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08화 (108/1,007)

[108]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68-1

"어라? 22일이라고?"

공교롭게도 11월 22일은 안드로이드 알파와도 관련이 있다.

안드로이드 알파를 출시한 지 벌써 100일이 되는 날이 코앞에 온 것이다.

100일은 비단 연인 사이에만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ID 테크놀로지도 100일과 관련해서 했던 약속이 있었으니, 안드로이드 알파의 첫 번째 패치를 배포하기로 한 것이다.

유능한 유재원이 경영하는 ID 테크놀로지였기에, 패치 배포 날짜에 쫓기는 신세는 아니다.

패치의 개발방향은 한참 전부터 정해졌다.

실리콘밸리의 개발팀은 우왕좌왕할 것 없이 유재원의 비전을 따라서 첫 번째 패치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속도는 좀 느려서 이번에도 유재원이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또한, 컴덱스 행사 참가로 인해 9일이나 빼먹은 학교에도 빨리 복귀해야 한다.

교육부의 인가도 얻어서 결석으로 처리되진 않았지만, 9일 모두 쳐주는 게 아니었다. 컴덱스 행사가 실질적으로 진행된 6일만 인정이고, 3일은 결석이다. 이전에도 심심치 않게 결석을 좀 했던 유재원인지라, 별 탈 없이 졸업하려면 일찍 복귀하는 게 답이다.

즉, 유재원은 재판에 직접 참석하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다.

유재원은 현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측의 변호인단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건은 형사사건도 아니고, 민사였다. 민사 사건에 게이츠나 스티브 같은 거물이 나오진 않을 테니, 유재원이 참석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재판이 한 번의 심리로 끝장이 나는 일은 없다.

우리 ID 테크놀로지가 제시할 증거와 반박 자료도 방대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측의 반론도 상당한 분량일 거다. 이걸 다 검토하는 데 몇 주는 걸릴 것이니 결심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겨울 방학이 기간일 거다.

여러 상념 속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지만, 유재원 일행은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사무실에 들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곧장 한국행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움직였다.

“재판의 상황에 변수가 발생하면 꼭 알려주세요.”

출국장에 입장하기에 앞서 유재원은 배웅을 하러 따라온 레밍턴과 엘런에게 당부했다.

“물론입니다. 보스의 메일함이 터져 나가도록 재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보내드리죠.”

레밍턴도 회사의 명운이 달린 재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그리고 이번엔 앨런과 우리 변호인단을 믿어 보셔도 됩니다.”

“허허, 예. 레밍턴 말 그대롭니다. 제가 재판에 대해서는 장담을 쉽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보스가 워낙 판을 잘 짜주셔서 절대 질 수 없는 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말입니다. 우리가 이길 겁니다.”

레밍턴의 말을 엘런이 보충해줬다. 게다가 원래 장담은 잘 안 하는 성격의 엘런이 레밍턴처럼 말했다.

다부진 대답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든든하네요. 그럼 우리는 믿고 가겠습니다.”

엘런의 장담에 한시름 놓은 유재원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국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나절을 날아서 한국에 도착한 유재원은 바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도 아니고, 일등석에 앉아서 왔고 팔팔한 나이이기도 했지만 장시간 비행은 늘 피로했다.

그래도 첫 번째 행선지는 서울이다. 장시간 비행에 피로가 가득 쌓인 최강욱을 집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 것이다. 최강욱을 위한 기사가 차를 가지고 오긴 했는데, 미국에서 가져온 짐이 많아서 차 두 대의 트렁크를 다 채우고도 넘쳐났다.

에그 PC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최신의 컴퓨터 부품과 지인들 선물 등등으로 종류도 다양했다.

김대석의 그랜저에 그 짐을 다 몰아넣고, 먼저 여주로 떠나보냈다. 유재원과 최강욱은 남은 차에 올랐고, 최강욱의 집부터 갔다.

최강욱을 그의 집에 데려다 준 후, 유재원은 집으로 가야 하지만 선택은 서울 지사였다.

서울 지사는 최강욱의 집에서 가까웠는데,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방문하기로 했다. 게다가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이니 지금은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서열 1, 2가 미국 출장이니 근무 태도가 혹시나 나쁘진 않을까 해서 불시에 방문한 것인데, 회사는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무지하게 바빴어요. 갑자기 ID 오피스 주문이 쏟아져서 그 물량 대기도 벅찼거든요.”

전직 최강욱의 조수였다가, 지금은 서울 사무소의 경리를 맡는 임춘희가 유재원에게 출장 기간 중 발생한 매출을 요약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제법 두툼했다. 그래서 유재원은 하루에 몇 개나 팔렸나 하고 자세히 보진 않았다.

유재원의 위치는 이제 그냥 서류의 맨 마지막, 결산한 내용만 보면 된다. 놀랍게도 ID 워드프로세서 라이트만 1만 장 이상의 주문이 있었다. ID 오피스 세트도 2천 개가 넘게 팔렸다.

평소 한국에서의 ID 워드 판매량은 몇백 개 수준이었다. 사실 그것도 많다고 생각한 유재원이다. 286도 고급 기종에 속하는 시대였고, 불법 복제가 만연한 시절이니 정품의 수요는 법을 꼭 지켜야 하는 정부나 회사에서만 나온다.

심지어 정부나 회사도 돈이 없을 땐, 불법 복제품을 마음 놓고 쓰던 시절이니 2, 300개 팔리는 건 기적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주문이 폭등했다.

