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도깨비 컴퓨터 ==============================
이번에도 6학년 선배가 친구들과 근처 방죽에 물놀이를 갔다가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개학을 딱 하루 앞두고 터진 불행한 사고였다. 한 가정의 큰 불행인데, 정작 학교는 이로 인해서 교육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더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제 6학년 하나가 친구들이랑 방죽으로 물놀이를 갔다가 익사했다.”
선배가 죽었다는 말에 교실 분위기가 단박에 암울해졌다.
유재원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어제 인명 사고가 있었다는 기억도 없었다. 그만큼 수십 년 전 기억이란 희미하다 못해 불안정한 것이었다.
“너희는 거기 절대 가지 마라. 거기는 물도 더럽고, 농약병이나 쓰레기도 많지 않으냐. 살아 나와도 피부병 걸려서 고생한단 말이다. 차라리 여 앞에 있는 금천으로 가라. 물론 거기서도 물놀이하다 걸리면 혼날 거다. 아무튼, 학교 차원에서 조의를 하기로 했으니, 내일 다들 500원씩 가져와.”
역시 결론은 돈이다. 아이들 반응도 떨떠름이다. 선배는 불쌍하지만, 돈을 가져와야 하는 건 별개였다.
“왜 대답이 없어?”
그러자 김경필 선생은 정신봉으로 교탁을 탕탕 두드리며 다그쳤다. 그제야 아이들도 네라고 크게 대답했다.
“자, 인사는 이것으로 되었고. 이제 여름방학 결산을 해볼까? 방학숙제 해온 거 있지? 꺼내서 책상 위에 두어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잠시 후, 5학년 5반 교실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2020년대 이후로는 교단에서 볼 수 없어진 사랑의 매가 아이들의 손바닥을 내치며 짝짝 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숙제는 총 다섯 가지.
숙제 하나를 안 해오면 3대를 때렸다. 최대로 많이 맞으면 15대나 맞게 된다.
그나마 담임선생의 기분이 좋으면 힘 조절을 하는 데, 오늘은 아니었다. 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컸다.
여자아이라고 차별을 두지도 않았다.
결국, 우는 아이가 나왔지만, 담임선생이란 작자는 ‘뭐 잘했다고 우냐’고 타박했다. 그렇다고 예외가 없는 건 아니었다.
“호식이는 아파서 방학 내내 입원했다고 했지? 다음에는 아프지 마라.”
강호식이 진짜로 아파서 예외로 넘어간 건 아니다. 용가리 통뼈처럼 튼튼하고, 덩치도 커서 아이들 괴롭히는 데 일등인 녀석은 아픈티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단지 호식이네 부모님이 학교에 종종 찾아와서 성의를 보여줬기에 가능했다.
이것이 1988년도의 교실 모습이었다.
짝궁 주민이도 손바닥에 9개의 훈장이 새겨졌다. 집이 부자이긴 한데, 부모님이 바빠서 유재원이 아니었으면 3개가 더 추가되었을 텐데 다행이다.
다음 차례는 유재원.
“손바닥 내.”
하도 숙제를 안 해오니 입에 붙으셨나보다. 하지만 유재원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다.
“뭐지?”
왜 손바닥을 안 내미냐고 짧게 물어보는 담임 선생에게 유재원은 담담히 데답했다.
“저는 숙제를 다 해 왔습니다.”
김경필 선생의 얼굴에 ‘네가?’라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순간 올라왔다. 곧이어 매와 같은 눈으로 유재원의 숙제를 살폈다.
일기는 빼먹은 날 없이 빼곡하게 쓰여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 날씨를 보았지만 틀리지 않았다. 김경필이 8월 중의 모든 날씨를 꿰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태풍이 불어온 날은 기억하고 있었다.
날씨 생각하지 않고 마구 쓴 아이들은 태풍이 온 날짜에 맑았다느니, 구름만 꼈다느니 써놓는데, 유재원은 정확했다.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 탐구생활 풀이도 아무렇게나 쓴 게 아니라 정답이었고, 채집 숙제도 빠짐이 없었다.
“음? 의외군.”
유재원이 펼쳐놓은 방학숙제 다섯 가지를 펼쳐 모두 검토한 담임의 소감은 이게 전부였다.
칭찬 한마디도 없다.
유재원 역시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촌지 받는 것 좋아하고, 이것저것 챙겨 주는 거 좋아하고 이걸 또 숨기지도 않는 담임이었다. 그런데 유재원네 집은 단 한 번도 담임을 찾지 않았으니, 칭찬의 말 같은 건 한 마디 안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유재원은 만족했다.
이전 개학 때의 모습과 지금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매타작도 없이 시작한 이번 학기는 혁명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덕진 국민학교는 매달 시험을 본다.
