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5화 (95/1,007)

[95] 제국의 역습 ==============================

#60-1

-미국의 ID 테크놀로지가 제1회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를 개최했습니다! ID 오피스의 보안 체계를 돌파해 암호와 내용을 맞힌 사람에게 1천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됩니다!

개학을 며칠 앞둔 유재원은 느긋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다.

예전 조그만 흑백텔레비전은 고물상에 버리고, 큼직한 컬러텔레비전을 들여놓은 덕에 텔레비전을 볼맛이 난다.

텔레비전 뉴스로 한창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에 대한 소식이 방송되고 있었다. 보도자료는 첫날 딱 한 번 뿌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방송국이 자발적으로 기사를 만들어서 뉴스의 첫 부분, 아니면 중요한 대목에서 몇 번이고 보도했다. 방송국이 있는 나라들은 최소 한 번씩은 보도했을 거라고 장담한다.

-미화 1천만 달러, 원화로는 67억8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전 세계 내로라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도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시큐리티 챌린지 뉴스가 연일 보도 되고 있다.

상금이 100만 달러도 아니고, 1천만 달러다. 한국 돈으로 68억쯤 한다. 환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액수가 떨어지는 웃기는 일이 일어나긴 해도 분명 큰돈이다.

덕분에 귀국한 유재원은 한국지사 임원들, 특히 최강욱에게 추궁 아닌 추궁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대회 상금으로 걸 수 있느냐는 물음이고, 동시에 프로그램의 보안성이 과연 전 세계 전문가들, 해커들의 공격에서 버틸 수 있느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유재원은 최강욱 실장에게 그렇다고 장담했다. ID 오피스의 보안성은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전생에 검증이 끝난 AES 암호체계였다.

AES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ID 오피스에서 최고 단계로 암호를 걸면 256bit로 암호화가 이뤄진다. 이렇게 생성된 암호문은 21세기의 강력한 슈퍼컴퓨터로도 수만 년은 계산해야 풀리는 복잡한 문제였다.

심지어 암호를 거는 데 사용한 키는 단순한 단어나 숫자가 아니라 영어 대소문자, 숫자, 특수문자, 스페이스 바까지 골고루 섞어서 만든 32자리 문자였다.

암호화된 본문을 푸는 대신, 암호화키를 찾겠다고 무차별 공격(Brutal Force Attack)을 해도 이걸 찾는 건 불가능할 거다. 게다가 지금 개인용 컴퓨터 중 제일 좋은 게 486이다.

486의 연산능력은 20MIPS에 불과하다. 초당 2천만 개의 명령어를 처리하는 거다. 이걸로 32자리 암호키 찾는다고 해보면 시간의 단위가 조(兆)를 넘어서 아승기나 나유타 같은 이상한 단위를 써야 할 거다.

엄청난 상금에 이끌려 크레이 슈퍼컴퓨터 같은 걸 보유한 연구소가 참전한다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크레이의 연산능력은 분명 슈퍼컴퓨터라는 말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89년도의 슈퍼컴퓨터는 21세기 컴퓨터에 비하면 많이 초라해진다. 연을 보조해주는 고성능 GPU를 장착한 PC 한 대가 더 빠르다. 숫자 단위가 좀 바뀌겠지만, 그게 그거다.

“뭐,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돈을 줄 마음이 없다는 건 눈치챌 수 있겠지.”

유재원은 원래 1억 달러 정도 쓸 작정이었다.

상금을 타갈 사람이 없을 텐데, 얼마든지 써도 무방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에서 발목이 잡혔다. 1억 달러를 상금으로 걸면, ID 테크놀로지가 상금을 줄 마음이 없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내려서 1천만 달러로 확정된 것이다.

실제로 돈을 집행해서 씨티은행에 예금했다. 레밍턴 부사장의 기자회견 때 팔랑팔랑 흔들었던 예금 증서는 사본이 아니라 진짜였으니 말이다.

