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슈퍼 시너지 효과 ==============================
#41-1
위기에 큰 부자가 나온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었다. 유재원도 100% 동의했다. 단순히 현상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꿰뚫는 지혜가 담겨 있다.
경제 위기마다 큰 부자가 태어난다.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 위기였던 IMF 사태에서도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며 돈을 쓸어담던 일부 부류가 있었다.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자기들은 돈을 버니 IMF 체제가 이대로 영원히 지속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유재원은 역사의 연대기를 펼쳐 놓고 경제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하나도 놓치지 않을 계획을 세워 놨다.
그러한 위기 중에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게 90년에 있다.
작년 대통령에 오른 조지 부시와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의 악연이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라크라는 단어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듯, 90년은 걸프전쟁이 벌어진 해였다.
이라크가 먼저 쿠웨이트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곧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군이 결성돼 이라크를 초토화한 전쟁이다.
중동의 산유국들이 거의 다 불바다가 되었으니 유가가 출렁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유가가 출렁이면 유가를 두고 선물로 거래하는 시장도 엄청난 혼란이 찾아오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유재원은 이 출렁이는 흐름을 최대한 이용할 작정이다. 이를 위해 뉴욕선물거래소에서 석유 선물을 다뤘던 은퇴자를 찾아달라고 레밍턴 스팅에게 부탁했다.
“보스의 조건이 너무나 까다로워서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레밍턴의 푸념을 충분히 이해하는 유재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내건 조건이 까다로웠다.
선물거래중개인을 하다가 은퇴한 사람이라는 조건은 기본이다. 여기에 옵션이 달렸다.
레밍턴이 항시 감시할 수 있게 적어도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비리 때문에 은퇴한 사람은 부적격이다. 되도록 평판과 능력이 좋은데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했으면서, 캘리포니아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도 없는 상황에서, PC 통신과 수소문으로만 수색했던 레밍턴이지만 해냈다.
“빈센트 그린힐, 에릭 캔터, 테드 크로포드.”
무려 셋이나 찾아냈다.
나이는 젊은 사람이 60대, 많은 사람은 70대 초반이었고, 출신 학교도 UCLA, UC버클리, 스탠퍼드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명문대였다.
아, 출신 대학을 보니 레밍턴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찾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뉴욕증권거래소는 학벌을 따지는 직업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명문대학교 출신이 뉴욕에서 중개인을 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학교 네트워크를 통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그 결과를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좋네요. 이 사람들에게 접촉하셔서 ID 테크놀로지로 영입해주세요.”
“제가 말입니까?”
“네, 선물 거래 방침과 예산은 제가 정해드릴 테지만, 미국에서의 일은 레밍턴이 주관해야 하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셋 다 영입하는 겁니까? 은퇴자라지만 몸값이 좀 나갈 텐데요?”
“예, 문제없습니다.”
어차피 돈은 계속 들어온다.
선물중개인 고용에 대한 지침을 내려준 유재원은 레밍턴 스팅에게 여러 가지 계획들을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캘리포니아 지사의 역할도 강화하겠습니다.”
이곳도 서울 지사와 형태가 비슷했다.
원래는 레밍턴 스팅의 사무실이었지만, 그가 건물을 소유한 건 아니었다. 미래엔 훨씬 비싸질 실리콘밸리 건물이었지만, 지금도 비싸긴 했다. 그래서 매달 사용료를 주고 사용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임대료를 ID 테크놀로지가 부담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임대차계약의 이름도 레밍턴에서 ID 테크놀로지로 바뀌었다.
아직 부동산 가격 폭등이 시작된 건 아니라서, 임대료는 적당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만으로는 부족할 거다.
"무슨 역할입니까?"
"명색이 실리콘밸리에 있는 사무실 아닙니까. 이제 프로그램 개발도 해야지요. 20명쯤 고용했으면 하네요."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오피스를 개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즉각 현실화시키는 유재원이었다.
“세상에, 20명이나 고용하시겠다고요?”
“중개인도 포함하면 23명이죠.”
“세상에.”
