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화 (5/1,007)

[5] 준비된 회귀자 ==============================

#4

“1988년. 변변찮은 우리 유(柳) 씨 가문에도 볕이 들어올 뻔했던 해였지.”

유재원이 신과의 거래에서 회귀의 시점을 아무런 이유 없이 1988년으로 잡은 건 절대 아니다.

전생에서 유재원의 집이나, 친척들은 일명 흙수저 집안이었지만, 분명 반등의 기회는 있었다.

단지 작은 행운을 큰 행운이라 착각해서 다음에 올 대박을 놓쳐버렸을 뿐이다.

“특히 우리 선산이 결정적이었지.”

큰아버지나, 다른 친척분들이 명절에 모여, 술이 얼큰히 들어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레퍼토리가 바로 선산이었다.

선산을 두고 외지인이 와서 산과 산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해왔다.

외지인이 제시한 산은 완만해서 묫자리 쓰기에도 좋았고, 대지 면적도 훨씬 넓었다. 반면 유씨 집안이 가지고 있던 선산은 악산이라고 할 만큼 험해서 묫자리가 얼마 없었고,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좀 멀었다.

당시만 해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순 계산으로 땅값만 따져 봐도 외지인이 제시한 산이 20% 정도 높았다. 더욱이 외지인이 조상님들 이장 비용까지 대겠다고 하니 순식간에 찬성으로 결정이 났다.

상대가 좋은 조건을 제시할수록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순박한 시골 어르신만 모여 있는 유씨 집안은 그런 판단을 할 사람이 드물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팔아버렸던 산에 터널이 뚫렸다.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지방의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사업이 발표되면서 수용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팔아버렸던 선산은 알고 보니 희귀한 약초나 버섯은 물론, 산삼까지 나오는 산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 외지인으로부터 받은 산은 유재원이 죽을 때까지, 평범한 산으로 남았다.

이 거래가 일어난 시점이 바로 1988년 겨울의 일이다.

“외지인과 선산을 못 바꾸도록 해야 하는데. 문제는 내 신용인가.”

선산 말고도 논과 밭을 비롯해 약간의 토지가 있었다.

이것도 잘 가지고 있었으면 꽤 돈이 되었을 텐데, 대부분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그걸 막기 위해 당장 큰집으로 가서 말을 해 봐야 큰아버지나 친척분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실 것이다.

12살 꼬마의 발언권은 그만큼 미미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그림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

두꺼비를 닮았던 외지인을 보면 딱 답이 나온다.

유씨 집안 어르신들은 두꺼비에게 헌 집을 주고 새집을 산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두꺼비 닮은 외지인이 유씨 집안 선산을 바꿔가며 퍼줄 수 있었던 건 절대 손해를 보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산을 지나는 터널과 도로가 뚫린다는 정보나, 선산에서 귀한 약초와 버섯이 나온다는 걸 알고 찾아 왔을 거다.

이방인처럼 정보를 선점한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헐값을 주고 선점하는 것이다. 권력과 그 주변의 측근들이 가장 손쉽게 부를 쌓는 방법이다. 그러니 원주인이 특수를 맞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일단 내 존재감부터 키우는 게 첫 번째다.”

회귀 계획에서 수신(修身)을 괜히 첫 번째에 놓은 게 아니다. 앞으로 큰일을 하기 위해선 본인의 존재감부터 달라져야 했다.

유재원은 눈을 감았다.

인피니티 드림이 사라지고 난 머릿속 공백을 수많은 지식과 데이터가 거대한 궁전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명 기억의 궁전이다.

1980년대부터 2040년대까지 연대기는 물론 수많은 제조법과 기술 표준, 심지어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까지.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다.

아쉬운 점은 사람의 뇌가 컴퓨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처럼 인덱스를 만들고 검색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유재원은 기억의 궁전이라는 로마 시대로부터 전해진 기억술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사실 1988년에 대해서라면 하도 상상을 많이 해서 중요한 대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큰 국가 이벤트로는 9월 17일에 개막식을 하는 서울 올림픽이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 들썩일 만큼 커다란 행사였다.

텔레비전을 틀면 서울 올림픽에 관한 뉴스가 빠지지 않는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종전에 대한 이슈라던가, MBC 역사상 첫 파업을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눈과 귀는 죄다 다음 달 있을 서울 올림픽에 가 있었다.

유재원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다.

엄청나게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올림픽 뉴스는 다른 정치나 시사, 심지어 물가 뉴스보다 집중해서 보았다.

유재원 역시 서울 올림픽을 그냥 놓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디테일도 놓칠 수가 없으니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 서울 올림픽에 대한 완벽한 기록을 보고 나오려는 것이다.

“토토라도 있었으면 대박이었는데.”

대한민국의 금·은·동메달리스트의 이름은 물론 인기 종목의 기록을 정리해 286 컴퓨터로 옮기던 유재원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

정부가 공인한 토토는커녕, 사설 토토도 없는 시대였다.

잘 찾아보면 배팅을 하는 곳이 있겠지만, 100이면 100, 주먹이 뒤에 있을 것이다. 푼돈을 따고 나오는 건 몰라도 거금을 따고 나올 수는 없다.

더욱이 80년대는 조직폭력의 전성시대였다.

대낮에 젊은 아가씨들을 승합차로 유괴해서 술집이나 집창촌에 팔았다는 기사가 종종 나올 정도였다. 조만간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싹쓸이에 나설 테지만, 아직은 조폭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더욱이 유재원은 조폭을 탄압했으면 했지, 이들과는 죽을 때까지 어울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컴퓨터에 옮겨지는 자료는 딱 부모님에게만 사용하고 말 것이다.

자료 입력뿐만이 아니라 간략한 메모도 추가해 놓았다.

그렇게 끝낸 유재원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켜며 굳었던 근육을 풀었다.

“좋아.”

지금 입력된 몇 줄 안 되는 글귀는 부모님, 여기서 딱 한발만 더 나아가 유씨 집안을 8, 90년대의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반석에 올려놓을 천금과 같은 시나리오다.

회귀 전부터 준비했으니 그 완성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유재원은 키보드를 조작해 저장하기 단축키를 눌렀다. 그러자 새로 작성한 문서이니 파일 이름을 입력하라는 문장이 떴다.

윈도우 운영체제처럼 미려한 메시지 박스가 친절하게 뜨는 게 아니라, 화면 맨 아래에 투박한 문장으로 뜨는 것이지만 기능은 똑같다.

“파일 이름? 음…….”

순간 유재원은 당황했다.

인피니티 드림을 판 대가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회귀했고, 톱니바퀴와 같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수많은 단기, 장기 계획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회귀 후 첫발을 내딛는 작은 계획표에 딱히 정해놓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상기되었다. 다행히 치명적인 실수도 아니었고, 해결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굳이 제목을 붙여준다면, 도깨비 컴퓨터라고나 할까.”

1988년으로 회귀를 결정할 때에 고려된 수많은 요소 중에는 선산도 있었지만,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은 컴퓨터다.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유재원은 컴퓨터를 도깨비방망이 삼아 대업을 시작해 볼 심산이다.

작성된 문서는 이렇게 도깨비 컴퓨터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었다. 혹시 몰라 플로피 디스크에도 백업 파일을 만든 유재원은 컴퓨터를 껐다.

이제는 발로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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