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0화 (40/1,007)
  • [40] 슈퍼 시너지 효과 ==============================

    #32-1

    협상력이란 언뜻 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작용하는 힘인 것처럼 보인다. 사업의 규모니,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이니, 협상에 나선 자의 능력 등등.

    커다란 협상을 앞둔 정부나 기업이 밤을 새우며 고심하며, 협상 전략을 구상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협상력을 계산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바로 테이블에 자리한 이들 중에 누가 가장 간절한가를 따져보면 쉽게 견적이 나온다. 돈이든, 물건이든 상대가 가진 것이 그렇게 간절한 쪽은 결국 상대에게 끌려다니기 쉽다. 그렇기에 협상 전략에서의 기본이 본인들의 간절함을 숨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대체재가 있으면 쉽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협상을 취소하고, 대체재를 찾으면 그만이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일렉트로닉아츠는 ID 테크놀로지에 한 수 접어준 상태에서 협상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사실은 이미 유재원, 최강욱, 레밍턴 스팅 등 핵심 관계자에게 다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키보드 워리어는 미국 대선의 투표율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메가톤급 히트 중이었다.

    물론 투표율 이야기는 오직 유재원만 알고 있지만, 다른 지표를 통해 ID 테크놀로지의 우위라는 건 이미 다 밝혀졌다.

    컴퓨서브 다운로드 게시판에서는 유례가 없는 숫자를 찍으면서, 주간 베스트 순위 1위는 일찌감치 확보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레밍턴 스팅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명문 대학의 컴퓨터실을 직접 돌아보면서 인기를 확인했다. 심지어 협상에 혹시 쓰일지 몰라서 사진까지 찍어놨다.

    협상장에 들어선 ID 테크놀로지 인사들의 표정이 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미있는 건 협상장의 구성이다.

    물리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엘런 슈미트 변호사의 사무실 회의장에서 일렉트로닉아츠의 협상단을 마주했다.

    물론 엘런 슈미트를 ID 테크놀로지로 이끈 레밍턴 스팅도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일렉트로닉아츠를 마주한 ID테크놀로지 직원은 두 명이었다. 반면 일렉트로닉아츠에서는 트립 호킨스(Trip Hawkins) 사장이 3명의 직원을 대동하고 자리했다.

    원래는 부사장이 나오기로 했다. 그런데 성질이 조금은 급한 호킨스가 협상장에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직접 협상팀을 이끌기로 한 것이다.

    2:4였으니 ID 테크놀로지 숫자가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여기에 스피커폰을 통해서 서울 지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사에는 유재원과 최강욱, 그리고 로버트 하일이 있었으니 숫자로 따지면 ID 테크놀로지가 1명 더 많았다.

    물론 이 사실은 일렉트로닉아츠 측에서도 알고 있었다. 키보드 워리어의 제작사는 한국에 있고, 자신들은 대리인이라는 사실은 진작 공표했으니 말이다.

    “호킨스 사장님이 직접 나와주실 줄은 몰랐네요.”

    협상의 주도권이 ID 테크놀로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레밍턴 스팅이었다.

    “후후, 다른 회사들도 협상 대상자가 되었다면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우리 일렉트로닉아츠는 그들에게 이 자리를 양보하진 않을 겁니다.”

    이번에 확실히 계약을 끝내겠다는 포부를 보여주는 호킨스 사장이었다. 물론 레밍턴은 그들의 포부를 환영했다.

    그만큼 ID 테크놀로지에 지갑을 크게 열겠다는 뜻이고, 그러면 자신과 친구의 몫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거다.

    “하암.”

    협상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유재원은 하품이 나는 걸 참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과의 대화는 시차를 감수해야 했다.

    일렉트로닉아츠와의 미팅은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3시에 정했으니, 한국에서는 토요일 8시에 전화기 앞에 있으면 끝이다. 하지만 일렉트로닉아츠와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레밍턴 팀과 사전 조율이 있어야 해서, 실제로는 6시쯤 시작하고 있어야 했던 탓이다.

    늦잠이 많은 나이였기에 일찍 일어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학교에 가는 걸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오전 수업만 있는 토요일이라 다행이었다.

    최강욱 변호사와 로버트 하일도 새벽부터 사무실로 나와서 긴장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의 자리는 수천만 원, 혹은 억대의 돈이 걸린 담판이었기에 혼자 결정할 수가 없어서 법무팀과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밍턴 팀이 제때 연결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감은 거의 사라졌다. 제1 협상자가 되기 위해 일렉트로닉아츠가 제시한 것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몇 가지 거부해야 할 게 좀 있지만, 나머지 조항들은 ID 테크놀로지에 돈이 쏟아지게 만들어주는 것들이다.

    “진짜 미국사람이 쓰는 영어를 다 알아듣는 거냐?”

    “그럼요. 아까 다 확인해봤잖아요. 로버트 씨가 보증도 했고요.”

    “하모, 내가 단디 확인했다 아이가! 우리 꼬마 사장님은 외국어 천재라꼬!”

    최강욱 변호사와 국제 변호사인 로버트 하일이 유재원의 맞은편에 있다.

