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5화 (85/1,007)
  • [85] 안드로이드 비긴즈 ==============================

    #55-1

    보통의 회사 사이의 업무에서 팩스 하나만 딸랑 보내면 기존의 팩스에 섞여서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특히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급히 진행 중인 사안도 아니고,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 새로운 사업이나 기획을 제안했을 땐, 아예 무시 받는 일도 허다하다.

    직접 대면해서 제안해도 들어줄까 말까 하는데, 팩스 같은 걸 딸랑 보내면 어떤지는 뻔하다.

    하지만 이런 통상적인 이야기들은 ID 테크놀로지와 일렉트로닉아츠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렉트로닉아츠가 양적으로 2배, 아니 거의 3배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킬러 타이틀이 ID 테크놀로지로부터 나왔다.

    다른 개발사들과의 대우 자체가 다른 건 당연했다.

    “사장님! ID 테크놀로지로부터 팩스입니다. 새로운 사업 제안이 들어 있습니다.”

    비서가 방금 날아온 팩스를 들고 호킨스 사장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ID 테크놀로지 발신의 문서라면 이렇게 하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호킨스 사장의 사무실에 팩스가 있어서 직접 받을 수 있었지만, 회사의 덩치가 2배는 커진 일렉트로닉아츠는 조직도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타이틀 하나로 이렇게 커졌기에, 그 타이틀의 효과가 사라지면 예전처럼 쪼그라드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호킨스 사장은 매출액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출장도 잦아지고, 업무도 많아져서 자신의 사무실에 팩스가 오더라도, 예전처럼 바로 확인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기에 팩스나 전화는 사무실 근무를 전속으로 하는 비서 쪽으로 옮기고 보고를 올리도록 했다.

    “이리 주게.”

    작은 개발사에서 올린 게임 기획안을 열심히 보고 있던 호킨스 사장은 보고 있던 걸 멈추고, 팩스를 받았다.

    ID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사업 제안이라니 기대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놀로지와의 사업에서 단 한 번의 실망을 해본 적이 없는 호킨스였던 탓이다. 키보드 워리어는 해를 넘겨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잘 팔리고 있었고, ID 소프트웨어라는 게임 자회사가 만든 울펜슈타인이란 게임은 알파 버전이었음에도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직접 플레이를 해본 호킨스 사장도 강렬한 중독성을 느꼈다. 스테이지가 딱 하나밖에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심지어 네트워크를 통해 멀티 플레이까지 가능했으니, 알파 버전만 가지고 계속 게임을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복덩이 ID 테크놀로지가 이번엔 무슨 제안을 하려는지 궁금해진 호킨스 사장이 문서에 집중했다.

    확실히 기대에 부응하는 파격적인 제안이 담긴 팩스였다.

    “애드웨어라고?”

    호킨스 사장은 짧은 팩스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몇 번이고 읽었다. 사용자가 광고를 보는 대신, 유사 DOS를 무료로 사용한다는 개념은 이해했다. 그런데 광고를 어떤 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또한, 어떤 식으로 유사 DOS를 배포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효과는 분명 있어!”

    컴퓨터 사용자를 향해 직접 광고를 하는 것이니 효과는 클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제껏 광고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뿌려지는 게 보통이었다. 텔레비전 광고, 소매점에 걸어두는 광고 등등이 그랬다. 그나마 타겟형 광고라고 치면 게임 잡지에 올리는 게 전부였다.

    광고의 단가도 높았다. 하지만 광고가 제대로 효과를 내주는지 참고하기는 힘들었다. 구매자들에게 앙케이트를 돌려서 게임 구매 시 참고하는 것들을 물어보는 정도가 끝이다.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애드웨어 도스는 다르다.

    게이머들이 직접 사용하는 도스였다. 팩스로는 쉽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부팅이 완료되면 광고 이미지를 몇 초간 보여준단다.

    매년 광고비로 수백만 달러를 사용하는 일렉트로닉아츠였다. 일부 광고비를 돌려서 애드웨어를 지원할 여력은 충분했다.

    “좋아.”

    호킨스 사장은 ID 테크놀로지에 보낼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을 담았다. 다만 어떻게 작동되는지 실물을 확인하고 싶으니, 데모 판이라도 빨리 보내주면 좋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다 했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마무리 작업을 한다고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이나 앉아 있던 유재원이 만세를 불렀다. 동시에 기지개를 쭉 켜면서 굳었던 어깨와 허리를 폈다. 관절이 굳을 나이도 아닌데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경직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컴파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리본 인터페이스에 애드웨어 기능도 잘 올라갔다.

