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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48화 (48/1,007)

[48] 슈퍼 시너지 효과 ==============================

#36-2

객관적으로 이유를 따져 보자면 둘 다가 맞다.

유재원의 눈높이에 찰 만큼 높은 실력의 프로그래머는 아직 없었고, 문제는 웬만한 경력을 가진 프로그래머라도 쉽게 풀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낸 문제는 단순한 코딩이 아니라 고도의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한 아키텍처 제작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해상도 320*200에 256가지 색을 사용해 만든 키보드 워리어 이미지 파일을 무손실 압축해서 용량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C언어로 구현하는 것이 문제였다.

압축 속도가 빠르고, 용량을 줄이면 줄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두 번째 문제는 1부터 최대 12자리까지 있는 다양한 크기의 난수 1,000개를 내림차순, 혹은 오름차순으로 정렬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속도와 정확성, 그리고 알고리즘이 얼마나 간결하게 구현되어 있는지 볼 수 있는 문제였다.

마지막 문제는 그나마 좀 인간적이다.

인터넷에 대한 지원자의 생각과 ID 테크놀로지와 인터넷이 결합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설명해보라고 했다.

“이게 어렵나?”

알고리즘 공부는 등한시했던 프로그래머라면 어렵겠지. 그래도 유재원이 생각하기에 기본기 이상을 뗀 프로그래머는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유재원의 기대치 역시 21세기에도 널리 사용하는 zlib나 LZMA같은 수준의 알고리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3번 문제 역시 간단한 것이었다.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시대였으니, 유재원의 기대치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1, 2번 문제와 마찬가지로 스팀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 판매 모델이나 구글 같은 강력한 검색엔진을 만들자는 식의 시대를 초월한 아이디어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구인 글을 올렸을 때는 수시로 쏟아지던 메일이 문제가 제시된 다음 뚝 떨어졌다.

어쩌다 가끔 날라오는 응모 메일도 열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문제의 난이도를 낮출 수는 없었다.

1번, 2번 문제의 경우 89년도 핵심 아이템인 오피스 프로그램 제작에 꼭 필요한 알고리즘인 탓이다.

기업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를 내고, 원하는 값을 추출하고, 정렬하는 작업은 오피스 업무의 기본이었다. 그림 파일의 무손실 압축이라고 단정을 해놨지만, 텍스트 파일이나 일반 바이너리 파일도 압축 알고리즘을 통해 저장할 수 있었다.

3번 인터넷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ID 테크놀로지의 본진으로 삼을 핵심기술이었으니, 아무리 88년이라는 옛 시대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덤으로 첨단 기술에 익숙한 지, 자기 생각을 글로 잘 전달할 수 있는 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흠, 아예 인재를 직접 스카우트할까?”

아래하 한글의 제작자인 이찬진 씨에게 함께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자고 제안을 한다면 분명 반응이 올 거다. 마찬가지로 전생에서 유명한 컴퓨터 업계의 거물들에게 따로 제안한다면 분명 긍정적인 반응이 올 거라 확신한다.

이런 네임드 개발자를 모조리 ID 테크놀로지로 끌어들이면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은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데.”

그들이 척박한 대한민국의 컴퓨터 업계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했던 도전은 역사가 되었다. 성공과 실패가 반복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환경이 대한민국 IT의 인프라를 만들었다.

물론 이들이 얻은 큰 성과만큼 이들이 만든 부작용도 상당했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볼 여유조차 없는 시대다. 이들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면 대한민국의 컴퓨터 업계는 오히려 더 척박해지는 거다.

“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유재원은 자신이 드리운 낚싯대에 스스로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그냥 두기로 했다. 겨울방학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며칠 후.

유재원은 조금 바빠졌다. 꼭 참석해야 하는 커다란 행사 두 개가 연달아 찾아오고, 새해가 되면 미국으로 날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행사란 청와대의 초청, ID 테크놀로지의 주주 총회였다. 청와대의 초청이 내일 27일이고, 주주 총회는 3일 후인 29일이다.

