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7화 (47/1,007)

[47] 슈퍼 시너지 효과 ==============================

#36-1

캐슬 브라보.

미국이 처음 만든 수소폭탄이고, 파괴력은 무려 16메가톤이다.

재미있는 건 캐슬 브라보를 설계한 연구진은 대충 5메가톤 정도의 파괴력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터트려 보니 3배가 넘는 16메가 톤이 나왔다.

연구진들은 예상 밖 위력에 까무러쳤다.

키보드 워리어도 그랬다.

북미 소매상들은 23일 아침 9시를 기해 키보드 워리어의 판매를 일제히 시작했다.

키보드 워리어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23일 발매되는 키보드 워리어를 사겠다고 아침 일찍, 일부에서는 새벽에, 심지어 날이 좀 따듯한 지역에서는 전날에 나와 줄을 선 소비자들 덕이었다.

출시 첫날인 23일에만 14만 장이 팔렸다.

PC게임 업계에서는 기록적인 숫자였다.

구매력이 심상치 않다는 건 소매상이 먼저 감지했다. 소매상들은 앞다퉈 일렉트로닉아츠에 추가 주문을 넣었는데, 숫자를 다 더해 보니 50만 장을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주문했음에도 물건을 받을 수 없는 소매상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단지 어느 한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라, 북미 전역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과한 것 같지만, 전쟁 말고는 이 현상을 설명할 단어가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하나의 대박 아이템이 나온다.

대박 아이템의 선호도는 다른 나머지 아이템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잠에서 깬 아이가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있는 선물이었고, 포장을 풀었을 때 기뻐서 뛰는 아이를 보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다.

그렇기에 부모님들은 그 물건을 꼭 얻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다. 오죽하면 이런 내용을 다룬 영화가 있을 정도다.

88년 크리스마스의 대박 아이템은 키보드 워리어였다.

일렉트로닉아츠의 광고 폭격뿐만이 아니라, PC 통신상에서 대학생이나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매일 입에 올랐다. 키보드 워리어를 리뷰했던 게임 잡지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마케팅이 있었다는 건 호킨스 사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한참 전에 풀린 프리뷰 버전이었다.

현재 컴퓨서브에 올라간 프리뷰 버전의 다운로드 숫자는 10만을 넘어섰다. 컴퓨서브의 자료실 역사상 10만을 돌파한 건 키보드 워리어가 최초였다.

10만은 조회수를 표시하는 칸을 넘어가는 숫자라서 한 번에 다 보이지 않을 정도다.

프리뷰 버전은 컴퓨서브에만 올라가 있던 게 아니었다. 대학교 인터넷 게시판이나 다른 군소 PC 통신 자료실에도 쫙 깔린 상태에서 10만을 돌파한 것이다.

직접 플레이를 해본 유저들은 그저 23일만 손꼽아 기다렸고, 그것이 하나의 붐이 되어 북미 크리스마스 시즌을 강타한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부랴부랴 추가 물량을 준비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즉각 물건이 떡하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들 연휴를 즐기고 있었으니 디스켓을 주문해도 배달해줄 사람도 없었고, 패키지를 조립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준비된 50만 장은 26일에 완전히 다 팔려버렸다. 더 팔고 싶어도 2차 물량이 풀릴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만약 호킨스 사장이 50만 장이 아닌, 100만 장을 찍어냈더라면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장을 팔아치운 최초의 게임으로 키보드 워리어가 되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노난 사람들은 불법복제 업자들이었다.

정품을 구매할 수도 없으니, 소장하고 싶은 사람 말고 당장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불법 복제품을 사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한 키보드 워리어는 예외였다.

아무리 복사를 해봐도, 아무리 크랙을 만들고자 해도 도무지 성공할 수가 없었다.

디스켓 복사는 잘 되었는데, 막상 실행을 해보면 정품 디스켓을 넣으라는 메시지만 나온다. 크랙 제작도 마찬가지였다. 난다 긴다 하는 해커들이 다 달아 붙었지만, 실패했다. 해커 업계의 최고 인재인 제임스도 나가떨어진 마당인데,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초기 예측이 좀 아쉽지만, 물량이 적다고 키보드 워리어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물량이 부족해서 인기가 더 폭발하게 된 측면도 있었다.

100만 장 판매 기록은 그저 가까운 뒷날로 밀려난, 기필고 발생할 이벤트가 되었다.

중요한 건 100만 장에 만족하지 않는 거다.

지금의 기세를 쭉 이어나가 키보드 워리어의 최종 판매 숫자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이런 일에 있어 일렉트로닉아츠는 프로였다.

유재원에게 12월은 한가로운 휴식의 시간이었다.

