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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2화 (52/1,007)

[52] 슈퍼 시너지 효과 ==============================

#38-2

“어, 어느 부분 말씀이십니까?”

ID 테크놀로지의 재무제표 작성은 본인이 주도했고, 검산까지 마쳤다. 회사의 공인 도장도 찍은 상태인데 오류가 있다는 말은 본인의 경력에 큰 타격이다.

“여기 인건비 지출항목 말입니다.”

인건비?

ID 테크놀로지의 인건비는 영법비용 중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었다. 여주의 본사 사무실에 네 명, 서울 지사도 네 명, 그리고 캘리포니아 팀에 둘. 이게 다다.

여주에는 전직 광고가게 사장님인 강찬호를 간부로 두고 생산직과 경호를 맡은 이경식, 오대원, 운전사 겸 정비사 김대석 이렇게 넷이 전부다. 서울 지사에는 법무팀장인 최강욱과 단기 계약인 로버트 하일, 그리고 경리와 서류 처리를 맡은 직원 2명이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레밍턴 스팅과 엘런 슈미트가 전부다.

변호사들의 몸값이 제일 비쌌고, 경리와 서류 처리가 제일 낮은 임금을 받는다. 그래도 업계 평균보다는 많이 주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마진율이 워낙 높아서 남는 게 많았다.

인건비를 아낀다면 아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법인세로 내야 할 돈이 많아진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마구 낸다는 건 아니었기에, 직원 복지와 임금을 풍족하게 줘서 절세하는 게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좋았다.

설마 임금이 너무 넉넉하다는 지적인가?

“임금 항목에 유재원 사장의 이름은 왜 없는 겁니까?”

박상권의 지적은 김대우의 예상 밖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밥값이나 선물 등의 접대에도 자기 돈을 쓴 거 같은데. 맞나요?”

어째서 월급도 안 받고, 자기 돈으로 회사 일을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사실이었다. 유재원은 월급 받지 않고 회사 일을 하는 중이었다. 최강욱을 비롯해 직원들과 밥을 먹을 때도 자기 돈으로 해결한 적이 많았다.

“저는 제일 큰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에 이익이 생길수록 제 몫도 커지는 것이니 문제없습니다.”

유재원이 해명에 나섰다.

“애사심과 주인의식은 높이 삽니다. 하지만 회사의 주인은 유재원 사장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주주로서 회사가 잘 되길 바라고 있지요.”

박상권의 말에 교장, 교감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마도 본인이 본인 월급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몰라서 내버려두다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사장님 월급을 정해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재청과 동의가 이어졌다.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사람은 유재원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유재원의 월급도 정해졌다.

300만 원.

월 300만 원에 기타 상여금과 명절 보너스 등은 회사의 내규에 따르기로 했다. 아버지 월급과 비교하기가 무색하질 만큼 큰 액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ID 테크놀로지의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이는 최강욱 변호사로 220만 원 정도였다. 캘리포니아의 앨런 스미스는 이보다 조금 모자란 돈을 받는다. 미국 물가를 고려하면 더 저렴한 것인데, 전속으로 고용된 건 아니라서 그런 것이다.

경력 좋은 변호사를 회사에서 전속으로 고용해 쓰는 비용으로 적절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명색이 사장인데 변호사 보다 적은 월급을 적게 받을 수는 없다는 논리에 300만 원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졌다.

옆에서 주주들이 사장의 월급을 정하는 걸 보고 있던 김대우는 인생이 허탈해졌다.

자신은 서강대 경영학부에 겨우 들어갔고, 그야말로 뼈 빠지는 노력 끝에 세무사 자격증을 따냈다. 한 번에 뚫지 못해서 무려 3수나 했다.

세무사가 되고도 연줄이 없어서 개업은 하지 못하고, 세무법인에 들어가서 밤낮을 모르고 일한 다음에야 파트너 등급이 되었다. 그렇게 하고서도 아직 월급이 200만 원이 되지 않는데, 유재원이는 300만 원이란다. 게다가 이들이 가진 주식 가치를 따져보면 이미 저쪽 세상 사람이다.

