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3화 (23/1,007)

[23] 돈이 열리는 나무 ==============================

#22-1

최강욱 변호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키워드 선점이나 배너광고, 검색어 마케팅, 자발적 소문 마케팅이니 하는 것에 대해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인상을 받았다.

미국 공략에 있어 제품보다 마케팅에 우선하고 있다는 거다.

최강욱 변호사는 좋은 전략이라고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팔고자 하는 제품의 내실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먼저이고, 허풍과 같은 과장 광고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그의 상식이었던 탓이다.

“우리나라가 좋은 제품을 가지고 수도 없이 미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한 건 딱 하나, 마케팅 부족입니다.”

최강욱 변호사의 인식에 유재원은 가벼운 일침을 넣었다.

“미국 시장을 두드린 도전자들도 마케팅에 손을 놓은 건 아닐 텐데?”

반론이 나왔지만, 힘은 없었다.

“그렇죠. 하지만 미국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는 마케팅이었습니다. 무모하게 물량만 쏟아 붓는 거예요. 먹히는 포인트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걸 강조하거나 아예 인식하지 못한달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물량을 쏟아부었으면 끈기 있게 유지해야 하는데, 좀 해보다가 성과가 바로 안 나온다고 접고 나오잖아요. 일성도 그랬고, 대호도 그랬지요? 저는 실패했던 이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갈 겁니다.”

유재원도 딱 여기까지만 말했다.

어차피 성과를 가져오면 인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또한, 한 달이라는 시안을 박아놨음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후식으로 뭐 드실래요?”

유재원은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으로 후식까지 즐겼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에는 커피도 마셨다.

유럽식 레스토랑답게 고온 고압의 스팀으로 뽑아낸 에스프레소에 싱싱한 우유와 설탕을 적당히 넣어 만든 제대로 된 카페라테였다.

유재원은 전생에 알아주는 커피 애호가였다. 그런데 집에선 저녁에 잠 못 잔다고 커피 믹스도 주지 않는다. 그동안 몰래 주워 먹긴했어도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제 좀 살것 같다.

달달한 커피로 당까지 충분히 보충한 유재원과 최 변호사는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오후 일정의 시작은 특허청 서울사무소로 정했다.

용산 상가나 세운상가에 머저 가면, 짐이 바리바리 생길 게 분명하니 특허청에서 서류 업무를 먼저 하기로 했다.

“리본 인터페이스로 특허가 나올까요?”

“나온다.”

유재원의 물음에 최강욱 변호사가 확실하게 말했다.

컴퓨터나 영업은 유재원이 전문가지만, 법 쪽은 그저 상식만 아는 수준이었다. 반면 최강욱 변호사는 자신의 전문변호사였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철사를 엮어 만든 일회용 옷걸이 같은 것도 특허가 되는 데, 안 될 이유가 없지.”

리본 인터페이스는 딱 보니 각이 보였다.

그래서 그가 직접 만든 특허 접수서류의 제목으로 ‘복잡한 컴퓨터 화면을 선과 상자, 심볼을 이용해 명료하고 간단하게 정리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라고 지어놓았다.

여기에 리본 인터페이스의 핵심인 작업 표시줄이나 시작 버튼, 최대화·최소화 버튼, 닫기 버튼과 같은 걸 그림으로 만들어 넣었다.

이걸 바탕으로 실제 기능을 구연한 키보드 워리어 1.0도 동봉해 놨다.

“미국으로부터 시장을 개방하라는 통상압력은 매년 강해지고 있지. 상표권은 진작 개방되었고, 이젠 지적저작권 차례니까, 정부도 이에 대해 대비로 우리나라 기업 보호를 위한 작업은 해놨을 거야. 정부가 관심이 없더라도, 재벌들에겐 큰 돈이 걸린 일이니 말이다. 그들이 관료들을 닥달하고 있을 거다. 만에 하나 정 안되면 프로그램 자체를 특허 소프트웨어로 묶어 버리면 그만이야.”