    애드웨어가 어려운 개념이 아닌 만큼, 실제 작동 기능을 넣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자, 이제 켜 볼까?”

    안드로이드 알파를 설치된 컴퓨터에 전원을 올렸다.

    하드웨어가 간단해서 그런지 포스팅은 순식간에 끝나고, 바로 하드디스크의 도스 파일을 읽었다. 리본 인터페이스의 화면이 나오는 것도 금방이다.

    화면이 몇 번 깜빡이더니 가슴에 브라운관이 박힌 깡통 로봇이 열심히 벽돌을 쌓았다. 필수 시스템 파일을 로딩하는 모습이다. 로딩의 진행에 따라 벽돌이 쌓아지면서 LOADING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다.

    빠밤~!

    몇 초간의 로딩이 끝나고 바탕화면이 나오자 작은 팡파르가 울렸다. 시작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랫단에 ID 테크놀로지의 로고와 함께 ID 오피스의 광고가 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모니터가 작으니 전체 화면의 1/4 정도는 차지했다.

    VGA의 640*480이란 고해상도라서 작은 글씨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6색 모드라서 그런지 화사한 느낌은 없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상태였다면, 저 광고를 클릭했을 때 ID 오피스의 홈페이지나 구매 페이지로 연결되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클릭도 되지 않는다. 나중에 용량이 좀 넉넉해지면 구매 방법이나, 프로그램의 설명을 담은 문서를 여는 기능을 넣을 수 있지만, 현재의 알파에는 지극히 단순한 메모장 말고 적당한 문서 뷰어도 없다.

    광고 이미지는 10초 정도가 지나자 사라졌다.

    “완벽해.”

    부트할 때마다 하나의 광고만 보면 안드로이드 알파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리본 인터페이스도 잘 작동했고, 바탕화면에 등록한 아이콘을 직접 클릭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이 상태에서 WAV나 MID, IMS, MOD 같은 미디어 파일을 재생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안드로이드 알파가 사운드카드 드라이버도 지원하도록 했고,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것도 만들었다.

    유재원은 컴퓨터 종료하기를 눌렀다. 그러자 드르륵거리는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나더니 바탕화면이 사라지고 컴퓨터를 끄셔도 됩니다라는 화면이 나타났다.

    메인보드에 소프트웨어적으로 전원을 내리는 기능이 없어서 전원은 직접 사용자가 스위치를 눌러야 한다.

    전원을 끈 유재원은 곧바로 전원을 다시 켰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보여줬던 단계를 그대로 밟으면서 부팅이 시작되었다.

    빠밤~!

    시작 시그널도 똑같았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오른쪽에 나왔던 광고의 그림이 바뀌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로 바뀐 것이다.

    여러 개의 광고를 수주하면, 이렇게 차례대로 표시되도록 만들었는데, 의도한 대로 잘 작동하는 것이다. 광고를 띄울 때 화면이 느려지는 것도 없다. 광고 화면이 나올 때, 멍하니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우스를 이용하거나 시작 버튼을 눌러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준비를 해도 된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다.”

    매끄럽게 작동하는 리본 인터페이스 화면을 보니 뿌듯해지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알파가 완벽한 운영체제는 아니다.

    도스 위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도스의 단점이 그대로 계승된다. 실행한 응용 프로그램이 자체적인 에러로 먹통이 되면, 리본 인터페이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멈춰버리는 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원래 계획대로 유닉스 커널을 따라 했다면, 오류를 일으킨 프로그램만 종료하고 운영체제로 복귀하는 건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스라서 운영체제를 보호할 장치를 만들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보호 장치를 만들면 기존의 응용 프로그램과 충돌이 일어나니 보호의 의미가 없다.

    “음, 부트로더는 ID 오피스에만 넣어야겠다.”

    안드로이드 알파에 부트로더를 넣어주면 MS-DOS의 점유율을 뺏어오는 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반면 ID 오피스는 흠이 잡혀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프로그램의 경우 도스의 버전까지 따지는 것도 있으니 부트로더는 필수였다.

    물론 대다수 사용자는 운영체제가 뭐든 ID 오피스가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면 충분히 만족할 테지만, 소수의 사용자도 챙겨야 하는 게 유재원의 일이었다.

    “그러면 안드로이드 알파는 게임 전용이라고 하고, ID 오피스에 들어가는 안드로이드 알파는 전문가용이라고 할까?”

    반면 안드로이드 알파는 게임만 잘 돌아가면 된다. 뭔가 오류가 나더라도 리부팅이라는 만능의 해결키가 있다. 사무용 안드로이드 알파는 ID 오피스만 완벽하게 돌리면 된다.

