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0화 (50/1,007)

[50] 슈퍼 시너지 효과 ==============================

노 대통령의 특기는 회의였다.

군부 출신이라는 게 두드러지는 게 싫었던 모양인지, 관료 출신처럼 장관들과 시시때때로 회의를 여는 게 매우 잦았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가 기사로 날 정도였다.

그래도 그냥 모이기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나온 결과를 곧잘 국정에 반영했다고 한다.

아마 유재원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소집된 회의에서 오명 장관이 언급해주었던 모양이다.

“네! 대통령 할아버지가 보급해주신 교육용 컴퓨터로 입문했고요, 제가 컴퓨터에 관심을 보이자 부모님이 아예 대호 전자 PC를 사주셨어요.”

대호 전자가 언급되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대호 그룹 회장 김우중이 움찔거렸다.

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이 잘되었다는 증거가 눈앞에 있으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렇군. 우리 정부도 내년도 교육용 컴퓨터 보급에 집중하기로 했단다. 음, 그러면 요즘 어려운 일은 없나?”

“네! 연습기를 만들었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이 많아서 판매가 순조롭습니다. 여기 계시는 회장님들이 거느린 컴퓨터 회사에서도 수천 장씩 사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장님들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한 자리에 있던 이들이 반응했다. 혹시 유재원이 엄한 소리라도 해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염려에 절로 움찔한 것이다. 다행히 좋은 소리가 나와서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미국에도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반응도 좋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왜 국내에 판매하지 않는 거냐?”

미국의 이야기가 대통령에게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아, 그거는 한국에서 낸 것과는 조금 달라요. 게임 기능이 훨씬 강조된 제품이라서 요구 사양도 높아요. 그런데 한국은 아직 미국처럼 고사양 컴퓨터가 많이 팔리지 않았거든요. XT컴퓨터로는 실행도 못해요. 어, 그리고…….”

“그리고?”

원래 유재원이 하려던 말은 286이나 386이 많이 풀리면 그때 출시하려고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 번뜩 든 생각에 유재원은 살짝 말을 바꾸었다.

“나중에 좋은 컴퓨터가 많아져도 힘들 거 같아요. 게임 기능이 강조되어서 정부 납품이나 대기업 납품이 어려울 거 같아요. 부모님이 게임을 하는 걸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니 소매점에 팔아야 하는데, 여긴 불법복제가 심하니까 선뜻 내놓기가 어려워요.”

정부나 대기업 납품부터, 불법 복제까지 유재원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놓았다. 회장들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번들로 구매하도록 말도 좀 해주고, 불법 복제도 막아달라는 소리로 들렸다.

정치판에서 많이 구른 노 대통령도 당연히 그 뜻을 쉽게 읽었다. '이 녀석 영악하네'하는 생각이 막 들려던 차에, 유재원의 말이 이어졌다.

“다행히 미국에서 100만을 팔아 치운 덕에 한고비는 넘겼어요. 한국은 최신 기종이 보급되고, 정품 구매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 도전해보겠습니다.”

100만이라는 숫자는 확실히 충격이 있었다.

“허, 100만 장? 그게 정말이냐? 설마 덤핑으로 풀은 건 아니겠지?”

대통령이 급히 되물었다.

“덤핑이요? 그게 뭔데요?”

“출하량이나 점유율을 부풀리려고 원가 이하로 파는 거란다.”

경제용어 정도는 다 아는 유재원이지만,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덤핑에 되물어 본다.

“에이, 제가 고생고생한 해서 만든 걸 어떻게 헐값에 풀 수가 있어요. 개당 30달러에 팔리고 있고, ID 테크놀로지의 저작권으로 50%를 받아요.”

대통령은 물론 동석한 회장들까지도 깜짝 놀랐다.

이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수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다. 특히 일성 그룹의 경우 그룹 88년도 총매출액은 17조 원에 이를 정도였다.

이처럼 거대한 대기업이지만 단일 제품을 100만 개씩 팔아치우는 건 몇 가지 없었다. 특히 고부가가치 상품인 소프트웨어는 아예 1만 장짜리 품목도 한두 개뿐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매출액 대비 당기 순이익을 보면 딱 나온다. 일성은 17조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순이익은 1,300억 원 정도였다. 마진율이 1% 이하라는 의미다. 50%라는 건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경영에 빠삭하신 양반들이라서 머릿속에 벌써 수익 계산도 끝났다. 단순 계산으로 1,500만 달러 수익이고 현재 환율로 계산해 100억 원이 넘는 돈이 나온다는 것도 파악했다.

순간적으로 재원이라는 녀석이 허풍을 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도 대통령 앞에서 허풍을 칠 수는 없는 법이다.

회장들이 움찔움찔했다.

믿을 수 없으니 증거라도 내놓으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도 가만히 있는 판에 자신들이 건방지게 먼저 나설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유재원의 소프트웨어가 초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는 각 기업이 가진 정보통으로 확인한 사실이기도 했다.

단지 정확한 수량을 모르고 있었을 뿐인데, 100만 장이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유재원은 불신으로 가득한 회장들의 눈빛을 보니 주머니 안쪽에 있던 서류를 흔들어 주고 싶었다. 어제 챙겨 놓았던 일렉트로닉아츠의 공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딱히 진짜냐고 물어보지 않은 터라 꺼내 보이기도 뭐했다.

