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4화 (94/1,007)
  • [94] 제국의 역습 ==============================

    #59-2

    실리콘밸리에서 ID 테크놀로지가 부상하면서 컴퓨터 업계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ID 테크놀로지와 함께 떠오른 회사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추락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회사를 꼽자면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치 1:1 대결을 하는 것처럼 ID 테크놀로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시장에 발을 뻗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는 탄탄한 MS-DOS의 점유율을 바탕으로 사무용 프로그램이나 개발용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MS-DOS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많은 회사가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서 새로운 도스를 만들었다. 거기엔 IBM이나 노벨처럼 거대한 기업도 포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얼마 전까진 그랬다. 안드로이드 알파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안드로이드 알파라니. 이 무슨 해괴한 이름인가.”

    스티브 발머는 본인의 사무실 컴퓨터에 설치된 알파의 바탕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나온 운영체제는 무슨무슨 도스였다. 앞에 붙는 단어는 보통 회사 이름이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스라는 건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라는 단어의 약자였다. 그러니까 MS-DOS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IBM에서 만든 도스는 당연히 IBM-DOS라고 명명되었고 아타리에서 만든 도스는 ATARI-DOS라고 발매되었다.

    ID 테크놀로지는 그러한 규칙을 간단하게 파괴했다. 원칙대로라면 ID-DOS가 되어야 하는데 안드로이드 알파라고 명명했다.

    “보기 좋게 실패할 줄 알았는데.”

    스티브도 그래서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운영체제는 실패할 거로 봤다.

    운영체제라면 이름부터 든든해야 하는데, 안정감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이제까지 쌓은 경험을 그대로 계승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팅이 끝나자마자 프롬프트가 나오는 게 아니라 웬 작업용 바탕화면이 나온다.

    마치 유닉스의 윈도우 매니저 같은 모습이다. 유닉스나 맥 PC 사용자들에겐 익숙해도 IBM 호환 PC 사용자에겐 낯설 거로 생각했다. 게다가 바탕이 되는 도스 기능도 무척이나 단순했다. MS-DOS에 포함되어 있던 명령어는 대부분 지원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DIR’ 같은 디렉터리 안에 들어 있는 파일 목록을 보여달라는 명령어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잡다한 명령어를 깔끔하게 대체하는 파일 관리자라는 게 있었다. 바탕화면의 서류철 같은 걸 클릭하면, 도스에서의 모든 명령어를 다 처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게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메모리 관리가 엄청나게 잘 되어서 기본 메모리를 많이 확보한다고 복잡한 설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일부 게임은 도스보다 더 나은 속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놈의 글라이드 X 라이브러리 때문이다.

    심지어 엄청나게 옛날 게임도 그랬다. 요즘 컴퓨터는 너무도 빨라서 터보 버튼을 끄고 작동시켜야 하는 게임도 문제없었다.

    마지막으로 리본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키보드 워리어에서는 맛만 살짝 보여주었고, ID 오피스 프리뷰 버전을 통해 깔끔하게 다듬어진 리본 인터페이스가 공개되었다.

    먼저 ID 오피스 프리뷰 판을 사용해본 마이크로소프트의 수뇌부는 자신들이 윈도우 3.0에 넣을 인터페이스 매니저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간편한 인터페이스라는 걸 인식했다. 그래서 윈도우 3.0은 몰라도 다음 버전에는 리본 인터페이스의 장점을 따온 인터페이스를 넣을 계획이다. 그런데 ID 테크놀로지의 행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측보다 훨씬 빨랐다.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걸 떡하니 내놓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리본 인터페이스가 탑제된 덕에 사용자들은 쉽게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적용했다.

    “게다가 그놈은 알파는 공짜로 풀어버렸지?”

    잘 만들고도 망한 운영체제는 많았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알파가 이전의 망한 제품과 다른 건 공짜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보기에 성장 속도가 빠른 세균이 무차별적으로 증식하는 것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스티브나 게이츠가 끔찍이 여기는 GNU 마크를 달고 있는 프리웨어를 보는 것 같았다.

    “진짜 공짜라면 이런 고민도 필요 없었지.”

