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제국의 역습 ==============================
#56-1
○ 제국의 역습
-도스 호환, 차세대 게이밍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알파 출시!
미국 전역의 컴퓨터 매장에 안드로이드 광고가 시작되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파는 가게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부품이나 조립 컴퓨터를 파는 곳도 같은 안드로이드의 상징인 깡통 로봇 포스터가 걸렸다.
일렉트로닉아츠가 직접 관리하는 매장은 물론이고, 끈끈한 비즈니스 관계인 지점까지도 같은 내용의 광고가 펼쳐졌다.
강조하는 포인트는 도스 호환과 게이밍, 그리고 무료였다.
키보드 워리어를 통해 일렉트로닉아츠의 관리 매장이 더욱 늘어난 덕에, 작은 규모의 도시라도 같은 광고를 볼 수 있었다.
-디스켓을 가져오면 무료로 복사해드립니다.
특히 파격적인 문구는 디스켓을 가져오면 무료로 복사해준다는 문구였다.
그냥 무료도 아니다. 마치 불법 복제물을 유통하는 업자의 광고처럼 들렸지만, 엄연히 정식 광고였다. ID 테크놀로지의 로고와 함께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도 떡하니 박힌 정식 포스트에 들어간 문구였다.
이러한 광고는 오프라인 매장뿐만이 아니라, 컴퓨터용 잡지에도 그대로 들어갔다.
89년 8월 달의 컴퓨터 잡지를 라이브러리로 나중에 찾아 본다면 작은 지방 잡지라도 알파의 광고가 들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광고 폭풍이다. 이를 위해서 알파 전용 광고비용으로 백만 달러를 집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드로이드 알파가 애드웨어이긴 해도, 그 자체로는 신제품이었기에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광고 비용은 ID 테크놀로지가 모두 부담했다.
호킨스 사장이 돈을 좀 보태겠다고 했지만, 그러면 안드로이드 알파의 운영 정책에 호킨스 사장의 의견을 들어줘야 한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공짜 점심이란 없는 법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ID 테크놀로지가 궁핍한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6월 말, 일렉트로닉아츠로부터 두 번째 정산을 받았다. 이번에는 거의 110만에 달하는 판매량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그 열기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50만 장 정도가 팔렸고, 나머지 60만 장은 유럽에서 팔린 숫자였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타이핑이라는 교육적인 기능과 함께 네트워크 플레이가 판매량을 견인했고 복제방지 장치인 이지스 쉴드가 신의 한 수였다. 최대 4명이 협동 플레이를 할 수 있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려면 정품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산받은 금액은 1천6백만 달러가 넘으니, 광고비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안드로이드 알파의 광고 슬롯 20개는 일찌감치 마감되었고, 지금은 호가가 상승 중이었다.
애드웨어의 위력을 알아본 회사는 일렉트로닉아츠뿐만이 아니었다.
PC용 게임을 제조하는 회사들은 출시한 게임을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PC 사용자, 그것도 게임을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사용자에게 타겟이 되는 광고 매체가 드디어 나왔다. 게다가 광고 비용도 1만 달러로 너무나 저렴했다.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사들도 있었다.
덕분에 20개의 광고 슬롯은 7월이 넘어가기 전에 일찌감치 꽉 찼고, 지금은 100일 후 있을 2회차 광고 슬롯을 얻기 위해 다들 열심히 호가를 올리고 있었다.
다만 안드로이드 알파는 이제 겨우 출시한 상태라서 호가가 올라가는 속도는 조금 느렸다. 아마도 광고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야 호가 경쟁이 시작될 것 같다.
오래 기다릴 일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안에 있는 베스트바이는 일반 가전제품부터 컴퓨터 완제품까지 갖춰진 종합 쇼핑몰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컴퓨터의 개별 부품을 파는 섹션도 있고,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부터 게임 소프트웨어까지도 모두 거느리고 있는 매장이었다.
그렇기에 매장도 상당히 거대했다. 게다가 방문한 고객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연용 제품이 많이 있었다.
시연용 제품을 만지작거린 다음에 딱히 제품을 사지 않아도 뭐라고 태클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16살의 길버트 오웬 같은 녀석들은 베스트바이를 좋아했다.
