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슈퍼 시너지 효과 ==============================
#37
서울에 무사히 올라온 유재원 일행은 먼저 서울지사로 갔다.
청와대 행사는 오후 6시까지 가면 되는 일이라서, 그 전에 공적인 일을 보기로 했다. 그래도 크게 바쁠 건 없었다.
웬만한 일은 최강욱이 다 깔끔하게 처리해놔서 유재원이 결정해야 할 일은 없었다. 대신 최강욱이 일을 얼마나 잘했나 살펴봐야 하는 건 많았다.
“자, 봐라.”
최강욱이 가장 먼저 자랑스레 보여준 건 서류봉투였다.
“이거, 설마! 그건가요?”
유재원의 물음에 최강욱은 빙그레 미소만 지으면서 손짓으로 얼른 뜯어 보라고 했다. 가위로 조심스럽게 봉투 끝만 자른 유재원은 바로 내용물을 뽑아 보았다.
-특허 등록증.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문서였다.
형식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문서에 공통으로 표시된 건 특허 등록증이라는 문구와 리본 인터페이스라는 명칭이었다.
“우와! 드디어 나왔군요!”
유재원의 히든카드인 리본 인터페이스의 미국과 유럽 드디어 특허가 나왔다!
앞으로 20년 동안은 스타트 버튼이나 작업 표시줄, 등은 ID 테크놀로지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아쉬운 건 유럽이다.
유럽연합 출범은 1993년에 출범한다는 거다. 아직은 EC 체제로 결합력이 약했고, 특허도 국가마다 따로 받아야 했다. EU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단일 특허법 체제는 아니었지만, 2020년쯤에는 단일 체제로 이루어진다.
무척이나 까다롭긴 해도, 특허 등록증만 받으면 유럽 전역에서 통용되는데, 지금은 유럽의 국가 모두 따로 받아야 했다. 그래도 유럽의 맹주인 독일과 프랑스에서 특허 등록증이 나왔으니, 다른 나라들은 한결 수월하게 나올 거다.
“액자에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놔야겠어요!”
지금은 이 특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유재원을 대신해 작업을 대신했던 최강욱도 마찬가지다. 잔뜩 흥분한 유재원을 보고도 자기 아이디어가 진짜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특허로 등록되니 마냥 좋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유재원과 함께 일하면서 키보드 워리어의 대성공을 본 최강욱도 아직 이런 인식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리본 인터페이스의 위력을 보려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유재원은 이미 리본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들어간 상태였다. 출시도 내년 여름으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청와대 행사는 7시 시작이었지만, 유재원은 6시 전에 그랜저를 타고 청와대로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는 건 아니고, 이것저것 지켜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등 교육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지사에서 출발할 때, 제일 긴장한 사람은 ID 테크놀로지의 하나뿐인 의전 담당이자 1호 차 운전기사인 김대석이었다.
유재원이나 같이 온 최강욱 팀장은 전혀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김대석은 종로에 들어설 때부터 벌벌 떨었다.
물론 유재원과 최강욱이 특이한 것이었고, 이 시대의 보통 사람이라면 김대석처럼 다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준비는 철저했다.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점심 먹고 난 다음, 중고차 그랜저의 떼를 빼고 광도 열심히 낸 덕에, 청와대 정문을 통과할 때도 꿀리는 게 전혀 없었다. 물론 연식이 그리 오래된 차도 아니어서 먼지만 닦아도 번쩍거릴 테지만, 김대식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물로 세차 후에 왁스 칠까지 했다.
물을 뿌리면 얼어버릴 추운 날씨에 무슨 사서 고생이냐고 유재원이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미유 회사에서 근무했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근무 여건에 100% 만족하는 김대석이었다.
최강욱이나 로버트 하일의 보조가 되면서 만나는 사람부터 달라졌다. 대기업 고위직부터, 변호사, 법무사도 있었다. 그러다 장관님까지 만나더니, 이제는 대통령이다.
하는 일은 정말 좋은데, 일도 정말 쉽고 편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건 그저 그랜저 한 대가 전부다.
출고된 지 겨우 몇 개월 된 그랜저 자동차는 잔고장 하나 나지 않았다. 게다가 모시는 분들이 일을 보러 가면 몇 시간 동안은 자유시간이다. 게다가 밥값이라고 하루에 5천 원씩 나오는 데, 이 돈이면 설렁탕과 같은 고급 음식을 사 먹고도 몇천 원이 남는다.
예전엔 남는 시간을 보낸다고 근처 오락실을 찾아서 스틱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오락에 빠져 최강욱 변호사를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 한 번 있었던 다음부터는 책을 들고 다닌다.
소설책을 좀 봤다가 지금은 오래전에 놔버린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있다. 대학 생각은 없지만, 검정고시라도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 놓고 싶었다.
하여튼 김대석은 회사를 위해서라면 한겨울 물 세차는 물론 왁스질까지 할 수 있는 기세였다. 종로에 들어설 때까지 긴장했던 김대석이었지만, 멀리 청와대 입구가 보이자, 딱 부러지는 모습이 나왔다.
