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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608화 (608/628)

외전 7화

“꽤 태연하네? 별로 걱정 안 돼?”

“걱정 될 게 뭐 있겠어. 애초에 저딴 놈이 라라에게 뭘 할 수 있지? 라라와 여행한 기간은 짧았지만 녀석에겐 충분한 교육을 베풀었어. 고작해야 자기 전 약혼자 한 명 때문에 몸이든 마음이든 고생을 하리라곤 생각되지 않아.”

“하긴, 라라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돼 있었지.”

“몸은 가문에서 한 훈련으로, 마음은 그렌 제너드에 의한 마음고생으로 말이야.”

“제너드가 도움이 되는 때도 다 있구나.”

“놈이 아무리 멍청한 놈이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공적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어. 그게 아무리 악의가 가득 들어찬 행동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굳이 그 공적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설혹 라라가 살짝 마음고생을 한다고 해도 옆에 한스가 붙어 있을 테니 잘 위로해 주겠지.”

“설마 헤어지진 않았겠지?”

말을 꺼내긴 했지만 헤어지기 전 둘의 모습을 떠올린 라일라는 바로 의견을 철회했다.

“아니, 그럴 리 없지.”

“뭐, 진짜 안 좋은 일이 겹치고 겹쳐서 최악의 사태가 된다고 해도 그 때는 내가 나서면 그만이야.”

지크는 옆에 세워 놓은 윈두르를 툭 하고 건드렸다.

“공작가든 왕국이든 뒤집어 놓으면 그만이니까.”

“그라셰인이 허튼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니, 그건 불가능할 것 같고, 한스와 라라가 예상대로 강한 마음과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 걸 기대하는 게 좋으려나.”

“어느 쪽이든 한스와 라라가 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야. 그 전까지는 생각 말고 푹 쉬자고. 애초에 축제에 초대받았을 때 한껏 즐기려고 온 거잖아?”

“그랬지!”

이래 봬도 지크든 라일라든 이번 축제에 상당히 기대를 하는 상황이었다.

지크는 의자에서 일어나 라일라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라일라도 자연스레 지크에게 밀착하며 입을 열었다.

“뭐부터 해야 할까?”

“아직 축제에 어떤 것들이 나올지 모르니 축제가 열리고 봐야지.”

“맛있는 것들은 많이 나오겠지?”

“그건 당연할 거야. 축제의 규모가 규모다 보니 이번에 한밑천 챙기려고 다른 지역에서 상인들이 많이 올라올 게 뻔하니까. 노점상 같은 것들도 많이 생길 거고.”

“그럼 일단 음식 탐방부터 해야겠어. 한곳에서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맛보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맛있는 것들은 대량으로 쟁여놔야지.”

마법 상자라면 음식들을 따끈따끈하게 오래도록 유지시켜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먹는 거야.”

“그거 좋지. 거기에 좋은 술을 첨가하면 더 좋고.”

“기념품 같은 것들도 둘러봐야지. 액세서리 같은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거야.”

“이걸로는 부족했어?”

지크가 라일라의 왼손을 매만졌다. 그녀의 약지에 단단한 반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거랑은 다르지, 멍청아.”

“역시 그런가?”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대고 웃었다.

“아, 음유시인들의 노래도 들어야겠네.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힘의 용사의 무용담이 갱신됐을 수도 있으니까.”

“…….”

지크의 웃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마도의 용사의 무용담도 찾아볼까?”

“좋을 대로 해. 하지만 내 장담컨대 위대한 영웅 지크의 무용담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을걸? 부디 마도의 용사의 무용담을 부르는 음유시인을 찾기 전에 영웅 지크의 무용담을 조금이라도 덜 듣기를 기원할게.”

“…….”

아무래도 이 화제는 압도적으로 라일라가 유리하다보니 천하의 지크도 뭐라 대꾸할 말이 궁했다. 그 모습을 보며 라일라는 크게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잡담을 나눴다. 그 동안에도 두 사람의 손가락은 꽉 얽혀 있었다.

