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자이언트 킬러 ==============================
#42-1
○ 자이언트 킬러
유재원이 미국에 다녀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다.
2월에 개학한다고 바로 신학기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졸업식과 입학식 등의 행사도 있었고 봄방학이라고 1주일짜리 짧은 방학도 있다.
학기가 제대로 시작하는 건 3월부터였으니, 긴 겨울 방학이 벌써 끝났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동안 유재원은 미국에서 얻은 성과를 온전한 회사의 능력으로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일단 ID 테크놀로지 캘리포니아 지사에 24시간 돌아가는 자체 서버를 오픈했다. IP도 IANA (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에서 돈을 주고 정식으로 할당받아서 FTP 서비스가 항시 열려 있다.
마음 같아선 숫자로 된 IP뿐만이 아니라 도메인도 등록하고 싶은데, 현재 인터넷 기술의 수준은 WWW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심지어 PC 통신과 비슷했던 고퍼도 없는 상태였으니, IP를 가지고 FTP를 운영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유능한 개발진이 꾸려졌으니 시간이 충분하다면 WWW용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보유한 기술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한 때였다.
자체 서버 덕에 유재원도 컴퓨서브의 불안정한 FTP에서 탈피할 수 있었고, 텍사스에 있는 ID 소프트웨어와 샌프란시스코 개발팀과도 연결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사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샌프란시스코에 항시 출근하는 직원이 벌써 15명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탐정 시절 레밍턴의 비서였던 섀넌 크루즈가 가장 먼저 채용되었다. 레밍턴의 사심이 100% 발동된 인사였지만, 유재원은 충분히 이해했다. 섀넌은 레밍턴과 함께 거의 5년 동안 발을 맞춰 온 비서였다. 동시에 죽고 못 사는 애인 사이였다.
전생에서 둘은 실제 결혼도 했다.
그때는 레밍턴이 탐정 산업의 쇠락으로 쫄딱 망했던 상황에서도 기다려 주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서로에게 기대며 견뎌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IT 붐에 편승에 돈벼락을 맞으면서 레밍턴의 인생에 황금기가 찾아오는 듯했는데, 불행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IT 붕괴로 가진 재산 중 상당수가 깡통이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것처럼 섀넌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레밍턴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결국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젠 그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섀넌만큼 레밍턴을 잘 보좌해줄 사람은 없으니 깔끔히 인정했다.
여기에 중간 관리자급의 경력 10년의 매니저에 실리콘밸리 경력 4, 5년 차 정도 되는 프로그래머가 8명이 채용되었다. 뉴욕증권선물거래소에서 일했던 빈센트 그린힐도 스카우트되었다.
빈센트에게는 곧 석유 선물 거래를 시작할 테니, 필요한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투자 감각을 깨워 보라고 10만 달러가 든 계좌도 맡겼다.
레밍턴에겐 나머지 둘의 스카우트에 집중하라고 했다. 하지만 둘 중은 금액으로 고사 중이거나, 개인적인 일로 스카우트를 사양하고 있다고 전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전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고용된 프로그래머 숫자도 유재원이 원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바로 개발 업무에 투입할 준비를 끝내서, ID 테크놀로지의 프로그램 개발 역량은 최소 2, 3배는 오른 것이나 다름이 없다
ID 소프트웨어도 순항 중이었다.
키보드 워리어 엔진을 울펜슈타인에 맞게 개조하는 것을 마무리하고, 스테이지 구축에 들어갔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는데, 두 가지 요소 덕이었다.
첫째는 유재원의 소스가 직관적이고도 모듈식으로 되어 있어서 개조가 쉬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존 카멕의 천재성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덕이었다.
울펜슈타인 엔진 개발이 끝나자 스테이지 구축은 레벨 디자이너인 로메로가 주도했고, 존은 유재원이 준 지상 과제인 게임 라이브러리 개발에 착수했다. 유재원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기술과 울펜슈타인의 엔진 개발 중에 사용했던 각종 기술을 정리해서 글라이드 X라는 이름으로 묶는 중이었다.
여기서 존 카멕의 천재성은 확실히 눈을 떴는지, 글라이드 X의 구성이 특별해졌다.
게임은 비주얼과 음악, 그리고 스토리로 이뤄진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존 카멕도 이에 따라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컨트롤과 기타 기술 이렇게 3개로 나누어서 글라이드 X를 정리했다.
글라이드 그래픽스. 글라이드 인터렉티브 사운드. 글라이드 컨트롤러라는 하위 라이브러리였다.