1천만 달러는 현실성도 있고, 누구나 눈이 돌아갈 만큼 큰돈이었다.

덕분에 매스컴에선 하루도 끊이지 않고 ID 오피스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글로벌 마케팅을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보안성을 강조했기에, 기업이나 연구소, 정부에서도 ID 오피스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도 감지되었다.

가장 확실한 징표는 매진이다!

산호세에 열었던 플래그쉽 스토어는 첫날과 다음날 매진을 기록한 이후, 점차 판매량이 하락 중이었다. 그런데 26일 시큐리티 챌린지를 발표한 다음 다시 한 번 매진을 기록했다.

비단 산호세 플래그쉽 스토어뿐만이 아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유통망 중에 전문가들과 가까운 곳에 있던 소매점에 들어갔던 ID 오피스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아직 발매하지 않은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발매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문의하는 것도 많아졌다.

한국에서도 15일 ID 오피스가 정식으로 발매되었는데, 판매량이 대폭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처럼 매진되는 일은 없었지만, 뚜렷한 판매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오피스의 보안 취약점을 공격하려면 일단 ID 오피스가 있어야 한다. 이지스 쉴드를 걸어놓진 않았고, 단지 32자리 등록번호로만 정품을 확인하니 불법복제를 할 사람은 쉽게 하겠지만, 그래도 정품을 사는 사람도 많았다.

매출 증가도 증가지만, 유재원이 제일 기대하는 건 해커들의 활약이다.

90년대 초까지는 낭만주의 해커들이 활약을 보이던 시대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기업이나 단체, 연구소 심지어 정부가 운영하는 네트워크의 취약점을 뚫고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는 취약점에 대해 알려주는 문서를 만들어 놓고 나오기도 했다.

21세기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약한 구멍이라도 보이면 랜섬웨어 같은 걸 깔아서 돈을 뜯어내고, 경쟁 회사의 의뢰를 받아서 디도스 공격으로 타겟이 된 회사의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는 짓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게임 개발회사들이 열심히 만든 게임의 복제방지장치를 깨고 서슴없이 공유하는 일도 했다. 모두 다 돈을 노리고 하는 거다.

지금은 다르다.

해커라는 단어에는 나쁜 의미보다 좋은 의미가 더 컸다. 정보 보안에 능한 전문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좋은 해커와 악의를 가진 해커를 구분하기 위해 ‘크래커’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

“낚인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많이 걸려줬음 좋겠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유재원의 바람이다.

그렇게 뉴스를 한참 보던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 소식이 끝나고 다른 뉴스로 넘어가자  텔레비전을 껐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뉴스였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다.

유재원은 주섬주섬 선물꾸러미를 챙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나눠 줄 기념품이었다. 귀국 길에서 유재원은 친구는 깜빡하고 자기 필요한 부품과 소프트웨어만 샀었다. 그걸 알아 보신 부모님이 유재원을 대신해서 친구들을 챙겨 주신 거다.

한국에선 찾기 힘든, 초콜릿 칩과 버터가 잔뜩 들어간 쿠키와 디즈니랜드에서 산 캐릭터 기념품 등등이다. 남자 녀석들에게 줄 건 미키마우스 열쇠고리이고 여자 친구들에게 줄 건 캐릭터 인형이었다.

“다녀올게요!”

선물을 챙겨 든 유재원은 힘차게 나갔다.

“헤이, 리처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리처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큰 키,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 빗장뼈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화려한 원색의 옷차림에 뿔테 안경.

리처드를 수식하는 여러 가지 모습이다. 이러한 다양한 특징들을 하나로 응축할 수 있으니, 바로 ‘히피(기성 사회의 통념이나 사회적 관습·가치관·제도 등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슬로건 아래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였으니, 점잖은 차림을 할만도 한데, 20대 시절의 스타일을 지금도 고수하는 것이다.

“대니얼. 무슨 일이지?”