20명이나 되는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말에 기겁부터 하는 레밍턴과 엘런이었다. 그들을 다 관리하려면 유재원이 준 임무는 수행할 시간도 없다.
“20명을 모두 다 프로그래머로 고용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중간 관리자도 채용하시고, 전화 응대나 스케줄을 관리할 비서도 채용하세요. 그리고 한꺼번에 다 고용하는 게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능력과 인성을 잘 분석해서 차근차근 진행하세요.”
무조건 사람을 늘렸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능력만 보고 뽑았는데, 인성이 거지 같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뒤통수를 시원하게 맞아서 다신 그런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유재원은 최강욱을 고용할 때도, 현미유 박 사장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찾아 듣기도 했다. 레밍턴도 전생에 인연으로 성격과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채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지면, 이곳만으론 공간이 부족하니 위층의 빈 사무실 하나를 더 임대해서 20여 명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사무실 공간이 준비되면, 구인을 시작하세요. 프로그래머가 사용할 컴퓨터는 본인이 직접 여기 있는 부품으로 조립해서 쓰라고 하고, 모자란 부품만 회삿돈으로 사주세요. 영수증을 팩스로 보내주면, 비용처리 할테니까요.”
이런 방식이라면 레밍턴이나 엘런도 적극 환영이다.
본인들의 업무가 과중해지는 게 아니라, 덜어낼 수 있었기에 기대감이 부쩍 오올랐다.
더욱이 인원이 늘어난 만큼, 회사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과 존재감도 증대되는 것이니 신입 채용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특히나 유재원이 사무실을 떠날 때, 따로 챙겨 준 성과급 보너스 봉투는 그들을 프로 정신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열정 같은 건 개소리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사람에게 가장 강렬한 동기부여는 결국 돈이었다.
‘해피 뉴 이어’ 보너스라고 명명한 두툼한 봉투를 받아든 레밍턴과 엘런은 그야말로 버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봉투마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60장, 40장이 들어 있었으니 과중한 업무로 재가 된 사람이라도 뜨거운 열정이 불사조처럼 되살아날 거다.
이렇게 사장님 역할을 확실히 보여준 유재원은 최강욱과 함께 다시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텍사스로 가는 비행기였다.
ID 소프트웨어의 사무실이 텍사스에 있는 터라 자동차로는 하루였다. 대신 비행기로는 금방 가는 거리였기에 부담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와 텍사스는 극과 극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텍사스 주, 댈러스 공항에서부터 달랐다.
국내선이었음에도 심사대 분위기부터 달랐다. 대놓고 차별적인 말을 하진 않았지만, 호의는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입국 심사도 아니고, 여권이나 가방, 몸 검사 정도만 하면 끝일 텐데도, 같은 질문을 몇 번 반복하기도 했다. 특히 영어가 서투른 최강욱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류가 워낙 탄탄히 갖춰져 있어서 좀 서툴러도 트집을 잡고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저기 있네요.”
겨우 심사대를 통과해서 공항의 게이트를 나서자 ID 테크놀로지 마크가 대충 그려진 종이를, 대충 들고 있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리빙 레전드 존 카멕이었다.
“젊네?”
최강국의 짧은 감상이 지금의 존 카멕의 모습을 바로 말해주었다.
지금은 전설이란 단어가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젊은 사람이었다. 유재원과 나이 차이가 10살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옷차림도 청바지에 셔스, 그리고 가죽 자켓을 걸쳤다. 은테 안경을 썼고, 헤어스타일도 귀밑으로 기른 장발인데, 적당히 웨이브가 있어서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멋진 미남이다. 골방에서 컴퓨터만 하는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인사이더의 모습이다.
“유-제이-원? 미스터 초이?”
존 카멕도 유재원과 최강욱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다. 호킨스 사장이나 레밍턴은 그나마 발음이 좀 괜찮았는데, 존은 전형적인 미국인 발음이었다.
“네, 제가 유재원입니다. 앞으로는 편하게 ‘제이(J)’라고 부르세요.”
유재원은 악수를 청했다.