    생각해보니 게임 전용 안드로이드 알파와 ID 오피스에 내장된 알파에는 기능적인 차이도 있었다.

    광고 기능의 유무도 큰 차이였고, 결정적으로 업무용 알파는 멀티미디어 기능이 없다. 업무용 컴퓨터에 사운드 카드와 스피커를 설치해놓은 회사는 없으니 빼버렸다.

    오히려 이 점을 ID 오피스의 마케팅 포인트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둘의 구분하는 것도 시작 버튼을 눌렀을 때 올라오는 컨트롤 패널의 문구를 살짝 바꿔주면 될 거 같다.

    “그러면 기왕 하는 거, 전문가용 외부 프로그램 실행 금지도 넣을까?”

    회사는 업무 중에 직원들이 다른 일을 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특히 업무 중에 게임을 하는 건 해고 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뻔히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직원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게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니 회사 경영진 입장에선 쌍수를 들어 환영할 거다.

    “게임은 집에서 팝콘과 콜라 쌓아 놓고 편한 자세로 해야 제맛이지.”

    직장인들에게 짜릿한 금단의 기술인 업무 중 딴짓하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릴 결정을 천연덕스럽게 내리는 유재원이다.

    “흠, 좋아.”

    테스트를 마친 유재원은 게임용 안드로이드 알파의 설치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운영체제가 아예 없는, 하드디스크도 방금 구매해서 설치한 컴퓨터에 인스톨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약간의 기술이 필요했다.

    디스켓으로 부팅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고,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기능도 넣어줘야 했다. 이후 하드디스크에 시스템 파일과 유틸리티를 설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반 응용프로그램의 설치하는 것보다는 조금 복잡하긴 해도, 유재원에겐 문제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고 보니 게임용 안드로이드 알파의 용량은 2HD 디스켓의 반절 정도 되는 760KB 정도 되었다.

    남은 용량은 애드웨어를 통해 띄울 광고 이미지를 넣으면 충분하다.

    “광고는 최대 30장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은데.”

    광고는 그림 파일이다.

    픽셀 하나하나의 데이터를 다 저장하는 비트맵 파일이라면 용량이 크게 나가지만 손실압축을 통해 용량을 대폭 줄였다. 광고 이미지 하나에 20~30KB면 충분하니, 꽉꽉 눌러 담으면 30장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품질이 떨어지고 띄우는 속도가 느려지니 20장 정도가 적정 수준이다.

    “광고가 얼마나 들어오려나? 뭐, 일렉트로닉아츠에 보내 보면 알겠지.”

    설치용 파일 만들기도 끝나자 유재원은 케텔에 접속했다.

    엄청나게 빨라진 ISDN 모뎀이 제 능력을 톡톡히 발휘했다. 화면이 휙휙 지나갔고, 곧 일렉트로닉아츠의 FTP 서버에 접속할 수 있었다.

    유재원과 ID 테크놀로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아이디를 통해서 접속한 후에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디렉터리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곤 업로드를 시작했다.

    초당 3KB라는 엄청난 속도 덕에 작업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막대 그래프가 쑥쑥 올라갔다. 무려 4분 30초 만에 업로드 완료 메시지가 나왔다.

    “기술 발전이 정말 무섭네.”

    예전 2,400 bps 모뎀을 사용했을 땐, 몇 시간은 걸릴 일이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끝나버렸다. 심지어 미국의 인터넷 속도가 좀 더 빨라지면 지금보다 2배는 빨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담고 있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실리콘밸리 사무실과 여주의 사무실, 그리고 유재원의 집을 고속 회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샌프란시스코 AT&T 영업점에 ISDN 회선을 신청해서 실리콘밸리 사무실 서버와 연결하는 작업만 끝나면 된다.

    한국이었다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진작 설치를 끝냈을 터인데, 미국은 몇 번이나 닦달해도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모뎀 하나 설치하는 게 뭐 그리 오래 걸릴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대신 프로그래머를 꾸려서 고속 통신망에 맞는 서버 프로그램과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원래는 유재원도 그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안드로이드 알파와 부트로더 개발 때문에 직원들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그런데 액티비전은 왜 아무런 답변이 없지?”

    의문인 건 아직 무응답인 액티비전이었다.

    미국 게임 업계에서 일렉트로닉아츠와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유통사다. 팩스도 보내고 전화도 해봤는데, 답변이 없다.

    ID 테크놀로지의 이름값을 그쪽이 모르는 건 아닐 거다. 어쩌면 의사결정이 엄청나게 느릴 수도 있고, 애드웨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최악의 경우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광고는 경쟁이 붙어야 단가가 올라가는 법인데, 액티비전이 빠지면 참 아쉬울 거 같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연참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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