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도깨비 컴퓨터 ==============================
#16
잠시 후.
이용권이 운전하는 로얄 프린스에 유재원과 교장 선생님이 탔다.
교장 선생님은 뒷자리에. 유재원은 조수석이다. 이용권은 유재원에게도 뒷자리를 권했는데, 본인이 조수석에 타고 싶다고 해서 이런 배치가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중국집이다.
통성명을 마친 후, 간단한 대화가 이어지더니 곧 이용권이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했고, 교장선생님은 유재원에게 메뉴 선택을 양보했다.
“짜장면이요!”
이미 어른 입맛이었던 유재원이었지만, 아직 마음대로 행동하기엔 조심해야 할 시기였다.
어린아이 입맛에는 최고의 음식인 짜장면을 외쳤고, 이용권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시내에 있는 중국집으로 나가는 중이다.
역시 좋은 자동차라 그런지 승차감이 무척이나 좋았다. 새로 깔린 아스팔트 포장된 신작로에는 다니는 차도 별로 없어서 막히지도 않았다.
“강희제?”
도착한 곳은 덕진리에서 자동차로 6분 거리에 있는 여주시의 강희제라는 중국집이었다.
여주시는 88년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도시였다. 강희제도 배달만 전문인 중국집이 아니라, 전통 중식당이었다.
이용권은 유재원이 먹고 싶다고 했던 짜장면은 물론이고 탕수육과 팔보채 같은 비싼 요리까지 줄줄이 시키는 배포를 선보였다.
짜장면 한 그릇이 800원이었는데, 탕수육과 팔보채는 4, 5천 원 하는 요리였다. 음식만 보더라도 접대하려는 목표가 유재원이 아닌 교장 선생님이라는 걸 딱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타겟이라면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나 술자리를 가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답은 간단했다.
교장 선생님이 주요 공략인사이긴 해도, 유재원 역시 중요한 녀석이라는 거다. 문제는 상대가 5학년 국민학생이니 술이 나오는 건 금지고,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사는 곳을 모르니 학교로 찾아와야 하는데, 사람 없는 저녁엔 불가능. 그러니 점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장면이긴 해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짜장면은 맛있다.
건강한 맛이니, 유기농 재료이니 하는 것들은 단 1%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맛에만 집중한 레시피 그대로 나온 짜장면이었다.
돼지기름에 춘장을 볶았고, MSG와 설탕, 심지어 캐러멜까지 적당히 들어갔다. 채소와 고기는 큼직하게 썰어 넣은 짜장을 수타로 뽑은 면 위에 둘렀고, 마지막엔 달걀부침까지 올라간 제대로 된 짜장면이 곱빼기로 나왔다.
쓱쓱 비벼서 한 입 크게 물면, 미래에 대한 조바심이나, 불안감은 사르르 사라지는 마법과 같은 맛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다른 요리도 훌륭했다.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중국집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더욱이 제 돈 내고 먹는 게 아니라 남이 사주는 밥이었으니 다른 집보다 비싼 음식 가격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경진대회에서 유재원 군의 타자연습기가 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오? 그래요?”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루는 수준이나,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동작하도록 만드는 순발력,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논리정연함 등은 고등학생들보다 더 훌륭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도 깜짝 놀랐으니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용권 부사장의 칭찬에 교장의 얼굴에 큰 웃음이 걸렸다.
유재원과 교장은 혈연관계는 물론 직접 사사한 적도 없다. 공통점이라면 그저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서울의 큰 회사 부사장이 직접 와서 자기 학생을 칭찬하는 건 기쁜 일이었다.
본론은 곧 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삼보컴퓨터에서 유재원군의 타자연습기를 더욱 완벽한 형태로 가공해서 학교와 회사, 관공서 등에 보급하고 싶습니다. 이미 체신부와도 긍정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유재원 군의 생각은 어떤가요?”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짜장면 흡입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교장 선생님을 보았다.
교장 선생님은 일단 유재원 편이었고, 교단에서 교직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은 경력도 출중했다.
“그러니까, 우리 재원이의 타자연습기를 삼보컴퓨터에서 사고 싶다는 것이군요. 제가 유재원군의 부모님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좋은 평가라면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교장 선생님은 유재원의 기대에 부응했다.
대놓고 뭘 내놓을 건지 말해 보라고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분은 교장 선생님만한 분을 찾기 어려울 거다.