* * *

웨즈컬은 유라스를 나와 자신의 숙소에 돌아왔다. 축제의 협력자이긴 하지만 카르위먼은 웨즈컬을 비롯한 협력국의 사람들에게 유라스에 방을 내주진 않았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웨즈컬은 그게 불만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같은 고귀한 이에게는 유라스 안에 방을 내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교황과 성녀가 자신의 약속을 깼다. 바로 지크란 이의 방문 때문에.

지크.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밸리드의 토벌자로 이름 높은 자. 그의 명성은 사건이 있던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던 미프틸 왕국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웨즈컬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신경질적으로 웨즈컬이 내뱉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한 명의 사내였다. 웨즈컬과 동년배로 보이는 그는 웨즈컬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 당신이었군. 실례를 했소.”

상대의 신분이 낮지 않은지 웨즈컬이 사과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어조도 태도도 사과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무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웨즈컬의 행동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일단 앉으시구려.”

웨즈컬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자 사내는 선선히 그 명령을 따랐다.

“신전에 갔다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얘기는 잘됐습니까?”

“잘되고 안 되고 할 게 뭐 있겠소. 이미 대부분 조율된 이야기를 확정하러 갔을 뿐인데 말이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교황과 성녀에게 확인을 받았다면 그들도 말을 바꾸진 않을 테지요.”

“교황에게 확인은 받았지. 하지만 성녀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소.”

사내가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번 약속은 교황과 성녀, 두 사람과 잡힌 게 아니었습니까?”

“약속으로는 그랬지. 하지만 성녀는 나오지 않았소.”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다니. 그놈들이 밸리드 좀 처단했다고 감히 대미프틸 왕국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죠!”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얼굴이 조금 벌게지는 것이 사내가 상당히 성이 난 모양이었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눈에는 웨즈컬을 조금 타박하는 낌새까지 있었다.

그렇게 무시를 당하고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얌전히 돌아왔냐는 것이었다.

“그러진 않을 거요. 아무리 카르위먼의 명성이 올라갔다고 해서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하진 못하지. 이번 취소는 어디까지나 우리도 동의를 했던 조건 아래서 행해진 것일 뿐이오.”

“동의라 하시면….”

“지크.”

사내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 슬레이어 지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놈이 하필이면 내가 찾아간 시간대에 유라스를 방문했소. 교황과 성녀는 이미 정해진 약속대로 그의 대우를 우선했지. 그렇다 해도 교황은 잠시 약속을 미뤘을 뿐 나를 만나 회담을 했소. 그 정도면 우리 미프틸 왕국을 무시한다고 볼 순 없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자신들이 무시당한 게 아니라는 걸 알자 사내의 분노가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호기심이 채웠다.

“혹시 지크란 자를 만나 보셨습니까?”

“만났소. 회담이 끝나고 유라스 안에서 무작정 기다렸지. 운이 좋아 이야기를 끝내고 성녀와 나오는 그를 만날 수 있었소.”

“어땠습니까?”

“글쎄. 잠깐 이야기를 나눈 걸로 뭘 자세히 알 수 있겠소. 다만, 무척이나 버릇이 없는 자인 건 확실한 것 같더군.”

웨즈컬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자가 공자님에게 무례를 범했습니까?”

“활약상을 들려 달라 했더니 바쁘다고 단칼에 거절하지 뭐요.”

“뭐 그리 버릇없는 놈이…!”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사내가 화를 냈다.

“태도가 그따위인 것을 보니 소문이 한참은 잘못된 모양입니다! 웬 건달 같은 놈이 그리 칭송을 받는 존재가 되다니!”

“내 생각도 그대와 같소. 내 말하지 않았소. 그 아니, 그들의 명성은 무척이나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마치 거짓된 세상에서 자기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 자라도 되는 양 웨즈컬은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그의 실력이 뛰어난 건 의심할 바 없을 거요. 전설의 드래곤을 잡은 것도 밸리드를 토벌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 내 그 점은 인정하리다.”

마치 자신이 대범한 사람이라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는 아이를 칭찬하는 것 같은 어조로 ‘지크의 공을 인정했다’.

