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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5화 (55/1,007)

[55] 슈퍼 시너지 효과 ==============================

#40-1

호킨스 사장은 ID 테크놀로지의 다음 작품이 무조건 대박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게임 제작과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창업해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대박을 친 작품의 2탄이 망하는 건 여러 번 보았던 호킨스 사장이다. 그런데도 흥분하는 건 망한다고 해도 판매량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는 거다.

평가가 좋지 않아도 전작의 판매량의 반은 나온다.

평가가 평범하면 2/3는 나오고, 평이 좋으면 전작의 판매량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확률이 높다.

지금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는 키보드 워리어였고, 정식 후속작이라면 졸작 수준으로 평이 나빠도 50만 장 이상은 보장된다.

지금 150만 장을 찍고 있는 중이라 50만이라고 하면 작아 보이지만, 1년 전만 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숫자였다.

그런데 왜 두 개지?

ID 테크놀로지가 2개의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할 여력이 있나? 실질적인 개발 인력은 눈앞에 있는 유재원 하나뿐일 텐데?

한껏 기분이 올랐던 호킨스 사장에게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긴밀하게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했던 일렉트로닉아츠는 ID 테크놀로지의 현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생기는 의문이었다.

“신작 2개 중에 게임은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피스용 프로그램이죠. 그리고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으로 나오는 건 오피스 프로그램입니다. 게임은 ID 소프트웨어라는 레이블로 나올 거예요. 게임도 키보드 워리어 2도 아니고요.”

오피스 프로그램? ID 소프트웨어?

한껏 치솟았던 호킨스 사장의 긴장감이 순식간에 보통 상태로 돌아왔다.

키보드 워리어 2가 아니라니! 게다가 ID 소프트웨어라는 건 또 뭔가?

유재원은 쿡 찌르면 폭발할 것 같은 호킨스 사장을 눈빛으로 달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ID 테크놀로지가 왜 소프트라는 수식어 대신 테크라는 수식어를 썼는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소프트웨어가 아닌 테크놀로지?

회사 이름을 정할 때는 누구나 고심한다. ID 테크놀로지 역시 테크놀로지라는 단어가 그냥 붙여 놓은 게 아니다.

“우리 회사는 게임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아닙니다.”

호킨스 사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물론 게임 개발 업무를 하찮게 보고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우리 회사의 목표는 사용자와 컴퓨터 사이의 낯섦을 제거하고, 누구나 컴퓨터를 통해 IT 기술을 다룰 수 있는 편리한 기술을 만들고자 세운 회사죠.”

키보드 워리어의 본질은 타자 연습기다.

어쩌다 보니 게임성이 부여되었고, 그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북미판 키보드 워리어가 타자 연습기라는 본질을 완전히 까먹은 건 아니었다. 계단식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는 스테이지를 근성으로 클리어하면, 독수리 타법이었던 사용자는 속기사에 도전해도 될 만큼 빠른 타자 속도를 갖게 될 것이다.

여기에 네트워크 플레이로 사용자끼리 붙게 되면 무슨 기적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이지스 쉴드 같은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 컴퓨터의 성능이나 편의성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하드웨어 기술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차기작인 오피스 프로그램이 이러한 정신이 담긴 프로그램이죠.”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팍 식었던 호킨스 사장이었지만, 슬슬 호기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피스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딱 감이 왔다.

워드 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같은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당연히 이런 프로그램은 일렉트로닉아츠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장인 호킨스가 커다란 문서를 작성할 일은 별로 없지만, 가끔은 사용할 때가 있긴 했다. 그럴 때마다 느낀 불편함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 위력을 실감한 게임 부분 역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ID 소프트웨어라는 신생 게임 개발사에 투자하면서 지분 50.1%를 확보해 자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아, 그러면 말씀하신 신작 게임이라는 건 ID 소프트웨어에서 개발 중이겠군요?”

그제야 신작이 2개라는 말을 이해하는 호킨스 사장이다.

오피스 프로그램은 ID 테크놀로지가, 게임은 ID 소프트웨어가 만든다.

“ID 소프트웨어에서 나올 게임도 테크놀로지의 기술이 듬뿍 들어갈 겁니다. 이번에 키보드 워리어에 적용된 하드웨어 스크롤 기술부터 네트워크 기술도 전수될 거고요. 여기에 ID 소프트웨어만의 혁신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간 완성도 높은 게임이 기다리고 있지요.”