“아, 당연히 그래야지요.”
삼보 컴퓨터 이용권 부사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나름대로 대비를 다 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이용권 부사장은 사장 이용태 박사의 동생이었다. 즉, 나름 로열패밀리라 할 수 있어서 상황을 봐가면서 임의로 제안을 수정할 권한도 있었다.
다만, 시골의 교장이나 국민학교 5학년짜리 그리고 그 부모님 정도는 충분히 구워삶을 만큼 강력한 제안을 가져왔다고 자부했다.
“학교에 최신 386 컴퓨터 1대와 100만 원의 장학금을. 유재원 군에겐 2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겠습니다. 유재원 군의 타자 연습기의 저작권만으로 충분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눈이 단박에 커졌다.
386 컴퓨터는 최소 200만 원 후반에서 시작하는 물건이었다. 컴퓨터와 같은 신문물이 낯설기도 하고, 머릿속에 넣기도 어려운 교장 선생님이 최신 컴퓨터 가격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유재원 덕이었다.
전교생 중 유일하게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재원을 경진대회 출전시켰던 교장 선생님은, 도박에 성공한 후 컴퓨터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가격이었다.
네모난 상자에 텔레비전을 달아놓은 것 같은 것이 준중형 자동차 가격이랑 비슷하단 말인가.
그만큼 비싼 최신형 컴퓨터 1대에 장학금 100만 원이다. 재원이에게도 따로 200만 원의 장학금을 주겠단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재원은 그야말로 복덩이였다.
그럼에도 교장 선생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쌓은 경험 덕이었다. 상대가 이만큼 좋은 조건을 가져왔다는 건 많은 걸 시사했다.
제일 그럴듯한 이유는 재원이가 만든 게 한국 제일의 컴퓨터 회사 부사장이 내려올 만큼 뛰어난 것이다.
확실히 컴퓨터에 무지한 교장 선생님이 보기에도 타자 연습기는 효용이 있었다.
특수활동 시간에 컴퓨터실에서 시연하는 걸 보니, 화면에 뜬 지시를 따라 하다 보면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판에도 익숙해질 것 같다. 게다가 장문 연습 시범을 보이는 재원이의 타자 속도는 속기사를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는 잘 몰라서 적당한 것인지 가늠이 어렵군요. 게다가 우리 재원이는 12살이라서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요. 설마 이 자리에서 가부를 말해달라는 건 아니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나 확고하고, 교장 선생님의 조언이 있다면 재원 군의 부모님도 훨씬 빠르게 승낙을 해주실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 늦으면 큰일이 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유재원 군의 아이디어가 매우 좋아서 그렇습니다. 신문에도 났을 뿐만이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하지요.”
여기까지 들었을 때 유재원은 대충 감을 잡았다. 대신 교장 선생님은 아직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몰랐다. 평생 교편만 잡고 계신 분이었으니, 컴퓨터 업계 이야기는 잘 모를 거다.
그렇기에 이용권 부사장은 훨씬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야 했다.
“최소 한 달 후, 늦어도 두 달 후면 타자 연습기가 우후죽순 나올 거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삼보컴퓨터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확실합니다. 보석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티메이커 리서치에 라이센스를 받아와서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회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던 바였다. 저작권 인식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최악이었다. 하물며 88년 지금은 따로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대호전자, 미래정보통신, 일성컴퓨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용권 부사장의 이번 질문은 교장 선생님도 답할 수 있었다.
“음. 대기업 자회사라는 거 아닌지?”
“맞습니다. 재벌의 자회사 들이죠. 그래서 상도덕은 물론 작은 불법은 거침없이 저지릅니다. 불도저로 밀고 나간 다음, 나중에 수습하는 거죠. 업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들 회사들이 부랴부랴 개발팀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이들 기업이 저작권 허락을 받고 시작하는 건 아닐겁니다. 아, 본인이 여기 있으니 물어보면 되겠네요. 유재원 군, 저희 말고 다른 곳과 접촉한 적이 있니?”
“아니요.”
“휴, 다행입니다. 하여튼, 요점은 빠를 수록 좋다는 겁니다. 자,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까요? 부담 없이 드십시오. 드시고 싶은 거 더 시켜드릴까요? 재원 군, 짜장 하나로 괜찮니?”
이용권 부사장은 이만하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했다 생각하며 나름대로 완급조절을 시도했다.
