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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91화 (91/1,007)

[91] 제국의 역습 ==============================

#58-1

강제연행으로 구인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더라?

강제연행에도 종류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 최대 48시간이다. 그 사이에 결정적인 증거를 끌어내서 용의자를 피의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강제연행도 시위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용의자를 피의자로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나 행위가 나오면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미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LA 노숙자 연쇄 살인의 용의자를 어떻게 특정하고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FBI는 결정적 단서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 단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컴퓨터를 발견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암호를 푸는 것 같다.

“레밍턴 부사장님. 노숙자 살인에 대해 들은 게 있나요?”

일단 유재원은 기본적인 사실부터 확인했다.

“예, 신문으로 봤습니다. 노숙자가 죽는 건 여기선 일상다반사라서 신문에 오르는 일은 없는데, 다달이 연속으로 같은 방식으로 죽으니 기사가 나더군요.”

사건 자체는 실재하는 모양이다.

FBI가 없는 사건도 막 만들어내는 KGB 취급을 하는 유재원이지만, FBI가 일부러 사건을 부풀리거나 제공된 기술을 엉뚱한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FBI의 초대 국장인 에드거 후버가 있던 시절의 FBI의 행태는 정치경찰이었다. 그가 죽은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조직 문화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살인 용의자의 일기가 아니라, 유력 정치인의 일기를 해킹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쇄 살인 사건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유용할 가능성은 작아진다. 그러면 진짜로 FBI가 키보드 워리어의 암호를 풀지 못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확실하다.

“흠, 키보드 워리어의 암호 체계가 그리 복잡한 건 아닌데, FBI가 풀지 못했다는 건 의외네요.”

키보드 워리어의 다이어리 암호 기능은 대칭 열쇠 암호 알고리즘 기반을 두고 있다. 신기술은 아니다. 1975년 IBM에서 만든 DES 기술을 유재원이 약간 손을 봐서 적용했다. 암호화하는 데 필요한 연산력도 그다지 높지 않고, 해독하는 속도도 빠르다. 286으로도 큰 기다림 없이 작업할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우리는 DES를 푸는 방법은 알고 있소. 문제는 그 빌어먹을 이지스 쉴드인가 하는 복제 방지 장치요.”

유재원과 레밍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키너 요원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 이지스 쉴드. 원본의 변조를 발견하면 실행 자체가 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불법복제 방지 장치다.

현재 적용된 타이틀은 키보드 워리어 포함해서 10개가 넘었고, 적용받은 회사들은 그 성능에 만족했다. 키보드 워리어처럼 엄청나게 팔린 건 아니지만, 개발사의 예상보다 적게는 20%, 많게는 2배의 매출향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매출향상만큼 유재원에게도 로열티가 들어오긴 하는데, 키보드 워리어 판매만큼은 아니라서 ID 테크놀로지의 매출액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하여튼, 다이어리 파일은 오직 키보드 워리어를 실행하고, 그 안에서만 열 수 있다. 그리고 암호를 잘못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자동 종료되고, 암호를 넣는 것도 막힌다. 횟수가 5회였다. 무작위 암호 입력 방식으로 DES를 뚫으려고 해도 다섯 번 잘못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꺼지니 난감할 거다.

프로그램 파일을 수정해서 암호 입력 횟수 제한을 풀려고 하면 이지스 쉴드가 수정된 파일이라고 실행 자체를 거부하니 결국 철통 보안을 자랑하게 된 거다.

FBI가 이지스 쉴드도 뚫고, DES도 뚫느니 차라리 키보드 워리어를 만든 회사로 가서 풀어달라고 의뢰하는 게 낫다는 판단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흠.”

유재원은 짧게 고민했다.

용의자는 범인이 확정된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생활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예 결백한 사람도 아니고,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면 도주할 확률도 높다. 도주한 순간에는 잠잠하겠지만, 나중에 긴장이 풀리면 또 먹잇감을 찾아 길가를 돌아다닐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살인이 발생하면 유재원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전생에 마스터플랜을 짤 때, 이런 일에 대해서도 당연히 생각했었고, 대응 방향도 결정했었다. 바로 해당 국가의 법에 따른다는 거다.

