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3화 (53/1,007)

[53] 슈퍼 시너지 효과 ==============================

#39-1

대한항공 기장은 자신의 말을 확실히 지켰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유재원 일행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아쉽게도 유재원은 안정적인 비행을 그다지 느끼진 못했다. 시차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슬슬 졸려 오자 그냥 꿈나라로 직행했던 탓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한낮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었다.

스튜어디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국적인 향취가 유재원 일행을 가장 먼저 반겼다.

독특한 냄새였다.

공항 바로 근처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이라서 바다 냄새가 나는 건 당연했지만, 유재원이 느낀 독특한 냄새는 바닷물 냄새와는 다른 것이었다.

“흐음? 이게 미국 냄새?”

아마도 명명한다면 미국 냄새라고 해도 될 그런 냄새다.

처음 미국에 온 최강욱에겐 낯선 냄새겠지만, 유재원에겐 추억 속에 있는 그런 기억이었다. 전생에 처음 미국에 가본 건 레밍턴 스팅의 장례식 때문이었고, 이후에는 여러 가지 비즈니스로 인해 미국에 여러 차례 와 보았다.

미국도 큰 나라라서 지역마다 각각 풍기는 냄새가 다르긴 해도, 비슷한 느낌인지라 금세 익숙해졌다.

퍼스트 클래스라서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유재원 일행은 미국 입국의 마지막 단계인 미국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미국 시민용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지만, 외국인용 입국 심사대는 길고 오래 걸리는 게 미국 입국심사대의 전통이다.

잠시 기다린 뒤에야 유재원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입국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비즈니스.”

-아이를 동반하고 비즈니스? 흠, 당신 아이인가?

“아니, 이분이 우리 사장님이다.”

-농담하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다.

로버트 하일의 답변이 이어질 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진다.

어휴, 이런 그림을 일찌감치 예감했던 유재원은 로버트 하일은 그냥 미국인 입국장으로 나가고, 자신과 최강욱의 입국 심사는 알아서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나서서 빠르게 입국 심사를 통과하게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되었다.

유재원이 나섰다.

“나 진짜 천재 맞아요.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일렉트로닉아츠가 유통하고 있고,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초대박이 났거든요. 혹시 키보드 워리어라는 게임 이름 들어봤나요? 내가 만든 거예요.”

자화자찬을 이어가면서 유재원은 관련 서류를 펼쳐 보였다. 특히 강조한 건 일렉트로닉아츠의 초대장과 신원보증 서류였다.

-음?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도시답게 일렉트로닉아츠를 한눈에 알아본 입국 심사관이었다. 초대장과 신원보증서류도 확실했다.

-통과.

유재원 일행의 여권에 샌프란시스코 입국심사장 여권이 쾅 찍혔다.

“웰컴 투 실리콘밸리!”

이미 대기업 수준에 이른 커다란 회사의 사장이었음에도, 입국 게이트 앞에서 ID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이 크게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던 호킨스 사장이다.

호킨스 사장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88년도 일렉트로닉아츠의 총매출은 4,800만 달러였다.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수많은 기업 중에서도 순위권을 다툴 만큼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여기서 키보드 워리어가 혼자 올린 매출액이 3,000만 달러다. 소프트웨어 하나가 단독으로 회사의 전체 매출의 2/3를 올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는 것으로는 일렉트로닉아츠가 받은 충격을 제대로 설명할 수없다. 정확한 비교는 전년도 매출액과의 비교다. 87년도 일렉트로닉아츠의 매출은 1,460만 달러였다. 88년도 목표액은 1,800만 달러였다.

타이틀 하나로 목표 금액을 2.66배를 달성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매출은 이제 시작이라는 거다. 2회차분 50만 장을 다시 북미 전역에 풀었지만, 아직도 물량이 모자란다는 말이 소매점으로부터 종종 오고 있었다. 정가에 팔리는 경우보다 웃돈을 주고 팔리는 일이 훨씬 많았다.

금전적인 이득 말고도 추가로 얻은 것도 있다.

새롭게 얻은 유통라인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돋보이는 곳이 미국 유통업계의 공룡 월마트였다.

원래 월마트에는 소프트웨어 매대가 없었다. 이번 계약을 통해 소프트웨어 섹션을 만들고 여기에 일렉트로닉아츠의 신작 라인업을 다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물론 메인 코너는 키보드 워리어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ID 테크놀로지와 계약을 할 때 임원들 사이에는 오버페이를 한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터진 성과로 호킨스 사장의 선견지명을 칭송하고 있다.

덕분에 ID 테크놀로지의 사장과 임원이 미국에 온다는 말에 비행기 티켓도 준비했고, 최고의 호텔도 예약해 두었다. 여기에 리무진까지 끌고 영접하려고 공항에 나온 것이다.

그런 호킨스 사장이지만, 자신 앞으로 온 세 명의 인적구성을 보고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꼬마, 아니 이 분이 유재원?”

전화통화와 팩스만 주고받다가 이번에 유재원을 처음 보는 호킨스 사장이다. 신원보증을 준비할 때 서류를 직접 챙겼다면 유재원의 출생연도를 미리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런 건 비서와 직원들이 다 알아서 했다.