12월 초부터 일렉트로닉아츠로부터 1만 달러의 보너스, 이지스 쉴드의 전격적인 채용을 약속받았다.

시작부터 좋았다.

돈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 게다가 이지스 쉴드는 일렉트로닉아츠가 당장 다음 타이틀부터 적용해서 내놓기로 했다. 이지스 쉴드를 사용하는 대가는 사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리테일 가격의 10%.

몇천 원 수준이기는 해도, 매출이 늘면 로열티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큰돈이 돼 줄 것이다. 게다가 시장에서 이지스 쉴드의 능력을 확인하면, 따로 영업하지 않아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바이어들이 나타날 것이다.

유재원은 그저 방학 전까지 학교에서 실컷 놀았고, 일하고 싶을 땐 컴퓨터 앞에 앉아 내년도 아이템의 핵심 코드를 짜는 등의 소일거리를 했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40일이 넘는 긴 방학이었고, 자율학습을 하라고 억지로 학교로 나오라는 것도 없는 진짜 방학이었다.

다만 한 가지 방해물이 있다면, 방학 숙제였다.

여름방학보다 긴 겨울방학이었고, 그만큼 숙제의 양도 많았다. 벼락치기로 한다고 해도 며칠은 걸릴 정도의 양이다.

다행히 유재원은 특권을 받았다. 아니, 유재원만 받은 건 아니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표창 등을 받으면 숙제는 면제라고 명시되어 있긴 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유재원뿐이었다.

방학숙제 걱정 없이 긴 겨울 방학이 보장되었다. 외부 간섭이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 비자를 신청했고, 비행기 표도 예약했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젊은 레밍턴 스팅도 만나고, 미국 법인 설립도 정식으로 할 참이다. 이드 소프트웨어에 방문하는 일정도 잡았다. 살아있는 전설을 만난다는 설렘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일렉트로닉아츠에 들러서 호킨스 사장도 직접 만나고, 소매점에서 키보드 워리어가 직접 팔리고 있는 모습도 보고 싶다.

물론 공적인 일 말고도, 비밀스러운 몇 가지 일도 할 참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주식이나 선물에 투자하는 투자 전문 회사를 만드는 일이다.

ID 테크놀로지의 자회사가 아닌 유재원 본인의 돈으로만 만들 회사였다. 경영자는 똑같은 사람이니 ID라는 범주 안에 들겠지만, 정확히 보면 완전 별개의 회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의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게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제품 개발과 회사의 운영에 집중하는 유재원은 인재에 대한 목마름도 심해졌다.

“어떻게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지?”

케텔에 구인 글을 올린 지 거의 3주 가까이 지났다.

사용자가 얼마 없는 케텔이었음에도 글의 조회 수는 이미 수천에 달할 만큼 인기 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놀로지는 벤처기업임에도 전국구 인지도를 가진 회사였다.

유명세의 시작은 12살짜리 국민학생이 사장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건 초창기에 붙은 인지도의 이유였고, 지금은 미국의 일렉트로닉아츠와의 계약이라는 엄청난 실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게다가 구인 글에 올린 프로그래머에 대한 대우는 파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 노무직의 경우 한 달 평균 월급은 각종 상여금을 다 포함해도 40~50만 원 선이었다. 대기업의 경우 60~70만 원이다. 그런데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의 프로그래머 한 달 월급은 100만 원이라고 떡하니 박혀 있었다. 심지어 상여금과 명절 떡값, 인센티브는 별도였다.

프로그래머의 특성은 젊다는 것이었다.

20대 젊은이들이 이렇게 큰돈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정말 극소수였다.

그렇다고 이목을 끌기 위해 허풍을 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회사에는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는 고급 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실적은 두말할 것도 없으니 프로그래머 몇 명에게 100만 원씩 준다고 회사가 문 닫을 일도 없다.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유재원의 아이디로 이력서를 담은 메일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유재원은 이력서만 보고 사람을 뽑지 않았다.

최종 면접이야 당연히 보는 것이고, 중간 단계로 프로그래밍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있었다.

원래는 이력서 중에 최소한의 기준을 넘긴 사람에 한해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력서가 너무도 많이 와서 다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아예 공개 글로 문제를 제시하고, 답은 이메일로 받기로 했다.

만약 정답이 알려지면 문제를 바꾸기로 했고, 다른 사람의 머릴 빌려 풀 수도 있으니, 최종 면접에서 돌발 질문을 던져 진짜를 가려낼 계획이었다.

그렇게 올린 문제는 딱 3가지였다.

“어째서 한 문제도 못 푸는 거야?”

그런데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 문제의 답도 올라오지 않았다.

88년도 프로그래머에 대한 역량 평가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아니면 문제가 어려웠던 것일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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