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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6화 (16/1,007)

[16] 도깨비 컴퓨터 ==============================

#15

아침 조회로 시작한 그 날.

교실로 돌아오자 담임 김경필이 또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아마 촌지를 받지 않고도 다른 아이를 칭찬하긴 처음일 것이다. 그만큼 장관상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일이 있었다.

내오마을 입구에 걸린 경축 플래카드였다. 등굣길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하교길에 떡 하니 걸려 있었다.

하단에 내오마을 일동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큰아버지 유봉철의 소행인 게 분명했다.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다 계셨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찍 보내주셨고, 어머니는 아예 출근을 쉬셨다.

유재원이 도착할 때 부모님은 불려놓은 쌀을 막 지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떡을 돌리신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던 거다.

학교에서 받아온 장학금을 드리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그런데 부모님은 봉투만 갖고, 안에 든 돈은 유재원에게 주었다. 용돈으로 쓰라는 거다. 세뱃돈을 받으면 바로 수거해서 대학교 갈 때 돌려준다고 하시던 부모님이 맞나 싶었다.

그 돈이 무려 3만 원이었다.

아버지 한 달 월급이 30만 원대였던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당연히 노래 팔아서 천만 원을 모아둔 유재원에게도 현금 3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체국에 든 돈을 찾으면, 부모님이 소문을 내는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온 동네에 소문이 날 거라고 확신한다.

이 시절에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은 희박하다 못해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높으신 양반들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시골 국민학생 통장에 1천만 원이 찍혀 있으면 잘못 들어온 돈인 줄 알고 난리가 날 거다.

아무튼, 통장에 있는 돈과 현금의 가치는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지금은 200원이면 온종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때였다. 그만큼 큰돈을 냅다 유재원에게 용돈으로 투척할 만큼 부모님은 흥분하셨다.

학교는 물론 온 동네도 난리였다.

유재원은 이 정도면 경진대회 우승에 대한 여파는 충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철저하게 박살 났다. 이 시대의 호들갑이란 유재원이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다음 날.

“응? 뭐야?”

“이거, 너랑 정현웅 선생님 맞지?”

류수경이 신문을 유재원에게 내밀면서 물었다.

뭔가 하고 보니 자신과 정현웅 선생의 모습이다. 나란히 서서 체신부의 김원중 부장으로부터 상패를 받는 모습이 신문에 떡하니 박혀 있다.

1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그만 기사도 아니다.

사회면에 올라갔는데, 무려 3단짜리 기사였다. 사진까지 붙어 있으니 준비해서 쓴 티가 확연히 났다.

“잉?”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기사를 읽어 보니 가관이다.

기사 초반에는 제3회 컴퓨터 능력 경진대회에 대한 이야기가 간단히 실렸다.

다음 단에서 바로 유재원이 등장했다.

국민학교 5학년이 중고생이나 보는 고등 경진대회에 등록한 것도 놀라운데, 거기서 엄청난 재능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다룰 수 있는 고등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컴퓨터 초보들이 쉽게 자판을 익힐 수 있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순식간에 만들어내 관계자들의 경악을 자아냈단다.

베이직이 고등한 언어라니.

고등 언어가 맞기는 하는데, 사람이 알아보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라서 고등 언어라고 하는 것인데, 기자는 수준이 높고 어려워서 고등 언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코드를 본 전문가들이 천재라고 단언했다.

후원사였던 삼보 컴퓨터에서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이나, 체신부에서 학교 전산실에 보급을 고려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수준이 높았다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어린 컴퓨터 천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체신부의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이 성공이 그 바탕에 있다고 했다. 체신부는 유재원과 같은 천재 한 명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많은 천재가 싹 틔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며 기사가 마무리되었다.

“아하.”

기사는 마지막이 중요하다.

마지막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이 기사는 자신을 이용해서 체신부의 교육용 컴퓨터 보급사업 홍보용이다.

그런데 신문을 보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류수경이었다. 신문을 가져온 그녀는 기사를 읽는 유재원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너 가져.”

그러더니 신문을 아예 가지라고 한다.

“나 주려고 챙겨온 거야?

“응? 아니. 친구가 신문에 나오는 게 신기하잖아. 나는 필요 없으니 너 가져.”

수경이 아버지가 보는 신문을 낼름 가져온 거 같은데 그래도 되나 모르겠다. 욕심이 나긴 했다. 유재원의 집은 신문을 안 봤다.

앞으로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나간다면, 이런 식의 기사들은 많이 나올 거다.

스크랩을 해두면 나중에 보기에 좋을 거 같다.

“확실히 기념될 물건인 거 같아. 챙겨줘서 고마워.”

“헤헤, 진짜? 나도 컴퓨터 살 거 같은데, 가르처 줄래?”