유재원의 입장에서 두 행사 모두 딱히 준비할 건 없었다.

청와대의 수출 기업인의 밤 행사는 대통령이 수출 많이 한 기업인을 초청해 한 해 동안 수고했다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대기업 총수였다면, 이 기회를 사용해 줄 건 주고, 최대한 좋은 것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유재원은 그런 것에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었다. 정부의 컴퓨터 보급 사업이 성공했다는 마스코트 역할을 해주고, 점잖은 사진에서 흥미를 이끌어주는 것으로 밥값은 다 했다고 본다.

만약 번거로운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대통령이나 그 자리에 참석하는 재벌 양반들이 자신의 미국 비즈니스 상황에 대해 궁금해할 때뿐일 거다.

“음, 그러면 지금 미국 상황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겠네.”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물어보면 대답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이 들면 바로 움직이는 유재원은 바로 서울의 최강욱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미국에서 온 자료가 있으면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만약 자료가 없다면, 한 장짜리라도 좋으니 판매 현황에 대한 간단한 것이라도 요청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역시나 유재원도 사람인지라 미국 상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말 행사를 치르는 회사가 얼마나 바쁜지는 충분히 알고 있어서 일렉트로닉아츠에 별다른 자료 요구는 하지 않고 있었다.

“많이 팔렸으려나?”

자료를 기다리는 유재원은 긴장감을 살짝 느꼈다. 그러다 팩스가 윙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을 시작하자 긴장감은 한층 더 커졌다. 유재원은 종이가 조금씩 나오면서 글자가 보이자 일부러 고개를 돌려버렸다.

쪼는 맛 보다는 한 번에 딱 보는 성격이었던 탓이다. 일부러 안 보고 있다가 끝났다는 알람소리가 나기 무섭게 문서를 훑었다.

“응?”

문서는 서울 지사에서 따로 만든 건 아니었고, 오늘 일렉트로닉아츠에서 날아온 따끈한 공문이었다.

“50만 장?”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숫자였다.

50만 장. 그리고 또, 50만이라는 숫자가 연달아 적혀 있다.

유재원은 12월 초에 호킨스 사장으로부터 초판으로 50만 장을 찍을 거라는 정보를 먼저 들었다. 그래서 숫자를 중복으로 잘못 적은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아니었다.

초판 50만 장이 다 나가고, 2차분 50만 장을 또 찍어낼 거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시장에서 돌아가는 걸 보니 2차분 50만 장도 늦어도 2월이 되기 전에 다 나갈 것 같다는 거다. 2차분까지 소진되면 남은 구매 여력을 보고 3차분 물량을 확정하겠다는 내용의 팩스였다.

합쳐서 100만 장+α였다.

패키지가 100만 장이 팔렸다.

한 개에 29.99달러, 그냥 30달러라고 치면 3천만 달러의 매출이고, 이지스 쉴드를 통해 향상된 분배 비율에 따라 이중 반인 1,500만 달러가 ID 소프트웨어의 몫으로 떨어진다.

"그럼 얼마라는 거지?"

현재 환율인 698원으로 계산하면 104억7천만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튀어나온다. 물론 이 놀라운 숫자는 당장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산일인 내년 3월 말일이나 되어야 통장에 들어 온다.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깐깐한 유재원이지만, 스스로 평가해 봐도 미국에서 날아온 성적표는 A+를 주고도 남았다.

이쯤 되면 내일 청와대에 가서도 나이 말고도 자랑할 말이 생기는 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일 청와대 행사를 대하는 유재원의 태도도 달라졌다.

사실 유재원은 이번 청와대 초청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초청된 게 아니라, 사업하는 국민학생이라는 어드벤테이지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 받은 성적이라면 수출 기업인의 밤 초청에 있어 유재원에게 충분히 리스트에 오를 만했다.

