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5화 (45/1,007)

[45] 슈퍼 시너지 효과 ==============================

#34-2

컴퓨터 붐이 일어났다.

학부모들 사이에 컴퓨터를 잘 배우면 유재원처럼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컴퓨터를 사기도 했고, 컴퓨터 학원에도 보내기도 했다. 장관상으로 처음 신문에 나왔을 때는 미풍이었다면, 일렉트로닉아츠 이야기가 나온 지금은 태풍처럼 몰아치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재원에게도 좋은 이야기였다.

학원에서 타자 연습기를 대기업처럼 대량 구매를 하는 건 아니지만, 정품을 사가는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컴퓨터 붐은 유재원이 불러일으킨 것이라, 유재원이란 이름을 써먹으려고 키보드 워리어를 구매하는 것이다.

다만 주문 숫자는 많지 않다.

어제까지 보고 받은 게 누적으로 600 카피 정도였다. 그래도 단가는 제일 비싼 1카피당 5만 원이다. 학원용 판매로 3천만 원이나 벌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복제품을 깔아놓고 장사하는 곳은 훨씬 많았다. 그들에겐 언젠간 기필코 철퇴를 내려줄 작정이다.

하여튼 유재원의 얼굴은 알려진 상태였으니, 뉴스를 잘 챙겨보는 황재홍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이라고 합니다!”

“어? 어! 반갑구나. 나는 황재홍이다.”

유재원의 인사를 반사적으로 받아주는 황재홍이다. 인사를 하면서 유재원은 황재홍의 얼굴과 옷차림을 빤히 살펴보며 견적을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황재홍도 유재원을 보면서 과연 뉴스에서 나온 말들이 사실인지 가늠해보는 중이다.

유재원은 외지인의 이름이 황재홍이라는 건 오늘 처음 듣는다.

전생에 회귀를 준비하면서 큰아버지께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는데, 워낙 마음이 쓰린 거래였던지라, 큰아버지는 언급하는 걸 꺼리셨던 탓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황재홍에 대해 호감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황재홍이 오면 파리 쫓듯 쫓아버리고, 선산에 대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길 작정이었다.

그런 마음이 ID 테크놀로지를 경영하면서 마음이 약간 바뀌었다.

전생에는 집안에 큰 피해를 준 양반이지만, 한 번 일을 시켜서 능력이나 성격을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증권 주식은 딱 내년 늦봄까지만 가지고 있을 거다. 이후로 한국에서 주식투자는 당분간 하지 않고, 땅에 집중할 예정인데 이 일을 맡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최강욱 변호사 같은 인재를 겨우 부동산투기에 사용하는 건, 너무도 심한 재능 낭비였다.

그렇다고 시내 부동산 업자와 함께 일하는 것도 문제였다.

정부가 신도시로 지정할 곳이나 도로가 날 곳을 귀신같이 예측해 큰돈을 벌어들이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의 가벼운 입을 통해 사방팔방으로 다 소문이 날 거다.

게다가 큰집이나 외가의 친척 중에 이런 일을 맡길 사람은 아직 없어 보였다.

부동산 투자라는 게 투자금과 매물을 보는 안목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긴 해도, 경험이 쌓일 때까지는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제 발로 찾아올 황재홍이 유재원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테스트만 통과한다면 그야말로 부동산 거래에 대한 적임자가 아니겠는가.

“우리 선산 보러 오신 거 맞죠? 그리고 우리 선산하고, 마을 북쪽에 있는 작은 산하고 바꾸자고 하실 거고요?”

꼬맹이의 말에 헉 소리가 절로 나는 황재홍이었다.

마치 자기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너무도 정확하게 거래 조건을 말했다.

“혹시 우리 마을 북쪽 산을 이미 사 놓으셨나요?”

“아, 아직 아니다.”

황재홍은 순순히 말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영업 비밀이라고 입을 닫고 있는 게 구차하게 느껴져서 다 말해버렸다.

내오마을 북쪽의 작은 산은 도로와 연결되지도 않았고, 나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먼저 만나본 산 주인은 구매 의사만 확실하다면 팔겠다고 확답을 했다. 그러니 유봉철이 선산을 내놓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자신이 사서, 그걸 유봉철에게 넘기고 선산을 받을 생각이었다.

“다행이네요. 우리는 선산을 팔 생각이 없거든요. 먼저 마을 뒷산을 사셨으면 돈만 날리는 거잖아요.”