이미 의도는 훤히 드러난 생황에서 무의미한 것이었지만, 유재원이나 교장 선생님은 이용권의 말에 따라 식사에 집중했다.
“네! 최고로 맛있어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맛있는 점심이었다. 나중에 부모님과 친척들 모시고 이곳으로 외식 한 번 크게 해야겠다.
“재원아, 삼보 컴퓨터의 제안에 큰 고민할 거 없다.”
학교로 돌아오는 택시 안.
이용택 부사장은 먼저 보냈고, 교장 선생님이 잡은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다.
“네? 왜요?”
“돌아가는 거 보아하니, 급한 건 저쪽인 거 같구만. 괜히 밥 얻어먹었다고 후회할 선택을 급하게 하지 말 거라. 게다가 대기업이 아직 연락이 없다는 건, 삼보 컴퓨터의 말대로 저작권을 무시하고 멋대로 짝퉁을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의사결정이 늦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어. 좀 기다리다 보면 연락이 올 거야.”
놀랍게도 교장 선생님은 유재원 편을 들어 주었다.
“게다가 기업이라는 데는 절대 자기들 손해 볼 제안은 안 하는 곳이거든. 삼보 컴퓨터는 자기만 법을 준수하며 재원이를 위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대가가 제대로 계산해준 건가는 별개야.”
확실히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정론이었다.
“재원이가 만든 타자 연습기가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던가, 삼보 컴퓨터에게 이게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 이럴수록 느긋하게 나가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조언이다. 그리고 무슨 결정을 하더라도 응원해주마.”
더구나 조언도 정확했다.
사실 유재원은 이용택 부사장의 제안을 들을 때부터 대충 견적이 나왔다.
특히 저작권만 달라는 걸 보면, 아이디어만 사서 자기들이 훨씬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또한, 대기업들과 달리 저작권 얻기 위해 먼저 온 것도 냉정히 봐야 한다. 삼보 컴퓨터가 저작권을 잘 지킨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지만, 어쩌면 자신의 유명세가 필요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더 넓은 시선으로 보면, 체신부의 김원중 부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시상식 후 유재원과 따로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재원 보고 어디서 컴퓨터를 배웠느냐고 묻기도 했다.
척하면 딱인 유재원은 체신부의 학교 컴퓨터 보급 사업 덕에 일찍 컴퓨터를 접해서 호기심이 생겼고, 적성에도 맞아서 파고들었다고 이야기하니 그렇게 좋아했다. 그러면서 학교 컴퓨터 보급 사업에 체신부의 성과를 논할 때, 자신이 맨 앞에 놓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삼보 컴퓨터는 체신부에 잘 보여서 학교 컴퓨터 보급사업 수주 물량을 늘려볼 심산으로 유재원에게 타자 연습기 저작권을 얻어서 볼 생각인 거다.
그러고 보니 수경이가 가져다 준 신문에서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다는 게 기억이 났다. 체신부에서 타자 연습기를 학교에 보급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는데, 그걸 보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모양이다.
삼보 컴퓨터가 재빠르게 유재원과 손을 잡고, 체신부에 납품을 하면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경진대회 지원사에 분명 삼보 컴퓨터의 이름도 있었다. 분명 체신부와 끈끈한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게 분명하다. 아마 어떤 식으로 유통할지도 다 이야기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결론이 나왔다.
삼보컴퓨터는 유재원의 정식 저작권을 받은 타자 연습기가 '꼭!' 필요하다.
그러면 이제 계산은 간단해진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삼보 컴퓨터가 자신에게 제시한 대가가 정당한가를 따져 보기만 하면 된다.
"흠."
오늘 삼보 컴퓨터가 가져온 제안을 전체적으로 보면 아버지 유봉만의 2.5년치 연봉이긴 했다.
그런데 현물인 386 컴퓨터에 100만 원은 자신이 아니라 학교에 준다는 것이었고, 유재원의 몫은 200만 원이 전부다.
어째서 프로그램의 주인인 유재원보다 학교 몫을 2배나 많게 책정했는지 그림은 그려진다.
미루어 짐작하자면 교장 선생님을 지랫대로 쓰려고 했을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더 많은 지원에 욕심을 내서 유재원을 압박하도록 하는 거다.
어쨌든, 학교 몫을 빼면 딱 200만 원만 남는다. 남희에게 준 히트곡 하나 가격이다.
