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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9화 (39/1,007)

[39] 슈퍼 시너지 효과 ==============================

“Inte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 말씀이십니까?”

유재원의 물음에 오명 장관이 깜짝 놀랐다.

ISDN이란 약자를 풀어보면 딱 저 문장이었다. 한글로는 종합정보통신망으로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전화망을 통해 고속 디지털 통신을 하기 위해 만드는 기술이었다.

기본 속도는 64Kbps라는 고속이고, 듀얼 채널을 구축하면 최고 128Kbps까지 나온다. 지금 유재원의 컴퓨터에 달린 모뎀이 2400bps였으니 26배나 빠른 속도다. 듀얼 채널이면 52배다!

“어, 그걸 어떻게 아나? 아니, 그 나이에 영어도 그렇게 잘 하나?”

“컴퓨터를 다루다 보니 영어가 익숙해졌습니다. 게다가 인터넷을 하면서 최신 기술에 관한 뉴스도 자주 찾아 봤습니다. 이게 도입되어 당장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바랄 게 없습니다.”

엄청난 기술이지만, 전생에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도입이 늦어져서 93년에나 서비스를 시작했고, 가격도 무척이나 비쌌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과 같은 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면서 ISND은 역사의 뒷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도입 시기가 빨라지고, 요금이 저렴하다면?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뎀 일색이던 컴퓨터 통신 시장을 혁신으로 바꿔 놓을 거다.

“역시 억지로 하는 공부보다는, 자발적인 호기심이 생겨 스스로 하는 학습의 성과가 큰 법이지. 음 ISDN은 시범 서비스……. 아니 연구 단계에서 테스트가 있을 때 재원 군도 참여할 수 있도록 고려하겠네.”

“우와! 고맙습니다!”

관료의 입에서 이 정도로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그냥 유재원에게 최대한 빨리 서비스를 제공해주겠다는 확답이나 다름이 없다.

초기 단계인 인터넷을 가지고 방안에서 이미 미국과 비즈니스를 시작한 존재가 유재원이다. 통신 속도가 빠르면 일의 효율도 올라간다.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었다.

“그리고 말일세. 12월 말쯤에 청와대 행사에 초청될 수도 있을 거야. 이건 지금 단계에서 어떤 행사인지 확정이 되진 않았지만 초대는 거의 확실한 이야기야. 일단 알고 있게.”

“12월 말, 알겠습니다.”

“간단한 첨언을 하자면, 일단 작더라도 미국과 거래 실적을 내는 게 좋을 거야.”

“실적이요?”

“응, 연말에 청와대에서 여는 가장 큰 행사가 수출 기업인들의 밤이거든. 대기업 회장들이 참석하는 자리지. 재원 군이라면 특별 케이스이니 작은 실적만으로도 그 자리에 올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유재원에게 필요한 건 명성이었다. 그런 자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초청하는 사람들은 분명 의도가 있다. 뻔히 읽히는 그런 의도다. 하지만 유재원이 마스코트 역할을 바란다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줄 용의가 충분히 있는 유재원이다.

다만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현 대통령을 두고 물통령이라고 하고, 국회는 여소야대로 구성되었다. 국정감사를 통해 커다란 야당의 힘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이를 통해 전직 대통령 청문회라는 초유의 사건도 곧 벌어지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힘이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대통령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걸 좋아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은 자신에게서도 돈을 뜯지 않을까 걱정인 거다.

설마 국민학생의 주머니를 털진 않겠지. 그러면 상상 이상으로 막장인데.

서울 출장의 마지막 행선지는 최강욱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아니 이제는 ID 테크놀로지 서울 지사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최강욱 변호사가 쓰던 사무실의 권리를 ID 테크놀로지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신 앞으로 월세는 ID 테크놀로지가 내고, 사무에 필요한 모든 비용도 다 ID 테크놀로지가 지급한다.

최강욱 변호사가 개인 의뢰를 받을 일은 없으니, 간판도 ID 테크놀로지로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최강욱 변호사가 고용하고 있던 보조 직원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법원이나 검찰청을 오가면서 서류 송달을 하거나, 경리와 같은 사무 보조 일을 하던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일단 올해까지 최강욱 변호사가 고용하는 것으로 했고, 이후에 ID 테크놀로지에서 일을 하던지, 다른 변호사 사무실로 소개를 받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울 지사였지만, 영업 활동을 하는 곳은 아니다.

