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제국의 역습 ==============================
#56-2
현재 거대 밴더들에게 예고된 MS-DOS 4.0의 가격은 100달러가 넘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녀석은 무료라고 하니,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요? 긍정적인 평가가 직접적인 접촉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유재원도 레밍턴의 보고에 혹했다.
거대 컴퓨터 제조사들과의 접점을 만들 기회는 항상 노리는 중이다.
ID 오피스를 위해서다. 안드로이드 알파는 게이밍 운영체제라는 지금은 이상한 수식어를 달아서 일렉트로닉아츠의 게임에 특화된 유통망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ID 오피스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일렉트로닉아츠에 유통을 의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ID 오피스를 대량으로 구매하진 않을 거라는 데 유재원은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ID 오피스의 최대 소비처는 기업이다.
기업 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방법의 하나는 기업이 컴퓨터를 공급받는 거대 제조사와의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다. 물론 기업들은 납품되는 시스템을 고를 때 소프트웨어도 따로 주문할 테지만, 기업이 고를 수 있는 옵션에 ID 오피스가 들어 있는 게 중요하다.
-우리 제품이 좋으니 분명 반응이 있을 겁니다.
레밍턴은 자신감을 비쳤다.
실리콘밸리 사무실의 컴퓨터에는 진작 안드로이드 알파가 설치되었다. 개발자용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에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부터 사용했으니, 누구보다 알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컴퓨터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레밍턴도 훨씬 쉽게 응용 프로그램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도스의 투박한 글꼴은 이젠 보기도 싫다.
ID 오피스를 개발하면서 나온 윤곽선 글꼴과 비트맵 글꼴 덕에 단순한 글자만 나오는 PC 통신화면도 훨씬 매끈해졌다.
시장에서도 알파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매우 간소한 포장으로 만든 주얼판 10만 개가 뿌려졌는데, 벌써 다 나가버렸단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의 가게들로부터는 개장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주얼 판 다 나갔다는 소식도 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자에겐 돈을 받지 않으니 선착순으로 가게에 들어온 사람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식으로 배포했으니, 1인 1카피라고 해도 동나는 건 순간이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인기가 무척이나 뜨거운 걸 보여주는 의외의 시장은 중고장터였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주얼판이 4, 5달러 선에서 거래가 되는 중이란다.
ID 테크놀로지가 엄청난 역사를 가진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훗날에나 골동품 취급을 받으며 가격이 오를텐데, 지금은 복사 서비스를 해주는 가게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수요가 있었다.
일부 업자들은 복사해주는 데 긴 줄이 생기자, 미리 복사본을 만들어놓고 3달러 정도를 받고 팔기도 했다. 디스켓 가격에 약간의 마진을 붙여서 자기들 멋대로 파는 거다. 하지만 중고 시장이나 업자들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바가지를 씌우진 못한다.
무료로 받을 방법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PC 통신이나 인터넷과 연결된 여러 공개용 FTP 서버도 있다. 일렉트로닉아츠와 협력인 소매점에서 무료로 복사해 해주고 있으니, 어지간히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면 업자에게 바가지를 쓸 일이 없다.
-그나저나, 이 메신저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편리하군요.
레밍턴의 호평이 메신저에도 이어졌다.
지금 유재원은 레밍턴과 국제 전화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팀이 유재원이 그려준 디자인으로 열심히 만든 인터넷 메시지 프로그램을 통해 대화 중이었다.
서버의 IP를 입력하고, 사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으면, 접속해 있는 이들의 아이디가 주룩 나타난다. 여기서 아이디를 선택해서 1:1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하나의 채팅방에 모여 그룹 미팅도 할 수 있다.
매우 기초적인 메신저 프로그램이지만, 기본 기능은 충실하다. 게다가 속도도 빨라서 아무리 긴 문장을 입력해도 순간 상대의 화면으로 띄워진다.
국제 전화로 통화했을 때는 목소리가 전달되는 시차가 좀 있었다. 그래서 좀 익숙해지지 않으면 서로 말을 해서 대화가 엉킬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군대처럼 말을 하고 나서 ‘뭐뭐 했다. 이상!’하고 끝을 맺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엔터를 치면 즉각 전송이다.
-하하, 지금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첨단의 기술로 소통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인터넷이라는 게 뭐 거창한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람을 연결해 주는 기술인 것이다. 게다가 겉으로 보면 PC 통신 화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시지 프로그램이지만, 첨단의 기술은 잔뜩 들어 있다.
유재원이 미리 설계했던 것처럼 채팅하면서 그림 파일이나 압축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고, 화이트 보드 같은 걸 띄워서 채팅 중에 직접 그림을 그려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고받는 메시지는 실시간 암호화가 이루어진다.