“하지만 시중에 퍼진 것처럼 무슨 전설의 영웅마냥 강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소. 지금껏 드래곤과 밸리드를 토벌한 인물이나 세력이 나타나지 않은 게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오? 내 여태껏 어떤 이가 혹은 어떤 세력이 드래곤과 싸우다 실력이 달려 패퇴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 했소. 당연하지. 싸울 드래곤이 없었으니까. 밸리드도 마찬가지요. 그가 밸리드의 뿌리를 뽑아 버렸다고는 하지만, 지금껏 밸리드와 싸워 승리를 얻은 이가 어디 그뿐이오? 아니, 밸리드의 지부를 발견하는 즉시 그게 카르위먼이든 우리 밀프티 왕국이든 다른 나라든 단숨에 쳐들어가 깨부쉈지. 놈들의 뿌리를 뽑지 못한 건 어디까지나 놈들이 무척이나 잘 숨어 있었기 때문이오!”

웨즈컬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드래곤이 일반 몬스터처럼 존재했다면 우리 왕국도 드래곤을 잡았을 것이오. 밸리드의 총단을 알고 있었다면 단숨에 그 존재를 지워버렸을 것이오. 즉, 저 드래곤 슬레이어 혹은 밸리드 토벌자라 이름 높은 이들은 실력이 좋아서 저런 명예를 얻은 것이 아니오. 운이 좋아서지. 명성을 높일 적들과 마주칠 운!”

“분명 그렇습니다!”

“물론 밸리드 놈들이 브로드스탁 제국과 주변 몇 나라를 멸망시킨 건 사실이오. 그만큼 놈들의 저력이 커다랬던 것 또한 사실이지. 하지만 내 듣기로 브로드스탁 제국은 자만에 빠져 상비군만을 동원해 밸리드 놈들을 치려 했다 들었소. 아무리 밸리드 놈들이 들키기만 하면 주변 세력에게 목이 달아나던 놈들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저력은 있던 놈들이 아니오. 게다가 그곳은 총단, 즉 놈들의 본거지였지. 그런 곳을 치는데 자만에 빠진 병력을 보내다니. 전멸당하는 게 당연하지.”

“제국의 어리석음이 절로 느껴지는군요.”

“그렇게 상비군을 말아먹었으니 역으로 밀고 들어온 밸리드의 총공격을 막지 못한 거요. 몬스터와 언데드들을 부리는 놈들인 만큼 지배 영역을 넓히면 넓힐수록 전력이 늘어났을 게 뻔하오. 그 힘으로 주변국까지 멸망시켰던 거고. 하지만 놈들의 한계 또한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소. 시간이 지나 기습의 효과가 사라지고 경악한 나라들이 연합하자 그 불어난 전력도 결국 막혀버린 것으로 말이오.”

“지당하십니다.”

“즉, 지크란 이를 포함한 드래곤 슬레이어와 밸리드 토벌자. 그리고 밸리드와 드래곤. 이들 모두의 전력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오.”

“공자님의 생각이 분명 맞을 겁니다.”

“어쨌든 전설의 드래곤을 격퇴하고 세계의 악인 밸리드를 토벌한 건 사실이니 그들의 명예를 함부로 폄훼할 생각은 없소. 하지만 운 좋게 드래곤, 밸리드 총단과 가까이 있었단 이유만으로 저들이 그 과한 명예를 갖게 되었다는 것에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 또한 거짓말이겠지.”

웨즈컬은 음습하게 웃었다.

“그러니 우리도 저들과 비슷한 명예를 얻긴 해야 할 거요.”

“공자님이라면 분명 그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대의 조력이 필수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제가 여기 온 건 그를 위해서니까요.”

“내가 한때 라라 브라우닝과 약혼한 사이였다고는 하나 지금은 아니오. 때문에 그녀에게 뭐라 요구할 수는 없지.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아무리 그녀가 가문에서 제적당했다 하더라도 그대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소? 그러니 부디 잘 부탁드리오.”

웨즈컬이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페이자디루 브라우닝 공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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