저쪽이라는 건, 태생부터 다른 재벌가를 지칭하는 업계 용어였다. 하긴, 엊그제 나온 텔레비전에서 이미 재벌 회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던가. 그래도 거부감이나 반감은 크지 않았다.

ID 테크놀로지를 맡아 회계 업무를 하며 여러 번 만나본 유재원은 인간적이었다. 자신에게 꼬박꼬박 높임말도 써 주었고, 회계나 세무와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주었다.

‘황금 동아줄이다!’

월급이니 배당금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살짝 허탈감도 들긴 했지만, 지금부터 잘 잡아 놓으면 본인이 속한 세무법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큰 인연이 되어줄 것이다.

제1회 ID 테크놀로지의 주주총회는 이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주주와 가족들은 앞으로도 사업이 꾸준히 번창해 항상 축제와 같은 주주총회가 열리길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이들은 푸짐한 기념품도 받았는데, 소고기 선물세트였다.

생산직도 하며 때때로 경호도 담당하는 이경식 직원의 부모님이 정육점을 하시는데, 여기에 유재원이 특별 주문해서 만든 21세기식 한우 선물세트였다.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 주머니를 넣고 고급 부위를 포장해서 선물세트로 만든다는 건 만드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주주총회도 성공적으로 치른 유재원은 산뜻한 기분으로 1989년 새해를 맞이했다.

청와대 방문과 주주총회라는 거대한 행사 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덕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다만 전통적인 설날은 2월 6일이라서, 1월 1일은 명절 분위기가 나진 않았다. 그래도 1월 역시 큰 스케줄 하나가 잡혀 있었기에 설렘이 컸다.

미국 방문이다.

캘리포니아로 가서 젊은 레밍턴 스팅을 만난다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고, 실리콘 밸리에 가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거기에 리빙 레전드 존 카멕과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으니, 어서 빨리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다만 부모님은 유재원이 미국에 가는 걸 불안해하셨다.

유재원이 요즘 어른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곤 해도, 부모님에겐 12살, 아니 13살이 아이였다.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이 같이 간다고는 해도, 이역만리 먼 땅에 보내는 건 부모님에겐 힘든 일이셨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

89년 새해가 밝은 게 어제 같은데, 벌써 10일이나 지났고, 바로 내일이 미국 출장 날이 되었다.

덕분에 떠나기 전,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 자리는 조금은 처진 상태였다.

다음번 출장에서는 꼭 함께 가자고 단단히 약속도 해 놓아서 처음보다는 나아진 상태였다. 또한, 부모님도 저기압 상태로 유재원을 배웅할 수는 없었기에 일부러라도 기운을 내었다. 떠나 보낸 다음에 걱정하더라도, 당장은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싶은 게 부모님의 마음이었다.

“이건 어머니가 관리하면서 생활비로 쓰세요.”

밥을 다 먹어갈 무렵 유재원은 뭔가를 내밀었다.

“응? 이건! 통장이잖니.”

통장 맞다.

저번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유재원의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으로 우체국 마크가 선명하다. 그렇다고 비자금이 든 통장은 아니고, 새롭게 다시 만든 통장이었다.

금리는 농협이나 국민 은행 등이 높은데, 코앞에 우체국이 있으니 우체국으로 선택했다. 급한 필요할 때, 생활비가 필요할 때 찾아서 쓰기 쉽도록 배려한 것이다.

“세상에! 이게 다 얼마니?”

통장에 찍힌 돈은 부모님이 상상하셨던 것 이상이다.

4,770만 원!

유재원이 받은 88년도 배당금 중 세금을 뺀 전액에 받지 않았던 11, 12월분 월급까지 입금되어 만들어진 금액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배당을 통해 두 분이어서 1천만 원 정도 받긴 하셨지만, 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안 받겠다느니, 받으시라느니 하는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님은 없는 법. 유재원의 월급 통장은 어머니 손에 꼭 쥐어졌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매달 300만 원씩 들어 올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가 주부 판매사원 일도 그만하셔도 되고, 아버지도 현미유 공장에 계속 나가실 필요 없어요.”

