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슈퍼 시너지 효과 ==============================
#38-1
12월 29일. 목요일 저녁 6시.
유재원은 부모님과 말끔하게 차려입고 건물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주에서 정통 중국요리를 제일 잘하는 강희제라는 중국집을 하루 빌려놓고 손님을 오늘 초대했다.
새롭게 사무실 열었다고 개업을 축하하는 행사 같은 건 아니다.
이미 사무실이 2개나 있으니, 개업축하는 한참 전에 해야 했다. 심지어 유재원은 앞으로 더 큰 사무실을 열고, 아예 본사 건물을 차린다고 해도 개업행사 같은 걸 할 생각은 전혀 다.
이런 유재원이 부모님과 함께 맞이하는 손님들은 바로 ID 테크놀로지의 주주님들이다.
주주 명부에 있는 분들은 모두 덕진리나 여주 근처에 거주하는 분들이라서, 쉽게 찾아오실 수 있었다. 참석률도
100%를 훌쩍 넘었다.
어떻게 100%가 넘을 수 있나 하면, 초청장에 가족 동반 환영이라고 적어놨기 때문이다.
주주명부에 오른 분들뿐만이 아니라 함께 올 가족이 있다면 동행해도 된다고 해서 많은 분이 오셨다.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의 주주총회가 여타 다른 회사처럼 딱딱한 자리로 기억되는 건 싫었다.
지금은 주주도 얼마 없으니 미국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총회처럼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자리는 주주들께 88년도 ID 테크놀로지의 영업 성과를 보고하고, 내년도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동시에 회계법인을 통해 의뢰했던 감사 결과도 함께 보고, 배당금도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ID 테크놀로지의 중대한 비밀을 말해주는 자리였기에, 회계 자료나 배당금에 대한 것들은 주주들만 따로 모이는 작은 방에서 하기로 미리 공지해 놓았다.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배당금까지 받는 자리였으니, 축제 분위기는 쉽게 일어났다. 이와 함께 입구에 있는 유재원의 부모님은 너무도 뿌듯했다.
이미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성과는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고, 엊그제는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다기 세트와 대통령 시계는 유 씨 가문에서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국민학생을 아들로 두고 있으니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포니2 자동차가 강희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유재원의 가장 큰 서포터 교장 선생님 부부셨다.
“교장 선생님 오셨습니까!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뭘. 당연히 와야 할 자리지. 그동안 기대 이상으로 잘 해줘서 내가 더 고맙다.”
교장 선생님은 유재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칭찬했다.
마지막 초대 손님이었기에, 유재원과 가족은 교장 선생님 부부와 나란히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음식은 홀 안에 테이블에 다 세팅되어 있었다.
교장 선생님 부부와 유재원 가족들이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왁자지껄한 먹자판이 시작되었다.
유재원은 뿌듯했다.
삼보 컴퓨터 부사장 이용권 덕에 처음 이곳에 왔던 유재원이 가족과 함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88년도가 다 지나기 전에 지켰다. 그것도 훨씬 큰 스케일로 말이다.
“ID 테크놀로지의 건전성은 웬만한 대기업 이상입니다. 88년도 총매출액은 5억8천5백만 원입니다. 이중 인건비와 유지비, 광고 등의 비용을 제외한 순이익은 5억3천만 원으로 매출액 대비 90%라는 어마어마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홀에서는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지는 중에, 작은 룸에서는 실질적인 주주 총회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발언자는 유재원이 결산을 맡긴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 김재우였다.
의뢰는 서울 사무소에서 받았지만, 업무를 하려면 여주시의 ID 테크놀로지 본사로 내려와야 했다. 덕분에 작은 회사가 호들갑도 크게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도 얼마 없는 회사는 세무법인이 아니라, 지방 세무서 앞에 있는 작은 독립 세무서에다 맡기거나, 아니면 아예 경리 직원이 스스로 해도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아 보니 웬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정보통신 쪽 사업이라지만 순이익이 90%씩 나오는 건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심지어 자본금의 규모를 고려하면 놀라움의 크기는 더 커진다.
5천만 원도 안 되는 자본금으로 불과 2, 3달 사이에 6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는 건 김재우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김재우는 본능적으로 회사의 가치, 주가 총액을 따졌다.
가장 계산해보기 쉬운 주가수익비율(PER)로 ID 테크놀로지의 가치를 살피는 거다. 주기수익비율이란 시가총액을 한 해 벌어들이는 수익금으로 나눠보는 거다. 100억짜리 회사가 한 해 10억의 수익을 냈다면 PER은 10배다. 숫자가 낮을수록 좋은 회사고, 높으면 그만큼 거품이 꼈다는 것이다.
ID 테크놀로지의 자본금은 3,255만 원이고 88년도 순이익은 5억3천만 원이다. 그러니 PER 값은 0.06이라는 경악스러운 수치가 나온다.
