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2화 (42/1,007)

[42] 슈퍼 시너지 효과 ==============================

#33-1

일렉트로닉아츠와의 계약은 성공적이었다. 보통 성공이 아니라 초대박이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계약금만 17만5천 달러였고, 행정적인 절차가 마무리되는 즉시 ID 테크놀로지의 한국 수출입은행 계좌로 입금되는 것이다. 복잡한 일도 아니었고, 불법적인 일도 아니어서 늦어도 3일 내로 입금이 완료될 거다.

서울 지사와 캘리포니아 지사의 통화는 일렉트로닉아츠와의 협상이 끝난 다음에도 쭉 이어지고 있었다.

후속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았던 탓이다. 협상이 워낙 성공적이라서 분위기는 그렇게 좋을 수도 없었다.

“일렉트로닉아츠로부터 입금되면 약속한 성과보수도 그날 즉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유재원이다.

10%를 약속했으니 1만7천5백 달러가 캘리포니아 팀의 포상금이다.

레밍턴과 엘런에게 나눠줄 비율도 유재원은 이미 결정했다. 레밍턴 1만 달러, 앨런 7,500달러다.

일렉트로닉아츠가 오늘 담판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붓게 사전 협상을 주도한 이가 레밍턴 스팅이고, 엘런은 서류 검토와 작성 등의 실무를 담당했다.

둘의 공과를 두고 유재원 혼자서 판단한 건 아니었고,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도 함께 참여해서 나누어진 숫자였다.

-아참! 보스! 비즈니스가 아직 남았다는 거 기억하고 있죠?

레밍턴 팀에서 유재원을 부르는 명칭도 보스로 확정되었다.

보스라고 하니 무슨 마피아 두목 같았지만,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 게다가 보스라고 불리는 게 딱히 나쁘지도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물론이죠. 출판사와 미팅이죠? 오늘 4시 30분?”

접촉해온 출판사는 무려 엄청난 역사를 가진 스콜라스틱이라는 곳이다. 1920년에 창업해서 21세기까지도 존재했던 출판사로, 대표적인 출판물로 비밀의 드룬, 마법의 시간 여행 그리고 해리포터가 있다.

어린이 교육용 출판서적을 주로 담당하는 곳인데, 어째서 제법 딱딱한 SF 소설인 외계인 침공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린이 위주로 편향된 비즈니스의 비중에서 어른의 비율을 좀 늘리고 싶어 그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판권을 비싼 값에 사주고 미국 전역에 책을 내주면 그것으로 유재원은 만족이다.

-물론 스콜라스틱도 있지요. 그런데 그것 말고도 추가적인 비즈니스도 하나 더 들어왔어! 어제까지 너무 바빠서 보고를 못 했습니다. 게다가 무척이나 특이한 형태라서 제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레밍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비즈니스라니?

“뭔데 그래요?”

-키보드 워리어라의 게임 엔진을 사고 싶다는 곳이 있습니다. 게임이 무슨 자동차도 아니고, 엔진 타령이란 말입니까? 자세히 설명을 해보라니까 그래픽과 사운드 처리, 스크렙? 아니 스크립트처리를 총괄하는 코어? 하여튼 뭐 이상한 말을 주저리 늘어놓더라고요.

게임 엔진?

유재원은 깜짝 놀랐다.

2D 게임이라고 엔진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엔진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잡히는 건 3D 게임이 나오고부터다.

3D 모델링은 여러모로 재활용하기에 좋았다.

A라는 게임에 사용했던 나무, 땅바닥, 건물 등등의 오브젝트를 B라는 게임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고, 폴리곤이나 텍스처 처리에 관한 알고리즘도 약간의 수정만 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운드 처리를 위한 모듈과 스토리 이벤트 제작, 게임의 규칙 따위를 정하는 스크립트까지 완비하면 그럴듯한 엔진이 나온다.

그런데 게임 엔진이라는 개념을 벌써 깨달은 사람이 있고, 심지어 구매를 타진해왔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 유재원이다.

“그 제안을 해온 곳이 어디인가요?”

유재원의 물음에 레밍턴 스팅은 잡다한 걸 다 적어놓는 수첩을 뒤적거렸고, 곧 이름을 발견했다.

-아이디 소프트웨어라는 곳입니다. 존이라는 청년이 친구들과 얼마 전 창업한 따끈한 신생업체라고 하더군요.

아이디 소프트웨어? 존?

유재원은 설마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아이디가 아니라 이드 아닌가요?”

-아, 이드?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네. 제안이 팩스로 온 거라서 발음을 들은 건 아니거든요. 철자가 id였으니 이드라고 해도 되겠네요.

“대박!”

스피커폰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박수를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만큼 흥분되는 이야기였다.

FPS의 대중화를 이끌고, 둠이라는 게임으로 90년대 초 컴퓨터 게임 업계를 초토화한 초일류 개발자 존 카멕의 회사가 이드 소프트웨어였다. 혁신을 끊이지 않고 계속해 퀘이크라는 제대로 된 3D 게임을 만들었다.

