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9화 (89/1,007)

[89] 제국의 역습 ==============================

#57-1

갑작스러운 FBI 요원들의 등장으로 행사장의 뜨거운 분위기에 찬물이 뿌려진 건 아니었다.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 입는 FBI라는 글자가 노란색으로 크게 적힌 자켓을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픈 행사가 끝나고, 일부 VIP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러 이동하고 나서야 스토어에 나타나서 유재원의 인지 시점은 한참 뒤였다.

덕분에 행사 진행은 너무도 순조로웠다.

유재원은 일단 시작 시각에 맞춰 찾아오신 VIP들께 일일이 인사를 돌았다.

아트 애그노스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제일 먼저였다. 갈색 머리카락에 큰 코가 인상적인 백인 아저씨였다.

그는 유재원의 자기 소개를 처음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정보는 없이 그냥 비서가 잡아준 행사 스케줄을 보고 찾아왔던 모양이다.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 전 지역 중에서 제일 많은 세금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러니 시장의 최우선 관리 지역이기도 했다. 덕분에 실리콘밸리 기업의 행사에 아트 애그노스 시장이 그 모습을 왕왕 드러내곤 했다.

물론 쟁쟁한 명성을 가진 실리콘밸리의 대장들이 여는 행사는 이보다 훨씬 크고 성대했다. 하지만 그런 자리보다 이런 시작 기업의 행사는 생색내기도 쉬웠고, 존재감도 훨씬 컸다.

만에 하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 그게 다 시장의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때, ID 테크놀로지 행사는 요 근래에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허허,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도전 정신에는 나이의 한계가 없다는 걸 오늘 알게 해주었군요.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두 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아트 애그노스 시장은 ‘도전 정신에는 나이의 한계가 없다’는 말과 함께 유재원을 아이가 아닌 사장 대우를 확실히 해주었다.

유재원은 아트 애그노스와 완전 초면이라서 그의 말이 립서비스인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 납부 영수증과 적잖은 후원금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립서비스라도 상관없다.

한국에서 나갈 신문 기사에는 아트 애그노스 시장의 호의적인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릴 테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과 애그노스 시장이 악수하는 모습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한국 기자들도 찍었다.

그들의 정체는 이번 유재원의 미국 출장에 동행한 기자들이었다. 물론 출장비와 숙박비, 그리고 기타 등등의 비용은 ID 테크놀로지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전생에 기자들의 매도와 왜곡에 호되게 당한 유재원이라서, 마음으론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생은 전생이고, 현생은 현생이다. 이번에는 전생의 대기업들보다 ID 테크놀로지, 아니 ID 그룹이 기자들을 휘어잡고 한국의 여론을 쥐락펴락할 작정이다.

“칭찬 고맙습니다. 시장님이 실리콘밸리를 꼼꼼히 지원해주시는 덕에 신생기업인 ID 테크놀로지도 어려움 없이 성장해 이런 행사까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애그노스 시장도 활짝 웃었다.

평범한 립서비스였지만, 애그노스 시장 입장에선 유재원은 사업가 느낌이 크지 않은 덕에 훨씬 듣기가 좋았다.

애그노스 시장 다음으로 인텔과 AMD,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ID 테크놀로지에 호의적인 하드웨어 기업에서 찾아온 귀빈들과도 친분을 다졌다.

같은 IT 직군이라서 애그노스 시장보다 훨씬 말을 트기가 쉬웠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유재원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애그노스 시장처럼 당황하는 사람들도 얼마 없었다. 그래도 유재원은 애그노스 시장을 가장 열심히 챙겼다.

커팅식을 앞에 두고, 카메라 잘 받는 중앙에 자리하도록 했고, 기념사도 부탁했다.

리본을 커팅한 다음 입장할 때도 애그노스 시장과 함께했고, 시연용 컴퓨터를 통해 ID 오피스의 여러 기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1개, 아니 3개 주시오.”

열심히 호감을 산 덕에 플래그쉽 스토어의 첫 번째 매출은 애그노스 시장이 찍어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3카피나 샀다.

“나와 내 비서도 쓰고, 아들에게도 하나 선물해야겠습니다.”

"네, 3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시장님의 주문에 긴장하고 있던 스토어 매니저가 얼른 받았다.

플래그쉽 스토어를 열면서 매장에 상시 근무할 직원도 채용했다. 스토어에서 제일 직급이 높은 사람을 매니저라고 했고, 스토어 전체의 관리와 정산을 담당하게 했다. 매니저는 물론이고 스토어를 찾는 손님들을 상대할 크루들도 8명이나 있다.

레밍턴을 통해 경력과 신용이 확인된 사람들이었고, 합격 여부에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게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렇게 신용도 있고 컴퓨터에 익숙한 이들을 개장 몇 주 전 고용했고, 그날부터 ID 오피스의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 실리콘밸리 사무실에서 속성 과외를 받았기도 했다.

스토어를 찾은 손님이 시연용 컴퓨터로 ID 오피스를 사용해보다가 의문이 생기면 풀어드릴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속성과외로 그 많은 기능을 다 알 수는 없기에, 당분간 개발팀 개발자가 한 명씩 로테이션을 돌면서 기술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오늘은 예외다. 날이 날이니만큼,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 더 나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네, 330달러입니다.”