이제 겨우 초보적인 한글화 정도나 진행하고 있는 정보통신분야에서 3천만 달러 매출을 올린 건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유재원은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렉트로닉아츠에 보낼 공문을 작성했다. 판매 상황에 대한 간단한 통계 자료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청와대 행사 준비의 일환이다. 가지고 있으면 쓸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서 작성이 끝나자 곧바로 도트 프린터로 출력했고, 자신의 사인을 넣어 마무리한 후에 팩스로 발송했다. 호킨스 사장 데스크에 있는 팩스였으니, 바쁘더라도 보자마자 처리해 줄 거다.

살짝 마음에 걸렸던 것이 사라지자 내일 청와대 행사를 대하는 태도에 당당함이 배가 되었다.

“내일이 기대되네.”

신문에 나온 초대자 명단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일성의 최현희 회장. 미래의 전명헌 회장, 대호의 김오중 회장 등등.

누구나 알고 있는 기업의 이름을 앞에 붙인 이들의 직책은 죄다 회장이다. 게다가 최현희를 제외하면 모두 창업 세대이기도 했다.

참고로 최현희라는 이름은 그냥 들으면 여자 이름 같지만, 남자였다. 그것도 40대 초반의 남자로, 작년에 일성의 창업주가 죽고 회장 자리를 승계했다. 승계 작업은 한참 전에 끝난 상태였다.

일부 진보적인 언론이 상속세를 제대로 내야 한다고 언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잡음도 없었다.

하여튼, 이들은 한국 경제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응? 전설?”

팩스로 보낼 문서를 작성한다고 컴퓨터를 켠 김에, 일기 비슷한 업무 일지를 작성하던 유재원은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대목을 입력하다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에도 이거랑 똑같은 단어를 썼던 기억이 난 것이다.

레밍턴 스팅에게 이드 소프트웨어의 존 카멕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순간, 즉각 리빙 레전드를 떠올리지 않았던가.

"당연히 전설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전설은 아니지."

존 카멕은 그야말로 우러러보고 존경할 만한 바람직한 전설이지만, 내일 만날 양반들은 반대 의미의 전설이다. 심하게 말해서 배울 게 하나도 없는 고인물이랄까.

자연스럽게 대응 방법도 달라진다.

존 카멕과는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관계 설정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내일 만날 양반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켜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지금이야 저들과 작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긴 했다.

한글판 키보드 워리어를 재벌들이 가진 컴퓨터 회사에서 몇 천 장씩 구매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서로 이익만 보고 하면 된다.

일부러 내키지도 않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긴 싫었다.

더구나 당장 내년은 몰라도, 90년대 중반부터는 시시때때로 저 양반들과 크게 충돌할 일이 많다.

그건 무척이나 격렬한 충돌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ID 테크놀로지의 이름만 들어도 저들이 경기가 일도록 끝장을 내버릴 작정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어쩌다 사업에 성공한 컴퓨터 잘하는 꼬맹이 너드(Nerd)라는 이미지보다는, 당돌하게 할 말 다하는 앙팡 테리블로 첫 인상을 남겨 놓고 싶다.

때마침 빛나는 실적도 터져 나왔으니 꿀릴 게 없다!

겨울의 밤은 길지만, 생각할 게 많은 유재원에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결전의 날이 밝아왔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유재원은 집을 나섰다.

혼자 올라가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내오마을까지 내려온 그랜저에는 최강욱 변호사가 있었고, 마을부터 동행하는 경호원도 한 명 있다. 경호는 한 명으로 부족할 것 같아서 서울에서 두 명이 더 합류할 것이다.

유재원 일행의 그랜저는 서울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신나는 주말이네요!!

푹 쉬기에 앞서 이번 주 연재글을 돌아 보니, 딱 하루를 빼고 연참을 다 했네요?!

엄청난 일입니다. 리플과 추천으로 대표되는 독자 님의 성원 덕에 가능했습니다.

더욱 큰 성원을 보내주신다면,

다음 주는 다섯 번의 연재 모두~~~ 연참을 노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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