    어이없게도 완전히 공짜는 아니었다.

    사용자들은 기업들이 내건 광고를 보는 대가로 공짜로 쓰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법무실에 안드로이드 알파의 시장 파괴 행위를 고소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했지만, 몇 주 째 신통한 소식은 올라오지 않고 있다. 무료였다면 시장 질서를 해치는 덤핑 행위로 고소할 수 있었다. 기업이 내는 광고료가 작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광고 기간은 100일이고, 광고를 갱신할 때마다 단가는 유동적으로 바뀐단다.

    번들로 MS-DOS가 제공된 대기업 컴퓨터를 사용하던 이들도 안드로이드 알파로 갈아타고 있는 지금, 광고 단가는 무지막지하게 상승 중이었다. 처음엔 1만 달러였는데, 지금은 5만 달러를 호가한다고 했다.

    안드로이드 알파뿐만이 아니다. 뒤이어 정식 발매한 ID 오피스의 시장 잠식률도 엄청나게 빨랐다. 이대로 지켜보다가는 자신들의 캐시카우가 굶어 죽게 생겼다.

    위기감을 느낀 스티브와 게이츠는 칼을 갈았다.

    준비한 첫 번째 칼은 MS-DOS 4.0이다.

    최종 완성판을 내기 직전 알파 랩 컴퓨터들이 망가지는 큰 사고를 당해서 발매 일정에 큰 타격이 왔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저력으로 이겨냈다.

    한참 전 예고했던 도스 셸은 물론, 대용량 메모리관리에 더욱 힘을 줘서 사용자의 편의성을 증대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대용량 메모리 관리를 엄격하게 한 탓에 ID 오피스처럼 호환되지 않는 몇몇 프로그램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송이 친구. 한 번 붙어보자고,”

    스티브는 ID 테크놀로지의 애송이를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벤더들에게 예고한 가격은 100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최종 단계에 이르러 60달러로 크게 인하했다. 여기에 대량구매를 할 때마다 할인 폭이 커지는 탄력 할인제를 시행한다. 100만 장을 사면 개당 40달러까지 떨어진다.

    할인을 크게 해주는 만큼 마이크로소프트에겐 손해다. 만약 100만장을 한 방에 사는 거래처가 나온다면, 무려 2천만 달러의 손해가 발생한다. 아니 원래 100달러 이상을 받을 작정이었으니, 6천만 달러의 손해다.

    어마어마한 큰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라서, 게이츠는 미리 대주주에게 올해는 배당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물론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경영권은 게이츠와 스티브가 확실히 쥐고 있었으므로 험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격 정책을 강행할 수 있었다.

    이는 거대 벤더들이 대량으로 공급하는 컴퓨터의 운영체제 지분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내려진 결정이었다.

    북미에서만 매달 100만 대에 달하는 새로운 PC가 팔리는데, 여기에 MS-DOS가 기본으로 설치된다면 안드로이드 알파가 IBM 호환 PC의 운영체제 시장을 잠식하는 일은 원천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윈도우 3.0도 출격 준비 중이었고, 새로운 MS 오피스도 윈도우 3.0과 함께 발매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스티브의 시선이 창밖으로 넘어갔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호텔에서 MS-DOS 4.0를 발표하고 있는 게이츠가 잘하고 있나 궁금해졌다.

    평소라면 그냥 잘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쇼맨십을 한껏 발휘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이 모든 매스컴을 장식하게 해달라고 기원할 정도로 스티브는 큰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스티브의 기원 때문일까?

    게이츠의 MS-DOS 4.0 발표 결과는 좋았다. 호응도 컸고, 매스컴의 반응도 있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원래 가진 영향력이 더해져서 그날 저녁까지 회색 양복에 옅은 금색 넥타이를 한 게이츠의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신제품 소식의 높은 매스컴 점유율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것도 스티브가 제일 싫어하는 ID 테크놀로지가 터트린 뉴스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ID 테크놀로지, 부사장 레밍턴 스팅입니다.”