역시 자본주의의 첨병은 미국이다.

자신이 회귀하기도 전에 미리 그 길을 다 닦아 놓았구나 하며 감탄했다.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하여튼 이 분야는 최강욱 변호사만 믿는 거다!

둘은 택시를 타고 특허청 서울사무소에 가서 바로 서류를 접수했다. 여러 가지 서류를 요구했지만, 최 변호사가 미리 제반서류를 다 준비해줬기에, 여러 번 오가지 않고 한 방에 끝냈다.

동시에 미국과 유럽에도 특허를 내기로 했다.

그 일 역시 최강욱 변호사가 진행하기로 했고, 이미 착수금도 넉넉히 전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특허 등록에 성공하면 두둑한 성공 사례금을 약속했다.

성공 사례금은 최강욱 변호사가 신바람을 일으키며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약속받은 금액을 다 더하면 최강욱 변호사의 작년 수입을 아득히 뛰어넘는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워낙 큰돈이라서 최강욱 본인이 좀 깎아 주려고 했다.

기억을 더듬던 최강욱 변호사는 순간 머슥해지는 걸 느꼈다.

삼보 컴퓨터 회장님과의 거래로 한 자리에서 5천만 원씩 당기는 걸 보니, 사례금을 좀 깎아주려던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자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머슥함은 빠르게 사라졌다.

신바람이 불어온 건 오로지 돈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유재원을 대리해서 했던 일은 정말 보람 찼다.

이번 서울 일정 동행부터, 특허 등록과 같은 업무 등등.

12살 꼬맹이가 꾸려나가는 자그마한 일인 기업이 거인처럼 움직이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건 재밌다 못해 통쾌한 것이었다.

다만 조그만 불안감 하나는 남아 있었다.

지금이야 타자 연습기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잘 나가고 있다지만, 나중에 대기업과 부딪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게다가 미국 접수가 유재원의 생각대로 이루어질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러한 불안감만 해소된다면 유재원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든 순간 최강욱 변호사는 조금 민망해졌다. 그 정도로 두고 본 후에 합류하는 건 도전을 함께하는 게 아니었다. 성공한 걸 보고 따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자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도전을 시도하기에는 힘들게 했다.

최강욱 변호사에게 딸린 군식구만 해도 무척 많았던 것이다.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내미는 물론이고 친가와 처가까지 수많은 이들이 최강욱의 어깨 위에 있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때, 뚜쟁이들이 소개해준다는 여자와 결혼했다면 돈 걱정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건 판사 임용장에 덤으로 자신이 팔려가는 것이라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게다가 사시에 도전할 때부터 뒷바라지해준 안사람을 배신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두 집안은 참으로 어려웠다.

특히 최강욱의 집은 사업을 크게 하다 망한 탓에 그의 지원이 없으면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 실정이다. 처가는 그나마 가난한 건 아니지만, 빡빡하긴 매한가지다.

한 집안도 아니고 두 집안을 떠받드는 기둥이 최강욱이었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들이 등 따시고 배부른 거다.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좀 뻔뻔해지게 무슨 문제인가.

대신 본인의 능력을 120% 발휘해서 서포트 해주는 것으로 보답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최강욱은 생각했다.

"자, 이제 용산으로 가볼까요?"

고기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후식으로 입가심까지 깔금하게 마무리한 두 사람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했다.

“에이, 전자상가를 새로 열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영 아니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이럴 줄은 몰랐어. 심각하네.”

유재원에게서 실망감이 아낌없이 터져 나왔다. 최강욱 변호사도 십분 동의했다.

용산 전자상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21세기 초엔 조립 컴퓨터 업계를 선도하기도 했고, 이후 좀 쇠락하는 것 같더니 21세기 중반에 들어서며 안드로이드 로봇 부품의 성지로 다시 태어났다.

다만 위명도 위명이었는데, 악명도 자자했다.