요즘 한창 달아오른 한국의 주식시장이었다. 여기에서 PER 10 이하 주식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15, 16이라도 좋다고 사고 있다. 그러니 ID 테크놀로지의 가치를 주식시장 평균으로 따지면 지금보다 200배를 쳐 줘야 한다.
즉, 65억1천만 원짜리 회사라는 거다.
하지만 이 금액도 헐값이다.
왜냐하면, 88년도 결산을 하면서 미국에서 발생한 이익은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에서의 순이익이 추가된다면 회사의 가치는 몇백 배 수준이 아니라 몇천 배로 오르는 건 사실이다. 몇 년 후에는 만 배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무슨 시골에 이런 괴물 같은 회사가 있나 싶었던 김재우였다. 그러다가 사장을 대면했을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재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괴물 국민학생 유재원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와대에 초청되어 대통령은 물론 대기업 회장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어제 텔레비전에 대문짝만하게 나왔으니 말이다.
회사의 주주들이 눈물이 나게 부러운 김재우였다.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다 빼서 ID 테크놀로지의 주식을 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상장되지도 않은 회사였고, 주주들은 팔 마음도 없었다.
“순이익 중에 1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고, 보유하신 주식 비율에 따라 주주님들이 등록하신 계좌로 오늘 중에 입금될 것입니다.”
순이익 5억이 넘는다는 소리에 넋이 나가셨던 주주님들이 88년도 배당금 1억이라는 소리에 이젠 실신 직전이다.
배당하더라도 유재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장, 교감 선생님, 현미유 사장님 그리고 일가친척들은 10%씩은 보유하고 계셨다. 최소 1,000만 원이 내일 통장에 꽂힌다는 이야기였으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교장 선생님의 88년도 총수입은 800만 원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간단한 투자 하나로 원래 수입보다 더 큰 소득이 생겼으니 놀랄 수밖에.
그나마 평소 큰돈을 만졌던 현미유 공장의 박상권 사장은 평소의 기색을 유지하셨다. 물론 이는 겉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속으로는 매우 놀란 게 사실이다.
사업을 잘 아는 박상권은 유재원이 제대로 된 영업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두 달 일 하고 이 정도 실적이면, 내년부터 제대로 된 영업 활동을 시작할 때, 나올 성적표를 가늠해보면 경악이 절로 나온다.
“주의하실 점은 배당금이 크기 때문에, 배당소득세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배당소득세 10%에 교육세도 붙고, 방위세도 붙어서 총 16.75%가 나오니 잊지 마시고 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세무법인 대양이 이런 일은 전문이니 맡겨 주시면 주주님 사정에 맞는 최고의 절세 방법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영업 활동도 열심인 김재우였다.
ID 테크놀로지 주주들의 소득이 지금은 몇천만 원 수준이지만, 내년만 돼도 억 단위를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럴수록 세무사의 도움이 필수였다.
“상담은 무료이고, 실제 업무도 저렴하게 해드릴 테니, 부담 갖지 마세요!”
물론 가장 큰 고객은 ID 테크놀로지였다.
ID 테크놀로지만 꽉 잡고 있으면 중소 세무법인에서 대형 세무법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일도 아닐 거다.
“내년도에는 미국에서의 영업 활동이 제대로 시작되고, 타자 연습기를 능가할 새로운 신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니 기대를 하셔도 좋습니다!”
이번엔 유재원이 나서서 89년도 사업 계획에 관해 간단히 설명을 시작했다.
작은 룸에 모인 주주들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유재원 하나만 보고 투자했던 회사가 잘 되는 것을 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배당까지 했고, 그게 부담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으니, 매년 대박이 나는 복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일한 예외라면 현미유 공장의 박상권 사장이었다.
박상권은 발표를 들으면서도 꼼꼼히 살피고 있는 문서가 있었으니, 세무법인 대양의 확인 도장이 선명한 결산보고서였다.
주주들에게 한 부씩 나눠준 것으로 수입과 지출에 관해 정밀하게 기록된 자료였다. 한참 서류를 살피던 박상권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할 말은 다 했던 유재원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싶어, 바로 인정해줬다.
“먼저 경험 많은 경영인들도 쉽지 않은 성과를 단기간에 이룩해낸 유재원 사장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정통 중국 요리점 강희제에 딸린 조그만 방에서 하는 주주총회라지만, 박상권은 격식을 갖추었다. 유재원에 대한 대우도 국민학생이 아니라 사장 대하듯 깍듯했다. 대신에 훅 들어오는 발언이 날카롭다.
“그런데 재무제표를 보다가 보니 문제 하나가 눈에 걸립니다.”
재무제표에서 의문이라는 소리에 유재원보다 세무사 김대우가 더 긴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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