변호사 인력이 필요한 전문적인 서류 작업이나 행정 업무만 하기로 했기에, 온갖 전화가 걸려오는 여주의 광고 가게보다는 조용했다.

“여기 있다.”

최강욱 변호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든 유재원은 감동이 물결쳤다.

리본 인터페이스 특허증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최강욱 변호사의 장담 그대로 수정 없이 한 방에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실용신안도 인정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조만간 좋은 소식 올 거니까 기대해도 좋다.”

저작권이 훨씬 엄격한 서구권 나라였으니 그쪽은 큰 걱정은 없다. 다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가 특허가 나올지는 의문이었는데, 능력 좋은 사람을 만난 덕에 쉽게 풀었다.

앞으로 리본 인터페이스는 ID 테크놀로지 거다!

“그나저나 요즘 주문이 쏟아진다면서?”

“네, 한번에 3~5천 장씩 주문이 오고 있어요.”

회사가 워낙 잘 나가고 있었기에 최강욱 변호사와의 이야기도 술술 풀렸다.

어제까지 온 주문 수량을 다 취합하면 벌써 1만5천 장을 넘었다.

30% 할인은 오직 삼보 컴퓨터에만 해주었고, 다른 회사들은 끽해야 10% 해줬으니 무척이나 남는 게 엄청났다.

단적으로 유지비가 많이 드는 공장이랄 게 없는 ID 테크놀로지였다. 생산 비용 중에 제일 큰 게 인건비였고, 재료비 약간과 세금을 제외하면 다 마진이다.

결정적으로 거래는 오직 현금으로 받았다.

대금 지급 방법을 이야기할 때, 어음의 ‘어’ 자만 나오기만 하면 어렵겠는데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와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실제로 회사 계좌에 돈이 따박따박 들어와서 벌써 2억 원 가까이 쌓여 있다.

소프트웨어 하나로 88년도에 이만한 매출을 올린 건 분명 기록일 거다.  여기엔 유재원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작은 비밀이 있다.

만약 유재원이 키보드 워리어를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테일 시장에 공급했다면 절대 달성하지 못할 숫자라는 거다. 용산이나 세운상가에서 보았듯 불법복제에 대한 자각은 조금도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기업은 다르다.

기본 제공되는 소프트웨어는 모두 다 정품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컴퓨터 제조사에 납품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유재원은 처음부터 대기업과의 거래를 열었기에 사업이 순항할 수 있었다.

“내가 12살 때 뭐 하고 있나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구나.”

괜한 자책이다.

자신의 복잡한 사연을 최강욱 변호사가 알게 된다면 자책이나 푸념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여튼, 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엄청난 목돈이 생기는데, 이걸로 뭘 할거냐는 쪽으로 흘렀다.

삼보 컴퓨터 때와 마찬가지로 유재원은 돈이 열리는 나무에 관해 설명과 함께 수익의 투자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강욱 변호사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유재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삼보 컴퓨터 회장님과는 달리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투자 방법에 관해 이야기가 시작되자 어느 한 대목에 이르렀을 때, 질문이 나왔다.

“수익금 중에 1억을 배당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주주의 권리니 말이다. 그런데 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한다는 건 난 좀 말리고 싶구나. 차라리 땅을 사지 그러느냐?”

12월 30일. 금요일.

그러니까 1988년의 마지막 영업일에 유재원은 주주총회를 열 생각이고, 이 자리에서 올해의 순이익 중 1억 원을 배당한다고 말했다.

믿고 투자해준 투자자분들께 드리는 것이라 하나도 아깝지 않다. 게다가 ID 테크놀로지의 지분 중에 50.1%가 유재원이었고, 나머지 49.9% 중에서도 아버지와 큰아버지 등의 친가 쪽이 5%, 어머니와 외가 쪽이 4%를 가지고 있다.

교장, 교감 선생님, 현미유 사장님 등 진짜 외부 투자자들은 40.9%를 가지고 있다.