20세기 막판, 90년대에 용산 전자상가의 호객과 강매는 그야말로 알아주는 유재원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작년 87년에 개장했으니, 그래도 좀 낫지 않겠나 싶어 방문했는데, 영 아니다.

전체 상가 중에 반은 비어 있었고, 그나마 들어선 가계에도 유재원이 원하는 물건은 없었다. 그런데 호객행위가 정말 심했다.

최강욱 변호사랑 나란히 가는 중인데, 손을 잡고 자기 가게로 끄는 건 예사였다. 좋은 비디오테이프가 있다느니, 최신 게임을 저렴하게 복사해준다느니 하며 주머니를 털 궁리만 했다.

반면 유재원이 사려는 물건을 갖춘 가게는 하나도 없다.

단적으로 VGA 카드였다.

있느냐는 물음에 가격만 높이 불렀지, 물건을 보자고 하면 내놓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가격을 높이 불러 놓고, 총판 같은데 수소문해서 가져온 뒤 강매를 하려는 모습이 뻔히 보여서 뛰쳐나왔다.

유재원이 VGA 카드를 사려고 하는 건, 키보드 워리어의 미국 정벌 준비를 위해서였다.

미국에 내놓을 키보드 워리어는 관리자 버전과 같은 상태다.

완성품은 유재원의 머릿속에만 있고, 아직 실물이 없는 거다.

당장 일을 시작하려 해도 미국에 팔 물건이 없다. 만드는 건 금방이다. 한글판에서 데이터 파일만 영문으로 바꾸면 끝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미국의 컴퓨터 환경은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

EGA가 널리 보급되었고, 고급형 사양은 VGA와 인텔의 386 CPU로 세대교체가 끝난 상황이었다.

내년이면 486 DX 기종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93, 94년은 되어야 애용되는 모델인데 미국은 5년 정도 앞서 있는 것이다.

그런 미국 시장에 286을 기준으로 삼은 키보드 워리어 1.0을 번역만 해서 내놓으면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무시당할 거다.

반대로 386 이상 컴퓨터가 대중화되었다는 건 286에서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역동적인 그래픽으로 무장된 이전엔 없는 타자 연습기를 만들어서 접근할 계획이었다.

비록 최강욱 변호사에게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유재원이지만, 최소한 팔고자 하는 물건이 기본은 되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 시장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준비물이 필요하다.

VGA 카드는 시작에 불과하다.

EGA가 한국에선 최신식이어도, 부족한 게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만들어야 하니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미디 모듈, 고음질 마이크도 필요하다.

386 컴퓨터는 멀티미디어 지원도 강화되어서 화려한 그래픽에 고음질의 사운드를 동시에 출력할 수 있으니 아낌없이 투자하는 거다.

당연히 화려한 그래픽을 만들려면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쉽게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태블릿도 있어야 한다.

고성능 프로그래밍 언어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직으로 저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유재원도 불가능한 일이다. 유재원은 베이직을 대신할 프로그래밍 언어로 ‘C’를 선택했다.

벨 연구소 소속의 데니스 리치가 1972년에 만든 언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면 필수로 필요에 따라 어셈블리어도 혼용해 시스템의 성능을 극한까지 짜낼 수 있고, 범용성도 좋았다. 그래픽 운영체제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 프로그램은 C언어로 만들었을 정도다.

“세운 전자상가로 가요.”

진상 호객꾼에 넌더리가 난 유재원은 반도 둘러보지 않고 돌아가자고 했다. 더 있다간 옛 추억이 악몽으로 변질할 판이다.

최 변호사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바로 출구를 찾았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연참이라고 해도 될 분량이지요??

아, 그리고 지분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도통 들어갈 부분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회장 할아버지랑 이야기 할때가 딱이었는데... 억지로 집어 넣으면 이상하니까, 나중에 자연스럽게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유재원 몫은 경영권 보장이 확실할 만큼 충분히 챙겨줬답니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