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12화 (112/1,007)
  • [112]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70-1

    -게이츠 씨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려고 극약을 쓰다가 자기까지 중독된 겁니다. 그러게 허가받을 수 없는 극약은 쓰지 말았어야 했죠. 이번 기회에 진짜 농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어설프게 농업을 배워서 이 탈이 났으니, 진짜 농부가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겁니다. 클클클.

    “저 아저씨, 왠지 신나 보이네.”

    유재원은 지금 미국의 호텔에서 게리 킬달이 출연한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중이다.

    국민학교의 마지막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도 10일쯤 지났다. 첫주는 친구들과 실컷 놀았고, 둘째 주에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

    작년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에 갔다 오는 거로 땡이었는데, 올해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유재원의 가족뿐이 아니라 친척들의 살림살이도 완벽히 나아졌다. 선산에서 버섯과 약초가 쏟아지면서 다 돈이 되었고, 그게 큰집과 친척들의 살림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큰아버지는 유재원과 아버지의 몫도 챙겨주시려고 했는데, 이미 많은 돈이 있다고 아버지는 자신의 몫까지 다 나눠주라고 했다. 그러자 친척들이 고맙다고 선물을 가져왔는데, 그게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하는 건 당연한 일. 어쩌다 보니 마을에서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챙긴 집이 유 씨네 일가친척들이 된 거다.

    그렇게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한 유재원은 다시금 미국으로 출국했다. 당연히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의 화려한 마침표를 찍기 위함이다.

    이번엔 빠듯하게 일정을 짜지 않고, 느긋이 지낼 수 있게 일정을 설정했다. 31일까지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숙소로 잡은 샌프란시스코의 좋은 호텔에서 뒹굴면서, 시내 투어도 하고 쇼핑도 즐기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즐겼다. 샌프란시스코의 12월 날씨는 최하 6도였고 높을 땐 13도 정도로 한국의 11월 초 날씨와 비슷해서 두꺼운 옷만 입으면 돌아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올 한 해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해, 스스로 선물을 주는 것처럼 마음 놓고 쉬고 있는 유재원이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일부러 피했다.

    스스로 포상을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올해를 뒤돌아보니 유재원 본인이 직접 코딩한 소스코드의 양만 해도 소설책 5권 분량을 넘어섰다.

    그냥 소설을 5권어치 쓰는 것도 무리인데, 소스코드를 그렇게 짜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오피스와 안드로이드 알파의 주요 기능은 죄다 유재원의 손에서 나왔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하는 중이다.

    이대로 사업을 접더라도 올해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돈만으로 평생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는 정도다. 하지만 큰 야망이 있는 유재원에게 지금은 내년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 그러면서 세부적인 청사진도 그렸다.

    마스터플랜이라는 장대한 계획이 있긴 해도, 예정보다 이른 시작 때문에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자잘한 변수를 다 포함해서 세부적인 지침을 만드는 거다.

    물론 변수라는 건 모두 긍정적인 것들이라 사정은 훨씬 좋았다.

    당장 내년에는 전쟁이라는 굵직한 이벤트가 있는데, 여기에 동원할 자금의 규모가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졌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과는 완전히 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텔레비전만 틀면 업계 소식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게리 킬달 씨가 나오는 텔레비전 뉴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양반은 CP/M이라는 도스의 모태가 되는 걸 만든 사람이고, 이걸로 떼돈을 벌어서 실리콘밸리의 첫 신화를 쓰기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재판에서 ID 테크놀로지와 손을 잡고 있는데, DR-DOS가 게리 킬달 사장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리 킬달이 뉴스에 나와 설레발을 떨어도 될 만큼, 6일 심리는 완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어떻게든 재판을 끌어가고 싶어 했지만 이미 끝장이 났다.

    1심 재판은 판결이 떨어질 결심 공판 하나만 남았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사회에선 이미 끝장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실리콘밸리 사업 최전선에서 MS-DOS로 막강한 전선을 구축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제국이었지만, 안팎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이미지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악의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나빴는데, 제임스의 폭로가 쐐기를 박았다. 게다가 인터넷과 PC 통신을 통해 그 파일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전파가 되었다.

    이전엔 업계 사람들만 악의 제국으로 칭했다면, 지금은 일반인까지도 다 악의 제국이라 인식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단순히 이미지만 나빠진 게 아니다.

    미국의 시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었다. 독점적 상황을 이용해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법정에서까지 거짓말을 일삼아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낙인 찍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이 뚝 떨어졌다.

    일부 소규모 컴퓨터 제조업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대신 프리 도스를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안드로이드 알파를 채용하겠다는 회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 1심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라서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튼, 게리 킬달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직접 피해를 본 당사자였기에 요즘 텔레비전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다 이긴 것처럼 설레발을 떨고 있는데, 괜히 보는 사람 불안하게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았다.

    유재원은 설레발을 떨다가 망한 사람 많이 봤기에,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일부러 언론 인터뷰도 피하는 상태로 그저 31일 성대한 축제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열심히 푸는 게 유재원의 일이었다.

    “보스! 결심 판결일이 잡혔습니다.”

    텔레비전에 빼앗겼던 시선을 돌리려는데, 레밍턴이 새로운 소식을 또 들고 왔다. 웬만하면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지만, 재판은 아니다.

    “언제인가요?”

    “29일이랍니다.”

    “흐음, 금요일이요? 판사님들도 이 건을 새해까지 끌고 가긴 싫었던 모양이군요.”