3D 게임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회사가 이드 소프트였고, 인물로 따지면 존 카멕이었다.

키보드 워리어가 일렉트로닉아츠는 물론이고 존 카멕까지 잡아 올릴 줄은 유재원은 상상도 못 했다.

“미팅 날짜는 언제인가요?”

-미정입니다. 존이라는 친구는 보스가 그 엔진이라는 걸 팔아준다는 수락만 하면 당장 올 것 같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신 거 같은 데 팩스 보내드릴까요?

“네! 얼른 보내주세요.”

팩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종이가 다 나오기까지 유재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지 게임 엔진만 넘기고 거래를 접기는 아쉬웠던 탓이다. 아예 유재원은 눈을 감고 기억의 궁전을 더듬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자세히 훑어보기 위함이다.

“음!”

저장된 기억을 보니 원래의 역사보다 2년은 빨랐다.

창립 일자가 빨라진 만큼, 준비도 빈약할 거다. 어쩌면 너무 빠른 창업으로 인해서 실패의 확률도 높아졌을 테고, 이로 인해서 이드 소프트웨어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단지 게임 엔진만 팔고 끝이 아니라, 더 끈끈한 협력관계를 통해 이드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나중에 이드 소프트웨어가 내놓는 초대형 히트작인 둠을 이용해 유재원이 그리는 커다란 계획을 더욱 튼튼히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팩스가 왔다.

워드프로세서로 친 문서를 프린터로 뽑아서 팩스로 보내긴 했는데, 형식이나 문장이 기반을 갖춘 탄탄한 회사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한 마디로 많이 어설프다.

내용도 구구절절 사연이 가득하다. 이번에 도와주면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끝내주는 아이템이 있는 데,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재원의 엔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습니다. 엔진을 팔도록 하죠. 대신 그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기술지원과 자본 지원도 하겠습니다.”

-예? 그 엔진을 파는 것도 모자라서 자본금까지 지원한다고요?

“예. 대신 이드 소프트웨어의 지분을 충분히 획득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엔진의 판매, 자본투자, 기술지원이 모두 하나의 패키지라는 겁니다. 자본투자를 거절하면 엔진 판매도 없는 거예요.”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투자금은 수만 달러라도 아낌없이 지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드 소프트웨어의 상황을 보고 정확한 금액을 결정하기로 하죠. 그리고 ID 테크놀로지가 최대 주주가 된다고 해도, 게임에 관해선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기술을 제공해주는 형식이지요.”

-흐음, 알겠습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보스가 원하는 계약서를 만들어오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레밍턴과 엘런이 확언하는 것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그제야 유재원은 작은 만족감을 맛보았다. 일렉트로닉아츠와의 계약보다 이드 소프트웨어를 얻게 되는 기쁨이 훨씬 컸다.

그러고 보니 회사의 앞글자도 같다. ID 테크놀로지, ID 소프트웨어. 묶어 놔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이다.

“두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최고의 계약을 올릴 수 있었네요.”

유재원은 멀뚱히 자신을 보고 있던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에게도 감사의 말을 올렸다.

“우리가 한 게 뭐 있긴 있었느냐? 다 네 프로그램이 좋아서 대박이 난 거지.”

두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말했다.

확실히 오늘은 유재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덕분에 둘은 하는 일도 별로 없이 비싼 월급 받아가는 것 같아 양심이 켕길 정도다.

“출출하시죠? 어디 해장국 잘하는 데 가서 뜨거운 국밥 한 그릇씩 할까요?”

“국밥! 좋지예! 얼른 가입시더!”

유재원의 말에 로버트 하일이 반색했다. 아침을 거르고 시작한 미팅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원래 맛있는 집이었지만, 협상도 대성공인지라 밥은 꿀맛이었다.

-유재원 군(12)이 설립한 벤처 회사, ID 테크놀로지가 20만 불에 달하는 수출계약 체결!

일렉트로닉아츠와의 계약은 며칠 후 신문 기시와 텔레비전을 타고 한국 전역에 소개되었다. ID 테크놀로지에서 보도자료를 뿌린 것도 아니었지만, 어디서 알고 찾아와서 기사까지 낸 것이다.

알고 봤더니 미국 일렉트로닉아츠에서 꾸민 사건이었다.

계약서를 받자마자 일렉트로닉아츠는 준비한 광고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했다.

Warrior is Coming! -1988

키보드 워리어의 상반신 슈트가 아스라이 보일 정도의 이미지에 전사가 온다는 문구는 대문짝만하게 찍었다.

날짜는 88년이라고만 적시되어 있었고,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도 선명하다. 특히 키보드 워리어 슈트는 디자인 전문용 워크스테이션으로 리터칭을 했는데,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면서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광고의 의미는 딱 하나.

키보드 워리어의 출시가 1988년 안에 이루어진다는 거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다려야 하는 날짜도 짧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였다.

이러한 광고는 전미 신문부터 컴퓨터 잡지까지 거의 빠지지 않았다.

AAA급 게임 대우가 벌써 시작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우와, 이게 무슨 일이죠?

연참이 계속 성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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