딱딱한 소스코드뿐만이 아니라, 소스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예제도 담아놔서 초보 프로그래머가 보고도 쉽게 응용할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개발팀은 유재원과 함께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아직 코드 한 줄, 아이콘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유재원과 실리콘밸리의 개발팀 사이에 주고받고 있는 건 소스코드가 아니라 대량의 문서파일과 이미지 파일이었다.
오피스 프로그램 4개가 완성될 때 예상되는 소스코드의 분량은 수십만 라인에 달했다.
메머드급 초대형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수많은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작업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은 본격적인 코딩을 시작하기 전에 프로그램의 개요와 소스코드 작성 시 적용될 문법부터 정하기로 했다.
함수와 변수의 이름을 정하는 규칙은 물론이고 소스코드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주석을 달 때 표준화된 문법을 정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용자가 입력한 데이터를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저장할지 데이터 구조를 정의하기도 했다.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빼먹을 수 없었는 순서였다.
유재원은 이미지를 통해서 완성할 오피스 프로그램의 전체 모습과 세부 모습까지 보내주었다. 매킨토시 2를 이용해서 스크린샷을 찍은 것처럼 정교하게 만든 이미지였다.
리본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오피스 프로그램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리본 인터페이스의 상징인 리본은 하단의 시작 버튼과 작업 표시줄 뿐만이 아니었다.
상단의 파일, 편집, 보기, 서식 등의 메뉴 목록을 누르면 바로 그 아랫줄의 리본이 바뀌면서 각 메뉴의 세부 기능이 아이콘으로 펼쳐지는 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해봤던 기능이었다.
또한, 하단의 작업 표시줄에 여러 개의 문서를 띄워놓고 각 문서를 넘나들면서 작업하는 것도 파격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파격은 워드와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프레젠테이션을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한 데이터를 공유하는 기능이다.
스프레드시트에서 만든 표를 서식까지 살린 그대로 워드로 복사해오는 것이나, 워드의 서식을 프레젠테이션으로 옮겨가서 작업하는 건 시대를 초월한 기술이었다. 심지어 이미 다른 프로그램으로 복사한 데이터라도, 원래의 작업 프로그램에서 편집하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자동으로 바꾸는 다이나믹한 기술에 관해 설명을 들었을 땐, 중간 관리자로 채용된 10년 차 경력의 마리오 로저스도 뒤로 넘어갈 충격을 받았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유재원이 제시한 동적 오브젝트 매니저(DOM)라는 기능을 이용하면 쉽게 구현할 수 있게 설계했다.
모두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확실히 인지했다. 동시에 의욕도 들끓었다. 이 멋진 프로그램을 얼른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의욕 충만한 그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은 이미 유재원은 핵심 기능을 반쯤은 혼자 완성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을 하고 있었던 유재원이다.
여기엔 오피스의 중요한 기능인 동적 오브젝트 매니저와 4개 오피스 공통으로 적용될 파일 저장, 불러오기, 데이터 찾기, 압축하기, 정렬하기 등의 핵심 기능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완성된 소스코드를 인터넷을 통해 실리콘밸리 사무실 서버에 올리기만 하면 1/3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아직 그러지 못한 치명적인 이유가 있다.
원래 유재원은 오피스를 함께 개발할 프로그래머를 국내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소스코드에 넣은 주석도 한글로 넣었는데, 이게 실수였다.
국내에서 프로그래머 모집은 실패했다.
미국에 다녀왔을 만큼 긴 시간에 걸쳐 구인했지만, 쓸만한 사람이 없었다. 결국 구인 글도 지워버렸다.
이젠 영락없이 실리콘밸리 팀과 함께해야 하는데, 그들 중에 한국어 능력자는 없다. 그러니 주석도 죄다 영어로 바꿔야 한다.
문제는 분량이다.
유재원의 작업 효율은 무시무시했다. 분당 최소 500타의 속도로 오타가 하나도 없이 몇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며 소스코드를 짜내는 괴물 같은 녀석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가공할 속도의 비밀이 있다.
기억의 궁전에 외워둔 코드를 손으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생에 준비하지 않은 부분의 경우엔 스스로 만들기도 했으니, 조금 느려질 때도 있다.
약간의 특전 덕분에 이제까지 작성된 소스코드의 분량이 무려 4만 줄에 달했다. 심지어 주석을 영문으로 바꾸면서 코드를 다시 살피며 최적화까지 진행했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괴물 유재원에겐 단지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일 뿐이다. 게다가 회사 일은 최강욱과 레밍턴이 잘 처리해주고 있었기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번역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번역과 최적화 작업을 하는 동안 실리콘밸리 개발진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오피스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일 브레인스토밍을 매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쓸만한 아이디어는 곧장 화이트보드로 옮겨지며 구체화하였다. 필요한 알고리즘을 아예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을 지휘하는 중간 관리자 마리오 로저스는 각자 특기와 적성에 맞는 임무를 분담했고, 예상 완성 시점까지 마일스톤을 만들어 할당했다.
