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자이언트 킬러 ==============================
#49-2
돈이 아니라 지분이다.
수경이 아버지가 자신의 치킨 레시피를 돈을 주고 사서 시내에서 작은 치킨집이나 하겠다고 했다면,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가게가 아닌 치킨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최소 요구 조건은 충족되었고, 레시피의 대가로 지분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합격선을 넘으셨다.
이러한 조건들은 바로 미래 비전이 있는 사업 파트너로 삼을 사람인가 판단하는 기준점이었다.
“제 레시피를 높게 쳐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사업까지 하시겠다니 제가 더 영광입니다.”
고민하는 유재원을 보며 긴장했던 수경이 아버지는 긍정적인 답변에 얼굴이 펴지셨다.
유재원이 보통의 아이였으면, 고민도 없이 레시피의 가치는 과소평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두 번째였다. 더 큰 고민은 얼마나 크게 쳐주느냐였다.
이렇게 저렇게 계산하다 보니 수백, 수천만 원까지 금액이 올라갔다.
그러다가 문뜩 아예 지분을 나눠서 동업자로 만드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도 마지막 선택이 재원이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저씨. 제가 생각해 봤는데 단순한 치킨 가맹점 사업보다 훨씬 좋은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수경이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치킨 가맹점 사업은 정말 밤새 고민한 아이템이었다.
여주시에 두 곳 정도를 낸 다음에, 주변 도시나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 이상으로 좋은 건 없었다. 그런데 유재원은 치킨 사업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훨씬 더 좋은 비즈니스를 생각해낼까 싶었다.
“그러니? 무슨 비즈니스인데?”
하지만 치킨 레시피의 주인이기도 하고,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기에 일단은 마음을 열고 들어 보기로 했다.
“육계계열화사업이라고 아시나요?”
시작부터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해당 분야 종사자라서 알고 있는 단어였다.
닭고기의 모든 단계에 직접 관여하는 사업을 뜻한다. 농장에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해서 육계를 키운 후에, 다 자란 닭을 도축하고 가공해서 판매까지 직접 하는 종합 사업이다.
“현재 양계업자 중에서 수직계열화를 한 회사는 마니커와 하림 식품이 있다. 그런데 허울만 좋지 아직은 내실이 있는 사업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니?”
“치킨을 중심으로 놓고 할 수 있는 사업은 두 가지입니다. 한 축은 아저씨가 말씀하신 치킨 가맹점 사업. 다른 한 축은 가맹점 사업체나 닭을 소비하는 곳에 닭을 공급하는 육계 가공사업이죠. 저는 아저씨가 기왕 사업하시겠다면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추진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지금은 작은 업체인 하림 식품이지만, 나중엔 대기업으로 지정된다. 국내의 닭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닭만 팔아 대기업에 이르는 것이다.
치킨 프렌차이즈 본사는 말할 것도 없다. 치킨만 팔아서 강남에 수십 층짜리 빌딩을 올린 회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그걸 둘 다?”
가맹점 운영보다 훨씬 큰 게 육계계열화사업이다.
양계장을 거느리고, 병아리와 사료를 대는 건 정말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다 자란 닭을 거둬서 가공해 파는 일도 번거로운 일이다. 반면 자신이 생각한 가맹점이란 무척이나 간소한 사업이었다.
대리점 방식으로 치킨집을 내놓고, 레시피를 제공한 다음 닭만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대리점 숫자만 늘려나가면 안정인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었다. 치킨이 워낙 맛있으니 가맹점 숫자도 점점 불어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당연했다.
하지만 생닭의 생산 과정 모두를 수직계열화하면 사업의 규모가 훨씬 거대해진다. 들어가는 돈도 많을 것이고,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그 돈을 허공으로 다 날리는 꼴이다.
“양계장을 모두 소유할 필요는 없어요. 병아리와 사료만 주고 위탁 생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농장주는 다 자란 닭을 파는 판로를 고심할 필요가 없고, 잘 기르기만 하면 이익을 얻으니 계약을 할 사람들은 많을 거예요.”
닭은 한 달이면 거의 다 자란다. 하지만 주문이 없어서 몇 주나 더 기른 적도 많은 수경이 아버지였다. 사룟값은 계속 들어가는데, 판로는 없으니 정말 막막했다.
“그렇구나. 길러주기만 하면 돈을 준다는데 나라도 하겠다고 그러겠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사업을 하려면 닭이 엄청나게 팔려야겠구나? 적어도 매달 1만 마리는 팔아야 할 거 같은데, 진짜 그렇게 많이 팔릴까?”
‘아저씨, 통이 작으십니다. 1만 마리가 뭔가요.’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생각만 하고 마는 유재원이다.
21세기에는 한 농장에서 20만 마리씩 기르기도 한다.
그런데 닭이라는 동물은 한 달하고도 몇 주면 병아리가 닭으로 다 자란다.
산술적으로는 1년에 10번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양계장을 청소하는 시간이나, 쉬는 날, 출하 때의 번잡함 등을 고려해서 평균적으로 6~7번을 사육한다.
