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7화 (97/1,007)

[97] 제국의 역습 ==============================

#61-1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황당. 그 자체였다.

심리 몇 번 해보더니, 일주일도 안 돼서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것이다. 엘런이 준비하는 드림팀이 구성되기도 전에 끝났다. LA 노숙자 연쇄살인 사건 때, 미국의 법치주의를 칭찬했던 유재원이지만, 지금은 아닌 밤 중에 홍두깨를 맞은 표정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번 가처분 결정을 내린 건, 이 사건을 배당받은 사무엘 슈나이더 판사의 친기업적인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풍문입니다.

엘런의 말이었다.

“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기업이 아니랍니까?”

회귀 후, 억울한 경우는 처음이라서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유재원이다.

아무리 친기업적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기업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이리 빨리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조금 전 항변처럼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결정이 법정에서 우리 변호사들이 좀 투닥거린 다음에 나왔으면, 가슴은 이해 못 해도 머리로는 이해했을 거다. 그런데 팀이 꾸려지기도 전에 끝났다. 스파링을 위해 링에 막 오르는 참인데 심판이 상대편 손을 먼저 들어준 거나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분명 마이크로소프트의 존재감이 재판에 큰 영향을 줬을 겁니다.

엘런의 분석에 유재원은 동의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전광석화 같은 결정이 나올 일은 없었을 거다.

-정식 재판을 신청해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1심 재판을 승리해서 판매금지 가처분 조치를 해제해야 하고, 이에 따른 손해 배상도 마이크로소프트에 청구해야 합니다.

“그래야죠.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가처분 결정이 확정판결은 아니라는 거다.

미국도 한국처럼 삼심제 아니겠는가. 가처분 결정은 정식 재판에 들어가서 장기간 법정싸움을 하는 중에, 손해가 크게 누적될 수 있으니 일시 정지시켜놓고 재판을 하자는 뜻이었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기업엔 일시 정지 자체도 큰 타격인데, 반대편에 선 기업 역시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것이라서 만들어진 조치였다. 그렇게 본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에 그들의 하소연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졌고, 판사가 적극적으로 공감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 요인은 있을 거 아닌가요. 도대체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인 요인이 뭐죠?”

-예, 일단 우리가 계약한 폴&스미스 법률사무소의 전문가들이 판결문 전체를 검토 중입니다. 아직 작업 중이지만, 일단 판결문에 나타난 것만 보자면 마이크로소프트의 6천만 달러 손실이 법원에서 인정된 모양입니다.

뭐라?

6천만 달러의 손실?

엘런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도스 호환 그래픽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알파가 사용자에겐 공짜로 풀리는 바람에 MS-DOS 4.0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올렸어야 할 매출액 중에 6천만 달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마이크로소프트식 계산은 이런 거다.

출시 한 달쯤이면 100만의 판매량이 나올 거라고 했다. 이에 대한 근거는 MS-DOS 3.0 때의 매출전표였다. 그때는 60만 장 정도 팔렸는데, 컴퓨터의 보급률이 높아지고, 매달 판매되는 신제품의 숫자가 많으니, 100만 장 판매는 문제없단다.

하여튼 100만 장을 팔았다 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패키지당 100달러를 공급 가격을 설정했다. 그러니 단순 계산으로 1억 달러의 매출이 나오는 거다. 여기서 안드로이드 알파가 사용자에겐 무료라는 애드웨어 형식을 들고나와 시장을 교란했단다.

사용자는 무료이고, 기업들로부터 받는 광고 비용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무섭게 시장을 잠식하니 MS-DOS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공급가격 자제도 60달러로 내렸고, 여기에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대량 구매를 하면 파격적인 할인도 해주는 행사까지 해서, 결국 개당 가격이 4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는 거다.

그러니 1억 달러의 매출이 4천만으로 내려왔고, 그 차익 6천만 달러는 오로지 안드로이드 알파 때문에 생겨났다는 논리였다.

“이딴 계산법이 다 있죠? 자기들이 가격을 낮게 잡아 놓고, 우리보고 피해가 생겼다니, 적반하장도 따로 없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학교에 가서 산수 다시 배워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억지는 또 있습니다.

“더 있다고요?”

-패키지 제품 형식의 유통이 아니라, 소매점에서 복사를 해주는 건 불법복제를 하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학습시켜준다는 겁니다. PC 통신이나 대학의 FTP 배포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유저들이 앞으로 정품을 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프로그램 유통 플랫폼은 21세기에 대세였다. 특히 가장 먼저 그 시장에 뛰어든 회사가 스팀이었다. 만약 스팀을 만든 게이브 뉴웰이 저 소리를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

그러고 보니 지금 게이브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다. 그것도 윈도우 개발 부서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을 거다. 참 재미있는 상황이다.