    플래그쉽 스토어 앞에 만들어진 작은 단상에 선 레밍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덕분에 레밍턴도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80년대 초, 엄청나게 큰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발표할 때,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그때도 적잖은 기자들이 모였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자신이 발표하는 이벤트의 크기는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의 규모였으니 말이다. 파격적인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플래그쉽 스토어 앞으로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몰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며칠 전 FBI가 노숙자 연쇄 살인을 해결할 때, 우리 ID 테크놀로지의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FBI의 첨단기술부도 풀지 못한 암호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암호는 겨우 자사가 발표한 키보드 워리어 안에 포함되어 있던 작은 다이어리를 보호하는 암호였습니다. 우리 ID 테크놀로지의 개발팀이 고안한 암호 체계 중 가장 간단한 것을 담았을 뿐인데도 FBI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레밍턴 부사장의 말발이 바싹 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 FBI를 돌려 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레밍턴도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ID 테크놀로지라는 알아주는 회사의 부사장이니만큼 절제할 줄도 알았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15일 우리가 발표한 ID 오피스에는 키보드 워리어에 담긴 보안 체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암호 체계를 담았다는 겁니다. ID 오피스에서 암호를 건 문서는 작성자가 풀기 전엔 절대 풀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

    매스컴도 슬슬 본론이 나오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화려한 플래시 세례 속에서 레밍턴 부사장은 발언을 이어갔다.

    “최근 키보드 워리어를 뚫었다고, 자신의 실력이 FBI를 능가했다고 우쭐거리는 컴퓨터 전문가들과 해커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다이어리 암호는 ID 테크놀로지가 만든 것 중 가장 낮은 등급이라는 겁니다. 최상급 기법이 적용된 ID 오피스는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본론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1회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를 개최합니다. 대회 방법은 간단합니다. ID 테크놀로지 FTP에 올려놓은 IDW 문서가 있습니다. ID 오피스를 통해 최고 단계로 암호화된 문서죠. 이 문서에 담긴 내용과 암호화에 사용된 키를 제일 먼저 밝혀내는 분이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 승자입니다.”

    레밍턴은 마지막 문단을 읽기 전에 작게 심호흡을 했다.

    보스가 재미있는 이벤트를 꾸미고 있다는 건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어제 구체적인 내용을 받아본 다음 바로 전화를 걸어서 오타가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승자에겐 1천만 달러의 상금을 드립니다. 참가 조건은 없습니다. 전 세계 누구든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여해 자신의 실력을 뽐내시기 바랍니다. 대회 기간은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입니다.”

    1천만 달러!

    어마어마한 금액이 튀어나왔다. ID 테크놀로지가 재미있는 해킹 대회를 개최할 것이고, 적잖은 상금을 내걸 거라는 보도자료가 돌았고, 덕분에 이렇게 많은 매스컴에서 취재원을 파견했다. 그런데 그 상금이 무려 1천만 달러라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액수였다.

    “혹시 우리 ID 테크놀로지의 지급 능력을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그래서 가져온 씨티은행의 예금증서입니다. 1천만 달러가 예금되어 있고, 만기일은 89년 12월 31일입니다.”

    레밍턴은 예금증서, 일명 CD를 흔들었다.

    상금이 워낙 크니 없는 돈으로 장난친다는 소리가 나올까 봐 철저히 준비한 ID 테크놀로지였다.

    그날 저녁 미국의 최대 뉴스는 1천만 달러짜리 ID 오피스 시큐리티 첼린지였다.

    뉴스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빠르게 퍼졌다. 순간 미국을 넘었고, 곧 전 세계로 이어졌다. 유럽으로, 중동으로, 아시아로 퍼지기까지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당연하게도 컴퓨터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부터, 온갖 경력을 풍부하게 쌓은 전문가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해커들이 ID 테크놀로지의 FTP 서버에 접속했다. 인터넷 인프라가 빈약한 시대임에도 몰려든 접속자는 엄청난 숫자였다.

    최신의 486에 대용량 램과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장착해 만든 자작 서버였지만, 쏟아지는 접속 요청을

    버티지 못하고 다운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이야기마저 뉴스였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는 태풍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과 후원 쿠폰 완전완전 감사합니다~!!

    저도 재원이처럼 주머니 한 번 크게 열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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