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6화 (56/1,007)

[56] 슈퍼 시너지 효과 ==============================

#40-2

다음날.

유재원과 최강욱은 아침을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웠다. 어젯밤 너무나 호화로운 저녁을 대접받은 덕에, 깨어나고서도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던 것이다.

안타까운 건 로버트 하일은 내일까지 휴가여서 그 음식을 맛보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그에겐 호화로운 미슐랭가이드 레스토랑보다 집에서 부모님이 해주시는 저녁이 훨씬 맛있었을 거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둘은 호킨스 사장이 빌려준 캐딜락을 타고 실리콘밸리 남쪽 산호세로 이동했다. 직접 운전하는 건 아니었고, 기사까지 빌려준 덕에 택시를 전세낸 것처럼 하루 종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산호세에는 레밍턴 스팅이 있다.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던 레밍턴 스팅은 유재원의 전화 한 통으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지금은 탐정사무실도 ID 테크놀로지로 간판을 바꿔 달아서 실리콘밸리의 벤처 회사로 보일 정도였다.

ID 테크놀로지의 미국 지사나 다름이 없으니, 평소라면 엊그제 유재원 일행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영접하러 나왔어야 했다.

그때, 레밍턴 대신 호킨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일렉트로닉아츠의 선수도 있었지만, 레밍턴 스팅에게 온갖 일이 쏟아지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바쁜 레밍턴 팀은 제 할 일 하게 하고, 호킨스 사장에게 받을 거 받는 게 유재원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건 레밍턴 스팅의 사무실에 가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산호세 로버츠힐에 자리한 작은 1층짜리 사무실이 ID 테크놀로지의 미국 지사이자 레밍턴의 업무 공간이었다.

유재원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설 때까지도, 안에서는 전화 통화를 시끄럽게 나누고 있는 레밍턴이었다.

“딜? 음, 노 딜이라고?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봅시다.”

뭔가 거래를 하다가 조건이 맞지 않았던지 전화를 미련없이 끊어버리는 레밍턴이었다. 그러다 사무실에 들어선 유재원과 최강욱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오, 보스! 이봐! 엘런, 나와 봐! 보스가 왔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반갑습니다, 레밍턴 씨. 엘런 씨.”

잠시후 흥분이 가신 후에 레밍턴과 엘런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유재원의 실물을 처음 보고도 호킨스 같은 반응이 나오진 않았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팩스로 자신과 최강욱 등등 한국 직원들의 사진을 미리 보내줬기 때문이다.

팩스로 사진을 보내면 화질이 엉망이 되긴 하는데, 아예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에는 법인 계좌 개설이나 투자 계약 등등에 필요한 서류를 항공우편으로 주고 받으면서 선명한 사진까지 보냈으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팩스로 받은 사진을 봤을 때는 설마했었고, 나중에 항공우편으로 선명한 사진을 봤을 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경악한 레밍턴 스팅과 엘런 스미스였다.

그때 놀란 건 다 놀란 덕에, 지금은 평온한 기색으로 유재원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레밍턴 스팅의 큼지막한 손을 잡은 유재원의 느낌은 색달랐다. 부모님 다음으로 친한 사람이 전생의 레밍턴 할아버지였다.

시대를 초월해서 지금은 젊어진 레밍턴을 만난 덕에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무척이나 낯설고도 친숙했다.

“어휴, 말도 마요.”

요즘 많이 바쁘냐는 유재원의 물음에 레밍턴 스팅의 푸념이 터졌다. 옆에 앉은 앨런 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탐정 사무실에서 ID 테크놀로지의 캘리포니아 지사로 간판이 바뀌면서 레밍턴의 일도 달라졌다.

처음엔 영업이었다.

컴퓨서브에 프로그램을 올리고, 유료 테스터를 선정해서 리뷰를 부탁한 게 어제 같은데, 순식간에 실리콘밸리의 거물로 커버렸다.

이후엔 반대가 되었다.

초기엔 제품을 팔기 위해 뛰었다면, 이제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온갖 제의를 분석하고, 거절하는 게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레밍턴과 엘런의 업무량도 폭증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거, 다 보스한테 온 거요.”

그렇지 않아도 사무실에 들어설 때 이상한 게 보였다.

작은 사무실 한쪽에 산처럼 쌓인 컴퓨터 부품들이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라, 박스로 잘 포장된 완제품을 대충 쌓아 놓은 형태였다. 캘리포니아 지사에는 개발 임무는 하나도 없는데, 무슨 컴퓨터 부품을 저렇게 많이 샀나 싶었는데, 자신한테 온 거라니?

“여기 리스트로 정리해 놨습니다.”

앨런이 A4 종이 몇 장을 전해줬다.

얼른 받아서 읽어보니 딱 감이 왔다.