사용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옳은 일이다. 그렇지만 초법적으로 보호하는 건 기업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는 거다.

미래의 일이겠지만, 검색 서비스로 중국에 진출한 ID 테크놀로지가 사용자의 알 권리를 위해 천안문이나 민주화운동과 같은 키워드도 검색할 수 있게 하면, 중국의 실정법을 위법하는 것이다.

민주화에 역행하는 중국에 굴복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제삼자이기에 쉽게 말하는 거다. 중국인들 대다수는 그런 중국 당국의 정책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 오히려 홍위병처럼 날뛰는 일부의 유저들은 당국이 아니라 서비스 운영사를 비판할 정도다.

법과 정부의 성향은 그 나라의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고, 국민의 의식이 개선되지 않고 먼저 앞서나가는 건, 공감을 받지 못한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힘이 나는 인터넷 사업이다. 먼저 앞서지도, 뒤에 서지도 않고 대다수가 가진 상식에 맞춰나가는 게 정답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고 싶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아니라 정부에 따지는 게 먼저다.

그렇게 사용자의 사생활이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만들어지면, ID 테크놀로지는 열과 성을 다해서 그걸 지키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또한, 적법한 요청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할 작정이다.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건 아니고, 몇 년의 텀을 둔 다음에 말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화는 없었다.

비록 FBI가 그 간단한 DES도 뚫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한심하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기술 우위를 가지고 뻗댈 생각은 없다. 게다가 이 사건 하나를 위해 FBI의 분석 능력이 총동원된 것도 아니다. LA에서 근무하는 FBI의 일부 요원들의 능력만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만약 FBI가 타 조직과 협조해서 슈퍼컴퓨터도 동원하고, 제대로 된 컴퓨터 전문가를 투입하면 이지스 쉴드도 꿰뚫고, DES 암호도 금방 풀어낼 거다. 하지만 작은 수사팀 하나가 해체하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려운 것이다.

“알겠습니다. 협조하죠.”

유재원의 말에 두 요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차가운 표정에 비로소 온기가 조금 올라온다고나 할까.

“다만, 수색 영장을 보내주시면 즉각 해드리겠습니다.”

요청이 온다고 다 들어주면 망하는 거다. 개인의 부탁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 어떻게 안 단 말인가. 그러니 국가 기관이 공인한 영장 같은 서류가 오면 해주는 거다.

“뭐라? 영장?”

“1분 1초가 급하다고요! 그자가 풀려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요.”

두 요원은 즉각 반발했다.

“사용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일이죠. 그걸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게 영장이고요. 제가 여러분께 아무리 협조하고 싶어도, 불법을 저지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장을 내기 싫으면 이대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알아서 풀면 된다.

대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협조는 훨씬 어려워 질거다. 그러면 힘들어지는 건 당국이다.

키보드 워리어 같은 건 옛날 기술이라 늦어도 이틀이면 풀 수 있겠지만, ID 오피스에 적용된 암호는 훨씬 정교하고 무결하다.

그도 그럴 것이 ID 오피스에 적용된 암호화 기법은 5년 정도 앞선 AES 기술이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도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AES의 암호체계는 깨지지 않았다.

ID 오피스에서 암호가 걸린 문서를 가지고 지금과 비슷한 요청이 올 건 불 보듯 뻔한 일. 첫 단추부터 확실히 끼우기 위해서는 정도를 걷는 건 ID 테크놀로지나, FBI 모두에게 중요했다.

“설마, 이름도 찬란한 FBI가 우리 사장님께 불법을 강권하는 건 아니겠죠?”

노심초사하며 대화를 듣고 있던 레밍턴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들이 맡은 사건이 심각하긴 해도,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암호를 무단으로 해제하는 건 불법이었다. 게다가 레밍턴은 고압적인 FBI 요원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색영장이라니! 그 딱지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 줄 아나?”

영장을 받는 건 미국이라도 까다로운 모양이다.

“석방해야 할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죠? 급한 일 아니었나요? 이렇게 입씨름하며 낭비할 시간은 있나보네요?”

