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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7화 (37/1,007)

[37] 돈이 열리는 나무 ==============================

#31-2

유재원의 서울행은 11월 5일, 토요일에 이루어졌다.

오전 수업만 있는 날이긴 했지만,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일정이 많았기에, 학교에 연락해서 부득이한 사정을 말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여주에서 올라가는 그랜저에는 총 4명이 탔다.

유재원과 ID 테크놀로지의 생산부 직원 둘. 그리고 현미유 공장의 자동차 마니아 형님, 이렇게 4명이다.

생산부 직원 둘은 오늘 유재원의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종이가 낱장이면 가벼운데, 뭉쳐 놓으면 무척이나 무거운 물건이다. 종이 뭉치를 다루는 인쇄업에 종사하던 중에 강찬호 사장의 눈에 띄어 ID 테크놀로지에 들어오게 되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둘 다 덩치가 크고, 힘도 좋아서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직원 둘을 보디가드로 삼은 이유는 기억의 궁전을 뒤지다가 이 시기 엽기적인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는 걸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노리는 조직 범죄가 있었다는 기사가 있을 정도였다.

기사 딸린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유재원은 자기가 봐도 좋은 표적이었으니, 전문 보디가드를 고용할 때까지는 회사에서 제일 힘 좋은 직원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자동차 마니아 형님도 유재원의 진심어린 스카우트를 통해 ID 테크놀로지로 적을 옮겼다.

월급도 살짝 올랐고, 좋아하는 자동차도 몰 수 있게 되어서 본인은 무척이나 만족했다.

현미유에 다닐 때는 때때로 콩 포대, 쌀 포대 등의 짐을 나르는 일도 해야 했고, 시시때때로 퍼지는 낡은 짐차를 고쳐야 했는데, 지금은 그랜저만 몰면 되니 적성에 딱 맞은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유재원의 드라이버가 되었지만, 앞으로 대부분 업무는 최강욱 변호사나 로버트 하일의 담당이 될 것이다.

유재원은 집구석에 박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주 업무였고, 행정처리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사람들은 법무팀 식구들이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시원스럽게 고속도로를 달린 유재원 일행은,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삼보 컴퓨터 본사에 도착했다.

“어서 오너라.”

“환대 감사합니다. 요즘 자주 뵙는 것 같아서 기쁘네요.”

아침 10시 30분에 딱 도착하니, 로비에 이용권 부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보다 자신을 대하는 것에서 확실히 달라진 게 피부로 느껴졌다. 경쟁사 회장님들이 참석하는 행사처럼 레드카펫이 깔리고 직원들이 도열한 것은 아니지만, 태도가 확실히 달랐다.

특히 이용권 부사장이 그랬다.

원래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를 해보고 난 뒤로 더욱 강해진 모양이다.

컴퓨터 회사의 부사장인 만큼, 이용권도 무척이나 좋은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경이네 집보다 더 좋았다. 386 DX에 메모리와 하드디스크고 넉넉했다. 여기에 미디 모듈과 앰프, 북셀 스피커까지 연결해서 전자 음악을 즐기는 고상한 취미도 있는 사람이었다.

유재원이 설계했던 그 퍼포먼스를 완벽히 맛볼 수 있는 환경이었던 거다. 미국 대학생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이용권도 완전히 빠져버렸다.

더욱이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용권이다.

PC게임이 오락실에 있는 아케이드게임보다 더 뛰어난 화질과 속도를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에서 대단한 경력의 프로그래머들 한 트럭을 가지고 팀을 꾸려도 이런 건 절대 만들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미국 소식도 적극적으로 알아보았다.

삼보 컴퓨터는 미국에도 지사가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국 지사에서 보내준 보고서를 보니 다 사실이었다.

유재원이 말했던 것 중에서 단 하나의 거짓도 없었다. 과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재원의 발언이 실제보단 축소된 면도 있을 정도다.

삼보 컴퓨터에 잡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금 끓어 올랐다. 하지만 유재원은 이미 건실한 사업체를 독자적으로 꾸리고 있었다. 삼보 컴퓨터에서도 회장님만 타는 그랜저를 자가용으로 끌고 온 모습만 봐도 게임은 끝났다.

그러니 친분이라도 더욱 돈독히 다져 놓자는 생각에 극진한 대우를 시작하는 이용권이다.

유재원과 나란히 선 이용권은 직접 엘리베이터도 잡아서 회장실까지 함께 했다.

회장실에는 이용태 회장님은 물론 삼보 컴퓨터의 창업 동지들과 임원들이 있었다.

이용태 회장이 상석에 앉았고, 유재원은 오른쪽에 자리했다. 왼쪽엔 이용권을 비롯한 삼보 컴퓨터 임원들이 연공서열 순서대로 앉아 있다.