ATI 테크놀로지스, 사이러스 로직, S3 그래픽스 등등. 첫 장에 적힌 이름들은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이었다. 각 회사에서 보낸 박스에는 당연히 VGA 그래픽 카드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키보드 워리어의 초대박 때문이었다.

게임이 정말 대박이 터지면, 게임을 하려고 시스템을 산다. 단적으로 소비자들은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를 사고 게임을 고르는 게 아니라, 슈퍼 마리오를 하려고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라는 게임기를 사는 것이다.

키보드 워리어의 스케일은 더 컸다.

게임을 하려고 컴퓨터까지 사는 일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대의 소동이었다. 286 사용자들은 386으로 업그레이드했고, 386 사용자 중에 VGA를 굳이 정착하지 않았던 이들이 VGA를 구매했다. 심지어 이더넷 카드를 사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사람까지 많이 보일 정도였다.

컴퓨터 시장 전체가 매출이 상승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신규 부품을 살 때, 소비자들이 판단하는 단 하나의 기준은 키보드 워리어의 벤치마크 점수였다.

60프레임이란 환상적인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컴퓨터는 끝내주는 등급, 30프레임을 잘 유지해주는 건 기본이 되는 컴퓨터다. 하드웨어 스크롤 기술이 활성화되지 못해 30프레임도 안 나오는 건 쓰레기 확정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아예 실행조차 할 수 없는 8086 XT는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었고, 286 AT 정도는 되어야 컴퓨터라고 인정을 받았다.

당연히 벤치마크 점수에 따라 부품의 판매량이 요동을 쳤다.

프리뷰 버전이 출시했을 때는 인터넷이나 PC 통신을 하는 사람들 한정으로 일어났다면, 지금은 북미 전체의 부품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점수가 잘 나오는 부품들은 품귀 현상이 일어났고, 그렇지 못한 부품은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사이러스 로직 VGA 카드였다. 이전에는 ATI는 따라잡지 못할 만년 이인자였다. 심지어 바싹 쫓아오는 S3에 의해 3위로 내려앉을 위기였다. 기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유통망이나 마케팅이 시원찮은 상태로 인한 결과였다.

그러던 사이러스 로직이 11월부터 소매점 판매 1위에 등극했고, 그것이 1월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매번 1위를 하던 ATI는 크게 당황했다. 사이러스 로직 열풍은 며칠 가고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게 커졌다.

사실 컴퓨터 부품 제조사들에 소매시장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아니었다. 부품 업체에 가장 큰 시장은 매년 수백만 대의 PC를 출하하는 HP나 컴팩과 같은 대형 업체였다. 그런데 이대로 두고 봤다간 그런 대형 업체마저도 빼앗기게 생길 판이다.

ATI가 찾은 해결책은 바로 원인 제거였다.

키보드 워리어에서 점수가 잘 나오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스크롤 기능을 억지로 가속하는 튜닝 드라이버를 내는 것은 물론,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로비를 시도한 것이다.

다만 그 로비가 한국에 있었던 유재원에게 직접 전해진 건 아니었고, 여기 레밍턴 스팅에게로 시도된 로비였다.

사무실로 배달온 부품은 로비와는 별개였다.

ATI에서 막 나온 따끈한 VGA 제품을 무려 10개나 보내줬다. 그것도 비디오 메모리가 1메가나 달려 SVGA까지 지원되는 고급 기종이었다.

이걸 사용해 개발하면서 최적화 코드를 ATI에 맞춰달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로비가 단지 ATI만 하는 독창적인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1등에 오른 사이러스 로직이지만, 최고의 자리가 주는 단맛은 아직 제대로 맛보진 못했다. 운 좋게 올라오긴 했지만,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사이러스 로직도 최적화를 부탁한다면서 자사의 최신 모델을 보내왔고, 지원금도 약속했다.

“VGA뿐만이 아닙니다. CPU 업체도 많이 있고, 대만에서 보낸 메인보드들도 있습니다. 확답을 주지 않았는데도, 소포부터 보내더군요.”

CPU?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구석에 AMD의 마크가 선명한 노란 박스가 있다. 단품으로 몇 개 보낸 게 아니라, 단품이 20개 정도 들어가는 박사 한 상자를 통째로 보냈다. 통이 큰 건지, 다급한 건지 모르겠다.

좀 뒤적여 보니 사이릭스도 있었다. 반면 인텔 박스는 열심히 찾아봐도 없다. 역시 1등이라서 여유로운 모양이다.

“어떤 곳은 키보드 워리어의 패치나, 버전업 혹은 차기작에서 자기들 부품이 1등으로 나오는 최적화를 해주면 3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것들은 계약과는 상관없이 공짜로 준다는 건데, 혹시 몰라서 반송할 주소도 확실히 받아 놨습니다.”