길버트 오웬은 컴퓨터에 푹 빠진 아이였다. 운동보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터라 학교에서는 전면에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길버트의 취미 활동은 방과 후 베스트바이에 들르는 것이다. 용돈을 모아 손에 넣고 싶은 제품을 보고, 시연용 제품도 만지작거리다가 돌아가는 게 하루의 낙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다만 학교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경험을 한 터라, 걸어가는 발걸음은 평소보단 무거웠다. 왕따를 당한다거나, 학교 폭력을 겪은 건 아니다. 단지 남몰래 좋아하던 엘리사가 망할 레스터 피어스와 웃으며 말을 나누는 걸 봤을 뿐이다.
레스터라는 녀석은 같은 16살로, 운동도 잘해서 미식축구부 주장도 하고 있고, 심지어 공부도 잘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같은 학급이긴 해도 길버트와는 완전 반대라서 평소에 어울릴 일도 없는 사이였다.
하여튼 기분이 우울했다. 이럴 땐 베스트바이에서 게임이라도 실컷 하고 가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베스트바이는 좀 달랐다. 원래 북적북적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평소보다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더욱 특이한 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시연용 제품들은 또 빈자리가 많았다.
“해밀턴 아저씨!”
길버트는 궁금한 게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게임기 섹션과 시연용 제품을 담당하고 있는 해밀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처음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데, 길버트가 하도 많이 찾아와서 지금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해졌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알기에 오늘 출시하는 대박 게임 같은 건 없는데요?”
길버트는 길게 늘어진 줄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웬, 네가 컴퓨터 소식에 굼뜰 때도 다 있구나. 오늘 게이밍 전용 운영체제가 발표되었단다.”
“게이밍 전용 운영체제요?”
“그래. 도스도 호환되면서 최신의 글라이드 X 기술도 지원하는 거지.”
“우와!”
“어디서 만든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
“아니. ID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지.”
“키보드 워리어!”
ID 테크놀로지라는 말에 길버트 오웬으로부터 키보드 워리어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요즘도 학교 컴퓨터실에서 선생님 몰래 친구들끼리 즐기는 최고의 게임이었다. 하도 많이 해서 이젠 타이핑의 달인이 된 덕에, 지금은 코옵 플레이를 하면서 고의적인 실수을 내며 친구들을 골려 주는 식으로 놀았다.
“게다가 사용자에겐 무료란다.”
“무료요?”
주머니가 너무도 가벼운 길버트에게 이보다 솔깃한 이야기는 없었다.
“공 디스켓만 가져오면 무료로 복사해준다는 거야. 불법복제를 하는 게 아니라, 사용료는 부팅 후 나오는 광고 이미지 한 장 보는 거로 땡이라는 거지. 뭐 애드웨어라나 뭐라나. 하여튼 광고만 보면 업데이트나 버전 업도 무료란다. ID 테크놀로지가 100일에 한 번씩 메이저 업데이트를 약속했지. 업데이트판도 지금처럼 여기로 복사하러 오면 되는 거야.”
우와 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MS-DOS는 컴퓨터를 살 때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긴 했는데, 버전업이 이뤄지면 업그레이드판을 사서 버전을 올려야 했다. 처음 사용자 판보다는 저렴하긴 한데, 수십 달러씩이나 한다.
“그럼 저 줄이 다 복사 받겠다고 선 거예요?”
“그래. 게이밍 운영체제를 빨리 써보겠다고 저리 서 있는 줄이지.”
“우와! 자세한 설명 고마워요!”
해밀턴에게 자세한 설명을 모두 들은 길버트는 고민했다.
가방 안에 디스켓 몇 장은 항상 들고 다니는 길버트였기에, 복사 받는 건 아무 문제도 없다. 빈자리가 많은 시연대가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시연대는 내일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게이밍 운영체제라는 건 복사 받아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길버트의 선택은 역시나 줄을 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줄은 이미 길게 늘어진 상태였다. 복사본을 받기까지 길버트는 거의 한 시간가량을 서 있어야 했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더 받고 돌아온 길버트였다.
만약 이 알파라는 놈이 망작이면 ID 테크놀로지 사무실로 가서 마구 따질 작정이었다. 실리콘밸리가 엄청나게 넓은 도시도 아니었고, 길버트의 집에서 ID 테크노롤지의 사무실까지 자전거를 타면 30분도 안 걸린다.