전부터 일은 그만두셔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ID 테크놀로지가 본궤도에 오른 지금까지 그걸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 운전도 배우시고, 부동산 거래나 법원 경매도 배우시면, 나중에 제 일을 도와주실 수 있어요. 앞으로 부동산 전망이 정말 좋거든요.”

“그, 그래? 고민해 보마.”

이번엔 저번과 다르게 긍정적인 답이 나왔다.

미국에 다녀오면 분명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재원은 출국에 앞서 마지막으로 덕진리 파출소에 들렀다. 그것도 파출소에 근무하시는 경찰 숫자에 맞춰 여주 시에 소문이 자자한 한우 선물세트 6개를 차에 싣고 왔다. 파출소장님 건 특별히 좀 더 무겁게 만들었다.

뭐 엄청난 청탁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번 배당으로 인해서 ID 테크놀로지의 주주들이 돈벼락을 맞았다는 소문이 덕진리에 돌고 있는데, 내오마을까지 순찰을 종종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다.

파출소장은 애써 가져온 유재원의 손이 부끄럽지 않게 넙죽 받으셨고, 순찰도 확실히 해줄 거라고 약속하셨다.

유재원은 안심하고, 미국을 향해 나설 수 있었다.

다음날.

회사의 1호 차인 그랜저가 다시 내오마을까지 내려왔고, 유재원은 작은 캐리어를 들고 차에 올랐다. 원래 부모님은 이보다 2배는 더 되는 짐을 싸주셨다. 오지로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다 구매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것만 빼면서 짐을 줄였다.

수학여행 한 번 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유재원의 모습을 낯설게 보시는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계속 끌고 다닐 수는 없어서 전문가적인 모습을 숨기진 않았다.

서울에서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이 합류했다.

각자의 꾸린 짐의 형태는 그들의 사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최강욱은 유재원처럼 단출했던 반면, 로버트 하일은 바리바리 쌓여 있다. 로버트 하일은 오랜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것이니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잔뜩 산 모양이다.

여권과 비자 등등.

미국으로 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을 잘 챙겼나 확인까지 한 후에, 유재원 일행은 김포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출국 수속도 순조롭게 끝나서, 예정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유재원을 미국으로 데려다줄 비행기는 대한항공의 보잉 747 점보제트기였고, 좌석은 3명 모두 퍼스트 클래스였다.

한 사람당 몇백만 원씩 할 만큼 엄청나게 비싼 자리였다. 하지만 ID 테크놀로지의 부담은 아니었기에 마음 편히 앉았다. 이번 미국행의 항공권은 물론 체재비도 부담하고, 신원 보증까지 해준 회사가 일렉트로닉아츠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재원의 작품이 어마어마한 대박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유재원의 차기작에 대한 욕심을 내는 건 당연했다. 이번 미국행에 확답을 받고 싶어서 온갖 편의를 다 봐주고 있다.

덕분에 퍼스트 클래스의 호화로운 대접도 받았다.

승무원들이 자리까지 안내해주었고, 슬리퍼와 담요도 챙겨줬다. 여기에

웰컴 드링크와 견과류 간식도 가져와 세팅까지 해줬다. 필요한 게 있으면 버튼만 누르면 된다.

세팅해준 음료와 간식 열심히 먹고 있는데 띵 하는 알람 소리가 났다.

-승객 여러분. 오늘도 저희 대한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까지 여러분을 모실 기장 편종석입니다. 이 항공기는 김포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고도 12,000미터, 시속 900km로 비행할 것이며,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까지 10시간 40분이 소요될 것입니다. 저희 대한항공은 목적지까지 안전한 운행을 약속드리며, 편안한 비행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장 멘트가 끝나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출발이다.

가자! 기회의 땅, 황금의 제국 미국으로!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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