    운명의 날이 정해졌다.

    89년 12월 29일, 금요일이었다.

    29일.

    운명의 날은 참 빨리도 찾아왔다.

    유재원도 이날만큼은 재판장에 참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숨통이 끝장이 날지, 아니면 결정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그들의 엄청난 로비력이 먹혀서 흐지부지될지 직접 보고 싶었다.

    ID 테크놀로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고소를 당했기에 원래는 피고 측 자리였다. 하지만 게리 킬달과 연합해서 ID 테크놀로지도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했고, 그 사건이 하나로 묶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원고, 피고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 자리가 피고 측으로 정해져서, 유재원은 그쪽에 가서 앉아 있었다.

    “게리 아저씨! 뉴스 잘 봤네요. 시원한 입담이 일품이던데요?”

    뉴스로 봤던 게리 킬달도 유재원과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인지, 직접 법정에 찾아왔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모습 그대였다. 덩치도 제법 컸고, 금발에 덥수룩한 턱수염이 구레나룻과 이어져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40대 후반의 아저씨다.

    “역시 너도 그 인터뷰 봤단 말이지? 뭐, 생각 같아선 죽음의 저주를 날리고 싶었지만, 텔레비전 앞이라고 자제했는데 괜찮았던 모양이네?”

    게리 킬달과도 이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래도 대 마이크로소프트 전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역시나 매우 과격한 성격의 아저씨였다.

    하긴 유재원은 본인이 게리의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작품을 베껴가서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도태시키려고 더러운 방법을 다 썼으니 말이다.

    “그런데 게이츠나 스티브는 오지 않을 모양이군.”

    게리는 반대편 마이크로소프트 측 변호인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와서 좋은 소리 들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그거 그렇지. 뭐 그 전에 나한테 죽겠지만. 아, 진짜 죽인다는 건 아니고, 죽고 싶을 만큼 욕을 퍼부어주겠다는 이야기지.”

    “정숙! 재판장님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둘 사이의 대화는 판사들의 입장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입장한 판사들이 자리에 앉자 일어서 있던 이들도 모두 착석했다. 이런저런 지루한 이야기가 몇 분 오고 갔고, 드디어 심판이 떨어졌다.

    역시나 심판도 이런저런 내용이 많이 붙어 있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품이 절로 나오게 했다. 그래도 꾹 참고 기다리니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측이 제시한 근거에 대해 재판부는 합리적이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가 ID 테크놀로지에 요구한 6천만 달러의 배상은 기각한다. 또한, 안드로이드 알파가 공정 경쟁을 해하는 덤핑으로 판단할 뚜렷한 증거가 없으므로, 배포 금지 또한 파기한다.”

    유재원을 비롯한 ID 테크놀로지 변호인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완벽한 승리다. 하지만 아직 주문이 다 끝난 건 아니다.

    “ID 테크놀로지와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공정 거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으며, 이로 인한 큰 피해를 보았기에 1억 달러의 징벌적 배상금을 요구하였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현재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운영체제 점유율은 91%에 이르렀고, 이는 연방 법률이 정한 독점적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시된 증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수뇌부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자와의 경쟁을 회피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명백한 연방의 공정거래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재판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원고 측에 보편적 배상금 4천400만 달러와 징벌적 배상금으로 1억5천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하는 바이다. 또한, 이번 소송의 책임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으므로, 소송 비용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부담한다. 이상.”

    주문을 모두 읽은 주심 판사가 판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예스!

    완벽한 승리다!

    땅·땅·땅 울리는 봉 소리가 그렇게나 시원할 수가 없었다.

    강렬한 비트의 드럼이나 베이스보다 더 유재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피해보상금도 기대 이상이다. 4,400만 달러가 나온 이유를 보니 안드로이드 알파의 배포 금지처분으로 발생한 손해를 4백만 달러로 쳤고, 공정 거래를 배제한 DR-DOS의 손해를 4천만 달러로 계산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이름값이 더 높았다면 배상금이 더 올라갔을 텐데, 아직은 성장 중이라서 이렇게나 작았다.

    아쉽다. 하지만 만족한다. 징벌적 배상금은 원래 청구했던 1억 달러에서 깎이는 것 대신 5천만 달러가 더 추가되었다.

    게이츠의 범죄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징벌의 의미로 4배에 가까운 벌금이 더 붙었다. 돈을 보고 범죄를 저질렀으니, 돈으로 징벌한다는 미국의 법 정신이 제대로 구현된 판결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재판부의 판결은 ID 테크놀로지의 변호사 군단이 유도한 것이었다.

    유재원은 마음 같아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수뇌부를 감옥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상류층인 그들이 감옥에서 몇 년 썩을 가능성은 없었다. 운 좋게 징역형이 나오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 나올 게 분명하니, 돈으로 타격을 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수뇌부 몇이 감옥에 좀 사는 것보다는 막대한 돈이 사라지는 게 회사의 주인이나 주주에게 가장 뼈 아픈 타격이다.

    의도는 제대로 적중했고, 그 결과가 최종 합계로 근 2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차!

    저들이 부담해야 할 소송 비용도 있다.

    인지세로 낸 1,000만 달러에 폴&스미스 법무법인의 에이스들을 죄다 모셔와 꾸린 변호사 군단의 몸값도 상당했다. 이것도 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담이다.

    이걸 다 더해보면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최소 2억 달러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 돈은 고스란히 ID 테크놀로지의 수익이 된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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