집으로 돌아간 길버트가 ID 테크놀로지를 씩씩거리며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퍼포먼스를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잘 아는 길버트는 용감하게 전체 포맷 후, 안드로이드 알파를 설치했다.
“이게 그 광고로구나.”
부팅이 완료된 후, 오른쪽 귀퉁이에 올라온 ID 테크놀로지의 로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길버트였다. 이 정도 광고를 보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후 길버트는 용돈을 모아 샀던 정품 게임을 하나씩 다 설치해가면서 실행이 잘 되는지 확인했다.
진짜 별다른 설정 없이도, 모든 게임은 잘 돌아갔다. 게다가 리본 인터페이스라는 널찍한 화면은 검은 화면에 조그마만 커서 하나가 깜박이는 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부모님이 인제 그만 자라고 소리칠 때까지 알파의 온갖 기능을 만져보던 길버트의 뇌리에서 엘리사의 일은 까맣게 사라졌다.
그야말로 진성 컴퓨터 마니아다웠다.
돌풍!
시장에서의 안드로이드 알파 반응은 돌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MS-DOS에 질려 있는 사람들이 이리 많을 줄 몰랐다.
최소한 286 이상에 VGA 카드, 그리고 1메가 메모리 이상이 장착된 컴퓨터에만 설치되는 제법 고사양의 운영체제였지만, 출시 첫날부터 안드로이드 알파를 복사해가겠다고 긴 줄이 늘어선 가게가 참 많았다.
-보스, 광고 단가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가파른 속도입니다.
광고를 파는 입장에서 단가가 오른다는 소리는 듣기 좋은 이야기였다.
-지금 최고가가 얼마인가요?
-무려 1만9천까지 나왔습니다. 그것도 다섯 개 슬롯을 동시에 구매하겠답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매출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작은 양이었지만, 광고 시장의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시장이었다.
21세기 컴퓨터 업계를 지배한 구글이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것도 첨단의 IT 기술이 결합한 인공지능이나 스마트폰 같은 게 아니라, 전통의 광고 시장이었다.
전생의 기억에 비춰 봤을 때, 애드웨어로 시작한 안드로이드 알파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이었다. 커널을 유닉스 형태로 버전업하고, 나중에 인터넷과 연결되면 광고 슬롯의 가치는 끝도 없이 치솟을 것이다.
-알파에 대한 불만이 보고된 건 없나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아직 없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레밍턴이 확언했다. 정보부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회사의 신제품 출시에 관해서 집중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정보부에 들어올 이들을 선별하면서 ID 테크놀로지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받았다.
뻐꾸기들에게 네 능력을 보이면 안정적인 고용을 약속하니, 저마다 가진 보따리를 열심히 풀었다.
시애틀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알파 랩을 날린 후, 내부 승진과 헤드헌팅을 통해 새로운 정예 개발팀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동부의 금융기업들이 ID 테크놀로지의 정보를 파헤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많았다.
알파의 반응도 그중 하나였다. 도스 호환이면서도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운영체제라서 많은 이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보고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아직 정식으로 제안이 온 건 아닌데, 컴팩과 같은 대규모 제조 업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올린 보고서 중엔 알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재원의 눈을 혹하게 하는 건 컴퓨터 제조업체 중 일부가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었다.
현재 델이나 컴팩.HP처럼 컴퓨터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회사는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와 대량의 납품 계약을 통해 공급받는 중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대량 구매를 해도 할인을 많이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스 1.0으로 CP/M과 막 경쟁을 할 때의 도스 가격은 40달러였다. 반면 CP/M이라는 운영체제는 250달러나 했다. 형태나 기능이 판박이처럼 똑같은데 가격은 1/6밖에 되지 않는다.
CP/M이 8bit 컴퓨터 운영체제로 독점적인 지위에 있긴 했지만, 당시 시장은 16bit 컴퓨터로 빠르게 전환되던 시기였다.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만큼 이전의 호환성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가격에서 너무도 차이가 나니 기업의 선택은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런데 CP/M이 망하고 난 다음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버전의 도스를 출시할 때마다 가격을 슬슬 올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우하하!! 이번 주, 5회 연재 모두 연참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