“재원 군, 내가 조언을 하자면 말이야. 어린 시절에 크게 성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해. 이번의 성공은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 하지만 이 성공으로 융통성이나 적응력 등이 고착화될 수도 있거든. 새로운 변수는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밀고 나갔다가 큰 실패를 맛봐서 좌절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든 유재원이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는 노 대통령은 이런 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니.

“예, 저도 꿈을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아이템이 실패해도 세 번째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아니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계속 정진하려고 합니다.”

“호오? 그래? 벌써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내 걱정이 기우였군.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열심히 하는가? 부자가 되려고?”

“헤헤, 부자가 되면 좋잖아요. 그래서 저도 부자가 되고, 저랑 일하는 형이랑 누나들 어르신들도 대통령 할아버지 같은 부자로 만들어 줄 거예요!”

순간 풉 하는 소리가 났다.

유재원의 맞은편에서 샴페인을 기울이고 있던 김오중이었다. 참지 못하고 뿜긴 했는데,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저런, 조심 좀 하시지.

“나 같은? 재원 군은 내가 부자로 보이나 보구나?”

노 대통령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나 큰 집에 사시면서, 거느리신 부하들도 제일 많잖아요. 우리나라 제일 부자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유재원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 아니란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은 다 국가가 내주는 거지. 대통령 본인도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란다. 진짜 부자는 여기 앉아 있는 회장님들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은 취임 초라서 아직 제대로 수금 한 번 못했는데, 부자라고 하니 억울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해줬는데, 이번엔 회장들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헤헤, 저는 저랑 일하는 분들이랑 모두 부자가 될 거예요. 그러니 일하는 분도 최대한 많이 뽑을 거고요. 그래서 세금도 많이 내려고요.”

“세금?”

“헤헤, 제가 컴퓨터와 만난 것도 세금으로 지원한 교육용 컴퓨터 덕이잖아요. 저와 같은 아이가 많이 나오려면 컴퓨터도 많이 보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세금도 많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요 맹랑한 녀석을 보았나 싶었던 노 대통령의 표정이 세금이라는 이야기에 확 풀렸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새해 예산안 짜느라 진땀을 뺐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인지라, 뭐 큰 사업만 시도 하면 죄다 반 토막이 났다. 재경부에선 돈이 없다는 소리만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도 많이 고용하고 세금도 많이 내겠다는 유재원이 어찌 예뻐 보이지 않겠는가.

“음, 최 회장. 우리 재원 군 생각이 어떻소?”

순간 불똥이 일성 그룹 최 회장에게 튀었다.

작년 경영을 승계한 최현희 회장은 아직도 상속세 신고로 말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 거대한 일성 그룹을 다 물려받고도 낸 세금은 고작 150억 원이었으니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고용과 노조 문제로 일성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유재원이 세금 이야기를 꺼냈고, 거기에 노 대통령이 최 회장을 콕 찍어 물으니 분위기가 말도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재원 군이란다.

“어, 어린 나이에 참 장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어린이입니다.”

“그렇지요? 앞으로 장래가 촉망되니 여기 계신 분들이 국가의 기둥으로 성장하게 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최 회장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예, 각하."

대답도 짧았다.

아마도 대통령 앞이라고 표정 관리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다른 표정의 회장도 있었다.

미래 그룹의 전명헌 회장에겐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양반인데, 평소 충돌이 많았던 일성의 최현희 회장이 당하는 걸 보니 즐거우신 모양이다.

유재원도 그런 전명헌 회장을 보며 웃어주었다.

일부러 세금 이야기를 꺼냈고, 그것으로 최 회장이 곤란해진 것만으로 속의 목적은 달성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세금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세금을 착실히 낼거라는 말은 진짜다.

물론 정부에 공인받은 세금 도둑 많은 이 시대에 세금을 낸다는 건 유재원에게도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도둑들이 나라 재산을 다 뜯어가는 건 아니다.

또한, 정직한 세금 계산을 통해 정권에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고, 약점이 잡힐 일도 없다. 그렇게 해야 유재원의 행보에 쓸데없는 것들이 발목을 잡는 일도 방비할 수 있다.

IT는 부가가치가 큰 산업이니 탈세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거대한 자본을 쌓을 수 있다. 게다가 유재원은 회귀라는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드벤테이지를 받지 않았던가. 핸디캡으로 정직한 세금을 부담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응?”

그런데 눈이 마주친 전명헌 회장이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성에 최초로 한 방 먹여줘서 즐거웠던 것인데, 그 눈빛을 잘못 해석한 건가? 그러고 보니 전명헌 회장은 유독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듯 했다. 아까도 자신에게 갈비찜을 양보하지 않았던가.

따로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하지만 전명헌 회장은 끝까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유재원의 활약도 거기까지였다. 더 나대면 앙팡 테리블이 아닌 망나니가 될 것 같아서 수위 조절을 한 것이다.

밤 9시쯤 만찬이 끝나 청와대에서 나올 때, 유재원은 들어갈 때와 반대의 모습이었다.

빈손으로 청와대에 갔던 유재원에게 노 대통령은 다기 세트와 시계 등등의 기념품을 한 꾸러미 안겨 준 것이다.

생각보다 소득이 많은 행사였다.

비싼 밥도 얻어먹고, 빈말이긴 해도 10대 재벌들에게 협조 약속도 받았다.

여기에 일성의 회장님에게도 한 방 찔러주기도 했다.

전생에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일침 한 방으론 부족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네요.

이번 주도 잘 지내 봅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