덕분에 호킨스 사장인 기묘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12살. 아니 한국식으로는 이제 13살이 만든 게임이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에서까지도 난리였다. 유럽에서도 큰 뉴스가 되고 있어서, 유럽 출시도 청신호였다.

웬만한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도달하지 못했던 업적을 눈앞의 어린아이가 이룩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호킨스씨. 반가워요, 제가 ID 테크놀로지 사장 유재원입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제작자이기도 하고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유재원이 챙겨온 서류는 확실했다. 신원증명 역시 자신의 일렉트로닉아츠에서 해준 것이고 거기에도 1977년도 생이라고 되어 있었다.

얼떨떨한 상태의 호킨스였지만, 곧 현실 인식을 확실히 하고 예정된 일정을 시작했다.

리무진으로 안내했고, 미리 잡아 둔 5성 호텔인 쉐라톤 팔로 알토로 안내했다. 일렉트로닉아츠 팔로 알토보다는 위쪽인 레드우드에 있었지만, 그 근처 호텔은 별로였기에 쉐라톤으로 정했다.

당연히 객실의 등급도 최고인 스위트 룸으로 몇 명이 동시에 묶어도 될 만큼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그럼, 내일 뵙죠!”

호킨스 사장은 호텔까지 데려다준 후에, 깔끔하게 헤어졌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지금은 비싼 접대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아는 호킨스 사장이었다.

차라리 푹 쉰 다음, 여러 가지 호의를 베풀면서 차근차근 공략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 내린 행동이다.

유재원 일행도 그게 좋았다.

비행기에서 푹 잔 유재원이었고, 나이도 어려서 아직 팔팔하지만, 최강욱이나 로버트 하일은 몸이 찌뿌둥하고, 머리도 살짝 무거웠다.

스위트룸에 올라온 최강욱은 탄성이 절로 났다.

“사장님 잘 둔 덕에 이런 호강도 다 받아 보네요.”

말은 없었지만, 로버트 하일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퍼스트 클래스에 5성 호텔 스위트 룸 같은 건 자기 돈으로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옵션이었다.

“헤헤, 그러니 잘 보좌해주세요. 이런 게 일상처럼 느껴지도록 해드릴 테니까요.”

자신과 일행의 짐을 스위트룸까지 옮겨다 준 객실 안내원에게 10달러 지폐 3개를 팁으로 주고 온 유재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런 게 일상이 될 거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유재원이라면 거짓말처럼 이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음 날.

유재원은 미국행을 기다리며 만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갔다.

호텔에서 그럴듯한 아침을 먹고, 실리콘밸리를 거닐면서 살아 있는 역사를 구경하는 것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목록이었다.

차고 창업의 전설 HP를 비롯해 네트워크 장비 최강자인 시스코나 인텔, AMD와 같은 첨단 기업의 본사도 이곳에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있다. 본사는 워싱턴 주 레드먼드에 있지만,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실리콘밸리에도 사무실을 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실리콘밸리 투어는 개인적인 볼 일이 있는 로버트 하일을 뺀, 유재원과 최강욱만 참여했다.

“치즈!”

유재원이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간판 앞에서 포즈를 잡으면 최강욱이 찍어주는 일이 많았다.

여행에서 사진찍기에 집중하는 걸 딱히 좋아하진 않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첫 미국 출장이니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ID 테크놀로지의 역사관을 만들 때 쓰기 좋게 자료도 만들어 놓을 겸 사진을 열심히 남기는 중이다.

최강욱이 유재원을 찍어 주고, 유재원이 최강욱을 찍어 주기도 하고, 주변의 친절한 미국인에게 부탁해 같이 찍기도 했다.

“와! 저기 보세요!”

그러다 유재원의 눈에 딱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아키하바라처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을 파는 매장들이 연달아 있는 거리로 들어선 것이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매장 입구에 떡 하니 걸린 초대형 포스터였다.

어른 키만큼 커다란 포스터가 매장 입구 통짜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아니 도배가 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스터 안에는 미래형 슈트와 멋진 헬멧을 쓴 전사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키보드를 들고 있었다. 키보드 워리어의 북미판 포스터가 그 정체이다.

“우와. 우리 소프트웨어잖아!”

포스터 하단 귀퉁이에는 ID 테크놀로지의 마크가 선명하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마크도 떡하니 박혀 있었지만, 유재원이나 최강욱의 눈에는 그런 게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이 필요 없었다.

발걸음을 빠르게 놀려 매장으로 직행했다.

매장문을 열고 들어가서도 키보드 워리어의 존재감은 확고했다. 매장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수십 개의 패키지가 쌓여 있었고, 옆에는 시연용 컴퓨터를 10대나 놓고 네트워크 모드로 게임을 돌리고 있었다. 키보드 워리어에 탑재된 네트워크 플레이는 최대 4인이었으니 2개는 싱글용인 모양이다.

시연용 컴퓨터도 진작 자리가 차서, 뒤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키보드 워리어 전용 계산대까지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패키지는 호킨스 사장이 장담했던 것처럼 크고 고급스러웠다.

가로 25cm에 세로 33cm인 직사각형에 전신 슈트가 천연색으로 인쇄되어 있었고, 키보드 워리어라는 문구는 양각한 것처럼 살짝 튀어나와 입체감을 더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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