유재원의 태평한 물음에 두 요원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둘에게서 험악한 말이 나오기 전에 유재원이 한 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영장와야 일을 시작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제법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암호 해제 작업은 지금부터 할 겁니다. 대신 해제작업의 결과물은 영장이 온 다음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거죠.”

유재원을 노려보던 두 요원의 표정이 그나마 좀 풀렸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사무실 구석으로 가서 쏙닥거리던 둘은 이내 뭔가 결론을 낸 듯 딱딱한 얼굴로 돌아왔다.

“좋소. 받아 오지. 대신 당신들이 일을 잘하는지 여기 안나 요원이 지켜볼 거요.”

스키너라는 요원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바로 나가려는 게 아닌가.

“아니 LA까지 직접 다녀올 건가요? 전화나 팩스로 충분할 텐데요?”

유재원의 말에 순감 멈칫하는 스키너다.

진짜로 LA까지 수백 KM의 거리를 다녀올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내 일이요.”

하지만 자존심이 있는지 유재원의 말에 바로 몸을 돌리는 건 또 싫은 모양인지 그대로 나가버렸다.

“부탁합니다.”

안나 모랄레스라는 요원은 스키너가 사무실을 나서자 한숨을 푹 쉬면서 둘이 있던 때보다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주머니 안쪽에 손바닥 넓이의 얇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꺼내 유재원에게 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밍턴에게 향했던 눈빛이 지금은 오직 유재원을 향했다. 스키너와의 대화를 통해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확인한 모양이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는 3.5인치 디스켓이 있었다.

“레밍턴 부사장님이 식당으로 가셔서 귀빈들께 양해를 구해주세요.”

“예, 다녀오겠습니다. 그분들도 충분히 이해해줄 겁니다.”

유재원은 오늘 행사에 참석해주신 분들을 잊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해달라고 레밍턴에게 부탁했다.

곧이어 유재원은 사무실 컴퓨터에 앉았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재고 관리라던가, 각종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미리 세팅해 둔 486 컴퓨터였다.

아직 미국에서도 486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시범용 컴퓨터는 날아다니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유재원이 웃돈까지 주면서 맞춘 컴퓨터였다.

컴퓨터 안에는 오직 ID 오피스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온라인으로 실리콘밸리 사무실과 연결된 상태였기에, 회사의 FTP에 접속해서 키보드 워리어 소스코드와 컴파일러를 받았다.

“이건 무슨 프로그램이죠?”

유재원이 컴퓨터를 조작하는 걸 보고 있던 안나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리본인터페이스의 화려한 화면은 그녀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도스 호환 운영체제예요. 애드웨어 형태로 무료 배포 중이죠. 당연히 우리 ID 테크놀로지가 만든 거고요.”

여기에 덤으로 리본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FTP 클라이언트 프로그램도 ID 테크놀로지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것이다. 상용화해도 될 만큼의 수준은 아니고 도스 화면을 그래픽 화면으로 바꾸고 해상도 높은 폰트를 지원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사무실에 있는 서버와 거리가 가까워서 이더넷으로 연결해 놓은 덕에 다운로드는 순식간에 끝났다.

“암호 입력 횟수 제한부터 해제하겠습니다.”

안드로이드 알파에 기본 포함된 메모장으로 소스코드 메인 파일을 열어서 곧장 수정에 들어가는 유재원이다.

본인이 만든 프로그램인지라 곧장 해당 기능이 작동하는 코드로 이동해서 함수 편집에 들어갔다.

작업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작업을 마친 유재원은 저장하고, 곧바로 컴파일에 들어갔다. 원래는 터보 C와 같은 프로그래밍 종합도구로 디버그도 해보는 게 정상인데, 시간이 없다고 하니 곧장 컴파일을 시작하는 거다. 게다가 프로그램 전체를 수정하는 게 아니고, 활성화되었던 기능 하나를 해제하는 것이라 복잡한 디버그는 할 필요 없다.

“흠, 십여 분쯤 걸릴 거예요.”

유재원의 설명에 안나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작업도 아니었고, 안나라는 요원도 컴퓨터를 제법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딱히 설명은 필요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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