ID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분이 이런 식으로 정해진 건, 유재원이 억지로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정한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지는 건 오직 유재원의 재능과 타자 연습기라는 혁신적인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유재원의 프로그램과 재능의 금전적 가치는 선생님과 현미유 사장님, 그리고 유 씨 친척들과 외가가 출자하는 금액의 총합과 같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투자자들이 얼마를 투자하든 유재원의 지분은 50%였다. 여기에서 유재원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현금 20만 원도 출자하는 형식으로 0.1%를 확보해서 현재의 지분 구조가 완성되었다.

원래 유재원은 노래를 팔아 만든 비상금도 출자하려고 했는데, 선생님들과 현미유 사장님이 본인의 능력을 지분으로 인정해 주셔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마음 같아선 수익금 전부를 배당으로 확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당수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도 컸고, 투자할 곳도 많아서 1억 원으로 한정했다. 내년엔 다를 거다.

“주식은 너무 위험해.”

최강욱 변호사는 사주가 배당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수익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건 말리고 싶었다.

“주식이 위험하다는 말씀은 상식에서 나온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주식 시황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 말씀인가요?”

유재원의 날카로운 찌르기에 최강욱은 직업이 변호사였음에도 할 말을 잃었다.

추측은 사실이었다.

주식은 위험하다든가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주식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반론이 없는 건 아니다.

주식이 공부해서 통달할 수 있는 학문이었으면, 뉴턴이 주식투자 실패로 쪽박 차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다 부자가 되었을 거다.

생각을 정리한 후 반론을 제기하려는 데, 유재원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혹시 며칠 후 있을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주식이나 선거함이나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냐?”

상식적인 말을 하는 최강욱 변호사였지만, 유재원의 표정을 보니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저는 주식 시장이 적어도 내년 늦봄까지는 상승한다는 분석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지요. 공화당의 부시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요인은 10개도 넘게 말할 수 있지만, 민주당 듀카키스가 대통령이 될 요인은 단 하나도 없거든요.”

“진짜냐? 부시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라고?”

“네. 며칠 후에 결과가 딱 나올 겁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주식 투자 역시 제 분석을 믿고 진행해주세요.”

“흠, 알겠다.”

유재원이 이렇게 나오니 최강욱도 어쩔 수 없었다.

3일 후, 11월 8일.

미국 41대 대통령으로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전의 역사 그대로의 결과다. 그런데 돋보기를 가지고 들여다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두 후보가 각자 얻은 선거인단 숫자는 원래와 똑같다. 그런데 전체 득표수를 따지면 부시는 이전보다 30여만 표를 더 적게 받은 것이다. 듀카키스 후보 역시 15여만 표 적었다.

이유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역사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이 다른 점은 딱 하나. 키보드 워리어의 대유행이었다.

아무리 신문을 둘러 보아도 그것 말고 다른 변수는 없었다.

부시는 원래대로 끝 없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밀어 붙였고, 듀카키스는 네거티브에 일절 대응하지 않으면서 신사적으로 나왔다.

결과는 같지만, 투표율이 떨어졌다.

미국에는 좋지 못한 이야기였지만, 정식 출시를 앞둔 유재원에겐 이보다 좋은 신호는 없었다. 투표율을 약간이나마 떨어뜨릴 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미국 대선 결과를 확인한 최강욱 변호사도 순순히 주식 투자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유재원에게 남은 일은 이제 주식을 살 돈을 최대한 벌어 놓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은 미국을 보았다.

국내는 이미 웬만한 대기업들로부터 주문은 다 받아서 뽑아낼 구멍이 없는 탓이다.

남은 카드는 딱 한 장이지만, 유재원은 든든했다.

유재원의 손에 들린 건 북미 최대의 소프트웨어 유통사 일렉트로닉아츠였다.

그것도 흥분으로 한껏 몸이 달은 상태로 유재원이 나타나기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ID 테크놀로지의 지분에 대해 이제야 알려드리네요.

유재원과 부모님, 친척들을 다 합치면 59.1%니까 무슨 사업을 진행하던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배당 때도 넉넉히 받아갈 것이고요.

즐거운 주말이네요!!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면서 즐기시고, 월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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