제이는 유재원이 고심해서 지은 자신의 미국식 이름이었다. 재원이라는 말이 발음하기에 까다롭지 않을 것 같았지만, 존처럼 도통 익숙해 지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제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만들었다.
“존 카멕입니다. 존이라고 부르세요.”
존도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았다.
레밍턴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진작 보내줬기에, 혼란은 없었다. 물론 사진을 처음 봤던 ID 소프트웨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주가 이렇게나 젊은 녀석일 줄은 몰라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역시나 이들도 결국 인정했다.
유재원이 보내준 키보드 워리어 소스코드을 보고는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알파벳 하나 낭비되는 것 없었고, 복잡한 계산을 간단한 알고리즘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그들이 인정한 존 카멕도 하지 못했던 성과였다.
게다가 프로그램 중 대다수 코드는 작성자가 아니면,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주석은 물론이고 설명까지 있어야 함수의 정체를 파악하고, 프로그램의 흐름을 알 수 있었는데, 유재원의 코드는 너무도 직관적이었다.
코드를 따라가다 보면, 이 함수는 여기에 사용되는 기능이구나, 이건 변수는 이럴 때 필요하구나 하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유재원을 차원이 다른 엘리트, 혹은 엘리트 위의 그루(Guru)라고 다들 쉽게 받아들였다.
“존, 반가워요. 직접 보니까 더 잘 생기셨네요.”
“하하,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 봅니다. 제이 사장님도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젊어 보이시는군요.”
“헤헤, 요즘 어리다는 소리는 많이 듣고 있죠. 얼른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어요.”
어른은 어려 보이고 싶지만, 아이 땐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지금 유재원이 그랬다. 딱 4살만 더 먹으면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감수해야 할 게 많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존은 주차된 자동차로 유재원과 최강욱을 안내했다.
호킨스 사장이 캐딜락 리무진을 대령했다면, 존이 가지고 온 차는 쉐보레 임팔라였다. 유재원처럼 중고로 산 듯한 모양새인데, 아주 낡진 않았어도 신상의 기운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차였다.
정감이 가는 건 후자였다.
호킨스 사장의 의전은 비즈니스였다면, 존에게선 호의가 듬뿍 느껴졌다.
큰돈을 투자해 주었고, 귀한 소스코드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태평양 건너 멀리 있는 사무실까지 찾아와 주었으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존이 직접 운전하는 차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공항으로부터 ID 소프트웨어의 사무실까지는 5km 남짓한 거리였다. 차는 밀리지 않았으니 금방 도착할 거리였다. 그런데도 유재원과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컴퓨터 게임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봐, 지금 우리 사무실에 누가 오셨는지 봐라!”
존이 흥분하긴 했나 보다.
허름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존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반쯤 좀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왔다.
유재원은 한눈에 존의 동료들을 알아보았다.
존이 전설이 된 만큼, 존과 함께 한 동료들도 거의 다 네임드 개발자였다. 로메로, 에이드리언 등등.
카페인 드링크를 물처럼 마시며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러더니 유재원을 보고 우아하며 환호했다.
사진으로 먼저 봤지만, 실제 만난 건 처음이었으니 유재원과 최강욱은 존의 안내로 ID 소프트웨어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악수할 때마다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창업이었고, 사회의 냉혹한 맛을 보고 있을 때 동아줄을 내려준 은인이었다. 투자금은 겨우 1만 달러였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소프트디스크 시절보다 훨씬 많이 올라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것이다.
ID 테크놀로지의 지원이 없었다면 자본금을 다 까먹은 순간부터는 아르바이트해서라도 게임을 만들어야 했을 판인데, 이제는 게임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게임개발사 사이에 유재원의 위상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키보드 워리어의 전설적인 판매량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기필코 도전해야 하는 목표가 되었다. ID 소프트웨어 역시 마찬가지로, 투자를 받은 다음 살짝 풀어졌던 긴장감이 바싹 조여졌다. 게임을 잘 만들어서 제2의 키보드 워리어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일렉트로닉아츠를 뚫어주셨다!”
존이 폭탄을 터트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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