하여튼, 유재원은 준비한 반론도 써먹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억지 논리가 직관적이긴 했다면, ID 테크놀로지의 논리는 약간 어려웠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필수였던 운영체제의 비용에서 해방되면서, 구매에 써야 했던 돈을 다른 곳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스를 살 돈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여러 개 구매하거나 하는 식으로 영세한 기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안드로이드 알파의 존재 덕에 MS-DOS의 구매 비용을 대폭 깎을 수 있었고, 절약한 비용으로 신제품, 신기술 연구나 마케팅에 활용했다.

엘런과 폴&스미스 법률사무소의 엘리트 변호사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이익이 거대한 기업에 집중하는 것보다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지는 게 국가 경제에도 훨씬 좋다는 케인주의 경제학자의 코멘트까지 첨부할 작정이었다. 방대한 작업이라서 아직 제대로 된 자료는 만들어지지 않아서, 말로 판사들을 설득할 참이었다.

이미 법봉이 두드려졌다. 더욱 완벽히 준비해서 1심 재판에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확정된 법원의 명령은 뭔가요? ”

-예, 1심 재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안드로이드 알파의 배포를 중지해야 합니다.

매일 수만 건, 어떤 날엔 10만 건도 넘는 다운로드 수치였다. 그만큼 알파가 잘 유통되고 있다는 건데, 기세를 타고 있을 때 내려야 한다니 뼈가 아프다.

“살짝 버전업해서 안드로이드 베타 걸로 계속 배포하면 안 되겠죠?

-음.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건 알파이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열릴 정식 재판에서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확신합니다.

베타 이야기는 농담이었다.

안드로이드 알파는 상표 이름이고, 회사 안에서 통용되는 버전은 0.1이다. 차근차근 버전업해서 유닉스 커널로 거듭나면 1.0이 붙여지는 거다.

만약 안드로이드 알파가 처음부터 유닉스 형태의 커널을 탑재하고 나와서 지금 같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MS-DOS와 유닉스는 그 계열이 완전히 다른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지금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꼴을 보면, 계열이 달라도 딴죽을 걸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가처분 결정도 판결은 판결이니 존중해야죠. 엘런은 최선을 다해 정식 재판을 준비해주세요.”

-예, 정식재판에선 이런 엉터리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보스에게 최대한 빨리 승전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순간이라고 생각한 엘런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던 엘런이었다 그런데 ID 테크놀로지에 들어와서는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적었다. 기껏해야 일렉트로닉아츠와의 최종 협상 계약서를 쓴다거나, ID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때 검토한 게 전부다.

이번에는 본인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케이스였다. 유재원에게 중용될 기회라고 생각한 엘런은 기세를 올렸다. 게다가 레밍턴에게 물이 들었는지, 유재원을 부르는 말이 사장님이 아니라 보스가 되어버렸다. 무슨 암흑의 조직을 이끄는 듯한 느낌이지만 엘런과도 친해진 느낌이라서 나쁘지 않았다.

엘런과의 접속을 마친 유재원은 곧 레밍턴과 연결했다.

전화 통화가 아니라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연결된 것이라서, 전화를 끊고 다시 다이얼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부사장부터 해서 실리콘밸리 개발팀까지,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직종은 출근하면 무조건 로그인을 하도록 했기에, 아이디만 클릭하면 금방이다.

“법원 판결 들으셨죠? 안드로이드 알파의 배포 작업을 멈춰야 해요. 그런데 지금 곧바로 할 필요는 없고, 법원 판결문을 송달받으면 조처를 하세요.”

-예, 보스.

“그리고 혼란스러울 사용자들에게 이번 배포 금지 조치가 왜 일어났는지 잘 설명해야 하고요.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억지를 부각하세요. 온갖 비난이 다 쏟아지도록 말이에요.”

-물론입니다!

단순한 텍스트 문장이지만, 버럭 하는 레밍턴의 기세가 느껴진다.

유재원도 그냥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배포를 늦추는 것도 최대한 버티는 데까지 버틴 다음, 마이크로소프트의 폭거도 열심히 알려주는 거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매스컴은 물론이고, PC 통신이나 대학교 인터넷 같은 곳에도 적극적으로 뿌릴 작정이다.

ID 오피스의 마케팅을 하면서 만들어진 풀뿌리 같은 인적 네트워크는 지금도 유지 중이었다. 이들이 각자 활동하는 PC 통신이나 대학교 게시판 등에 이 소식을 알리면 분명 큰 반향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

일련의 조치를 마무리한 유재원은 메신저를 끊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열이 확 올라온다. 일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큰 스트레스는 처음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너무 커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방 날려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