리처드를 부른 테니얼이라는 친구도 비슷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히피라고 해서처럼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이 있는 곳은 바로 미국 공과대학 중 최고를 달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부속의 인공지능 연구실이었으니 말이다.

둘 다 MIT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심지어 리처드의 경우엔 하버드 대학 학사까지 가지고 있는 유능한 존재였다.

“이거 봤어?”

대니얼이 내민 건 MIT 학교 신문이었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

1면에 크게 나온 건 시큐리티 챌린지라는 글자였다. 며칠 동안 연구소 안에서 코드와 싸우고 있었던 리처드는 처음 보는 기사였다.

“뭐지?”

바로 신문을 넘겨받아서 빠르게 훑어보는 리처드였다. 글자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의미를 곱씹어 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5분이면 끝날 정도의 분량인데 리처드는 10분도 넘었다.

그런 리처드의 성격을 잘 아는 대니얼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다.

“ID 테크놀로지에서 재미있는 일을 꾸몄군.”

기사를 다 읽은 리처드의 감상이었다.

“그래, 관심이 좀 가나?”

끈기있게 리처드를 기다리고 신문까지 보여준 대니얼이란 친구의 의도는 간단했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에 함께 참여할 동료를 모으기 위해서다. 1천만 달러의 상금은 팀원을 10명을 꾸려도 될 만큼 큰 상금이었다. 1/10으로 나눠도 100만 달러가 나오는 것이고, 이 돈이면 팔자가 바뀌는 것이었다.

특히 리처드는 인공지능 연구소에 근무할 만큼 컴퓨터에 관해 전문가였다. 실제로 그는 연구소 근무를 하면서 여러 가지 자유 프로그램을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유닉스용 문서편집기인 이맥스가 리처드의 대표작이었고, 수많은 종류의 컴파일러도 만들었다. 옛날의 미니컴퓨터나 메인프레임은 물론 요즘 대세인 IBM 호환 PC용 컴파일러 등등. 만들어 놓은 코드를 여러 기종에서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고, 성능도 좋은 컴파일러였다.

분명 리처드도 관심을 보일 거다!

“글쎄.”

대니얼의 기대와 달리 정작 리처드는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히피 성격의 리처드는 시큐리티 챌린지에서 진한 상업성을 느꼈다. 본인 역시 연구소에 묶인 상황이긴 해도, 근무는 탄력적이었고, 취향에도 맞았다. 일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자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시큐리티 챌린지라는 건 ID 테크놀로지라는 회사 좋은 일만 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1천만 달러라고. 네 실력이면 이건 쉽게 뚫을 텐데, 다른 얼간이들이 가져가는 게 너무 아깝지 않아?”

대니얼은 시큰둥한 리처드를 열심히 설득했다.

시큐리티 챌린지 도전을 위한 드림팀을 꾸리는 중이었고, 대니얼은 팀의 에이스로 리처드를 점찍은 상태였다. 리처드의 실력은 MIT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팀이지만, 기여도에 따라 상금을 배분할 생각이야. 당연히 네 몫은 훨씬 많을 거고, 그걸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왜? 평소에도 아프리카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ID 테크놀로지로부터 받은 상금을 아프리카에 기부하면, 큰 뉴스가 될 거야. 너의 행동에 감동한 사람들도 동참하겠지.”

대니얼은 최후의 한 수를 꺼냈다.

자신이야 기부 같은 건 추후도 생각하지 않지만, 괴짜인 리처드에겐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큐리티 챌린지를 뚫어 상금만 받아낼 수 있다면야, 리처드가 분배 받은 상금을 불태우든, 허공에서 뿌리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흠. 그것도 재미있는 생각이군.”

리처드도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상업성으로 가득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건 별로였지만, 그렇게 받은 상금을 대니얼의 말대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 참가하지.”

영원한 히피이자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중심 GNU 재단의 이사장이며, 낭만주의 해커의 마지막 상징인 리처드 스톨먼까지도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에 참전을 선언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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