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도깨비 컴퓨터 ==============================
#9
“네! 제 계산으로는 금메달은 12개.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10개 정도 딸 거 같아요.”
유재원은 대놓고 구체적인 숫자를 말했다.
메달을 10개쯤 딸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금은동으로 구체적인 숫자까지 말했다. 하지만 유재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양궁, 복싱, 유도, 탁구, 핸드볼과 레슬링에서 금이 나올 거예요!”
구체적인 종목까지도 지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그렇구나 하고 마는 수준이었다. 설마하니 아들이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메달 숫자를 정확히 예측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큼 확신에 쐐기를 박을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를 보고 우리 아들이 용하네 소리가 아니라, 우리 아들 예측이 기가막네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림 대중으로 내놓은 예측이 아니에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정확히 분석한 거예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컴퓨터 앞으로 부모님을 이끌었다.
컴퓨터는 미리 켜 놓은 상태였기에,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얼마 걸리진 않았다.
“프, 프로그램?”
타다닥 경쾌한 소리로 키보드를 두드린 유재원은 마침표를 찍듯 엔터키를 눌렀다.
명령어를 받아는 컴퓨터는 끼릭끼릭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더니 화면에 커다란 글씨를 띄웠다.
〈88 서울 올림픽 메달리스트 예측 프로그램〉
한글과 영어로 큼지막하게 띄워진 제목은 부모님에겐 뭔가 그럴싸해 보였다. 심지어 제목 밑으로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까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엔터키를 다시 한 번 누르자 화면이 바뀌어서 여러 나라의 이름이 떠올랐다. 올림픽에 참가한 나라들 중에 10위권에 들었던 스포츠 강국만 띄웠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부터 소련, 동독, 서독과 같이 21세기엔 사라진 나라도 있었고, 헝가리와 불가리아처럼 21세기에 들어 국제 스포츠에서 몰락한 나라도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 이게 뭐냐?”
“제가 만든 예측 프로그램이에요!”
유봉만이 봤던 영어만 잔뜩 띄워진 화면이 바로 유재원이 일일이 소스 코드를 입력하고 있던 화면이다.
사용 언어는 GW베이직.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중에서 익히기 쉬운 것에 속하고, 성능도 88년 수준의 컴퓨터를 다루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프로그래밍 능력 또한 회귀 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단순한 베이직은 물론이고 곧 대유행하게 될 C언어부터, 21세기를 선도할 차세대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익혔다.
“엉? 이 프로그람을 재원이 니가 만들었다고?”
“예! 여기 보세요. 제 이름이 떡 하니 있잖아요.”
유재원은 손가락을 화면의 하단을 가리켰다.
〈만든 사람: 덕진 국민학교 5학년 5반 유재원〉
부모님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화면에 뜬 건 분명히 아들 이름과 신상이었다. 유재원의 입에 미소가 돌았다. 부모님의 반응을 보니 반쯤 넘어왔음을 느꼈다.
“자 보세요. 이제 예측을 할 거예요.”
엔터를 딱 누르자 각 나라 이름 옆에 숫자 3개가 슬롯머신처럼 촤르륵 움직였다. 그러더니 금메달을 기준으로 소련부터 이탈리아까지 내림차순으로 정렬되었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12개로 위에서 4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 한국이 4번째네? 전체 4등한다는 거냐?”
“네!”
커서를 대한민국에 맞춰 놓고 엔터를 누르자 금메달을 따는 종목이 또 펼쳐졌다. 조금 전 유재원이 말한 양궁이나 복싱, 레슬링과 같은 종목들이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는 2000년대에 이 모습을 봤다면 시덥지도 않은 반응이 나왔을 거다.
미래 예측이란 슈퍼 컴퓨터를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상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88년도다.
이렇게 그럴듯한 컴퓨터 그래픽 화면에, 결과까지 적중한다면?
예측 프로그램을 믿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동시에 예측 프로그램을 만든 유재원의 존재감과 발언권도 한 차원 더 높아질 거다.
유재원의 노림수는 정확히 들어 맞았다.
개회 5일 후 있었던 레슬링에서 김영남이 소련의 투를리하노프의 목을 감아 돌리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을 신고했다. 다음 날에는 유도에서 금이 나왔다.
모두 유재원이 예측했던 그 종목이었으니, 부모님이 유재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아버지인 유봉만은 다음에 금메달이 나올 종목을 물어보고는 출근했고, 어머니는 역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들었다. 분명 유재원의 예측 때문일 거다. 더구나 올림픽 특수 덕에 텔레비전을 사려는 집이 늘어서 토요일임에도 주문을 받으러 나가셨다.
올림픽이 끝나고 대한민국의 금은동 메달 갯수까지 하나의 오차 없이 다 맞춘다면 어떨지 기대가 컸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자신의 회귀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대한민국의 금은동 숫자가 원래와 달라지는 거다.
대신 걱정의 크기는 미미했다.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 변수가 메달 숫자를 바꿀 가능성은 희박했다.
회귀한 다음 내오 마을을 떠난 적이 없었고, 미래의 히트곡이 담긴 테이프 6개를 가수들에게 보낸 게 전부였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지만, 유재원이 했던 것들은 나비 날갯짓 수준도 되지 못했다.
