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슈퍼 시너지 효과 ==============================
#34-1
외지인은 두꺼비를 닮은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허이구야 하는 특이한 탄성을 내며 마을 주변을 둘러본 외지인이었다. 그러다 그의 눈에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한 노인이 들어왔다.
외지인은 주저하지 않고 곧장 노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인상을 쓰면 무척이나 무서울 것 같았는데, 후덕한 체구에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라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목소리도 두꺼비를 닮은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중후해서 듣기가 좋았다. 게다가 어르신을 대하는 모습도 깍듯했다.
동네 마실이나 나가볼까 하며 길로 나왔다가, 낯선 사람이라 지켜보고 있던 송 씨 할아버지였다. 외지인이 가까이 다가왔을 땐, 경계심이 강했다. 그런데 정중한 존대말을 받자 경계심이 약간은 누그러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오?”
“여기 내오마을 이장님 댁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봉철이 말이오?”
“예! 바로 그분입니다.”
정확한 이름이 나오자 반색을 하는 외지인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오?”
21세기라면 물어보지도 않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먼 친척보다 마을 사람들이 더 가깝게 지내는 시절이었기에, 이런 식의 물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예, 이장님이 가진 땅을 보러 왔습니다. 이장님께 절대 손해나지 않을 거래가 될 겁니다요.”
두꺼비를 닮은 외지인도 순순히 자신의 의도를 이야기해줬다.
송 씨 할아버지는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외지인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자동차 종류를 잘 모르는 송 씨 할아버지였음에도, 외지인의 차는 저번에 재원이가 타고 왔던 것보다 더 비싸 보였다. 정답이다. 무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대형 세단인 크라운이 외지인이 끌고 온 자동차였다. 옷 입은 것도 고급스러웠다.
소개를 해줘도 이장에게 나쁜 소리는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저기 보이는 퍼런색 양철지붕 집이오.”
외지인이 송 씨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따라 언덕 위 파란 양철집을 보았다. 자동차를 타고 갈 것도 없는 가까운 거리였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외지인은 곧장 이장 유봉철네 집으로 향했다.
파란 양철지붕 집으로 향하는 황재홍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전직 기획부동산 업자 출신이었고, 선배(?)들의 영업 활동을 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젊은 시절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을 주도한 선배들은 한탕 할 때마다 차도 바뀌고 집도 바뀌는데, 자신은 부스러기만 주워 먹어야 했다.
독립을 결심하고 난 다음부터 돈과 정보를 죽을 듯 모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4년을 라면만 먹으며 버티며 때를 기다렸고, 지난 10월 드디어 충분한 돈을 모았다. 때마침 우연히도 좋은 정보까지 얻었다. 내륙에 고속도로를 내면서 터널이 뚫린다는 이야기였다.
돈도 있고, 정보도 있다.
이때라고 싶은 황재홍은 선배들로부터 독립해서 첫 번째 사업을 위한 준비를 했다.
자동차, 옷, 교양 있는 말씨 등등. 이러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려온 것이 내오마을이었고, 황재홍의 먹잇감이 마을 이장 유봉철이 가지고 있는 산이었다.
선산이라서 그냥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면 절대 안 판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황재홍이다. 선배들은 이런 시골 어르신들을 산과 산을 바꾸는 방식으로 손에 넣는 것을 옆에서 자주 봐왔다.
황재홍의 대책도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마을과 가까운 산과, 유봉철이 가지고 있는 산을 바꿔주는 식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황재홍만의 서비스로 선산에 있는 묘지도 깔끔하게 이장해준다는 것도 생각해 두었다.
이러면 10중 8, 9는 교환에 찬성한다. 유봉철도 그럴 줄 알았다.
파란색 양철지붕 집에서 대면한 유봉철은 황재홍을 안방까지 들여보내 주었다.
반쯤은 성공한 것 같았던 황재홍은 신이 나서 열심히 영업을 시작했다. 이장 유봉철은 황재홍에게 수정과와 곶감까지 내주었고, 설명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해주었으니, 신이 나서 기세를 올렸다.
거래는 이제 끝났다 싶은 거다. 그런데 신나게 풀어냈던 설명이 다 끝났을 때 이장 유봉철의 반응이 생각 밖이었다.
“흐음, 자네가 재원이가 말했던 그 업자 양반이구먼.”
재원이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업자라니. 자신의 정체를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게 지칭하는 단어였다. 순간 좌불안석이 되는 황재홍이었다.
이리저리 조사했을 때, 유봉철이나 이들 유 씨 일가는 선산에 대한 가치를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온 한 마디로 그 계획이 한 방에 꿰뚫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푹신한 방석에 앉아 있던 황재홍의 엉덩이가 점점 들렸다.