비평준화 지역이었기에, 원하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했던 탓이다. 지망하는 학교를 여러 개를 넣는 방식이라 시험을 망쳐도 중학교에 진학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원하는 학교에 가는 건 어려워진다.
동시에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는 학교와 취업 전선으로 직행하는 실업계, 농업계 학교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5학년 2학기쯤 되면, 각 학급의 담임은 본격적으로 공부할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전통이었다. 살짝 떠들기만 해도 매타작이 쏟아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연도에는 학습 분위기 만들기 실패했다.
국가적인 행사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인 행사인 88 서울 올림픽이 바로 오늘 개막하기 때문이다.
전국이 축제 분위기였다.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임시 휴일로 지정되어서 학교도 쉬었다. 유재원은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편하게 개막식을 볼 수 있었다.
“우와.”
12인치 흑백텔레비전이었지만, 현장의 감동을 전해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의 수많은 고등학생을 동원해 연출한 매스게임, 군인들로 이뤄진 태권도 시범단 등등. 죄다 인력을 쥐어짜 만든 퍼포먼스였지만, 보는 맛이 있었다.
이어서 전국을 돌며 올림픽 열기를 일으켰던 성화가 메인스타디움으로 들어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성화대에 불을 옮겼다. 식전 행사로 날렸던 비둘기 몇 마리가 성화대에 앉아 있다가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는 것이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코리아나라는 혼성그룹이 부르는 서울 올림픽 주제가도 감동적이었다. 조르조 모로더라는 거장이 작곡한 노래였다.
국내는 기타로 대표되는 포크송이 유행이었지만, 세계는 다양한 음악이 흥행 중이었다. 조르조 모로더는 신디자이어를 이용한 혁신적 일렉트로니카의 선구자였고, 손에 손잡고도 확실히 일렉트로니카의 명곡이다.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해서 싱글 앨범이 월드와이드 기준 1,700만 장이나 팔렸다.
명곡은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았기에, 21세기 감성을 가진 유재원에게도 착착 감겼다. 동시에 88올림픽 이후로 국내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인기를 끌게 된 건 분명 손에 손잡고의 영향도 분명할 것이다.
‘음악 하니까 생각났네.’
돼지 저금통을 털어 보낸 테이프 6개가 떠올랐다.
21세기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한 가수들에게 보낸 테이프에는 히트곡이 담겨 있었다. 밀려드는 팬레터에 섞여서 뜯어보지도 않았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만약 들어 봤다면 분명 연락을 하지 않고 못 배길 그런 곡이다.
‘테이프 받은 가수들은 왜 아직도 잠잠하지?’
그런데도 아직 한 명도 연락이 없다.
‘진짜 단체로 먹튀한 건가? 아니면 올림픽 때문에?’
가수라고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것도 아니면 설마, 퇴짜를 맞은 건가?’
1:1의 안성맞춤으로 그들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줄 노래들이었지만, 12살 아이의 목소리로 불렀으니 뭔가 어색했을 거다.
나쁜 쪽으로 상상하면 끝이 없다. 일단 올림픽 때문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동시에 88 서울 올림픽 또한 유재원에게도 기회였다.
제가(齊家)의 선결 조건은 가족들에게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도 찰떡처럼 믿을 만큼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선산을 엿 바꿔 먹는 삽질도 막고, 한 바가지 퍼내면 사라질 집안과 가문의 재산도 눈덩이처럼 불려낼 수 있다.
“아부지,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딸 것 같아요?”
텔레비전에 집중하던 유봉만은 아들내미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유재원만 보면 웃음이 나는 유봉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방학 끝날 때부터 뭔가 달라진 아들은 개학하고서도 변함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더니, 학교에서 치르는 쪽지 시험에서 매번 100점을 받아 왔다.
월말에 있는 모의시험의 성적표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부풀었다. 모의시험 점수도 이렇게만 받아오면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해도 아무말 하지 않을 거다. 뭐, 요즘은 컴퓨터를 해도 게임이 아닌 무슨 뜻인지도 모를 영어가 화면 가득 오는 걸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하지말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아무튼, 아들의 질문에 유봉만은 필사적으로 정확한 예측을 하려 했다.
“흠, 저번 미국 올림픽에서 6개를 땄지? 그러면 이번엔 안방에서 하는 대회니까 8, 9개쯤 따지 않을까 한다만.”
가물거렸던 84년 LA 올림픽 기록까지 고려해서 그럴듯한 숫자를 만들었다.
“엄마는요?”
“음, 엄마도 아빠랑 같이 8개쯤 따지 않을까 하는데. 우리 재원이 생각은 다른 모양이네?”
말을 이어가던 김말숙은 히히 웃고 있는 아들 유재원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