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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64화 (64/1,007)

[64] 자이언트 킬러 ==============================

#44-2

“그리고 동네 사람 중에 겨울인데도 연탄을 마음껏 때지 못한 분도 계셨고, 얇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시는 어르신도 많거든요. 연탄보일러를 돌려도 집이 낡아서 외풍이 들어와 추운 것도 있고요. 내오마을뿐만이 아니라, 덕진리 정도를 정비하는 데 5억 원이면 충분할까요?”

견적을 두드려 봐야겠지만, 최강욱은 언뜻 계산해 봐도 그런 일은 하고도 남을 것 같다.

물가가 날로 비싸지고 있다고는 해도, 건설 노무직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시멘트나 철근 가격이 좀 오르긴 했지만, 몇 배씩 오른 건 아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요, 지속적인 사회공헌 사업도 하려고 해요.”

“사회공헌?”

“마을 정비는 단발로 끝나잖아요. 매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요.”

최강욱은 유재원의 말에 소아암 환자나 백혈병 환자 지원 같은 사업을 떠올렸다. 일부 기업들이 매년 일정 금액을 내서 운영되는 대표적인 자선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재원의 아이디어는 최강욱과 궤를 달리했다.

“학교 급식소 운영입니다.”

“급식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고, 집이 좀 괜찮아도 매일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는 일은 번거롭잖아요. 그러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급식을 만들어 주는 거죠.”

급식이라면 21세기엔 보편화한 시스템이었다.

유료 급식은 21세기 초에 끝났고, 일부 고급화를 지양하는 사립을 제외하고는 전부 무상 급식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런데도 급식의 질은 학교마다 천차만별이었다.

학교가 급식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 중간에 삥땅 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질이 극과 극이다.

“덕진 국민학교를 예를 들면, 우리가 학교에 커다란 식당도 만들어 주고, 조리사와 영양사도 고용하고, 음식재룟값도 매달 지급해주는 거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그냥 오셔서 밥만 먹으면 됩니다.”

“오전 수업만 하는 저학년 학생들은 제외인가요?”

“아뇨! 꼬맹이들도 점심은 먹고 가라고 하면 되죠. 부모님이 일 나가시는 집은 찬밥만 먹을 거 아녜요. 집에 좀 늦게 가더라도 학교에서 뜨신 밥 먹는 게 훨씬 좋을 거예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뭔가 돈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최강욱은 어딘가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게 있었다.

한국의 하위 계층에겐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병을 달고 있어서 당장 죽게 생긴 사람들도 많았다. 결핵이나 B형 간염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이 사람들을 돕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 급식이라니.

“미국에서 좀 성공했다지만, 제가 거기까지 챙길 수는 없어요. 우선순위를 둔다면 어쩔 수 없이 제 주변에 보이는 것부터 처리할 수밖에요. 국가적인 사업은 국가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게 맞고,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취약 계층은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벌면 해야죠.”

최강욱은 살짝 감동했다.

급식 이야기를 할 땐, 아이 다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수익금 배당이겠군요. 다음이 ID 인베스트먼트 창업, 그리고 마을 정비사업과 급식소 신설이고요.”

“네! 그런 순서죠!”

최강욱은 수첩에 정리한 목록을 보며 자신의 할 일을 가늠했다. 어려운 일은 없어 보였다. 각 업무별로 적당한 사람을 구해 맡기면 끝이다. 배당은 작년에 회계를 봐줬던 세무사에게 맡기면 되고, 마을 정비는 이장님, 급식소는 여주의 건설 업체를 연결하면 된다.

그러다가 미진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ID 인베스트먼트는 창업만 하고 끝입니까? 회사가 운영하려면 직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참! 깜박했네요. 황재홍이란 분이 있어요.”

최강욱의 말에 유재원은 황재홍을 언급했다.

큰집 선산의 거래를 끝내놓고 이제나저제나 유재원의 부름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받으면 당장 달려올 것이다.

“음, 여기에 추가로 우려하는 일도 있습니다. 배당액이 크니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특히 기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니까, 은밀하게 진행해줬으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시끄러워질 것을 걱정하는 당부까지 남긴 유재원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에서의 볼일은 다 보았다.

