈히 ID 테크놀로지의 이미지 광고도 틀어주었다. 메인무대 주변으로는 'ID'라는 ID 테크놀로지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걸렸고, 이번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추위를 피하라고 나눠준 모자와 기념 야광봉에도 ID 테크놀로지의 로고가 가득 들어있다.
화면만 딱 보면 2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ID’라는 록스타 콘서트에 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ID 테크놀로지는 90년 1월 1일 01시가 되면 곧바로 무대를 넘겨받기로 했다.
유재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시큐리티 챌린지 결과 발표회를 다이렉트로 진행하는 거다.
일찌감치 준비된 무대라서 사전 공지는 거의 한 달 전부터 이뤄졌다.
그래서 사람이 몰릴 숫자도 일찍 계산을 끝냈다. 레밍턴이나 엘런 등, 행사를 준비한 회사 관계자들은 작년에 10만 명이 모였으니, 올해엔 12만 명 정도 올 거라고 예상했고, 준비한 물량도 그 정도였다.
20%만 증가해도 행사는 성공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을 완벽히 뒤엎고 100% 증가했다.
‘뭐지?’
20% 증가가 아니라 100% 증가다.
지금 무대 위에선 마돈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곡들을 연속해서 부르고 있긴 했지만, 그녀의 관중 동원력만으로 작년보다 100% 증가한 인파를 몰고 왔다고 하기엔 뭔가 근거가 부족했다.
"그럼 답은 하나지."
즉 예상했던 값 이상으로 새롭게 등장한 8만이란 인파는 오로지 ID 테크놀로지의 시큐리티 챌린지 행사를 보기 위해 나타났다는 추측이 합리적이다.
ID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은 온라인에서 더 강력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설 BBS는 이미 추가 접속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동시 접속자 숫자를 자랑했고, 다른 PC 통신의 상황도 다 비슷했다.
채팅방이나 게시판에 모여서 새해도 맞고 시큐리티 챌린지도 함께 보내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시큐리티 챌린지의 목표인 IDW 파일과 게이츠 게이트의 음성 파일 다운로드 숫자는 정확한 집계를 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미국 한정으로 디지털화된 데이터는 이미 대중화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온라인의 영향력은 현실에도 투영되기 시작했다.
-와우! 실리콘밸리라고 샌님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화끈한 분들이 많군요! 다 같이 소리질러 봐요!
우워어어!
마돈나의 외침에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함성을 내질렀다.
“아, 깜짝이야!”
마돈나의 깜짝 멘트와 시민들의 함성에 멍하니 깊은 생각에 잠겼던 유재원이 깜짝 놀랐다.
-바로 다음곡으로 가서 정신 놓고 놀고 싶지만, 새해가 온 건 기념은 해야죠! 모두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쳐봅시다!!
카운트다운이라는 소리에 더 놀라서 시계를 보니 11시 59분에 접어들었다. 벌써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무대 뒤편에 걸린 커다란 프로젝터의 스크린에 6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그냥 간단한 숫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CF 감독을 섭외해서 89년도의 인상적이었던 사건들의 동영상 클립과 음악을 카운트다운과 함께 결합했다.
정치나 경제, 사회 등을 가리지 않고 뽑힌 클립이라서, 천안문 사태나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이슈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ID 테크놀로지의 의뢰로 만들어진 영상이라 키보드 워리어나 ID 오피스 같은 것들도 슬쩍 비춰졌다.
그렇게 숫자가 10까지 내려오자, 감각적인 영상은 사라지고 오직 커다란 숫자만 띄워졌다.
그러는 사이 유재원의 상념은 다시 이어졌다.
전생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하나의 흐름을 감지했고, 적절한 단어를 만들어 정의했다.
디지털 혁명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촉발한 디지털의 혁명은 이미 현실세계에서 한창 진행 중이고,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단면이 확인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내년의 테마는 정해졌군.”
-3, 2, 1! Happy new year!
-새해를 처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해 볼까요? Like a virgin!
뭔가 솔깃한 소리가 난 거 같지만, 중요한 대목이라 정신을 집중하는 유재원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컴퓨터 데이터가 폭증하면?
당연히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 데이터가 고속으로 오고 갈 전용 고속도로가 필수 아니겠는가.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이쯤 하면, 다음 챕터 제목은 쉽게 예상하시겠지요??
예, 바로 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