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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610화 (610/628)

외전 9화

레오나 다음으로 도착한 건 스녹, 엘레나, 윌위스, 피나였다.

스누위크 마법사들 몇몇과 함께 온 그들은 레오나와 엘프 일행처럼 몰려든 군중에 당황하지 않았다.

환호성과 함께 환영을 받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들은 얼마간만 대중들과 어울려준 다음 능숙하게 대중의 무리를 빠져나왔다.

유라스에서 교황, 성녀와 인사를 한 그들을 지크와 라일라가 찾아왔다.

“스승님!”

“스승님!”

스녹과 엘레나가 동시에 외쳤다. 둘은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각자 지크와 라일라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자신의 스승을 보고 똑같이 반응한 스녹, 엘레나와는 달리 지크와 라일라의 반응은 달랐다.

“오랜만이구나, 엘레나!”

라일라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엘레나를 반겼다.

“징그럽게 뭘 그리 달려오냐.”

반면에 지크는 달려온 스녹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타박했다. 하지만 그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달렸다.

쿠우!

“오, 노웸. 너도 잘 지냈냐?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조금 살이 찐 것 같은데?”

쿠?

화들짝 놀란 노웸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엘레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라일라도 노웸을 바라봤다.

“정말? 환수도 살이 찔 수 있나? 그건 처음 듣는 정본데.”

라일라의 시선이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 섞인 그것으로 바뀌었다. 노웸이 몸을 떨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시선이었던 까닭이다.

자신을 보며 온갖 실험을 해보고 싶다 하던 마법사들의 눈빛이 딱 저랬다.

“어라? 정말 그런가요? 전 곁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요.”

엘레나마저 비슷한 눈빛으로 변하는 걸 본 노웸은 결국 입을 벌려 외쳤다.

쿠!

그리고 스녹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스녹의 가슴께가 꿈틀거리다가 곧 잠잠해졌다.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동안 절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노웸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장난은 그만해 주세요. 노웸이 무서워하잖아요.”

“하하하, 이 녀석은 환수 주제에 너무 겁이 많아. 이 정도 장난으로 이렇게 겁을 먹다니. 그렇지 않아?”

지크가 껄껄 웃으며 라일라와 엘레나에게 말했다.

“장난?”

“장난이요?”

“…음, 역시 마법사란 인종은 상상을 초월하는군. 노웸 잘 지켜라, 스녹.”

“…제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마탑이거든요? 정말 잘 지킬 수 있을까요?”

“그러지 않으면 네 친구가 예쁘게 조각날 뿐이지.”

쿠!

스녹의 가슴께가 크게 꿈틀거렸다. 소리를 들어보니 앞발로 스녹의 가슴을 톡톡 때리는 것 같다. 자신을 잘 지키라는 신호였다.

“하하, 농담이야, 노웸. 내가 그럴 리 없잖니.”

“맞아. 스승님이랑 장난 한번 친 거야.”

쿠우?

라일라와 엘레나의 말에 노웸이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에게서 아까의 위험한 눈빛은 사라져 있었다.

노웸은 안도의 한숨을 한 번 쉬고, 그러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경계는 유지한 채 스녹의 어깨 위로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스녹의 품으로 뛰어들 준비는 갖춘 채였다.

“너무 놀려 먹었으려나?”

엘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라일라를 만나 흥분한 상태다 보니 조금 더 짓궂게 군 감이 있었다.

“쯧쯧, 그러니 정도를 지켜야지. 재미있다고 그렇게 놀려 먹으면 노웸이 얼마나 놀라겠느냐.”

스녹, 엘레나와는 달리 느지막이 일행에게 다가온 윌위스가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노웸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으셨죠.”

“내 나이가 얼만데 환수 한 마리에 얽매이겠느냐.”

윌위스가 노웸을 쳐다봤다. 노웸은 마치 구원자를 보는 것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윌위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곧 윌위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머무르자 저도 모르게 털을 쭈뼛 세웠다.

“환수의 해부 따위 젊었을 적 몇 번이나 해보….”

쿠우우!

노웸이 다시 스녹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덜덜덜 떠는 것이 스녹의 옷에 그대로 표현됐다. 그 후, 노웸이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드웨인 님도 상당히 짓궂으십니다.”

“허허, 가벼운 농담일 뿐이었는데 그렇게 놀라다니.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네. 저 녀석 정말로 환수 맞나? 어디 밭에서 발견한 두더지 하나 데리고 온 거 아니지?”

쿠우우!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테이블 위에서 쿠키를 갉아 먹고 있던 노웸이 큰 소리로 항의했다.

“응? 뭐냐. 이 대마법사인 윌위스 드웨인 님과 한판 해보겠다는 게냐? 네가 아무리 대지의 환수라 해도…엇! 이 녀석이!”

자신의 찻잔으로 달려온 노웸이 쿠키가 잔뜩 묻은 앞발로 찻물을 첨벙거리자 윌위스가 기겁했다. 노웸은 윌위스를 보고 혀를 한 번 길게 내밀더니 순식간에 스녹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축축해.”

노웸의 발에 묻은 찻물 때문에 축축이 젖은 앞섶을 보고 스녹이 한숨을 쉬었다.

“스녹! 당장 그 빌어먹을 두더지를 내놔라! 환수든 뭐든 내 그놈을 확…!”

“그만 좀 해요, 할아버지!”

자신도 스녹에게 장난을 치긴 했지만 윌위스의 행동은 좀 망신스럽다 싶었는지 엘레나가 윌위스의 팔을 잡고 말렸다.

못마땅한 눈으로 스녹의 앞섶을 쳐다보는 윌위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노려본다 해도 스녹의 앞섶이 찢어지는 일은 없었고 노웸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끄응.”