황재홍은 유재원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오마을 북쪽 작은 산을 바로 사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거래 불발이기도 했다. 마을 뒷산을 먼저 사놨다가 만에 하나 유봉철이 산을 팔지 않겠다고 나올 경우, 기껏 모은 돈을 엉뚱한 곳에 소비하는 꼴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황재홍은 직접 유 씨 일가의 선산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왔다.

유 씨 일가가 선산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내버려둬 놓친 않을 거로 생각하고, 이번 일을 계획했다.

“산에서 송이버섯이나 영지버섯, 약초와 같은 귀한 것들이 나오고 곧 터널까지 뚫리는 데, 마을 뒷산이랑 바꾸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잖아요.”

황재홍은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힘이 쭉 빠졌다.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유재원이라는 애가 알고 있을 정도면 유 씨 일가도 다 알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터널이 뚫리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보의 질에서도 자신보다 월등한 쪽이 유재원이었다.

황재홍은 선배들과 함께 기름칠해놓은 건설교통부의 중간급 공무원들을 통해 접하는 것인데 반해, 유재원은 장관과 친했다. 비록 체신부 장관이지만, 접하는 정보의 질은 월등히 다를 거다.

황재홍은 한숨이 푹 나온다.

자신은 무려 십수 년을 구른 끝에, 겨우 독립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자투리 정보를 모아 겨우 얻어낸 대박 정보로 뭔가 좀 해보려고 나왔는데,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버렸다.

앞에 있는 꼬맹이 나이 때 자신은 뭐 하고 있었나 돌이켜보면 자괴감만 들고 마음만 괴롭다.

“그래서 황재홍 님께 부탁 하나를 하려고요.”

덧없이 떨궈진 황재홍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부탁?

“우리는 부동산 쪽에는 하나도 모르거든요. 조만간 정부에서 토지를 수용하러 올 텐데, 우리 큰아버지를 대신해서 상대해주세요.”

“내가? 대신해서 상대해 달라고?”

“네, 밀고 당기는 걸 잘 하셔서 제값을 받아 내시면 됩니다. 크게 보자면 우리와 정부의 중계를 서주는 거죠. 그러니 기본적인 복비에 우리가 받는 보상금의 10%를 성과금으로 드릴게요.”

관심이 혹 일어났다.

유 씨 일가의 선산을 얻어서, 조각내 팔아버리는 것보다는 손에 쥐는 돈은 많이 줄어들 거다. 하지만 이대로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언제 또 이런 정보를 얻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 먹을 게 있으면 먹어 두는 게 낫다.

황재홍의 눈빛이 반짝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이걸 잘 이용하면 한 몫 단단히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시골 사람이라고 야료를 부린다면 책임을 지게 할 겁니다. 제가 ID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꾸렸다는 건 알고 계시죠? 여기에서 일하시는 유능한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최종 계약은 이분들과 검증한 후에 할 거니까요.”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다시 한 번 움찔하는 황재홍이다.

유봉철 같은 시골 인심 좋은 양반은 이야기만 잘하면 쉽게 찜쪄먹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유재원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더군다나 변호사 운운하는 게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게 무서웠다. 장관과도 선이 닿아 있었고, 미국과 큰 사업까지 하는 마당에 민사를 잘 아는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으면 앞으로도 황재홍 님께 여러 가지 부동산 일을 맡길 테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어?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고? 그러면 지금 날 고용해주겠다는 거지……요?”

반말로 시작했던 황재홍이 끝에는 ‘요’ 자를 붙였다.

잘만 하면 유재원을 부르는 호칭이 꼬맹이가 아니라, 사장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 자가 따라 나왔다.

“그럼요. 아저씨가 여기까지 찾아오신 걸 보니, 행동력도 있고 능력도 있다는 거잖아요. 좋은 쪽으로 발휘하면 기획부동산 따위가 아니라 큰일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기부여까지 확실하게 해주는 유재원이다.

실망감으로 가득 찼던 황재홍도 심기일전으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이제껏 쌓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최고의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획부동산업자라는, 어디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는 이름을 버리고 번듯한 회사를 자신의 명함에 박아 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야기가 다 끝나자 유봉철은 황재홍을 대리인으로 세운다는 증서를 그 자리에서 써주었다.

“그럼, 어르신, 종종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증서를 품 안에 넣은 황재홍은 유봉철에게 큰절하고 일어났다. 한참 어린 유재원에겐 손을 들어 흔들어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냈다. 아직 유재원은 남남이었고, 대리인 계약은 유봉철과 맺은 것이었으니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것 좀 먹고 가거라."

