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슈퍼 시너지 효과 ==============================
#32-2
이 밖에도 일렉트로닉아츠가 가져온 옵션은 유재원이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게임이 시작할 때,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가 나오게 해주면 5천 달러! ID 테크놀로지보다 먼저 나오게 해주면 3천 달러 추가란다.
물론 유재원은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가 맨 앞에 나오는 것까지 수락이다. 어차피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면 로고 같은 건 안 보고 넘기는 게 습관이다.
반면, 로고화면 말고도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을 알릴 방법은 많다. 네트워크 게임에 접속하면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 봐야 하는 로비에 큼지막하게 넣는다던가. 게임 화면에서 광고판이 나올 때 넣는 방법도 있다.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준비한 옵션은 이러한 게임적 요소 말고도, 외적인 것도 있었다.
“유럽도 컴퓨터 게임 시장이 제법 발달한 지역입니다. 일렉트로닉아츠에서도 일찌감치 진출해서 큰 성과를 내는 지역이지요. 유럽 전체 판권도 함께 주신다면 추가로 4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정산비율은 60:40으로 같고, 라틴문자로 번역은 우리가 진행하겠습니다.”
유럽?
그쪽은 생각도 안 해본 지역이었다. 그런데 라틴문자로 번역하는 것을 일렉트로닉아츠에서 담당하면, 허락만 하는 것으로 4만 달러 추가다.
스피커폰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로 시선을 돌렸다. 뮤트 버튼을 눌러 이쪽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도록 해놓고 짧은 토의를 나눴다.
결론은 쉽게 나왔다.
“유럽 지역이란 단어 대신, 해당하는 나라를 정확히 기재하는 것으로 하고 수락하겠습니다.”
“역시 화통하시군요!”
화통하기는,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애초에 유럽은 유재원의 사정권 밖에 있는 지역이었다. 거기를 대신 공략해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일렉트로닉아츠가 제시한 옵션을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일렉트로닉아츠는 출판이나 영화화 판권까지 손을 뻗었다. 소프트웨어 유통회사가 그걸 가져다 어디에 써먹으려는지 모르겠다.
정식 출판사가 접촉하고 있는 마당에 이건 당연히 거절이다.
마지막으로 일렉트로닉아츠는 여러 가지 좋은 옵션을 제시한 만큼, 옵션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 부과되는 패널티 조항을 만들었다.
미리 받은 돈의 2배를 물어주기였다. 만약 돈이 없다면 ID 테크놀로지의 지분으로도 받겠다고 했다.
어쩐지 일렉트로닉아츠가 마구 퍼주나 싶었다.
탐욕의 DNA 소리가 괜히 나온 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래도 불쾌하진 않았다.
현재 일렉트로닉아츠의 평판은 21세기보단 좋았다. 호킨스 사장의 특기가 가능성이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하거나 지원해서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파피루스, 웨이스트랜드, 바즈 테일과 같은 시대를 초월한 게임이 일렉트로닉아츠 덕에 나오기도 했다.
이번 옵션도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높은 평가가 있었기에 제시되는 것이었지만, 유재원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ID 테크놀로지의 건정성도 호킨스 사장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결정적으로 12월 10일 전에 게임을 완성하는 건 유재원에겐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으니 패널티가 발생할 일은 없다.
“이젠 우리 차례인가요?”
더욱이 옵션 제안은 일렉트로닉아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아하니 일렉트로닉아츠에서는 우리 키보드 워리어의 판매량을 25~30만 장으로 보고 있는 것 같더군요?”
캘리포니아에서 스피커폰에 집중하고 있던 호킨스 사장은 순간 흠칫했다.
“그렇습니다만.”
들고온 옵션 중에 중요한 건 다 체결시킨 상태라서 긴장감이 풀렸던 호킨스 사장은 다시금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유재원이 자기 차례라면서 갑자기 판매 예상수량을 정확히 집으니 무슨 말을 할지 걱정도 들었다.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설정한 25~30만 장이란 수치는 여러 가지 통계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본 끝에 나온 숫자였다.
이걸 상대가 단번에 짚어냈다.
상대는 한국이란 작은 나라의 소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하는데, 그 회사의 정보력이 전미에 유통망을 가진 일렉트로닉아츠와 같은 급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면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건데, 도통 그걸 모르겠다.
자신은 모르는 걸 상대방은 알고 있다. 협상장에서 이것처럼 긴장감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는 없다.
하지만 유재원이 뭔가 특별한 정보 라인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전생에 닳고 닳은 경험으로 인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힌트는 일렉트로닉아츠가 제시한 계약금과 옵션이었다.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가지 옵션을 통해 키보드 워리어의 몸값은 16만 달러에 근접했다. 아마 일렉트로닉아츠 측에서 가지고 온 최대 배팅이 16만 달러 언저리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30달러짜리 패키지를 팔아서 유재원에게 16만 달러를 주고도, 일렉트로닉아츠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판매량을 헤아려 보면 된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키보드 워리어가 겨우 30만 장 정도 팔릴 거라는 예측은 보수적이다 못해 야박한 계산이라는 겁니다.”