결국 윌위스는 포기했다. 쿠키 부스러기가 둥둥 뜬 채 약 삼분의 일 정도 내용물이 밖으로 튀어버린 찻잔을 보고 몇 번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정말로 진지하게 성을 낸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곧 신색을 회복했다.

“그래, 잘 지냈나?”

지크와 라일라를 보며 그가 묻는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냈습니다.”

“지금도 그 착한 일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나?”

“물론이죠.”

“나쁜 놈들 여럿 울렸겠군.”

“피해자들의 울분을 풀어줬다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것으로 해두지.”

어차피 나쁜 놈들 작살 내는 것에는 윌위스도 반대하는 건 아니니,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드웨인 님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스누위크에 돌아가 연구실에 처박혀 있었네. 자네와 함께 싸운 마지막 전투가 좀 인상 깊었어야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쌓아 온 윌위스에게도 그런 전투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늙었다지만 그도 엄연한 마법사.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그런 존재다. 당연히 마음속에서 끓어오른 호기심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크와 헤어진 후 그는 스누위크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 바로 처박혔다.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아직이네. 하지만 무척이나 즐거웠지. 말년에 아주 좋은 놀 거리를 찾아냈어.”

그렇게 말하며 윌위스는 껄껄 웃었다. 그의 모습은 분명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 외에는 엘레나와 스녹을 가르치며 지냈네.”

“엘레나에겐 당연히 마법을 가르치셨을 테고 스녹에게 마력 제어 말고 다른 것도 가르치셨습니까?”

“힘을 다루는 것에는 별달리 가르칠 게 없었네. 나와는 유형이 다르기도 하고, 그나마 누구나 가르칠 만한 기초는 자네가 잘 잡아놨으니까. 내가 가르친 건 마탑의 역사나 특유의 예절 같은 것들일세.”

윌위스는 스녹과 엘레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드웨인가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알아 둬야 할 것이 있으니까.”

“아, 역시 그렇게 됐군요.”

스녹과 엘레나가 가볍게 얼굴을 붉혔지만 지크와 라일라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헤어지기 전부터 둘이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래도 엘레나가 좋다니 어쩔 수 있겠나.”

윌위스가 스녹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렇다고 그가 스녹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신분이 높고 능력이 좋은 자라 하더라도 엘레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라면 그는 공평하게 막 대했을 것이다.

“저, 저, 저거 보게. 제 남친 욕 좀 했다고 할아비에게 눈을 부라리기는. 자네도 아이를 낳는다면 각오해두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부모든 할아비, 할미든 저렇게 표독스럽게 대한다네.”

“아, 할아버지!”

“귀 안 먹었다, 인석아.”

투덕거리는 조손을 웃으며 쳐다보던 지크가 스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마탑에서의 생활은 괜찮냐?”

“네. 다만 너무 고급스러운 생활이라 잘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그런 걸 누릴 자격이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마라.”

스녹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민할 만한 일이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네 입장에서야 엘레나와 사귀어서 그런 생활을 하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너는 혼자서도 충분히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어.”

드래곤 슬레이어, 밸리드 토벌자라는 명성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대지의 환수 노웸의 계약자인 그는 실력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수준이다.

괜히 회귀 전 대지의 폭군이라 두려움을 받으며 나라 하나를 기울게 한 게 아니다.

당장 어느 국가에 투신한다면 높은 신분을 약속받을 수 있다. 특히 그와 지크에 대해 잘 아는 나라면 나라일수록 보장받을 신분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편안하게 생각해. 무엇보다 아무리 독립했다고 해도 넌 내 제자 아니냐. 뭐 하나 꿀릴 것 없어.”

스녹은 웃었다. 저 오만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도 오랜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그의 스승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것참, 일개 개인이 스누위크 마탑의 명문가인 우리 드웨인가와 맞먹으려 들다니. 그래도 뭐라 말할 수 없다는 게 또 굉장하군.”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윌위스라도 지크의 저 자신감 넘치는 말이 허풍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저번 밸리드의 총단에서 본 지크의 무력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러고 보니 피나 어쿠스와 같이 오셨더군요.”

“이번에 드래곤의 사체를 카르위먼에서 부탁하지 않았나. 그 아이에게도 사체의 일부분이 있으니 데려와야지.”

“사이가 제법 나아진 모양입니다.”

“애초에 우리 학파와 녀석의 학파가 벌어진 이유가 마탑의 반란이 아니던가. 두 쪽 다 잘한 게 없으니 서로 원망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개인적 감정은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고 그 녀석도 떨어진 학파의 명예를 회복하는 걸 우선으로 뒀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네. 자식 잘못 키운 내가 뭐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데면데면한 사이 같던데요.”

“그건 원래 그랬네.”

그렇다면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엘프 그 녀석이 먼저 와 있다고 하던데.”

“축제를 즐기러 갔습니다. 도시에 온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더군요.”

“아직 축제는 열리지도 않았지 않은가.”

“하지만 즐길 거리 자체는 지금도 꽤 많이 있죠. 일찌감치 문을 연 가게가 많으니까요.”

“하긴, 그렇다면 충분히 거기 빠져 있을 녀석이지.”

그렇게 대답한 윌위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늙은이는 빠져 주겠네. 여행을 같이한 젊은이들끼리만의 대화도 필요하겠지. 난 적당히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테니 밀린 이야기라도 나누게나.”

그리고 윌위스는 방을 나섰다.

남은 네 명은 서로의 근황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져 있던 시간이 절대 짧지 않았기에 화제는 무궁무진했다.

도란도란 나눠지는 얘기 속에 간간이 웃음보가 터진다.

오랜만에 만난 두 쌍의 사제들은 그렇게 한참을 얘기를 나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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