앨런과 레밍턴이 연달아 보고했다.

확실히 레밍턴 팀이 일을 잘한다.

구체적인 지시가 없더라도 보기 좋게 세팅을 해놨다. 부품 정리하는 건 물론이고 업체들이 약속한 금액과 조건들을 다 리스트화시켰다.

딱 보니 여기 있는 부품으로만 고급 부품으로 채워진 386급 컴퓨터 본체가 20개는 나올 것 같았다. 조건을 보니 대부분 확답을 주지 않더라도 부품을 개발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단다.

레밍턴을 보니 유재원이 반송하라면 미련없이 반송할 태세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나?

부담 없이 써 달라고 보내준 거다. 그러면? 감사히 쓰면 된다.

번뜩거리는 아이디어도 연이어 터졌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는 쓸만한 프로그래머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선 어떨까!

다른 곳도 아니고 실리콘밸리였다. 능력 좋은 프로그래머들이 우글우글하는 그곳이다. 키보드 워리어로 ID 테크놀로지의 이름값도 높여 놨으니 구인 광고를 하면 인재들이 찾아올 거다. 좀 모자라다 싶으면 이 시기에 이름을 날린 네임드 개발자를 스카우트하면 된다. 미국의 IT 환경은 한국과 달리 무척이나 두터우니 몇 명 빼 와도 끄떡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저 컴퓨터를 주고 프로그래밍을 시키면 딱이다.

부품 공급자들의 의도와 달리 게임이 아니라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에 쓰일거다. 그래도 저들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오피스도 다루는 자료의 크기에 따라 부하가 많이 걸리고, 호환성도 따져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산처럼 쌓여있는 부품 박스들이 현재 ID 테크놀로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한 유재원이었다.

유재원과 최강욱은 소파에 앉아서 레밍턴 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지스 쉴드를 원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제시한 금액이나, 키보드 워리어의 엔진 구매를 타진하는 업체도 보고되었다.

소포 폭탄 다음으로 레밍턴 스팅을 괴롭히는 게 외부에서 이지스 쉴드와 엔진 구매를 타진하는 업체들의 전화였다.

보고를 받았지만, 당장 계약을 수락하지 않는 유재원이다. 업체나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이름이나 성격, 그리고 제시한 금액 등을 입체적으로 따진 후에 정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보고를 받으면서 서열 정리도 확실히 했다.

의견을 물을 때 항상 최강욱을 먼저 찾았다. 다음이 레밍턴이었고, 앨런은 제일 마지막이었다.

즉, 유재원이 정한 회사의 서열은 최강욱이 2위, 레밍턴 스팅이 3위, 앨런이 4위다.

유재원과 일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은 따지면 레밍턴이었고, 나이도 레밍턴이 더 많았다. 하지만 ID 테크놀로지의 기반은 한국에 있었고, 한국에서 유재원을 대신해 실무를 대행하는 사람은 최강욱이었기에 이렇게 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밍턴도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조직 서열이라는 건 보스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서 일하는 지로 판명 되는 것이었다. 본사가 한국에 있는 ID 테크놀로지였으니 최강욱이 2위가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애매했던 서열 정리가 끝나자 사무실 분위기는 한층 좋아졌다. 덕분에 유재원도 쉽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수배했던 사람은 찾았나요?”

“보스, 제 전직이 뭐였습니까?”

“캘리포니아 최고의 탐정님이시죠!”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만 듣고 인상착의를 한 방에 맞춰낸 능력 좋은 탐정이다. 그래서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혹시나 하고 해봤던 유재원이었다.

“맞습니다! 결과는 직접 보시죠.”

레밍턴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품속에 넣어 놓고 있던 서류 하나를 꺼내 유재원에게 내밀었다. 동시에 레밍턴은 더없이 기쁜 얼굴로 서류를 받아든 젊은(?) 보스를 보며 궁금증도 일어났다.

이제껏 유재원의 비즈니스 영역은 컴퓨터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뉴욕증권선물 거래소에서 석유 선물을 다뤘던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던 것일까? 그것도 불과 7일 전에 갑자기 부탁한 것이었다.

찾아달라고 해서 열심히 찾긴 했는데, 도무지 젊은 보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는 레밍턴 스팅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연중 걱정을 하시는 독자님이 계시는 것 같은데, 걱정마세요~~!

제가 비록 폭풍 연참은 못해도, 완결까지 꾸준히 달리는 건 잘합니다~~!

(지금은 추천 스팀팩을 계속 맞고 있는 상태라서 기적적으로 연참이 이어지고 있는 것임!)

연재 시작하기 전에 여러 번 엎긴 해도, 공개 연재를 시작한 글은 완결까지 다 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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