소규모 환경이었지만 주먹구구로 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으니, 유재원의 작업 속도에 탄력을 더했다.
덕분에 앞으로 3일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을 만나서 조금 더 미뤄지게 되었다. 연락도 없이 놀자고 찾아온 친구들 때문도 아니었고, 갑작스럽게 사고가 난 것도 아니었다.
불현듯 찾아온 설날 때문이었다.
설날은 추석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89년에는 구정이라 불렀다. 정부에서는 구습을 타파한다며 양력 1월 1일만 휴일로 인정해준 통에 빨간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덕진리 사람들 모두 구정을 진짜 설날로 생각해서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졌다.
유재원의 집과 외갓집도 마찬가지였다.
2월 6일, 설날 아침이 되자 유재원과 부모님은 새 옷을 차려입고 큰집으로 가서 차례 지내는 것을 구경했다.
열혈 신자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유재원이나 어머니 김말숙이나 사심을 가지고 교회에 나갔던 나이롱 신도였다. 하지만 인격이 좋은 목사님과의 의리가 있어서 구경만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종교적 갈등으로 큰아버지나 큰어머니, 친척들 사이에서 말이 좀 나왔는데,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유재원의 어머니 김말숙이 일이 바빠 차례상을 차리는 데 많이 도와주지 못했음에도 뒷말은 하나도 안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을 통해 큰집을 비롯한 친척들도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집은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분 투자는 불안해서 직접 하진 못하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고, 아버지가 그 돈으로 600만 원 정도를 투자했다. 지금은 억 단위에서 놀고 있는 유재원이지만, ID 테크놀로지 창업 초기엔 귀한 돈이었다.
아버지는 배당을 받은 돈을, 빌려준 친척들에게 다시 분배했다. 앞으로도 배당을 받으면 이렇게 하실 거라고 했다. 대신 의결권은 모두 아들인 유재원에게 위임한다고 도장을 받아놓으셨다.
지금이야 화기애애하지만, 나중에 지분을 가지고 문제가 생길 빌미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었다. 친척들 입장에서도 회수하지 못할 돈이라고 생각하고 빌려주신 것인데, 매년 큰돈으로 돌아오니 만족해하셨다.
게다가 선산도 대박이 났다.
유재원의 말에 따라 두꺼비 닮은 황재홍에게 거래를 위임했었다. 그런데 새해가 되자마자 경기도에서 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유 씨 집안 선산 일부가 터널 건설을 위해 수용되었다. 원래의 역사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단 하나. 황재홍에게 선산을 팔았던 것이 아닌, 거래를 맡겨준 것뿐이다. 황재홍은 최고의 수완을 발휘해서 정부 예정보다 높은 금액을 받아냈다. 그 금액이 3천만 원이었다. 원래 그쪽 땅값은 평당 몇백 원 수준이었는데, 황재홍 덕에 천원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황재홍에게 적당한 사례를 하고도 돈이 상당히 남았다. 그것을 가지고 큰아버지는 반은 유봉만을 비롯한 동생들과 친척들에 나눠주었고, 나머지는 재투자를 위해 보관하기로 했다.
물론 재투자라는 건 유재원에게 투자하겠다는 뜻이었고, 친척들도 100% 동의했다. 분배금을 받은 친척들도 유재원이 다른 사업을 한다면 다들 투자할 준비를 했다.
덕분에 유재원이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께 세배할 때면,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세뱃돈을 안겨 주었다.
세뱃돈도 세종대왕 님이 그려진 1만 원짜리였다. 유재원은 그렇게 받은 돈을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은 그걸 세배를 하러 온 삼촌, 사촌 형들과 누나들에게 나눠줬다.
자신들의 세배는 천 원짜리, 많아 봐야 5천 원짜리였는데, 유재원은 만 원짜리를 받는 모습에 입술이 삐죽 나왔던 형들과 누나들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부모님으로부터 만 원짜리를 몇 장씩 받자 금세 싱글벙글해졌다.
순환의 좋은 예다.
========== 작품 후기 ==========
세뱃돈이 시공의 폭풍으로 들어가 순환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를 겪으신 분이 저 말고도 많겠지요?
다음편으로 가시기 전에 추천 살짝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