역시 진짜는 뒤에 나온다. 신기해서가 아니라 사심이 있었다.

"우리 엄마한테 사는 거지?"

사심엔 사심으로 맞불이다!

"그럼! 같은 반 친구니 당연히 그래야지."

“알았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수경이가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유재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초보에게 컴퓨터 가르쳐 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경진대회에서 선보인 타자연습기 하나 던져주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라고 하면 끝나는 거 아니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 천재 유재원에 대한 여파는 점점 커졌다.

집, 동네,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유재원을 컴퓨터 천재로 공인되었다.

학교에선 특권을 줬다. 컴퓨터실 열쇠였다. 방과 후, 학교 컴퓨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집에 훨씬 좋은 컴퓨터가 있는 유재원에겐 생색만 내고 효용은 하나도 없는 특권이다.

-유재원 학생, 교장실로 오세요.

점심시간 종과 함께 스피커에서 유재원을 찾았다.

“와, 재원이 니는 밥도 못 먹게 막 부르네?”

같이 도시락을 까먹으려던 주민이가 스피커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도때도 없이 불려다니는 재원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장관상도 이런 데, 나중에 대통령상이라도 받아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거 같네.”

“크. 대통령 사앙? 대통령이 니 친구냐? 그걸 막 나눠주게?”

“혹시 모르지. 암튼 다녀올게.”

도시락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유재원은 입만만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 보던 차네?”

교장실까지 가는 중에 못 보던 자동차가 주차된 것이 보였다.

시골 학교에서 자동차를 굴리는 선생님이라고 해봐야 교장과 교감, 그리고 몇몇 선생님에 불과했다.

다들 낡은 중고차였다. 미래 자동차가 최초로 국산 기술로만 만든 포니도 있고, 교장 선생님 역시 포니2였다.

주차장 안쪽, 교실과 제일 가까운 자리는 교장 선생님로 해서 연공서열 순으로 자동차들이 주차된 모습은 정물화처럼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제일 끝에 못 보던 차가 있었다.

그것도 대호 자동차의 로열 프린스로 시골에선 보기 힘든 중형 자동차였다.

결정적으로 서울 번호판이었다. 분명 저 자동차와 자신의 교장실 호출이 관련이 있을 거로 생각한 유재원은 잠깐 주차장으로 빠져 자동차를 유심히 살핀 후, 묘한 미소를 짓고는 교장실로 갔다.

똑똑똑.

교장실 문을 두드린 후, 들어오라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들어간 유재원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대뜸 인사부터 올렸다.

허세와 소심함이 공존하는 희한한 성격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평소에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양반이었다. 그런데 유재원이 장관상을 받은 후로 180도 달라져서, 유재원에게 온갖 것을 퍼주고 계시는 분이다.

장학금까지 내줄 것은 몰랐던 유재원도 아주 웃어른을 깍듯이 대하는 것처럼 받들어 모셨다.

교장 선생님도 또래 아이들답지 않은 진중하고, 인사성도 바른 유재원을 기특한 듯 보았다. 그의 입장에서 유재원은 갑자기 나타난 복덩이였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되었다.

몇 년 동안 별짓을 다 해봤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건 선생들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과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덕진 국민학교 졸업생 중에 장·차관, 아니 판검사라도 나왔다면 좀 달랐을 텐데,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교장의 시야에도 없었던 유재원이 튀어나왔다.

그냥 매일 같은 말만 올라오는 따분한 학교 일지에 출전 기록 하나 남기기 위해서 보냈던 경진대회였다.

거기서 장관을 받아왔다.

그로 인해 신문기사가 거의 모든 일간지에 나왔고, 자연스럽게 덕진 국민학교의 이름은 전국에 퍼졌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경진대회 관련해서 사람까지 내려왔다.

“인사드려라. 삼보 컴퓨터에서 오신 이용권 부사장님이시다.”

“안녕하십니까? 덕진 국민학교 5학년 5반, 유재원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배꼽 인사를 올리는 유재원이다.

“그래요. 늠름한 모습을 보니, 과연 경진대회 대상 수상자답군요.”

교장 선생님보다 10년쯤 젊어 보이는 이용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손님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놀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차장에 있던 반짝거리는 로열 프린스 자동차 안에서 삼보컴퓨터 마크가 떡하니 박힌 서류와 명함을 먼저 보았으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쿠폰 투적도 완전 감사합니다!

아참! 오타 지적도 감사합니다. 리플을 확인하는 즉시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많이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던 비축분이 어느덧 바닥이라는 겁니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한 편씩 올려드릴 수밖에 없을 거 같네요.

10년만 젊었어도 쉬지 않고 쓰는데, 이젠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약속드린 것처럼 주5회, 월~금 연재는 기필코 지켜내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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