유재원을 따라왔던 직원 둘은 연륜 가득한 삼보 컴퓨터 임원들의 모습에 꽁꽁 얼어붙었다. 유재원은 예외였다.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요즘 내가 신문 보는 재미에 살고 있어. 미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내 일처럼 기뻤다니까. 아직 손자 볼 나이는 아니지만, 우리 재원 군이 손자 같아서 그런 가봐. 그래 생각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회장님.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삼보 컴퓨터에서 실력만 보고 사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이용태 회장이 흐뭇한 얼굴로 유재원과의 친분을 돈독히 하려 했고, 유재원도 호응해 주었다. 삼보 컴퓨터의 주문이 아니었다면, 키보드 워리어의 성공은 없었을 거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주주분들이 선뜻 돈을 내놓은 건, 이용권 부사장이 유재원을 높이 사서 직접 여주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때 돈을 못 받았으면, 변호사처럼 몸값 비싼 분들을 쓰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면 회사 창립도 훨씬 늦어졌을 것이고, 미국 진출도 한참 뒤로 미뤄졌을 거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삼보 컴퓨터의 이득도 분명히 있었다.

한국에서 현재 시점에 유일하게 한글판 키보드 워리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삼보 컴퓨터 대리점뿐이었다.

소프트웨어 단품 판매로 얻는 이득도 이득이지만, 번들로 제공되는 컴퓨터의 주문도 쏟아졌다. 11월은 컴퓨터 업계에선 매출이 나오지 않는 혹한기였지만, 삼보 컴퓨터는 전년 동월보다 2배 가까운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협력 관계도 더욱 돈독히 하기로 했다.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의 유통도 삼보 컴퓨터를 제일 우선하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테크놀로지가 새롭게 출시할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삼보 컴퓨터를 제1 협상자로 하기로 했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살짝 긴장감이 서린 건 이용태 회장의 다음 질문이 나온 다음이었다.

“그러면 재원 군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다.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는 이제 시작이고,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나 어린 천재의 생각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일단 회사를 든든한 반석에 올려놓고 싶어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키보드 워리어가 첫 타로 좋은 성적을 내주고 있지만, 후속타로 나올 게 키보드 워리어처럼 대박, 아니 크게 성공을 해준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저 그런 반응이 올 수도 있고, 아예 쫄딱 망할 수도 있겠죠?”

“아, 아니.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할 거로 생각하느냐?”

“키보드 워리어가 주목받은 건 제가 어렸기 때문이잖아요. 신선한 일이었으니 언론의 주목도 훨씬 쉽게 받았고요. 앞으로는 장담할 수는 없지요. 보통은 이렇게 실패를 할 때마다 회사가 크게 휘청거릴 거예요. 하지만 저는 실패가 3번, 4번 연속이 되더라도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기초를 쌓을 계획입니다.”

단순한 질문을 던진 이용태 회장이나 다른 임원들은 유재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동시에 공감했다.

삼보 컴퓨터에서도 야심 차게 준비했던 모델이 시장의 차디찬 반응에 회사가 휘청거린 적이 몇 번 있었던 탓이다. 지금은 생각해도 그때는 악몽이었다.

“방법이 있느냐?”

그렇기에 그 방법이라는 게 너무도 궁금해졌다.

“그럼요, 돈이 열리는 나무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든든할 거예요. 저도 이번에 마련하려고 합니다.”

돈이 열리는 나무라니.

그런 게 현실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뭔가를 비유한 듯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모르겠다. 이용태 회장뿐만이 아니라, 동석해 있는 이용권을 비롯한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수께끼 게임을 하러 온 것은 아니었기에, 유재원은 돈이 열리는 나무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용태 회장을 비롯한 삼보의 임원들은 유재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시시각각 표정이 달라졌다.

뭔가 대단한 게 나올 줄 알았더니 겨우 이런 거야? 하는 모습이다.

“재원군, 그 돈이 열리는 나무라는 게 겨우 부동산 투기란 말인가?”

특히 유재원의 천재성을 기대했던 이용태 회장은 호기심이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실망감이 올라왔다.

미국 삼보 컴퓨터 지사에서 보낸 키보드 워리어에 대한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정식으로 출시된다면 귀한 미국 달러화를 갈퀴로 긁어올 것이 확실했다.

국내는 또 어떤가. 삼보 컴퓨터를 비롯해 컴퓨터 자회사를 가진 대기업마다 수천 장씩 주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최소로 잡고 계산해도 억 단위는 훌쩍 넘는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고 했으면, 흐뭇하게 웃어주면서 건투를 빌어줬을 것이다.

“정말, 실망일세.”

그러나 부동산이라니. 이건 이용태 회장이 혐오스럽게 보는 대기업들의 행태이지 않은가.

이용태는 도대체 누가 저 어린 것에 찌든 때를 묻힌 건지 알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불호령을 내리고 싶지만, 유재원의 나이도 어렸을 뿐만이 아니라 삼보가 지분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실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참는 거다.

반면 유재원은 코앞에서 실망감을 표출한 이용태 회장을 보고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일 년 후, 10 년 후, 그리고 수십 년 지난 먼 미래까지의 부동산 가치 변동값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부동산은 돈이 열리는 나무가 맞다.

심지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맺히는 돈도 늘어나는 사기적인 마법이 걸린 나무다.

지금 이 시기가 마법의 나무 묘목을 심어놓을 최적의 적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도 정말 감사합니다~~!!

분량이 어제보다 쪼금 모자라지만, 연참으로 쳐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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