이제는 개학 날이 올 때까지, 코딩 열정을 불태워 보는 것만 남았다.

개학을 앞둔 유재원이 오피스 프로그램 코딩에 집중할 때.

ID 테크놀로지의 대주주들과 최강욱은 여주의 정통 중국 음식점인 강희제로 모였다. 작년 12월에 보고 나서, 거의 두 달 만에 모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에겐 시간의 흐름에 변화가 그리 크지 않는다. 강희제에서 제일 안락한 룸에 모인 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12월 때의 모습이나 차림과 그다지 달라진 건 없다.

겉으론 그랬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소소하게 달라진 점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유재원의 부모인 유봉만과 김말숙은 직업을 바꾸었다. 유봉만은 현미유 공장을 그만두었고, 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고 있다. 김말숙도 대리점 판매사원 일을 마치고, 부동산 일을 배우고 있다.

유재원이 미국에 가기 전 했던 당부를 고심 끝에 받아들이셨다. 아들이 맡긴 통장으로 매달 300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오고 있으니, 힘든 일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대신 부동산 투자에서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는 말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경우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돈이 좀 들어온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덕진 국민학교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것이 제일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명예였다. 덕분에 얼굴에 항상 웃음이 피어 있었고, 인상까지도 달라졌다.

유일하게 작년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 현미유 공장의 박상권 사장이었다.

현미유 공장 사업은 보기와 달리 한 해 매출액이 수백억 원에 달할 만큼 컸다. 각종 곡물에서 추출한 식용유를 파는 것도 쏠쏠했고, 기름을 짜고 남은 부산물을 사료로 가공해서 전국에 파는 것도 짭짤한 수익이었다.

이처럼 커다란 사업을 하고 있으니 유재원이 준 배당금은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12월에 배당을 받을 땐, 기뻐하기보다는 우려가 컸던 박상권이다. 유재원이 내실을 키울 생각은 않고 돈 좀 모았다고 배당부터 한다고 말이다.

“얼마라고요?”

하지만 최강욱이 던진 말 한마디에 그 우려심은 3차원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100억 원입니다.”

불과 2개월 만이다.

유재원이 미국에 갔다 왔다는 건 덕진리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집이 걱정된다면서 파출소에 순찰을 부탁했었고, 고기를 두둑이 받은 파출소 순경들은 유재원이 귀국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덕진리와 내오마을 순찰하였다.

그걸 보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에서 무슨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렀기에 100억이 뚝딱 만들어지나?

IT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근대적인 사고관을 가진 어르신들에겐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과도 같았다.

덕분에 최강욱은 100억 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째서 배당을 하게 되었는지, 배당받은 돈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대주주였기에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은 충분했다.

“세상에!”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최강욱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뜨거운 음식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동시에 대견스럽기도 했다. 웬만한 중소기업도 얻지 못할 이익을 단번에 얻은 것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수익금 일부를 마을과 학교에 기부하겠다는 건 어른들도 쉽게 할 수 없는 나눔이었다.

게다가 배당의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종류의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니까 투자전문회사를 차리려는데, 투자 방식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위험해 보이니, 자기 자본만으로 회사를 차리겠다는 것이군요? 그러면 투자금도 보통 투자회사들처럼 투자상품을 내놓고 모집하겠네요.”

“예, 맞습니다.”

현미유 공장의 박 사장님이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투자를 어떤 식으로 했길래 그러는 겁니까? 혹시 쪽박을 찼나요?”

“음. 3억을 대신 증권과 대우 증권에 몰아넣었습니다.”

다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투자할 때는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89년에도 상식처럼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걸 완전히 깨버리고 한 방에 투자한 유재원의 방식은 확실히 위험하게 보였다.

유재원이 만든 배당을 시행해서 자기 돈으로만 투자 회사를 만든다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음, 괘씸하군요.”