아직 선배들처럼 배짱 장사를 할 만큼 경험이 쌓인 건 아니다. 본질을 꿰뚫리자 이 자리가 불편해졌고, 내빼고 싶었다.
비싼 돈을 주로 빌려온 자동차와 기름값이 아깝긴 했어도, 잡혀서 무슨 곤욕을 치를 줄 모르는 상황이다.
“왜 그러나? 곧 재원이가 올 텐데, 좀 더 앉아 있지 그러나.”
더 앉아 있으라니!
열심히 이빨을 까긴 했어도 아직 손해를 끼친 건 아니었으니, 유봉철이 자신을 붙잡아 놓을 권리는 없다.
“재원이가 오면 분명 자네에게도 좋은 제안을 해줄 걸세.”
응?
제안이라니?
엉덩이가 반쯤 일어났던 황재홍이 순간 멈칫했다.
선배들을 따라 수도 없이 전국을 다녔던 황재홍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업자에게 제안이라니?
“조금 있으면, 하교 시간일세. 딱 30분만 기다리게.”
말을 들어볼수록 가관이다.
하교 시간이라니?
지금 시각이 오후 2시 40분을 막 지나고 있다. 이때쯤 학교가 끝나는 건 국민학생이라는 말이 아닌가. 중고등학생들은 수업시간도 훨씬 길고 말은 자율학습인데, 강제적인 학습 시간을 갖게 해서 오후 5시, 6시까지 있어야 했다.
“그동안 우리 선산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주면 좋고. 사실 나도 재원에게 대충 들어서 잘 모르거든.”
유봉철은 넉살이 좋았다.
분위기에 민감한 황재홍은 유봉철이 자신에게 어떠한 반감도 없다는 걸 바로 포착할 수 있었다.
반쯤 일어섰던 황재홍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독립 후, 첫 건이다. 반강제로 빼앗아가는 것도 아니다. 유봉철이 가진 선산에 대한 가치를 좀 숨겼고, 바꿔줄 산의 가치를 조금 부풀리긴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업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건실한 대기업들도 하는 일이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스스로 부끄럼이 없다고 최면을 건 황재홍이 편안히 앉았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유재원은 방과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마루에 놓여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도착하면 바로 큰집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글씨를 보아하니 큰어머니가 놓고 간 모양이다.
쪽지를 보자, 곧바로 그 연유를 헤아릴 수 있었던 유재원이었다.
“오늘이 외지인이 왔던 날이구나.”
선산을 사고 싶다는 외지인에 대해서 유재원은 진작 큰집과 다른 친척들에게 이야기해놓은 상태였다.
여름 방학 전이었다면, 큰아버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유재원을 귀여워 해주시기는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을 텐데, 지금은 존재감이 완전히 다른 유재원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건 이미 그랜저 자동차로 증명이 끝났다. 여기에 미국에서 2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는 내오마을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미 국내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수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그 소식도 알려지긴 했어도, 달러 돈이라는 건 어르신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였다.
마을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 중에는 625를 겪은 분들도 많았고, 전쟁 이후 나라가 복구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직접 받으신 분도 있었다.
그분들에게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큰아버지 유봉철도 이러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미국에서 큰돈을 벌어온 유재원은 이미 나이를 초월한 존재였다.
내오마을은 물론 덕진리에서는 아무도 유재원을 꼬맹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미리 말했던 땅이나 산을 사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불러서 이야기를 듣게 해달라는 부탁은 절대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유재원은 외지인을 대면하기 위해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저번 서울에 갔을 때, 최강욱 변호사에게 양복을 사주면서 자신도 샀던 옷이었다.
어린아이용 정장은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캐주얼한 느낌이 강한 옷으로 골랐다. 다 차려입고 나면 영국의 탐정 조수처럼 보이는 옷이다.
멜빵 바지에 셔츠, 조금은 간소하게 만들어진 정장 재킷, 그리고 빵모자. 12살이라는 물리적인 나이 덕에 이렇게 입고 청와대도 출입이 가능한 차림이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유재원은 곧장 큰집으로 달려갔다.
“억! 너는!”
겉으로는 여유로움을, 속으로는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던 황재홍은 안방으로 들어온 유재원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미 힌트는 있었다.
국민학생이라는 거, 유재원이라는 이름, 그리고 덕진리.
88년 겨울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국민학생을 뽑으라면 누구나 한목소리로 유재원을 말할 것이다.
그만큼 10월부터 시작된 유명세는 눈덩이가 비탈을 굴러 내려가면서 커지는 것처럼 엄청나게 커졌다. 일렉트로닉아츠와의 계약을 뉴스로 전할 때, 자료화면이 부족해서 장관상을 받는 모습을 계속 내보냈는데, 그게 다시금 유재원의 존재감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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