호킨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보드 워리어가 대박을 친 이유는 단지 게임성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성이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된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ID 테크놀로지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제대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면, 대박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기술력이 좋다고 게임성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게임입니까?”

“일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일명 FPS라고 하죠.”

“응? 그런 장르의 게임도 있습니까?”

FPS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액션 게임은 대부분 슈퍼 마리오처럼 조그만 플레이어 캐릭터가 화면에 나와서 총을 쏘거나 주먹을 휘두르고 다니는 형식이다.

“이번에 새로 나올 게임이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키보드 워리어에 공간감을 더해주는 벽을 화면 양쪽으로 세워 보세요. 1인칭 시점이니 주인공은 손과 총만 보이는 거죠. 그리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적을 분쇄하는 겁니다.”

호킨스 사장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자, 유재원은 종이 한 장을 얻어서 그림으로 그려주었다.

게임의 핵심 요소를 다 보여줄 수 없으니 무척이나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다. 대신 10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처럼 호킨스 사장은 한 번에 FPS 게임을 이해했다.

혁신!

키보드 워리어만큼 혁신적이었다. 제대로 구현만 되면 게임성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형태였다. 1인칭이니 몰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고, 적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타격감도 좋을 것이다.

“배경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말이고 적은 독일의 한적한 성을 점령하고 있는 나치입니다. 이들은 슈퍼 솔저를 만들고자 참혹한 생체실험하고 있는데, 실험용으로 끌려왔던 포로가 탈출하면서 시작되죠. 성의 이름이 울펜슈테인이라서 게임의 이름도 울펜슈타인이 될 겁니다.”

캐슬 오브 울펜슈타인.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멕과 그의 동료들이 유재원이 준 게임엔진으로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게임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ID 소프트웨어가 제작했던 게임인데, 시점은 지금보다 2년쯤 느렸다. 유재원의 개입으로 인해 역사의 뒤틀림이 생겨났고, 그 여파로 원래보다 훨씬 빠르게 제작 중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원래 ID 소프트웨어는 울펜슈타인이 아니라 다른 게임을 만들려고 했다.

키보드 워리어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미래형 슈트를 착용한 미래의 전사가 주인공인 게임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화성에 개척단을 보내 테라포밍을 시작할 만큼 미래였다. 테라포밍 중 특이한 포털을 발견했고, 그걸 얼떨결에 작동시켰는데, 포털이 연결된 곳이 지옥이라 악마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래의 전사가 이 악마들을 작살내는 게임이다.

둠(DOOM)!

출시하자마자 북미를 초토화한 바로 그 게임이 예정보다 훨씬 일찍 나올뻔했다. 하지만 내부 토의 결과 슈트 복장을 키보드 워리어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기술과 컴퓨터 성능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3D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건 어렵다는 판단에, 다른 동료가 제안했던 나치를 때려잡는 울펜슈타인으로 선회한 것이다.

ID 테크놀로지의 투자와 기술지원은 울펜슈타인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있었다.

둠이 미뤄졌다는 이야기에 유재원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울펜슈타인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울펜슈타인도 FPS를 정립했다는 평가와 함께, 큰 인기를 끌며 ID 소프트웨어를 일류 회사로 만들어준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호킨스 사장이 다시금 흥분한 것만 봐도 울펜슈타인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다.

“오피스 프로그램은 4가지 단독 프로그램이 하나의 세트로 묶이는 제품입니다. 워드,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프레젠테이션이고 옵션으로 개인 출판용 프로그램도 생각 중이죠. 원하는 프로그램만 구매할 수도 있고, 오피스 세트를 한 번에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권장하는 건 한 세트씩 구매하는 거죠. 합쳐지면 생각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나는 프로그램이니까요.”

게임에서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자 호킨스 사장의 반응이 달라졌다.

전문가용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유통하는 소프트웨어와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걸출한 기업이 잡고 있는 분야였다. 당연히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기존에 쓰던 것만 쓰니, 재고만 쌓이는 애물단지였다.

하지만 울펜슈타인이라는 게임의 유통판권을 얻을 수 있다면, 오피스도 기꺼이 유통해줄 마음이 있는 호킨스 사장이었다.