    로버트 하일은 전생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이 없는 심한 경상도 사투리는 거의 부산 사람 수준이었다. 기억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로버트 하일은 방정맞은 중년의 모습이었는데, 훨씬 젊은 모습의 로버트 하일은 잘생김이 묻어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유재원의 영어 실력이 밝혀진 것이다. 최강욱 변호사, 로버트 하일과 대화할 때는 한국어 하나로 충분했다. 그런데 레밍턴 팀과 사전 미팅을 하면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유재원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레밍턴 스팅이나 엘런 슈미트 변호사와 전문적인 비즈니스 용어를 써가면서 능숙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최강욱이나 로버트 하일도 상상하지 못했다. 최강욱은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로버트 하일이 있으니, 통역으로 할 줄 알았다.

    유재원 별다른 변명은 하지 않았다.

    대신 더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나 중국어, 프랑스어 등등 전생에 열심히 익혔던 외국어를 선보인 것이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다 보면 거짓말만 늘 게 되니, 차라리 컴퓨터도 잘하고 외국어도 잘하는 신동(?)으로 포장했다.

    의도는 확실히 적중했다.

    충격에 더 큰 충격을 주니, 최강욱 변호사도 결국 그러려니 해버렸다. 로버트 하일 역시나 유재원을 천재라고 순순히 인정해버렸다.

    곧 서울 시간 오전 8시,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후 2시가 되었다.

    “시간이 되었군요. 시작해봅시다.”

    협상이 시작되었다.

    “먼저 일렉트로닉아츠의 조건을 확인해볼까요?”

    스피커를 타고 나온 유재원의 말에 레밍턴 스팅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호킨스 사장이 옆자리에 앉은 자사 직원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줬다.

    호킨스 사장의 눈빛을 받은 일렉트로닉아츠의 직원은 서류를 꺼내면서 중요한 대목을 읽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제안입니다. 물론 이건 기본적인 제안이고, 추가적인 보따리도 많이 가지고 왔으니 끝까지 경청해주기실 바랍니다.”

    계약금 10만 달러.

    패키지의 소매가는 29.99달러로 높게 책정했고, 분배비율은 60:40으로 ID 테크놀로지가 40이다.

    정산금은 매 분기 말일에 입금.

    유통에 필요한 모든 제반 비용은 일렉트로닉아츠가 부담. 광고 역시 마찬가지.

    기본 조건을 읽을 때마다, 서울 사무소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현재 환율은 700원, 계속 하락 중이라서 690원대로 곧 진입할 거라는 경제신문에서 경고를 말하는 기사가 종종 나오는 중이다.

    이렇게 환율이 내려오고 있지만, 10만 달러라고 한다면 무려 7천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게다가 정산 비율은 무려 60:40으로, 한 패키지당 12달러는 온전히 ID 테크놀로지의 몫이라는 점이다.

    21세기의 표준 분배율은 7:3이 기본이고, 콘텐츠 제작자가 7이었다. 이에 비하면 4는 상당히 낮은 비율이긴 했다. 대신 7:3 분배율은 인터넷 유통이 대세가 되면서 성립된 점을 참작해야 한다.

    80년대 말에 인터넷 유통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인터넷은 대학교나 연구소의 학술용이었고, 일반인들에겐 PC 통신이 훨씬 가까웠다. 하지만 PC 통신을 사용하는 인구도 전체 컴퓨터 유저 중엔 일부에 불과했다.

    오프라인 유저를 모두 포괄하기 위해서는 패키지에 담아 전미의 소매상에게 쫙 깔아야 했다. 패키지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마케팅까지 하는 일은 모두 일렉트로닉아츠가 부담이다. 이러한 영업 비용을 제외한다면 60의 비율 중 순수 이득은 유재원의 몫보다 적어질 것이 자명했다.

    반면 ID 테크놀로지는 원본을 넘겨주는 대가로 앉은 자리에서 10만 달러를 받고, 분기마다 정산을 받을 수 있다.

    여러 유통사 중에 가장 강력한 계약서였다. 당장 OK를 해도 무방했지만, 호킨스 사장의 수완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옵션이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옵션을 모두 거부하셔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다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진지하게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완전판 버전을 12월 10일 이전에 완성해서 보내주면 계약금에 5천 달러 추가!

    이유는 미국 최대의 명절이자 최대 쇼핑행사인 크리스마스에 대응하기 위한 데드라인이 12월 10일이었던 탓이다.

    12월 10일에 완성하면서 프리뷰 버전에서 밝힌 네트워크 기능까지 탑재하면 5천 달러 추가!

    심즈라는 게임 하나로 DLC 장사로 신기원을 개척한 일렉트로닉아츠의 전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닌 모양이다. 다행히 ID 테크놀로지는 갑이라는 입장에서 수혜를 받는 형태였다.

    추가 스테이지와 네트워크를 비롯한 게임 모드 등이 수록될 완전판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유재원은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를 만들 때 확장을 염두에 두고 각종 기능을 모듈화시켜놓았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건 좀비들이 달고 있는 문자나 문장인데, 텍스트 파일로 분리해 하나의 파일로 만들었다. 한국의 컴퓨터 환경이 좋아지면, 텍스트 파일만 번역해서 바로 한글판으로 출시할 수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리스스도 최대한 많이 만들었고, 스테이지마다 독특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소정의 그래픽과 사운드 리소스만 추가하면 스크립트만 조금 바꿔주는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스테이지를 구성할 수 있다.

    리소스를 만드는 작업도 이미 반은 끝났다. 작업 속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재원이다.

    "콜! 문제 없습니다."

    간단한 대답 한 방으로 1만 달러 획득이다.

    자신에게 속도를 가지고 옵션을 건 호킨스 사장이 고마울 따름인 유재원이다.

    ========== 작품 후기 ==========

    아슬아슬하게 연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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