양계 농장 하나가 1년에 100만 마리 이상을 출하하는 것이다. 이런 농가가 보통 크기였고, 전국에는 1천 개나 성업 중에 있었다.
하긴, 지금 시점에서 그런 대규모 양계는 상상이 잘 안 될 거다. 21세기 치킨 문화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네. 확신합니다. 수직계열화를 하면 이점이 많습니다. 일단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닭을 대량 공급해서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위생도 직접 관리하니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고요. 또한, 사료 수입할 때도 대규모이니 가격을 낮출 수 있지요. 가맹점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렴하게 생닭을 공급하면, 치킨의 소비자 가격도 낮출 수 있으니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거예요.”
유재원은 열심히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해드렸다.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하고 위탁 생산을 하는 것, 커다란 가공 공장을 통해 생닭을 깔끔하게 가공하는 것 등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드렸다.
수경이 아버지는 자사 치킨 가맹점 말고도, 다른 치킨 업체에 닭을 공급해서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는 설명에 입이 떡 벌어지셨다.
"음? 저렴한 가격은 우리 치킨 가맹점에만 적용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
수경이 아버지의 고정관념은 저렴한 생산 원가는 유니크한 강점이니 자사 가맹점에만 공급해 더욱 강화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유재원은 그 저렴한 원가로 다른 업체까지 공급하라는 것이다.
“아저씨, 제가 만든 치킨 레시피가 맛있긴 해도, 그게 오래가진 못합니다. 다른 업체도 열심히 개발을 할 테니까요. 동시에 각 가정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저렴한 것 보다는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치킨의 가격 경쟁 보다는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됩니다. 대신 저렴한 생닭 가격을 통해 육계 시장 자체를 독점으로 만드는 게 훨씬 좋습니다. 다른 프렌차이즈 치킨이 팔려도, 결국 우리 닭이 팔리는 것이니까요.”
한 번 벌어진 아저씨의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는다.
생닭 시장을 독점하겠다니. 스케일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구나 하며 감탄이 나왔다. 그렇다고 그 계획이 허술한 것도 아니다.
현재의 양계 사업은 본인을 포함해 영세하기 그지없다. 마니커나 하림 식품만 규모가 있는데, 그것도 그다지 큰 덩치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한 자본과 첨단의 기술을 투입해서 시장을 독점하는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유재원은 가맹점 사업의 상세한 설명도 시작했다.
“프렌차이즈는 모든 지점이 동일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에요.”
그렇기에 생닭은 물론이고, 파우더와 양념 등등의 모든 재료를 본사에서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포장용 상자까지도 말이다. 각 지점에서 치킨을 조리할 사람들도 교육을 해줘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러한 속성 덕에 가맹점도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상자를 비롯한 모든 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해 가맹점에 공급하고, 치킨을 만들 튀김기 같은 기계도 대량으로 구매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인테리어를 꾸밀 때도 마찬가지다.
“오, 그렇구나.”
수경이 아버지도 나름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이 있는 분이었다.
부침이 많은 양계장과 돼지 농장을 2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선 분명 수완이 있어야 가능했다.
덕분에 유재원이 설명을 들을 때마다, 돈이 되는 포인트를 바로 이해했다.
육계계열화사업도, 프렌차이즈 사업도 그렇고 둘 다 먹음직스러운 사업이었다. 문제는 자본금이다. 그가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그걸 다 하기엔 부족했다.
“아저씨가 지분을 주신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냥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투자금을 확실히 낼 테니 제대로 시작해 보세요.”
“진짜? 내게 투자를 하겠다고?”
“네! 우리 동네에서 아저씨만큼 닭을 잘 아시는 분은 없잖아요. 게다가 규모의 경제를 노리는 만큼, 처음부터 크게 출발할수록 앞서 있는 경쟁자를 따라잡기에 좋습니다.”
11월이면 분당 신도시 토지보상금을 받는다.
오피스 프로그램도 곧 출시한다. 결정적으로 내년에는 커다란 한 방이 있는 해였다. 돈이 부족할 일은 없다.
“그럼,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생닭 판매처부터 만들어야 하나? 아니 가맹점 가맹점부터 모집해야 하나?”
소박했던 사업이 유재원과의 대화로 엄청난 비즈니스가 되었다.
덕분에 아저씨가 만들어 놓았던 계획표도 완전히 백지화되었다. 그러자 우선순위를 두고 시작할 일부터 헛갈리기 시작하는 수경이 아버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최신의 기계화 설비가 완비된 대규모 생닭 가공공장부터 만드시는 게 일입니다. 공장 건설은 시간이 좀 걸리니 말입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살아 있는 닭을 걸면 자동으로 쭉 움직이면서 도살과 털 뽑기, 가공 등의 과정을 자동으로 해주는 공장이다.
KFC나 맥도널드 같은 세계적 패스트푸드 업체는 이미 이런 현대식 가공 공장을 만들어 놓았다. 국내 기술로 만드는 게 어려우면 KFC 공장을 만들어준 외국 회사에 의뢰를 줘서 만들면 된다.