“설마. 이거…….”

날짜를 자세히 보니 집히는 게 있었다.

“컴덱스에서 사장님이 발표하시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수도 없이 나왔어요! 그날 이후로 이래요.”

역시나 컴덱스였다.

일본산과 함께 미국산을 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다. 그런 미국에서 ID 오피스가 대세가 되니 부랴부랴 따라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386은 별로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ID 워드프로세서를 잔뜩 들여놓는 모양이다.

하긴, 사무직의 경우 ID 오피스 전체의 기능을 필요한 직군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워드프로세서는 거의 모두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이라서 수요는 대단히 많았다. 지금은 1만 장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0 하나가 더 붙을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판매는 모두 현금 장사였다. 물건을 받고 싶으면 돈을 줘야지, 어음 따윈 받지 않는다.

덕분에 ID 워드 판매 대금으로 4억 원 넘는 돈이 들어왔다. 대신 그 물량을 만들어야 하는 강찬호 부장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단다. 이쯤 되면 유재원도 패키지 생산 공장 하나를 정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미국에 팔리는 물량도 일렉트로닉아츠에 의뢰하는 건 새는 돈이 많았다. 직접 만들면 돈도 절약하고, 수출도 하는 것이라 생색을 낼 수 있는 게 많다.

“아. 그리고 체신부의 새 장관님이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체신부 장관님이요?”

유재원을 특히나 챙겨준 오명 체신부 장관이 교체된 건 여름이었고, 새로운 장관과는 딱히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에휴, 내려갔다 올라오긴 귀찮으니, 지금 가도 되느냐고 물어봐 주세요.”

유재원의 말에 임춘희가 움직였다.

전화기를 들고 몇 차례 통화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만 보더라도 지금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딱 보인다.

체신부의 새로운 장관 이름은 홍병도란다.

김대석이 이끄는 자동차에 탄 후,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유재원은 홍병도란 이름에 조금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역사에서 오명 장관의 후임은 이해욱이라는 사람이었다. 청와대 총무처 차관을 하다가 영전하는 사람인데, 노 대통령이 청와대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총무처에 꽂아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노 대통령과 군부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이해욱에게 체신부 경력을 위해 짧게 거쳐 가는 자리였다. 임기를 1년도 채우지 않고, 바로 한국통신 사장으로 옮겨갔다.

당연히 여기엔 노 대통령의 복심이 깔렸다. 자기의 측근을 한국통신에 꽂아 넣은 건, 거기에서 노 대통령의 사위 집안인 선정그룹에 이동통신 사업체까지 몰아주려는 커다란 계획의 일환이었다.

선정그룹은 작은 화학 회사에서 시작했다. 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걸 만들었는데, 이런 합성수지를 이용해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영토를 늘려나갔다. 그렇지만 테이프를 만들어봐 그다지 큰 사업은 아니었다. 화학 회사에 가장 중요한 건 원료가 되는 원유를 받아와서 증류하는 설비인데, 상당히 거대한 플랜트 사업이었다.

조그만 선정이 그걸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아서, 외풍에 민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정그룹이 1980년 대한 석유공사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에는 선정의 장남이 현 대통령의 장녀와 결혼했고, 이를 통해 이동통신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한국의 대재벌 반열에 오른다.

“뭐지?”

대통령이 선정그룹에 이동통신 사업을 안겨주는 건 이미 고정된 흐름이다. 그런데 그 작업을 할 이해욱이 체신부 장관에 앉지 못했다.

자신이 일으킨 변수가 거기까지 미친 것일까? 하지만 홍병도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으니 단정을 지을 수 없다.

‘만나보면 답이 나오겠지.’

유재원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 홍병도일세. 나라의 재원인 유재원 군을 만나니 반갑구먼. 오명 전 장관에게 자네 이야기 많이 들었네.”

“아이고, 장관님께서 기억해주시니 제가 다 영광입니다.”

유재원은 홍병도와 마주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공치사를 남발했다.

만나보자마자 딱 각이 나왔다. 홍병도라는 양반은 원래 오기로 했던 이해욱보다 더 막 나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게 딱 보인다.

옷은 양복이지만, 태도나 말투는 아직도 군인이었다.

하긴, 홍병도의 전직은 노 대통령이 장군을 했던 그 사단의 사단장이었고, 예편하고 나서 불과 몇 개월 백수로 있다가, 바로 이 체신부 자리에 꽂힌 것이다.

21세기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군인이라는 단어는 21세기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았다. 평상시에는 나라를 든든히 지켜주는 방패이고, 태풍이나 폭설이 일어나면 나타나 도와주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이미지다. 하지만 지금은 89년이다.

군인, 특히 장군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나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걸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람이 홍병도였다.

두 번째 노 대통령 때부터 인사청문회법이 만들어졌다. 완벽하게 만족스럽지 않지만, 거름망 역할은 확실히 했는데, 홍병도가 만약 인사청문회를 거쳤다면 절대 이 자리에 앉을 수 없었을 거다.

그만큼 이 사람은 군인이 되지 않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 온갖 비리도 얼룩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체신부 장관에 앉혔다는 건 노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히 보이는 대목이다. 이동통신 사업은 사돈네 기업을 확실히 챙겨주겠다는 바로 그 의지 말이다. 또한, 체신부를 통해 여러 가지로 빼먹을 만한 게 많이 보였던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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