유재원의 말을 듣고 있던 서울 사무실 사람들이나, 캘리포니아의 레밍턴 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30만 장이란 숫자는 대한민국 기준을 넘어 미국에서도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그게 적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란 것이다. 일렉트로닉아츠의 호킨스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의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다.
하지만 유재원이 알고 있는 숫자에서는 한참 모자란다.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수백만 대가 팔려나가는 나라였다. 슈퍼 마리오 같은 건 벌써 수백만 개가 팔렸다.
미국의 286 이상급 컴퓨터의 보급 숫자도 수백만 대는 진작 넘었다. 키보드 워리어도 슈퍼 마리오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일렉트로닉아츠의 호킨스 사장은 급히 반론을 제기하려고 했다.
게임기와 컴퓨터는 성격이 너무도 다른 물건이었다. 범용성의 컴퓨터, 오직 게임만 되는 콘솔이었고 가격 차이도 컸다. 그러니 닌텐도의 케이스를 키보드 워리어에 적용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호킨스보다 유재원의 말이 한발 빠르게 나왔다.
“30만 장은 분명 불법복제로 인한 손실을 참작한 숫자일 겁니다. 그렇지요?”
유재원의 물음에 정제된 설명을 시작할 수 있는 호킨스 사장이었다.
“그렇습니다! 카트리지를 복사하는 건 특수한 장비를 갖춘 업자들이나 가능하고, 반도체로 이뤄진 롬(ROM)의 원가가 워낙 비싸서 웬만큼 팔아봐야 수익도 안 나옵니다. 반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디스켓도 저렴하고, 복제는 너무도 쉽습니다. 키보드 워리어처럼 AAA급 게임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불법 복제판이 깔립니다. 일렉트로닉아츠는 촘촘한 유통망과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악재를 이겨내고 30만 장이나 팔 수 있다는 겁니다.”
호킨스 사장의 말대로 미국이라고 불법복제가 없는 건 아니다. 컴퓨터 환경이 잘 조성된 만큼, 불법복제가 되는 횟수도 그만큼 많았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크고 잘 살기 때문에, 정품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서 소프트웨어 산업은 매년 큰 폭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일렉트로닉아츠 말고도 액티비전이나 바이트빅스와 같은 다른 유통사를 선택하더라도 25만 장 정도의 매출은 나올 거다.
유재원은 우연히 찾아온 이번 기회를 중박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일렉트로닉아츠의 한계가 30만 개면 자신의 힘으로 더 키우면 된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불법복제를 확실히 차단할 수 있는 최신의 프로텍트 기술을 키보드 워리어에 적용해 복제 방어를 1년 넘게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복제 방지 프로그램.
원래는 90년대 초에 출시하려고 했던 비장의 병기였다. 그런데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생각보다 컸다. 괜히 계획표를 지킨다고 그때까지 아껴둘 필요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제가 만든 복제 방지 기술이 있습니다. 이걸 적용하면 최소 1년, 어쩌면 몇 년간은 뚫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진짜 확실합니까?”
“ID 테크노롤지는 기술을 두고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2월 10일에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내기하죠? 일렉트로닉아츠의 기술팀이 불법복제에 성공한다면 1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반대로 뚫리지 않는다면? 정산 비율을 50:50으로 상향해 주시고, 일렉트로닉아츠에서 발매하는 모든 게임 소프트웨어에 ID 테크놀로지의 복제 방지 기술을 적용하는 겁니다. 이것도 인연이니 염가 봉사로 각 패키지당 10%만 받겠습니다.”
작년 일렉트로닉아츠의 매출액이 1,600만 달러였다지?
양심적인 유재원은 프로텍트 서비스 가격으로 매출의 10%만 받을 생각이다. 분명 호킨스 사장은 무슨 날강도가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불법복제로 인한 매출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불법복제가 사라지면 매출액은 늘어날 것이고, 프로텍트 서비스 비용으로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이 올 거다.
탐욕스러운 호킨스 사장이 거부할 리 없는 거래다. 물론 그 전제 조건은 프로텍트 서비스의 확실한 신뢰성일 테지만, 유재원에겐 이미 검증은 끝난 기술이다.
“콜?”
유재원의 물음에 호킨스 사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좀 길어진다 싶었을 때, 호킨스 사장의 탐욕이 움직였다.
프로텍트 서비스가 기술팀에 의해 깨지면 보너스 1만 달러가 생긴다. 만약 성공한다면? 소프트웨어 기업에 이보다 좋은 건 없다. 머릿속 한 편에 그런 기술이 있나 싶은 의심이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이득이라는 것이다.
“콜!”
호킨스 가장의 짧은 한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유재원은 물론 함께 자리했던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날 일렉트로닉아츠와 맺은 계약으로 ID 테크놀로지가 받을 계약금은 옵션을 포함해 17만5천 달러였다. 이와 함께 내년 3월, 첫 번째 정산에는 얼마를 받게 될지는 가늠도 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이제껏 한국에서 대기업들을 상대로 벌었던 금액은 가뿐하게 뛰어넘을 거라는 거다.
그럼에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사업에서는 언제나 목이 마른 유재원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월요일부터 출발이 좋습니다!
정신줄 놓고 쓰다보니 아슬아슬하게 연참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