“좋은 가격이군요!”

간단한 산수를 통해 ID 오피스의 미국 가격은 한 패키지당 110달러라는 걸 알 수 있다.

개별 프로그램으로 구매할 경우엔 40달러였으니, 단순 합산은 120달러지만, ID 오피스 세트로 사면 10달러를 할인해서 110달러로 정했다.

비싼 것 같아도, 엄청나게 저렴한 것이다. IBM의 스프레드시트인 로터스 123만 해도 한 팩에 295달러였다. ID 오피스는 로터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신 기술을 탑재했고, 4개의 사무용 프로그램을 동시에 제공하면서 11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

물론 유재원도 끝도 없이 저가 정책을 쓸 생각은 없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 게 정상이었고, 프로그램의 규모가 커질수록 개발 비용도 상승하니 버전 업이 될수록 ID 오피스의 가격도 상승할 거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더라도 소비자의 부담은 적정선에서 유지할 거다. 비싸서 불법복제판 쓴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오늘은 오픈 기념 50% 할인 행사 기간이라 165달러에 드립니다.”

“오! 할인까지! 카드 됩니까?”

“물론이죠.”

시장님이 마수걸이를 끊는 것을 시작으로 ID 오피스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딱 하루, 그랜드 오픈 기념 50% 세일을 한다고 일주일 전부터 광고를 했었다. 대신 일렉트로닉아츠가 관리하는 소매점에선 원래 가격이고, 오직 플래그쉽 스토어에서만 할인해주는 거다.

첫날부터 대박이 터지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만든 정책으로, 한 사람이 최대 5개를 살 수 있다.

“여기 있습니다.”

“아이고, 생각보다 무겁네그려.”

ID 오피스의 패키지는 좀 크다.

안드로이드 알파와 부트로더가 적용된 최종판 ID 오피스의 용량은 2HD 디스켓 8장이었다. 여기에 프로그램별로 두툼한 매뉴얼까지 들어간다. 가벼운 종이를 써도 수백 페이지나 되는 매뉴얼이 4개나 되니 묵직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유재원이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

ID 오피스의 무서운 점은 바이러스처럼 무섭게 퍼진다는 거다.

현재 ID 오피스의 IDW 같은 파일은 ID 오피스로만 열 수 있다. 시장이 작성한 문서가 하달되면 그걸 열고, 편집하기 위해 ID 오피스가 필요해지는 거다. 공무원이 불법 복제품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ID 오피스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패키지를 구매한 애그노스 시장이 플래그쉽 스토어를 떠날 때까지 유재원이 수행원처럼 붙어 있었다.

낙수효과를 노린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진 때문이다. 89년 10월 17일 리히터 규모 7.1의 강진이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할 거다. 사망자가 60명에 이르고 건물도 많이 무너졌다. 특히 니미츠 고가 고속도로가 붕괴하면서 사망자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재원은 예언자 흉내를 낼 생각은 없지만, 지진 전후의 상황을 이용해서 영향력을 키우는 데 주저하진 않을 거다. 시장의 도움이 있다면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니, 오늘 이벤트를 통해 친분은 최대한 다져 놓는 것이다.

시장님을 시작으로 VIP들도 오피스를 구매했다. 회사 차원의 구매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회사 안에서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이고, 실용적인 성격이었다. 사용해보고 좋다고 생각하면 기존의 프로그램은 버리고 구매할 회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후 VIP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스토어는 일반 구매자들로 북적북적했다.

유료 베타테스터를 시작으로 ID 오피스에 대한 광고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인터넷과 PC 통신을 하다 보면 ID 오피스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 한 번은 듣게 될 만큼, 온라인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여기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명문대학교와의 협연을 통해 ID 오피스는 대학교에서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학교 컴퓨터실에서 써보니 아주 좋아서, 집이나 기숙사에서도 써 보고 싶은 이들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플래그쉽 스토어 오픈 기념으로 50% 할인 행사를 시작하니, 주머니가 매우 가벼운 학생들이라도 기꺼이 살 수 있는 금액이 된 것이다. 여기에 오픈 기념으로 다이어리 같은 작은 기념품까지 챙겨주니 패키지를 사려는 줄이 스토어를 벗어나 길가까지 이어졌다.

“이만하면 대성공이지.”

구름처럼 몰려온 고객들은 분명 할인 행사가 분명 결정적인 요인일 거다. 그렇기에 할인을 위해 뿌린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 오죽하면 엄청나게 몰려온 구매자를 찍기 위해서 나중에 출동한 매스컴 기자들도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나중에 플래그쉽에서 준비한 재고가 동이날 만큼 많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ID 오피스는 3,000개를 준비했고, 키보드 워리어 좀비 크러쉬도 1,000개를 준비했었는데 다 팔렸다. 그러고도 긴 줄이 남아서 급히 할인쿠폰을 만들어서 나눠줬다.

투표할 때, 마감시간 전 줄을 서면 투표권이 유지되는 것처럼, 일단 그랜드 오픈에 참가했으니 50%의 할인 쿠폰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대신 1인당 1개만 할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쿠폰을 받아간 이들의 숫자는 300명도 넘었다.

쿠폰을 받아든 이들은 분명 내일 방문할 거고, 그러면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도 북적거리는 모습이 이어질 거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시기 전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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