“병아리 감별사도 대량으로 고용해서, 농장에 병아리를 공급하고, 다 자랐을 때 회수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야겠네요. 음, 이건 유통망 건설이라고 해도 될 거예요. 닭고기만 오가는 게 아니라, 가맹점에 재료를 공급할 때도 같이 사용해야 하니까요. 덤으로 이것저것 유통도 하고요.”
공장에서 지점까지 재료가 오가는 유통망은 필수다. 프렌차이즈 지점이 전국에 있으면, 유통망도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리게 된다.
유재원의 지분 투자는 치킨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보고 하는 것도 있지만, 사업 진행과 함께 자동으로 만들어질 유통망도 함께 얻을 수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분 참여를 통해 기술 지원도 아낌없이 해줄 것이고, 이러한 기술 지원으로 현대적인 유통망이 만들어지면, 물류 혁명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택배라던가, 대형 마트 등의 여러 유통 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가장 중요한 건 주먹구구가 아니라, 체계를 갖춰서 실행하는 거예요. 즉 정교한 사업 계획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계획서를 만들면서 필요한 예산을 뽑아보세요. 그걸 제게 보여주시면 투자금을 내드릴게요. 지분 계산은 그때 하고요. 혹시 그 일이 어려우시면 현미유 공장 사장님이 있어요. 제가 먼저 부탁을 내놓을 테니 잘 알려주실 거예요.”
“어? 상권이 말이냐? 알겠다.”
현미유 사장님의 이름을 쉽게 부르시는 걸 보니 두 분이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아 그리고, 제가 이번에 ID 오피스라는 사무용 종합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어요. 여기에 워드 프로세서도 있으니, 계획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시면 좋아요. 오늘 설치해드리고 갈께요. 쉽게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보석글과 달리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편집하고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거든요."
"ID 오피스? 치킨 파티로 완성을 축하했던 그 ID 오피스라는 거냐? 고맙다. 이런 건 공짜로 받으면 안 되지. 정품 가격이 얼마지?"
여기에 ID 오피스 영업까지 하는 유재원이다.
지금부터 ID 오피스를 사용한다면, 수경이 아버지의 생닭 사업이 대기업이 되었을 때도 꾸준히 사용하실 거다.
“그런데 기업 이름은 정하셨어요?”
비즈니스 모델 이야기만 줄곧 했는데, 정작 이름은 듣지 못했던 유재원이다.
“물론이다. 처음 생각한 건 유경 치킨이었지. 그런데 재원이 네가 육계 사업도 하라고 했으니 치킨으로 한정하면 안 되겠지? 그럼 유경식품 주식회사라고 해야겠군.”
유경치킨? 유경식품?
80년대 느낌이지만,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무슨 뜻이지? 아저씨의 성씨인 유와 수경이의 경자를 따 오셨나? 아저씨의 성은 ‘류’다. 그러면 류경 식품이 되어야 하는데? 왜 유경 식품일까? 류경이라고 하면 북한 느낌이라서 유경이라고 순화를 하신 건가?
유재원의 분석은 딱 반만 맞았다.
유라는 글자를 성씨를 따오긴 했는데, 류씨 집안이 아니라 유재원의 ‘유’에서 따온 것이다.
유재원의 유, 류수경의 경, 해서 유경치킨이었다. 유재원을 향한 욕심이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담긴 이름이지만,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할 성격은 못되는 수경이 아버지였다.
딩동!
때마침 벨 소리가 울렸다. 수경이 모녀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재원이 너! 우리 집에 일찍 올 거라고 전화해주면 좋았잖아. 그럼 오늘은 교회 안 나가도 되는 건데!”
오늘은 컴퓨터 교육이 아니라, 사업 때문에 온 건데, 엄한 거로 타박인 수경이다.
“밖에 자동차 보고 혹시나 했는데, 수경이 말대로 재원이가 우리 집에 와 있었구나?”
수경이 어머니도 유재원을 보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너무나 좋아하시는 덕에 유재원과 김대석은 점심까지 대접을 받고 나왔다.
“사장님, 존경스럽습니다.”
밖에 나오자마자 이번에도 존경스럽다고 하는 김대석이다. 작은 치킨 사업을 순식간에 거대한 양계산업으로 바꾸는 것에 또 감복했다는 것일까?
“벌써 장인과 장모님께 예쁨 듬뿍 받으시는 예비 사위이지 않습니까?”
“제가요? 예비 사위요? 수경이랑은 그냥 친구 사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네. 사장님이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죠.”
말은 그렇게 해도 전혀 납득한 모습은 아니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느낌이다. 말을 더 하면 진 거 같은 기분이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곤 말았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밥도 든든히 먹었으니 삼보 컴퓨터 본사로 곧장 가요.”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갈 할 때다.
삼보컴퓨터는 분명 호감이 가는 회사이지만, 받아낼 건 최대한 받아낼 거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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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아라 서버가 상태가 좀 이상하죠? 특히 낮에는 많이 버벅거렸죠?? 사람이 많아진 건지,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온 건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처갓집이 치킨집이라면 방문 할 때마다 치킨은 원없이 먹을 수 있겠죠? 혹시나 IT 사업이 망하더라도, 치킨집 차리기도 쉬울 거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