“뭐, 불안하긴 하니까 올림픽이 끝날 때까진 잠자코 있어야지.”
메달 숫자를 컴퓨터로 정확히 예측하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작은 변수로 인해서 변화가 생기면 큰일을 하기도 전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변수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타다닥.
그러면서도 유재원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화려하게 움직이며 경쾌한 소리를 만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베이직 언어의 소스 코드가 컴퓨터에 입력되었다.
당장 큰일을 시작하지 않지만, 완전히 손을 놓고 기다리는 건 유재원이 아니다.
예측 프로그램 다음으로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은 바로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다.
모니터에 키보드의 자판을 띄워서 기본자세부터 가르쳐 주는 것으로, 기본자리 연습부터 단어 연습, 단문과 장문 연습까지 할 수 있는 완전판 연습 프로그램을 베이직 언어로 열심히 짜고 있다.
전설적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었던 한메 타자연습기를 참고했음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오리지널을 넘을 수는 없었다.
AT 286컴퓨터는 물론이고 XT 8086컴퓨터에서도 구동되게 하려면 그래픽은 고사하고 텍스트로만 화면을 구성해야 했다. 게다가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베이직인지라 텍스트 모드인데도 화면 처리 속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한메 타자연습기 완전판에 적용된 것들은 모두 재현했다. 심지어 단어 연습을 게임화한 베네치아 구하기도 넣었다.
88년도 척박한 한국의 컴퓨터 업계에는 한글 타자연습용 프로그램은 없었다. 지금 유재원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떡 하니 나타난다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거다.
“흐흐. 국가 공인 컴퓨터 천재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아직 뚜겅을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유재원이다.
그래도 유재원은 지금 만드는 프로그램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다만 인터넷 통신도 없는 시대라서 배포가 문제인데, 이에 대한 방안도 유재원은 이미 만들어 놨다.
“아무튼,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게 먼저지.”
타자 연습기가 제대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유재원이 기세를 올리며 다시금 소스 코드 입력에 집중하려는 그때.
따르릉~, 따르릉~,
안방에 컴퓨터와 함께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하고 있는 전화기가 벨을 울렸다. 일부러 방해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날카로운 타이밍이었다.
유재원은 저장 명령어를 쳐서 이제까지 했던 작업을 저장시켰다. 전화를 받으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자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며칠을 밤새며 작업했던 리포트나 프로젝트를 예상치 못한 오류로 날려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패스브 스킬이다.
“여보세요? 유재원네 집입니다.”
따르릉 소리가 3번 지나기 전에 유재원이 전화를 받았다.
헉 하는 바람 잡아먹는 소리가 송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잠깐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이내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유재원 씨네 집이 맞습니까?
“네! 제가 유재원인데요. 누구세요?”
대답하는 유재원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 탓이다. 집에 주로 전화를 했던 지인들뿐만이 아니라, 노래 테이프를 보냈던 가수들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아, 유재원 씨 맞습니까? 그런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어리시네요?
변성기가 시작도 안 된 12살 목소리가 어린 게 당연하지, 뭘 새삼스럽게 또 상기시켜주고 그러나.
그런데 송화기 상대는 유재원의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뭔가 분주한 소리가 났다. 상대가 바꿔 앉은 듯한 느낌이다.
-여보세요? 유재원 님?
이번엔 여자였다.
동시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팡파르가 터지며 꽃가루가 날렸다. 워낙 독특한 목소리인지라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HD 보이스도 지원되지 않는 88년의 구식 구리선 전화기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목소리의 정체는 이성희.
첫 번째로 봉투에 넣었던 한바탕 웃음으로의 주인이다.
“이성희 가수님?”
-네! 맞아요! 저에게 보내주신 테이프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목소리만 들어도 제안이 성공이라는 건 딱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가자 기대했던 가수로부터 왔으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니죠?
“괜찮아요.”
-테이프를 동봉한 봉투가 팬레터에 섞여 있어서 어제 처음 들어봤어요.
유재원은 수신자 주소를 소속가가 아니라 가수의 집으로 했다. 이성희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섯 가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했다.
88년 연애 기획사를 21세기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영세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으면서도, 소속 가수들을 착취하는 덴 도가 텄다. 조직 폭력과도 연관되어 있을 확률도 매우 높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소속사를 통하기보다는 가수의 집에 직접 테이프를 보냈다. 그것도 널리 알려진 주소가 아니라, 소수만 알고 있는 실거주지로 보냈다.
가수니까 피아노 반주 하나에 아이 목소리로 담은 곡이라도 수준을 알아볼 거로 생각했고, 이성희가 응답했다.
감동은 여기까지.
두근거림을 가라앉히고, 목소리에 냉정함을 담았다.
돈 계산은 확실히 해야 한다. 줄 때나 받을 때나 예외는 아니다. 전생에 이걸 못해 크게 당했다.
이제는 아니다.
“네, 그런데 곡은 마음에 드세요?”
비즈니스 모드에 들어간 유재원은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기분 좋은 주말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