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4화 (34/1,007)

[34] 돈이 열리는 나무 ==============================

#30-1

그 부장님이 왜 자신을 찾아?

게다가 자기가 여기 있는지는 또 어떻게 알고?

여러 의문이 줄을 이었지만, 김원중 부장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일단 전화를 받아 보는 유재원이다.

“여보세요? 유재원입니다.”

-나 김원중일세. 기억하나?

그럼, 기억하고말고.

장관상의 약발로 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유재원이다. 베이식의 달인처럼 타자 연습기를 뚝딱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딱 실력만 보고 자신을 뽑아준 김원중도 높이 살만했다.

누군가의 부탁이나 돈을 받고서 눈 질끈 감고 엉뚱한 사람 뽑아 주는 경우도 21세기에 왕왕 있었다. 88년도라면 말할 것도 없다. 김원중이 대회에서 실력 외적인 요소를 전혀 살피지 않고 상을 정한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네! 물론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나도 유재원 군 덕분에 괜찮았네.

김원중의 말은 의례적인 빈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이었다.

유재원의 존재로 인해서 체신부의 학교 컴퓨터 공급사업은 축소가 아닌 탄력을 받고 있다. 교육부로 이관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이에 대한 대응에 변화가 있었다.

바로 내년도 학교 컴퓨터 사업을 아주 크게 진행하는 것이다.

다른 쪽 공급을 좀 줄이더라도 학교 쪽에 3년 치 분량 정도를 몽땅 공급해서, 교육부의 일손을 줄여주자는 것이 이야기되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유재원과 같은 인재가 컴퓨터가 없어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명분은 윗분들을 설득하기에 아주 좋았다.

김원중에겐 그야말로 꽃길이 열리는 거다. 학교 사업 축소로 입지가 좁아지던 차에, 사업의 규모가 몇 배로 커지면 그만큼 존재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영전의 기회도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유재원 군에게 궁금한 게 생겨서 전화를 돌리게 되었네.

그렇게 열심히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위에서 전화가 한 통 내려왔다. 그것도 체신부의 상관들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위에 있는 곳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 일명 안기부.

죄지은 거 하나 없이 떳떳하게 살았던 사람도 안기부라면 심장이 덜컥거리는 그런 곳이었다. 설마 아들놈, 혹은 친척 중에 데모한다고 난리 치는 놈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무척이나 공손하고도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예상과는 180도 다른 것이었다.

-혹시 말이다, 키보드 워리어라는 프로그램을 알고 있나?

“네? 그거 제가 만든 타자 연습기인데요?”

김원중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귀를 기울이던 유재원도 갑자기 키보드 워리어를 언급하니 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 경진대회에서 만든 타자 연습기를 시판용으로 다듬어서 조만간 낼 거라는 소식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단다. 지금 내가 말하는 미국에서 인기라는 키보드 워리어를 말하는 거다. 혹시 이름만 같은 건가 싶어서 말이다.

“맞아요! 그것도 제가 만든 거예요.”

-그렇지? 이름만 같은……. 응? 진짜 그것도 네가 만든 거라고?

“네. 자판 연습에 게임성을 가미해봤어요.”

-뭐라고? 진짜 그것도 재원 군이 만든 거라고?

“네! 당장 프로그램 실행해서 만든 사람 메뉴를 실행해보면 제 이름이 줄줄 나오는데,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왜 미국에서 먼저 뜨는 거지?

“게임이라 그래픽 모드로 돌아가는데,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필요하거든요. 한국은 아직 구형 컴퓨터만 있어서 사용할 사람이 적어요. 좋은 컴퓨터가 많은 미국에 먼저 맛보기로 풀어 봤어요. 반응이 좋으면 정식으로 만들어 팔아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오고 있다고 하네요.”

유재원의 긴 설명을 들은 김원중은 ‘세상에’나 ‘그럴 수가’ 등등 추임새를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어? 재원 군이 미국에도 다녀온 건가? 그런 소식은 못 들었는데?

그러다가 문뜩 날카로운 의문이 들었고, 바로 질문으로 날렸다.

“저번에 서울에 갔을 때 케텔이라는 PC 통신의 유료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했어요. 모뎀이라는 장치를 컴퓨터에 달면, 집에서도 미국에 프로그램을 보낼 수 있거든요.”

-인터넷? 세상에! 케텔에 그런 것도 있었나?

명색이 정보통신을 다루는 체신부 부장이면서, 그런 서비스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김원중이다.

하여튼 유재원의 말은 모두 신빙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건 타자 연습기로 장관상을 준 것보다 훨씬 큰 건이었다.