인터넷에 익숙한 해커가 중간에 메시지를 가로채더라도 결코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ID 오피스 패키지 제작은 순조롭나요?
알파 이야기를 실컷 한 유재원이 다음 아이템으로 넘어갔다.
안드로이드 알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공을 들인 프로그램이 바로 ID 오피스였다. 7월 말에 부트로더와 전문가용 안드로이드 알파를 탑재한 최종 버전을 드디어 완성하고, 지금은 패키지 제작을 진행 중이다.
-예, 패키지 제작에 일렉트로닉아츠만큼 전문 기업은 없습니다. 아주 순조롭게 제작 중입니다.
레밍턴의 말에서 알 수 있듯, ID 오피스의 패키지 제작은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전담하고 있다. 키보드 워리어처럼 자체 제작 후, 전면 유통을 하는 식은 아니다.
생산 수량은 모두 ID 테크놀로지가 정하는 것이고, 패키지 대금도 생산원가에 추가적인 마진을 붙여서 일렉트로닉아츠에 주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패키지 역시 일부는 일렉트로닉아츠의 유통망을 통해 유통하지만, 남은 수량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지사가 직접 판매처를 찾아서 납품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일렉트로닉아츠는 약간의 유통 수수료만 받는 대신, 재고나 판매에 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ID 테크놀로지 역시 전작처럼 매출액 중 50:50의 비율로 수익은 나눌 일이 없이 혼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유통망을 개척해야 할 큰 과제를 안게 되었다.
공평하게 임무를 나눈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일렉르토닉아츠의 손해다. ID 오피스라는 큰 아이템을 놓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8월 15일, 그랜드 오픈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레밍턴 부사장님의 장담이라면 믿을 만하죠.
대신 유통망 개척이라는 큰 과제를 안게 된 ID 테크놀로지에도 약간의 부담은 있다. 하지만 유재원은 걱정하지 않는다.
키보드 워리어 때 사용하진 못했지만, 미리미리 준비한 최신의 마케팅 기법은 다 준비해 놨고 실행 중인 것도 있었다.
레밍턴의 탄탄한 독파력으로 뚫은 동부와 서부의 명문대에서는 ID 오피스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학사 행정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리포트나 교수들이 작성하는 서류에는 90% 이상이 ID 오피스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이들 학교는 ID 오피스가 정식으로 발매되면 대량의 구매를 이미 약속했다. 이것만 해도 수천 장이었다. 또한, 학교와 협력하는 많은 연구소와 기업들 역시 ID 오피스 구매를 타진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1만 장씩 주문하는 건 없었지만, 이러한 주문들이 쌓이다 보면 교육계에서는 ID 오피스가 대세가 될 거다.
-예! 플래그쉽 스토어도 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ID 오피스 발매에 맞춰 준비하는 또 다른 무기는 바로 ID 테크놀로지의 전용 판매점이었다. 그것도 2개나 준비했다.
하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번화가인 산호세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동부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에 내는 거다.
산호세의 플래그쉽 스토어는 땅과 건물까지 샀다. 지금도 비싼 실리콘밸리의 땅값인데, 나중에 가면 더 비싸진다. 괜찮은 매물이 나와서 2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구매했다.
크기는 교실 2개 넓이의 1층 건물인데, 낡기는 많이 낡았다. 하지만 주차장을 포함한 땅도 완전히 넘겨받았고, 토지가 속한 지구도 상업지구였기에 적당한 가격이었다. 나중에 실리콘밸리가 더 성장하게 되면 건물을 허물고 10여 층짜리 빌딩을 올려도 괜찮을 것이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의 플래그쉽 스토어는 장기 임대다.
바로 옆이 그 유명한 센트럴파크였다. 뉴욕에서 가장 넓은 녹지를 자랑하는 공원이었고, 뉴욕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구경하러 오는 곳이다.
유동인구도 가히 최상급이다. 덕분에 땅값은 이미 하늘에 닿아 있을 정도였고, 개발도 될 대로 된 지역이라서 땅 주인이나 건물 주인이 쉽게 팔진 않았다. 무엇보다 건물주가 뉴욕의 알아주는 부자인지라 돈이 궁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10년이 넘는 장기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매장 운영이 가능하도록 계약을 설정했다. 또한, ID 테크놀로지가 계약의 연장을 원하면 최우선순위로 고려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설정을 해도, 몇 가지 변칙 기술을 이용하면 집주인 마음대로 임차인을 내쫓을 수 있다. 하지만 임대인 보호가 철저한 미국에서는 계약서만 확실하면 진짜로 안심할 수 있다.