교장 선생님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최강욱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재원의 부모님이 깜짝 놀랐다. 교장 선생님이 괘씸하다고 하시니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재원이 이 녀석, 우리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마을과 학교에 기부하는 것도 혼자 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배당금만 받고 가만히 보고 있으라는 소리입니까?”

“그것은…….”

최강욱은 순간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유재원과 수익금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배당이나 사업자 선정에 대한 실무를 진행할 때도, 교장 선생님과 같은 주주는 논외였다.

“우리가 유재원의 재능을 보고 투자한 건, 그 녀석이 잘 되어 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우리 덕진의 이름을 높이 드높이는 건 부차적인 이야기였고요.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에 돈을 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장 선생님의 반문에 교감 선생님이나, 현미유 박 사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우리가 이제 재원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 아닙니까? 착한 일도 혼자 하겠다고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습니까? 가오가 없습니까? 재원이가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게 화끈하게 밀어줘야 합니다!”

교장 선생님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켜보던 최강욱도 이런 분들이 다 있나 싶었다. 진짜 책에서나 볼 법한 인격자들이 여기에 다 있는 것 같았다.

변호사 일을 할 때, 수많은 민사 소송을 치러 봤던 최강욱이다. 민사 소송 중 상당한 사례는 자신의 몫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법정까지 분쟁을 끌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도대체 뭔가?

돈 앞에서 초연함을 보이는 건 절대 쉽게 할 수 없는 데, 대주주 3분이 다 그랬다. 게다가 최강욱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이야기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배당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주식의 매입을 요청하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이렇게 번거로운 배당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배당금이 아니라, 자사주 매입금으로 처리하면 깔끔하다는 현미유 박상권 사장님의 말이었다.

동시에 회사에 주식을 매각하고 받은 돈으로 유재원과 함께 지역 사회에 투자하기로 말을 모았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기금도 만들고, 마을에 가로등을 놓고, 수도관을 매설하는 사업에 쓰자는 것이다.

최강욱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정해졌다. 결국, 최강욱은 배당금 통보를 확정하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며칠 후, 임시 주주총회가 다시 열렸다. 이번엔 유재원도 참석하는 회의였다.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의 배당에 교장 선생님과 같은 은인이 있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앞으로 벌 돈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가진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들을 비롯한 주주들도 완강했다.

돈은 적당히 많으면 충분했고, 그 이상은 큰일을 할 유재원에게 밀어주겠다는 게 그분들의 합의된 결론이었다.

유재원이 50.1%의 주식을 가진 의결권자였기에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갈 힘은 있었지만, 결국 어르신들의 의견을 이기진 못했다.

대신 자사주 매입 금액은 이번에 확정한 배당금만큼 그대로 드리기로 했다. 몇 번이나 사양했는데, 돈을 받지 않으면 세금으로 다 나간다고 하니 결국 수락하셨다.

여기에 유재원은 대인의 배포를 보여준 어르신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우선주를 발행해 내어드렸다.

우선주란 의결권은 없는 대신, 배당금이나 회사 청산 때, 남은 자산을 우선해서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담긴 주식이었다.

어르신들은 우선주도 받지 않으시려고 했는데, 자기와 인연을 끊으시려는 것이냐? 후대에까지 두고두고 주식을 물려주는 탄탄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증표라는 설명에 결국 받으셨다.

21세기의 사고관을 가진 유재원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만약 이런 일화가 2020년쯤에 알려졌다면, 어르신들을 두고 선의가 아니라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이 들어왔을 거다.

유재원은 속마음을 듣고 싶어서 가장 말이 통할 것 같은 현미유 공장 사장님을 따로 찾아 뵈었다.

-우리는 네 성공에 커다란 배팅을 하는 거다.

자칭 타짜 아니랄까봐 큰 배팅이란다.

유재원이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엄청난 성공을 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도와달라고 할 테니, 무조건 성공하라고 했다.

이처럼 존경해마지 않는 어르신들이라면 두고두고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유재원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과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이번 편을 쓰면서 현실성은 포기했습니다~~!

현실성은 좀 없어도 저런 멋진 분들이 독자님 주위에도 많았으면 참 좋겠지요? 설사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멋진 사람이 되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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