이미 안기부에서도 알고 확인 전화를 해올 정도였으니, 높은 곳에선 훨씬 더 빨리 움직일 것이다.

김원중의 머릿속이 환해졌다.

유재원은 천재다. 그걸 일찍 발견한 김원중은 그 공으로 체신부에서 그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히트한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진짜 유재원이라면, 이젠 나라의 보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가 다룰 게 아니라, 훨씬 높은 분들이 중히 쓰실 거다.

공직에 오래 있었던 김원중의 머릿속에 앞으로 일어날 일이 착착 그려졌다. 일단 최대한 빨리 검증한 후에, 보고하는 게 먼저다.

-알겠네. 나중에 또 전화할 일이 있을 거야. 분명 좋은 일이니 걱정하진 말고.

“예? 네, 알겠습니다.”

전화는 그것으로 뚝 끊겼다.

“뭐라고 하시던가?”

전화가 끊어지자 이용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물어보았다.

“미국에 유행하는 키보드 워리어를 제가 만든 게 맞느냐고 물어보시는데요? 그런데 저도 이제 막 자료를 받은 건데, 김원중 부장님은 어떻게 알고 먼저 전화를 했을까요?”

이용권은 유재원의 답변에 이제야 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부의 정보통은 훨씬 빠르단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정부가 가장 우선해서 살피는 나라다. 외교부 직원들은 물론, 언론사 특파원도 있고, 안기부도 있지. 겁낼 것 없어 보인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분명 너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다.”

유재원도 단번에 이해했다.

당연히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재원은 정부 역시 사업할 대상으로 지목해 놓은 상태였다. 게임성이 강화된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를 정부에 팔진 못하겠지만, 한글판을 파는 건 문제 없다.

또한, 정부의 높으신 양반에게 자신의 호감을 높이 사놓으면, 여기저기서 찝쩍거리는 자들을 권력의 힘으로 쳐낼 수도 있다.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조금 있었는데, 김원중 부장의 전화로 말끔히 해결이다. 상대가 이미 자산을 높이 사주고 있는데, 먼저 나서서 알짱거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만, 이번 접촉은 비공식이니 일단 정부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차차 확인하기로 했다.

부사장님 사무실에서 나온 좋은 일은 또 있었다.

“정부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니, 앞으로 대박이 날 건 확실하구나. 흠, 이러면 우리도 추가 주문이 더 일찍 낼 수도 있겠다. 11월 안에 3천? 아니 4천 카피 정도 더 주문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려무나. 아, 그리고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도 한번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PC 통신 하시죠?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이용권으로부터 추가 주문도 예약을 받은 유재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암, 이제 집으로 갈 거냐?”

짐차 운전을 위해 나서준 현미유 운전사 형님의 물음이었다.

“아니요. 세운상가하고 서초동에도 들렀다가 가요.”

서울에서 볼 일은 삼보 컴퓨터 납품이 끝은 아니었다. 용산과 세운상가를 들려 한국의 컴퓨터 업계 돌아가는 것도 좀 보고, 서초동에 들려 최강욱 변호사와도 업무적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운전사 형님 입장에서는 다행이게도, 용산이나 세운상가 여전히 볼 건 없었다.

용산은 아직도 한산했었다. 한 달 사이에 신제품이 출시된 것도 아니고, 컴퓨터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손님이 우르르 요소는 하나도 없으니 그야말로 차분함 그 자체다.

반면 세운상가는 재개발을 위해 대대적인 이전 앞두고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상가에 빈 자리도 많이 보였고, 짐을 싸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그래도 세운강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불법복제 삐끼들은 여전했다.

다행이라면 키보드 워리어는 아직 불법복제 목록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중에 풀리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혹여 SKC 총판에서 유출될 수도 있었다. SKC 총판에서 장담했던 것처럼 원본 관리에 공을 들인 건 사실인 것 같다.

“이번엔 5천 장입니까?”

세운상가에 온 김에 유재원은 SKC 총판에 또 주문을 넣었다.

“주문량이 늘어난 만큼 불량률 제로에 대한 보너스도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SKC 총판 담당 주임은 간이라도 빼줄 기세로 굽실거렸다. 한참 어린 유재원이지만 실적 앞에서 나이 따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디스켓을 수천 장씩 팔아주고, 여기에 부가 서비스까지 이용하는 유재원은 SKC 총판의 VIP로 봐도 무방했다. 불량을 골라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지만, 현금으로 따박따박 돈을 주는 유재원은 최고의 손님이었다.

그렇게 세운상가에서의 일을 마친 유재원 일행은 서초동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연참입니다!!

그러니 다음편 가시기 전에 추천 한 방 눌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