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제국의 역습 ==============================
#61-2
“점심은 치킨이다!”
치밀어 오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닭다리라도 뜯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은 치킨이 먹고 싶을 때,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즉, 여주에 치킨집이 생겼다. 그것도 2개 지점이 시내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생겨났다.
치킨집의 이름은 둘 다 유경치킨이다.
유경식품에서 직접 운영하는 치킨 체인점이기 때문이다.
수경이네 아버지가 9월 초 사업계획서를 마무리했다. 수경이네 집이 지금껏 모은 돈에, 땅과 농장까지 담보를 잡아 10억을 대출받았고, 현미유 사장님이 10억, 유재원이 10억, 총 30억 원을 출자해서 유경식품 주식회사를 출범했다.
모두 다 똑같은 자본금을 냈으니, 대주주 셋의 지분도 33.333%다. 대신 유재원이 수경이 아버지에게 경영권을 일임했기에 혼란 같은 건 없다.
지금은 덕진리 공단 빈 땅에 닭 가공 공장을 세우는 중이었다. 동시에 병아리를 키우는 시설도 만들고
있고 감별사들도 고용했다. 병아리를 닭을 길러 줄 농장과도 한창 계약 중이었다. 본격적인 육계 유통사업은 가공공장이 완공된 후에야 시작할 수 있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그때까지 마냥 놀 수는 없었기에 가맹사업도 시작한 것이다.
여주를 비롯해 인근 도시에 유경치킨이 진출했다. 현재는 총 8개 점포가 운영 중이었고, 그 인기는 무서웠다.
오토바이도 있고, 전화도 많이 보급된 상태다. 전화 한 통에 집으로 배달까지 되니, 치킨의 인기는 빠르게 올랐다. 특허로 등록한 크리스피 치킨과 양념치킨 그리고 간장 치킨은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치킨 한 마리에 3천 원이라는 89년도 물가에 대비해서 조금은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평일에도 수십 마리씩 팔렸다.
일요일 같은 경우엔 주문이 밀려서 배달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치킨 생각이 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서 배달을 시켰다.
양념, 간장 한 마리씩이다.
치킨 생각을 하니,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습에 맞은 분노가 좀 가라앉은 유재원이다. 그런데 유재원이 미처 모르고 있는 게 있다.
PC 통신 사이트에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들어준 가처분 판결은 뜨겁게 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HAT THE HELL! 법원은 무슨 생각이냐!
-IBM 호환 PC 사용자들은 무조건 100달러씩 마이크로소프트에 내라는 이야기다!
-늙다리 판사들이 애드웨어라는 새로운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 전용 게시판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올라오던 보안 관련 게시물이나, 컴퓨터 기술 관련 내용은 싹 사라졌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와 법원을 성토하는 글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추천도 쏟아지기 시작해서 일일 베스트 게시판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ID 테크놀로지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긴 했지만, 사용자 친화성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놀라운 경험을 안겨준 게임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염가에 제공했다. ID 오피스도 경쟁 제품과 비교해서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특히 안드로이드 알파는 애드웨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배포 중이었고, 제품의 품질도 MS-DOS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하드웨어를 직접 조작하는 FDISK나 DISKPART 같이 로우포멧을 하고, 하드디스크를 분할하는 등의 전문적인 작업은 못 해도, 기본적인 작업은 잘 수행했다. 특히 고해상도의 바탕화면은 보기에도 좋았을 뿐만이 아니라, 일의 능률도 대폭 올라가는 효과를 내주었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이 사용자에겐 무료였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단 받아 놓자!
안드로이드 알파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걸 보며, 전용 응용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나는 때를 기다리던 유저들이 대거 소매점으로 향했다. 배포 금지가 되기 전에 받아놓으려는 것이었다.
온라인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게이츠의 악취미가 발동했다! 벤처기업의 활로를 막고 기술을 빼앗아가려는 속셈이다!
-ID 시큐리티 챌린지를 망치려는 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D 오피스의 기술을 훔치려다 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악감정이 생긴 모양이다.