“울펜슈타인이나 오피스 제품군이나 당장 보여드릴 알파 버전도 없으니, 가부를 결정하는 건 어렵겠죠. 우리 ID 테크놀로지도 최우선 파트너인 일렉트로닉아츠에 부담을 안겨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울펜슈타인과 오피스 제품군의 알파 버전이 나오면 제일 먼저 일렉트로닉아츠에 보여드릴 테니, 그때 결정하세요.”

유재원의 말에 지금 계약해도 괜찮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호킨스 사장이다.

본능은 알파 버전 같은 건 필요 없고, 당장 사인을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일 먼저 보여주겠다는 말은, 다른 유통사에도 제안을 해보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막상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나오기만 하면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죠.”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이번에도 본능을 잠재웠다. 키보드 워리어를 두고 미지근한 판단을 해서 무형의 손실을 봤던 사건에서 조금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분명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오피스 프로그램과 울펜슈타인 두 개를 다 얻을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당장 보여줄 실물이 없는 유재원도 이 정도에서 만족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본사에서의 미팅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제가 제대로 대접해드리지요.”

제대로?

유재원이 제대로라는 소리에 혹했다. 어디 VIP 전용 룸살롱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자유로운 미국이라도 미성년자를 접대부가 나오는 룸에 데려가면 제아무리 호킨스 사장이라도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아마도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좀 많이 받은 레스토랑을 예약했구나 생각하는 게 정답이다.

“아, 그런데 4일 후쯤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네? 4일 후? 흠, 스케줄을 살펴봐야겠지만, 빡빡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널널하다.

내일은 레밍턴 스팅을 보는 것과 텍사스로 가는 것이 전부고, 내일모레는 텍사스에서 존 카멕과 동료들을 만나는 게 여유로운 스케줄이었다. 텍사스에도 하루 이상은 머물지 않을 것이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 90년대를 대비할 여러 가지 안배를 해놓는 게 유재원의 일정이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앞이든, 뒤든 미뤄둘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대로 말하면 상대방이 자신과 회사를 쉽게 보지 않겠는가.

“다름이 아니라, 방송 쪽에서 좋은 기회가 와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방송이라고?

“PBS라고 아십니까?”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EBS랑 비슷한 포지션의 방송국이다. 전국구 방송이지만, 교육용이라서 시청률은 그다지 높진 않았다. 대신 전체 시청률은 낮아도 유아부터 10대들, 부모님 세대의 시청률은 무척 높았다.

“PBS에서 컴퓨터 클로니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제목 그대로 컴퓨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지요. 이번에 게임 특집을 하는데, 말이 게임 특집이지 키보드 워리어만 다뤄질 겁니다. 클로니클 PD와 통화를 하다가 개발자가 왔다고 하니 섭외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컴퓨터 클로니클은 유재원도 즐겨 봤던 프로그램이다.

방영 당시 실시간으로 봤다는 건 아니고, 나중에 회귀 계획을 세울 때 Y튜브로 열심히 뒤져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컴퓨터 클로니클은 1983년부터 2002년까지 격주로 방송하며 계속 방송을 이어갔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컴덱스, CES와 같은 행사도 특집으로 방송해 주었다. 심지어 매킨토시의 맥 월드 행사까지도 다뤘다.

프로그램을 쭉 펼쳐 놓으면 컴퓨터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대기가 된다. 그러니 프로그램의 이름도 컴퓨터 클로니클이다.

“진짜요? 그럼 거절할 수 없지요. 당연히 나가겠습니다!”

시청률 낮아도 미국과 캐나다까지 전역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지역의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공급해줘서, 텍사스의 시골 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다.

21세기 예능과 비교하면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단조롭다는 게 단점이긴 해도, 프로그램의 PR과 회사를 알리는 데 이만한 수단은 없다.

유재원이 빼는 것 없이 단박에 수락하자 호킨스 사장의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화제의 키보드 워리어가 13살짜리가 만들었다고 한다면, 미국에서도 큰 반향이 올 것이다. 화제는 매출 증대로 이뤄지니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자, 그럼 저녁을 먹으러 나갈까요?”

호킨스 사장은 호기롭게 유재원 일행을 인도했다.

비록 기대했던 키보드 워리어 2를 얻진 못했지만, 몇 번을 만나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여타의 개발사들과의 미팅과는 달리 충분히 만족할만한 대화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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