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슈퍼 시너지 효과 ==============================
#39-2
가격을 보니 39.99달러로 되어 있었다.
29.99달러는 소매상에 일렉트로닉아츠가 공급하는 원가였고, 여기에 소매상의 정책이나 전략에 따라 원하는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이다. 여긴 번화가에 있는 가게라서 10달러를 붙여서 파는 모양인데, 상당히 고가임에도 무척이나 잘 팔렸다.
유재원과 최강욱이 매장 안을 구경하는 중에도 6장이나 팔렸다. 실리콘밸리이다 보니 거주하는 이들은 컴퓨터와 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게임은 이들의 일상이고, 보유한 시스템도 좋으니 키보드 워리어가 잘 팔리는 건 당연했다.
“너도 사려고?”
“네!”
유재원도 바로 구매 행렬에 동참했다.
보통 게임이 나오면 일렉트로닉아츠에서 개발한 회사에 패키지를 약간 보내주는 건 관례였다. 그런데 ID 테크놀로지는 워낙 먼 곳에 있는 회사였고, 연말에 워낙 바빠서 개발사 몫 물량을 받지 못했다.
전용 계산대가 있는 덕에 유재원 차례는 금방 왔다.
“어서 오세요. 키보드 워리어 드릴까요?”
무척이나 바쁜 직원이었지만, 아이에겐 친절히 대하는 것이 서비스의 나라답다.
“네, 누나! 키보드 워리어 10개 주세요!”
10개라는 소리에 직원은 큰 눈을 깜박였다.
“꼬마야. 집에서 하는 데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단다.”
“나도 하고, 친구들에게도 선물해서 같이 하려고요.”
패키지를 돌려야 할 사람이 많다.
보관용, 실사용 구분해서 챙겨줘야 하는 수경이도 있고, 오명 장관을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사실 10장으로도 부족한데,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갈 때 문제가 될 소지도 있어서 숫자를 줄인 것이다.
신용카드까지 제시하니, 잘 사는 아이인가 보다 생각하며 두말하지 않고 포장을 시작했다.
사실 꼬마가 10장을 산다는 게 특이한 것이었지, 크리스마스 연휴 때부터 해서 수십 장씩 구매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실리콘벨리에 있는 크고 작은 게임 개발사에서 연구하려고 사간 것도 있었고, 네트워크 플레이를 하려고 대량 구매를 한 사람도 많았다.
큼지막한 패키지 10개를 한 번에 다 들 수는 없으니, 직원은 5개씩 두 개로 나누어 포장해주었다. 둘로 나눠도 부피가 제법 컸다. 유재원과 최강욱은 하나씩 나눠 들은 다음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잘 보관해 둔 다음 다시 나서야 했다.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먹었다.
신기한 것투성이라서 밥 먹는 게 아까울 지경인 탓이다.
한국은 영하의 쌀쌀한 날씨라서 웬만큼 두꺼운 옷을 입고도 밖에 나서기가 싫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1월 날씨는 늘 영상이었다. 좀 따듯하다 싶을 땐 영상 8~10도까지 올라왔으니 약간 두꺼운 옷만 챙겨 입으면 투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오후 3시까지 실리콘밸리 이곳저곳을 실컷 구경한 유재원 일행은, 비즈니스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장소는 일렉트로닉아츠 본사였고,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호킨스 사장이 보내준 캐딜락 자동차를 타고 입성했다.
“일렉트로닉아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제 공항에서는 눈에 띄게 당황했던 호킨스 사장이었지만, 이제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비서가 만든 신원조회 서류도 보았고, 예전에 협상했던 당시 녹음해 두었던 테이프도 다시 들어 보았던 호킨스 사장이었다. 심지어 키보드 워리어도 다시 한 번 실행해서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가 나올 때 재생되는 캐치프레이즈도 확인했다.
공항에서 대면했던 유재원의 목소리가 맞았다. 대동한 변호사 둘 역시 함께 서류작업을 진행했던 실무진이었다.
13살짜리 꼬마가 ID 테크놀로지의 사장이 확실하고, 게임 개발 능력도 천재적이었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호킨스 사장이 원하는 건 키보드 워리어의 성공을 이어갈 다음 작품일 뿐이니, 좋은 조건에 계약만 하면 서로서로 이익 아니겠는가.
“실리콘밸리에서의 첫날은 편안히 보내셨습니까?”
“예, 덕분에 좋은 잠자리에서 자게 되어 피로가 싹 풀렸습니다.”
유재원은 호킨스 사장의 호의에 공치사를 올렸다.
도장을 찍는 일이 아니라면 립서비스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유재원이다.
“다행이군요. 오전에는 실리콘밸리 투어도 간단히 하셨다면서요?”
“네! 특히나 커다란 매장에 우리 키보드 워리어 포스터가 사방에 붙어 있는 것도 보기 좋았고, 실제로 판매도 잘 되고 있어 더 좋았습니다. 아일랜드식으로 따로 패키지를 쌓아 놓고, 계산대도 전용으로 만들어서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 베스트바이에 가셨던 거군요. 하하. 우리 앞마당에 있는 매장이라 특별히 관리하는 곳 중에 하나죠. 크리스마스이브에 오셨다면 전쟁통 같은 모습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진짜 볼만 했습니다.”