그랜저는 부드럽게 청와대 입구에 도착했고, 신원 조회를 시작했다. 군대의 어설픈 위병소와는 다르게 탑승자의 얼굴은 물론, 자동차의 밑바닥까지 탐지하는 검문을 마치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뤄진 만찬 행사는 유재원에겐 지루하고 시시했다.
만찬은 단상에 오른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특유의 말투로 자신의 치적을 열심히 설명하는 데서 시작했다.
88올림픽의 성과, 경제 성장률, 외화 보유율 등등. 그러면서 이 자리에 있는 경제인들의 덕이라고 공치사도 한 번 해주었다. 정부도 내년에 경제 성장을 위해 뒷받침을 할 테니, 기업인들도 올해보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올림픽이야 국내 개최의 이점에, 선수들의 투혼이 있었으니 인정해줄 만해도, 나머지 경제 성과는 갸우뚱하다.
88년 한국의 경제 성적표는 세계 호황기의 끝물 덕에 만들어진 숫자였다.
미국은 이미 긴축 상태로 들어가 IT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힘을 축적 중이었지만, 한국은 올림픽 성공 개최로 인한 자신감과 경제적 성장에 고무되어 커다란 거품을 생성 중이었다.
이때 생겨난 거품이 부풀어 올라서 급기야 97년 IMF가 터져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 유재원은 그걸 바꿀 힘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이번엔 전경련 회장이자 LK그룹 회장 구장경의 차례였다.
박수를 받으며 단상으로 올라가 대통령의 치적을 칭송하고, 최선을 다해 조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요지의 만찬사를 낭독했다.
멸사봉공은 물론 견마지로 따위의 굴욕적인 단어가 직접 언급되진 않았다. 대신 풀어 말하는 만찬사 안에는 그러한 뜻이 확실히 담겨 있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나 구 회장이나 경청하는 사람에게 자동으로 하품이 나오는 스킬이 있는 모양이다.
너무 말주변도 없고 지루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다행히 구 회장의 만찬사는 대통령처럼 몇 분이나 되는 건 아니었다.
다시 대통령 차례가 되었다.
“모두 잔을 들어 건배합시다.”
대통령이 황금빛 샴페인이 담긴 잔을 들었고, 만찬장 안에 있던 이들이 다 잔을 들었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사는 간단했다.
다들 잔을 들어 한 모금씩 했고 유재원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샴페인 잘 마실 수 있는데.’
다만 미성년자인 유재원만 샴페인 대신 사이다였다.
돔 페리뇽 플렌티튜드와 같은 최고급 샴페인은 아니어도, 향과 빛깔을 보니 충분히 고급 샴페인인 건 틀림 없는데, 바라만 봐야 하니 심통이 나는 유재원이다. 게다가 만찬장에 깔린 음식과 술은 죄다 세금으로 만든 거 아니겠는가.
앞으로 유재원이 국가에 낼 세금을 생각한다면, 여기에 있는 음식을 혼자 다 먹어도 본전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건배까지 마친 대통령은 본격적인 만찬을 시작하기 위해 단상에서 내려왔고, 곧 유재원 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유재원과 따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대통령의 자리가 바로 유재원의 오른쪽이었던 탓이다. 즉, 유재원이 앉은 테이블은 대한민국 재계 순위 10위까지 회장들이 자리한 주빈석(메인테이블)이라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같이 왔던 최강욱은 저 멀리 있는 테이블에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다.
와구와구!
유재원은 한우 갈비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했다. 전과도 훌륭했다. 벌써 갈빗대 3개가 유재원의 앞 접시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깨작깨작 먹는 회장들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노 대통령도 잘 먹는 유재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어른들의 눈에는 꼬맹이가 야무지게 먹는구나 하는 모습이지만, 유재원은 본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앞으로 낼 세금만큼 먹고 가진 못하겠지만, 최소 본전은 땅기고 가자는 마음에 갈비, 철갑상어 알, 송로버섯같이 비싼 재료 위주로 공략하는 중이었다.
안타까운 건 음식들이 종류는 많은데 푸짐함과는 멀었다는 것이다. 갈비찜도 겨우 4토막이 전부였다.
"이것도 먹으려무나."
그 모습에 걸신들린 모습이었나 보다. 유재원 왼편에 있던 이가 자신의 몫이었던 갈비찜을 양보했다. 누군가 봤더니 미래그룹 전명헌 회장이었다.
사양하지 않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서 바로 헤치우기 시작하는 유재원이다.
십여분 쯤 지났을까.
“재원 군, 어린 나이에 벤처기업을 시작했다지? 오명 장관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듣고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장한 생각을 다 했나?”
유재원의 숟가락 속도가 늦어질 무렵.
다른 회장님들과 이야기를 집중하던 대통령이 유재원에게 관심을 돌렸다. 덕분에 다른 회장님들 모두 유재원에게 집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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