-차기 윈도우에는 리본 인터페이스를 유사하게 따라 한 짝퉁 인터페이스가 들어갈 거라는 내부의 증언도 있다.
-ID 테크놀로지와 법적 충돌을 하기 전에, 미리 길을 들이는 거다!
PC 통신 유저들 사이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비난 수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그랬다더라 하는 이야기였는데, 점점 살이 붙더니 내부인만 알 수 있는 정보까지 올라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관망하던 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점차 거대한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PC 통신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본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진 못했지만, 뭔가 뜻이 하나로 모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탄원서를 내자!
그러다 어디선가 유의미한 의견이 나왔다.
애드웨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법원에 이제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취했던 폭리를 규탄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내자는 거다.
놀랍게도 오프라인에서도 행동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이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을 이끄는 리처드 스톨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에 악감정이 상당했던 그는 이번 안드로이드 알파 판매 금지 가처분 결정을 보고 경각심이 켜졌다.
물론 ID 테크놀로지도 GNU에 동의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팔고 있긴 한데, 그 가격은 무척이나 저렴했다. 게다가 안드로이드 알파의 경우에는 자유 소프트웨어로 볼 여지도 충분했다.
소스코드가 공개된 건 아니지만, 사용자는 무료라는 정책 덕분에 컴퓨터를 만드는 비용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의 일로 인해 안드로이드 알파가 실패하게 되면, 자유 소프트웨어에도 그 영향이 미칠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좋은 아이디어다.
-길거리 서명도 좋을 거 같다. 실리콘밸리부터 서명을 받자!
안드로이드 알파의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탄원하는 문서가 곧 만들어져서 공개되었다. 모든 컴퓨터에서 다 읽을 수 있는 TXT 파일과 ID 워드프로세서로 읽어지는 IDW 파일 두 가지가 인터넷과 PC 통신에 올라왔다.
문서를 프린트해서 본인의 서명을 넣고 리처드 스톨먼이 운영하는 사서함으로 보내면 참여가 완료된다.
일을 시작한 리처드 스톨먼은 1심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500통 정도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늘 계획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이 점점 커졌고,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스톨먼의 사서함이 터져 나갔다.
수천 통에 달하는 우편물을 정리하기 위해서, 시큐리티 챌린지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던 대니얼과 다른 동료들까지 리처드 스톨먼을 도와야 했다.
“세상에, 정말요?”
-예, 보스가 덕을 많이 쌓은 것 같군요. 이번 일에 분개해서 제 일처럼 나서 주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안드로이드 알파를 사용하던 이들이 법원으로 보내는 탄원서가 벌써 3천 장이 모였단다. 이뿐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안드로이드 알파 지지 서명을 받고 있는데,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뿐만이 아니라 LA,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등 미국의 주요 대도시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란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알파를 애드웨어라는 형태로 푼 건 어디까지나 미래를 내다본 포석이었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같은 쟁쟁한 강자에 비해 이름값이 부족한 것을 뚫어보고자 만든 행사였다.
그런데도 유저들은 큰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발 벗고 나서 주고 있는 거다.
재미있는 점은 ID 테크놀로지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대도시의 공통점은 명문 대학들이 있는 도시였다. 아무래도 ID 오피스를 통한 협력관계가 큰 지렛대가 되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동이었다.
이번 일이 해결되면, 유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벤트라도 성대하게 열어야겠단 생각이 절로 드는 유재원이다.
“우리도 열심히 준비해야죠.”
-물론입니다! 일렉트로닉아츠와 시러스로직, ATI, AMD 등등 협력사들도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유재원은 조만간 열린 1심부터 끝장 승부를 보기로 했다.
덤핑이 아님을 반박하기 위해서 안드로이드 알파에 광고를 넣은 기업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한 공동 전선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아직 관망 중인 회사들도 상당수였지만, 레밍턴이 말한 회사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협조했다.
안드로이드 알파에 광고를 넣은 후 효과에 대해 증명을 하는 것이다.