전쟁통이라.
전생에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같은 뉴스나 광군제 행사 뉴스를 많이 봤던 유재원이다. 덕분에 작년의 크리스마스 상황이 어떤 그림인지 절로 연상할 수 있었다.
“로열티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코드를 이용한 매출 집계 시스템으로 단 한 개의 패키지도 빼놓지 않고 차곡차곡 집계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3월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현금 정산이 완료되는 대로 송금해드리겠습니다.”
호킨스 사장은 민감한 돈 문제도 먼저 꺼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다행이네요.”
역시 경력은 무시할 수 없다. 확실히 유재원의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준다. 게다가 모니터에 데이터도 띄워서 보여주니 믿음직하다.
한국의 경우엔 판매량 검증이 쉽지 않았다.
일부 몰지각한 음반사에서는 실제로는 훨씬 많이 팔아 놓고 매출을 축소 신고까지 하기도 했다. 세금도 덜 내고, 가수나 저작권자에게 분배를 적게 하려고 일부러 축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POS라는 걸 진작 도입해 놔서 온라인으로 출하량, 판매량을 즉각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POS나 바코드 시스템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재고 관리부터, 당일 혹은 일정 기간의 매출 정리를 버튼 하나로 깔끔하게 뽑아주는 POS는 분명 소매점이나 유통시장에 매력적인 도구였다.
바코드 장비와 소프트웨어 한 방에 팔거나, 그게 부담이라면 대여해주고 매달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계속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쪽도 ‘진짜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이어질 때, 호킨스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3차분 물량도 50만 장으로 잡았습니다. 다만 미국에서만 소화되는 건 아니고, 유럽 버전이 20만 장 정도 됩니다.”
“좋네요!”
출하량이긴 해도 벌써 150만 장이다.
올해의 게임상 같은 게 있었다면, 키보드 워리어가 이름을 올렸을 텐데, 참 아쉬웠다.
“예, 엄청난 숫자라 업계에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죠. 아마 기네스북에도 오를 겁니다. 최단기간 100만 장 돌파 소프트웨어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100만 장 달성 기간은 짧아진다. 인터넷이 잘 발달한 21세기로 넘어가면 일주일에 천만 장씩 팔아치우는 괴물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건 20년쯤 후의 일이었고, 지금은 유재원의 작품을 능가할 회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 그리고 이지스 쉴드에 대한 문의도 폭발적입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엄청난 판매는 게임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안정적인 복제 방지 기술인 이지스 쉴드도 있었다.
“심지어 경쟁 유통에서도 문의가 올 정도입니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출시할 대형 게임에 적용하기로 했다는 공문을 받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팩스를 받긴 했는데, 출발하기 직전 받은 건 이지스 쉴드가 적용될 게임의 출하량이 총 30만 장이라는 소식이었다.
여러 타이틀을 다 합쳐서 30만이니, 150만 개를 찍어낸 유재원에겐 작게 들렸다. 하지만 키보드 워리어가 워낙 초대형 타이틀이었고, 보통 게임들은 10만 개를 팔면 본전 이상은 거두는 준수한 성적이었다.
호킨스 사장의 말은 액티비전과 같은 경쟁 유통사에도 이지스 쉴드를 팔 건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음,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전략적으로 생각해봐야합니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이지스 쉴드로 적용하는 건 수익 측면에서 볼 땐 좋다. 대신 모든 해커가 이지스 쉴드의 크랙에 매달릴 게 분명했다. 이지스 쉴드가 최신의 복제 방지 기법이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다.
공개키 암호화 방식의 온라인 인증과 실시간 인터넷 업데이트로 코드를 매번 갱신하는 방법이 아니면 답이 없다.
또한, 프로그램마다 전용 포맷 파일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는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적용될 수 없다. 실행파일을 만들 때, DOS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액세스 하는 코드를 넣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보를 주고받다가 이지스 쉴드의 중대한 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크다.
“결론적으로 선별된 일부의 타이틀에만 적용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유재원의 우려를 잘 알아들은 호킨스 사장은 더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이번에 터진 대박으로, 잘 만든 타이틀과 이지스 쉴드의 시너지 효과를 확실히 체감했다. 이지스 쉴드의 작동 방식은 최대한 숨기는 게 좋고, 해커의 총공격이 쏟아지는 것도 되도록 피하는 게 좋았다.
결국, 고르고 고른 일부의 타이틀에만 적용하는 방식이 최선임을 인정했다.
“저기,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물어보기엔 좀 그런데, 차기작에 대해 생각하신 게 있습니까?”
그렇게 기분 좋은 이야기로 유재원과 두 실무진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 호킨스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산을 일찍 해주고, 3차분 물량으로 유럽까지 끌어들여 50만 장을 결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혹시나 했다.
사실 없어도 좋았다. 단지 차기작을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유통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만으로, 아니 호감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번 ID 테크놀로지의 미국행 비용을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네! 있습니다.”
유재원의 대답은 시원했다.
“두 개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란다.
호킨스 사장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내일 혹시 시험을 보는 분, 아니면 시험을 보는 가족이 있는 분께 대박이 터지도록 기원하겠습니다~!!
우리 독자님은 무조건 잘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