황재홍을 보낸 다음 유재원은 곧장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자꾸만 뭘 챙겨주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덕에 그럴 수는 없었다.

큰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수정과와 곶감, 약과 같은 정겨운 간식을 먹으면서 회사나 학교 이야기를 나누었다.

30분쯤 후에 집으로 돌아온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밀 디스켓을 넣고, 암호를 푼 다음 보석글을 실행해 마스터플랜의 88년도 파일을 열었다.

문서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 열심히 움직인 덕에 더는 남은 일이 없었다.

“88년에 할 건 다 한 건가?”

그저 최근 입력한 12월 말에 있는 청와대의 초청 행사 하나 정도다. 체신부 오명 장관님이 조언을 준 대로 17만5천 달러 실적을 내긴 했으니 수출기업인의 밤에 초청될 확률이 무척 높다.

전설적인 창업 세대 기업인들을 만날 자리였으니, 긴장도 되고 기대감도 컸다.

그 행사 말고는 특별한 스케줄도 없다.

기껏 찾아보자면 매주 일요일 수경이네 집에 가서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거?

한 달 겨우 남은 이 시점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뚝딱 만들어 출시하는 것도 힘들고, 땅을 사는 것도 내년에나 시작할 수 있다. 그저 주문받은 패키지만 잘 만들어서 납품하는 것이 다다.

“그러면 내년도 사업 아이템이나 생각해볼까?”

그렇다고 가만히 놀고만 있는 건 유재원의 성격이 아니다. 당장 시작해야 할 만큼 급한 건 아님에도 내년도 과제를 벌써 꺼내들었다.

당연히 내년의 최대 과제는 올해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리는 거다. 하지만 상식에서는 키보드 워리어와 같은 초대박 아이템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한 번 크게 히트작을 낸 회사나 가수들이 최고로 고민하는 것이 인기를 이어갈 다음 아이템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원 히트 원더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 하나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준비했다.

유재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내년도 아이템 선정은 유재원의 고민을 짜낼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89년 한국 컴퓨터 업계의 화두는 바로 ‘한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덕이다.

여러 응용 프로그램의 한글화가 진행되기도 했고, 한글 조합형으로 하느냐, 완성형으로 하느냐 하는 논쟁도 일어난다. 두벌식 자판과 공병우 박사의 세벌식 자판의 경쟁도 시작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컴퓨터 업계에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걸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 한글 1.0이 출시된다는 거다.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겠지?”

쉬지 않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해지고 미안해지는 유재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놀로지의 다음 아이템이 바로 워드프로세서였던 탓이다.

“아니지. 워드뿐만이 아니지.”

심지어 ID 테크놀로지의 차기 아이템은 워드프로세서 하나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피스 프로그램 제품군이다.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와 통계, 프레젠테이션을 묶은 종합 오피스 프로그램이다.

ID 테크놀로지가 거대한 IT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단단한 반석이 되어줄 프로그램이다.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고 있는 사람에게 좀 미안하다고 해서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덩치가 큰 프로그램이라서 키보드 워리어처럼 혼자 만들기도 벅찬 소프트웨어였다.

“그럼, 구인 광고를 내야겠네?”

행동력이 빠른 유재원은 바로 움직였다.

모뎀에 전화선을 연결하고 곧장 케텔로 접속했다. 대한민국 컴퓨터 전문가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케텔이니 신문에 비싼 구인 광고를 낼 필요는 없다.

모뎀이 접속할 때 내는 끼익 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난 후에 접속이 완료되자 유재원은 바로 구인 게시판으로 가서 새 글을 작성했다.

제목은 ‘ID 테크놀로지에서 유능한 프로그램 개발자를 모집합니다’였다.

명색이 IT회사면서 프로그래머는 유재원 혼자였던 기형적인 ID 테크놀로지가 드디어 제대로 된 컴퓨터 전문 인력 수급을 시작하는 거다.

형식은 평범한 구인 글이었지만, 유재원답게 파격적인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프로그래머에 대한 대우였다.

구인글 안에는 파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다른 소프트웨어 회사는 물론 대기업을 능가할 정도의 대우가 명기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우와~!! 3연속 연참 성공이네요!!

모두 독자 님의 성원 덕입니다.

오늘 지진이 크게 났었는데, 다들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독자님도 항상 안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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