ID 테크놀로지의 법무팀과 폴&스미스 법률사무소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안드로이드 알파의 동시에 앞으로 광고 슬롯의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지 계산도 진행 중이다.
특히 안드로이드 알파의 점유율과 함께 광고의 효과와 앞으로의 가격을 계산 중이었으니 법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광고 단가를 정할 때 중요하게 사용될 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임스도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제임스 하면 일렉트로닉아츠의 수석 엔지니어 제임스 웹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유재원이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 전용 게시판에서 그가 올린 글을 보면 AES 알고리즘의 구조를 제법 정확하게 추측하기도 해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정도로 유능한 친구였다.
AES가 알고리즘 구조를 안다고, 파괴할 수 있는 기법은 아니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이 정도로 알아낸 것도 상당한 성과였다.
마음 같아선 ID 테크놀로지로 확 데려오고 싶은 인재인데, 호킨스 사장과의 관계가 파탄이 날 수 있으니 참는 거다.
그런 제임스 말고 제 발로 굴러들어온 제임스도 있었다.
“제임스 어거스틴? 그게 누구죠?”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랩 팀장이었습니다. 불과 2달 전까지는 말입니다.
레밍턴이 해준 제임스 어거스틴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게다가 본인과도 관련이 있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중에 유재원이 ID 오피스에 심어놓은 지뢰를 모르고 밟았다가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린 양반이었다.
“알파 랩에서 영업했다는 사람이 거기 팀장이라는 거예요? 팀장급 고급 인재를 막 놔주는 거예요?”
-보통의 경우는 아니죠. 그런데 게이츠 회장이 보통 사람입니까?
보통 사람은 막 화가 날 때 막무가내로 내뱉은 말은 나중에 후회한다. 그런데 게이츠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해고가 진행되어 버렸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번듯한 직장을 잃은 그가 레밍턴의 정보망에 딱 걸렸다. 당연히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레밍턴은 이삭줍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알파랩 소속 프로그래머들은 실력 좋기로 소문이 났고, 금세 옮겨갈 회사를 찾아간 것이다.
ID 테크놀로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회사였기에, 레밍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제임스 어거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밍턴의 스카우트를 거절했던 제임스 어거스틴은 그냥 좀 쉬었다. 이번처럼 더러운 일은 당하지 않기 위해 회사를 신중히 고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전 세계 컴퓨터 전문가와 해커들의 축제 시큐리티 챌린지가 열렸고, 제임스 어거스틴 역시 빠지지 않았다.
과제로 올라온 IDW파일의 구조가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데이터가 쓰레기로 변했을 때와 같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모양인지, ID 테크놀로지에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놀랍게도 제임스는 MS-DOS 4.0이 ID 오피스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메모리 관리 설계를 변경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공정 경쟁을 배척하는 건 법으로도 금지된 일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공정 경쟁 배제의 죄목으로 인해 기소되고 유죄로 판결이 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도 과거에 몇 번 걸리긴 했지만, 이렇게 기능이 필요해서 만들다 보니, 호환성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 해결은 해당 소프트웨어 제조사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이제껏 출시된 윈도우가 디지털리서치사의 DR-DOS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와서야 윈도우에 DR-DOS를 감지하는 코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척 나중에야 밝혀진 것인데, 현재의 시점에서는 그저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심은 있지만, 증거는 없는 상태였다.
-제임스 어거스틴은 필요한 경우 직접 증인으로 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역습, 법원까지 이어지는 그 강력한 영향력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반전의 카드가 알아서 굴러들어왔다.
리처드 스톨먼이 주도하는 탄원서도 강력한 무기였고, PC 통신과 대학교 인터넷의 여론도 ID 테크놀로지 쪽으로 모이고 있었다.
역시 착하게 살면 하늘이 다 도와주는 것 같다.
이제 정식 재판에 들어가서 악의 제국을 제대로 털어주는 일만 남았다. 이번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확실히 보여줄 거다. 역습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무한 감사합니다~!!
주말이네요~~!
불타는 금요일 후, 꿀맛과 같은 주말이네요. 재미있게 잘 보내시고,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월요일 저녁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