엄청나게 헐값이다.
재미있는 점은, 헐값이라도 삼보 컴퓨터의 제안은 전생에 유재원이 상대했던 대기업들에 비하면 상당히 신사적인 건 분명하는 거다.
이용권 부사장이 과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행태는 거의 사실이다. 유재원도 전생의 경험을 통해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가. 혹여 나중에 수습한다고 찾아오더라도 삼보 컴퓨터보다 좋은 조건을 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비교해서 낫다는 것이지, 그들의 제시는 유재원의 성에는 차지 않는다.
자신을 완전히 어린 아이로만 보고 왔다는 게 딱 드러난다.
“네, 알겠습니다. 집에 가면 고심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것이 생기면 교장 선생님께 전화드려도 돼죠?”
"물론. 언제든지 하거라."
유재원의 시원스런 대답에 교장 선생님은 어깨를 툭툭 쓸어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택시는 곧 학교에 도착했다.
유재원은 교실로,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로 헤어졌다.
꾸뻑 고개를 숙인 유재원의 인사를 손을 흔들며 받은 교장 선생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이셨다.
그런 교장 선생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재원은 이전에 가진 선입관을 수정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이었다.
전생의 기억이란 컴퓨터실 개방도 잘 안 해주는 자린고비 선생님이 전부였다. 실제로 유재원이 장관상을 받아 오기 전까지도 그랬다.
그런 교장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대화도 해보니, 전생의 기억과 달리 교육자 의식이 살아 있는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유재원의 부모님께 좋은 소리로 종용하면 당사자인 유재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바로 원하는 걸 얻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600만 원 상당의 이득보다 유재원의 의사를 더 챙겨주었다.
말은 쉽지 이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전생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돈이 얽히게 되는 일엔 상상도 못 할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
그중에서도 유재원의 사업을 망가뜨리고 땅에 처박게 한 것도 돈 문제였다.
대기업에서 돈으로 유혹하니 몇 년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싸그리 배신했다. 이에 반해 덕진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은 일단 소심한 짠돌이 기질은 있지만, 자기가 마음에 들면 가족처럼 아껴 주셨다.
예전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건, 그저 교장 선생님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커트라인이 무척이나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유재원은 장관상을 타면서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수정해야 할 사람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
앞으로의 계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의 평가는 모두 전생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의 경우처럼 기억과 현실이 맞지 않은 경우도 있을 거다.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 사람이 많이 있을 테니, 앞으로 기억만 가지고 결론을 내고 상대하는 건 조심해야겠다.
‘타자연습기의 임팩트도 핵폭탄 수준이고.’
한편으로 타자 연습기가 만든 후폭풍에 대한 계획도 새롭게 했다. 이렇게 인기일 줄은 몰랐다.
이런 예상을 못했으니 원래 계획에서는 그냥 자유롭게 풀어버릴 생각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케텔 같은 BBS를 통해 공개해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말이다.
이렇게 타자 연습기로 본인의 이름값을 높여놓은 다음, 묵직한 한 방을 통해 바로 한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뛰어오른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을 조금 느슨하게 잡은 건 회귀 시점 때문이었다.
시작을 12살로 맞춰 놨으니 적어도 어른들과 대등하게 대화가 되는 고등학교 때로 계획을 잡았었다.
물론 그때까지 노는 건 아니고, 본진인 부모님과 앞마당인 큰집이나 작은 집과 같은 친척들을 휘어잡아 기반을 닦아놓는 게 기존의 설계였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될 거 같은데.’
교장 선생님처럼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면 뒤늦게 시작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타자 연습기는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국가적으로 이제 막 컴퓨터가 보급되는 시점에서 어디에서나 필요한 소프트웨어였다. 학교는 물론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 직업군들, 심지어 우후죽순 생겨나는 컴퓨터 학원에서도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다.
킬러 소프트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했던 유재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보자!”
결정했다!
해보는 거다.
사업이란 돌다리를 두드리며 해야 할 때도 있고, 과감하게 돌진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분명 과감함을 선택해야 할 때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그리고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후원 쿠폰도 감사 감사합니다!!!
비축분 없이 연참을 해보려고 했는데, 참 어려웠네요. 대신 한 편에 듬뿍 담아보았습니다..
매번 이럴 수는 없겠지요.. 대신 앞으로 한 편당 최소 A4 3장 이상 분량을 담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