-개장하면 깜짝 놀랄 겁니다!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만드는 플래그쉽은 단지 안드로이드 알파나 ID 오피스만 보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ID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모든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최전선을 생각하며 계획했다. 그래서 스토어의 디자인도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테마로 잡은 건 유리 궁전이었다.
89년도에는 건물 입구에서도 벽돌이나 시멘트벽이 큰 면적을 차지한다. 이걸 거의 다 허물어버리고 가게 안이 다 보이는 전면 유리로 삼은 것이다. 또한, 내부에서도 선반을 빽빽하게 넣어서 대량의 물건을 진열하는 게 아니라, 중심부에 두 개의 테이블을 놓고, 누구나 만져 볼 수 있는 컴퓨터를 놓았다.
이 시대엔 최고급 인쇄장치인 레이저 프린터까지 연결해 놓아서 작성한 문서를 뽑아 볼 수도 있게 했다. 여기에 덤으로 ID 오피스로 만든 파일이라면 10장까지는 무료로 출력해주는 서비스도 할 계획이다.
ID 오피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벽쪽에 긴 선반을 두고 진열했다. 이건 누구나 집어서 볼 수 있는 견본품이고, 손님이 주문할 때 내주는 신품은 계산대에 밑 선반에서 꺼낼 수 있도록 창고를 만들었다.
가게 안에서 벽은 흰색이지만, 눈이 편안하도록 형광등은 주광색으로 하고, 인테리어 소품 중에는 따듯한 느낌이 나는 원목을 많이 쓰도록 지침을 주었다.
아예 건물 자체를 플래그쉽 스토어에 맞게 지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인테리어가 간단해서 디데이에 맞게 준비할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 사무실에 ISDN 라인 설치가 늦어져서 답답했던 유재원이지만, 플래그쉽 스토어를 준비하면서 돈이면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15일쯤에 뵙죠.
15일 ID 오피스 발표와 함께 플래그쉽 스토어도 오픈한다. ID 테크놀로지에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니 유재원이 빠질 수 없다.
날짜도 딱 좋았다. 이미 여름방학이 시작된 상태라서 미국에 가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재원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 건, 이번 미국행에 부모님과 큰아버지 등의 친척분들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미국 여행을 부담스러워하셨던 부모님이었지만, 유재원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지셨다.
유재원은 스탠퍼드 진학 이야기를 아직 부모님께 꺼내진 않았다.
많은 능력을 보여드렸으니, 부정적인 말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자부하지만, 자식을 먼 나라에 보내야 한다는 불안감은 분명 생기실 거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다 보면 불안감도 사라질 거라고 본다. 불안이란 원래 잘 모르는, 미지의 걱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미국행의 스케줄도 비즈니스보다는 부모님의 불안감 해소의 목적이 컸다. 덕분에 유재원의 일정도 그에 맞춰졌다. 일단 15일 부모님, 친지들 함께 실리콘밸리 플래그쉽 스토어 오픈 행사를 함께 참여한 이후, 부모님과 친지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명문대도 견학하고, 미국 서부의 주요 관광지도 돌아보는 식이었다.
ID 오피스의 미국 마케팅은 영업에도 소질을 보이는 레밍턴에게 맞겼다. 게다가 키보드 워리어처럼 하루아침에 빵 터질 성격의 소프트웨어는 아니라서 유재원까지 나서서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
빅 이벤트는 1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릴 컴덱스다. 그때를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는 것이 ID 오피스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유재원과 부모님, 친지들은 이틀 전 무사히 미국에 입국해 실리콘밸리 사무실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그리고 대망의 15일이 되어 실리콘밸리 플래그쉽 스토어 오픈 행사의 몇 시간 앞두었다.
“일이 왜 이리 커졌죠?”
“커지다뇨? 보스는 본인의 존재감을 과소평가하는 감이 있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레밍턴은 넉살 좋게 대답했다.
부모님께 ID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을 최대한 보여드리기 위함도 있고,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오픈 행사를 성대하게 준비했다.
특히 중점을 둔 건 VIP 초청이었다.
유재원과 레밍턴, 앨런 등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초대장을 날렸다. 아니, 친분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딱히 교류도 없었던 사람들까지 다 보냈다. 일단 와주기만 하면 좋은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커졌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들이 플래그쉽 스토어 그랜드오픈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테면 아트 애그노스 샌프란시스코 시장이다. 이를 시작으로 인텔에선 기술담당 선임 이사(CTO)도 와주었다. AMD에선 부사장이 왔다. 그리고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던 FBI 간부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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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주말 잘 보내고 계시죠??
즐거운 주말 재미있게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