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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95화 (595/628)

제595화

“그러냐.”

클로원 제국의 황금 황제가 세계수를 멋대로 점유, 사용해 만들어 낸 것이 브뤼셀 시스템이었지만, 억지로라도 지금 그 권리를 정당하게 가진 자가 누구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황금 황제의 딸이자 클로원의 공주인 라일라일 것이다.

본인은 철저하게 클로원의 공주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라일라의 의사가 브뤼셀 시스템의 파괴라면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것도 있었다.

“이 녀석을 해방하면 어떻게 될까?”

일부의 마력을 그렌이 취한 것만으로도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거기에 에스텔레이드까지 들고 있던 지크가 압도당했다. 그것도 막강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상태에서.

그 뿐이랴. 아무리 라일라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그렌에게 마력을 착취당하는 상태에서 지크에게 또다시 막대한 마력을 보내 주기까지 했다.

그런 엄청난 마력을 가진 존재가 만약 세상에 적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솔직히 지크도 막을 자신이 없었다.

“괜찮아. 세계수에게 인간 같은 격렬한 감정은 없어. 따라서 증오도 원한도 없지. 자유만 찾으면 세계수는 이 세계를 떠날 거야. 애초에 이 세계의 존재도 아니었으니까.”

지크에게 마력을 보내려 세계수와 마력을 동조시킬 때, 라일라는 세계수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수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얼핏 깨닫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

지크는 윈두르의 손잡이를 다시 한번 쓸어내렸다. 세계수의 분신인 새침데기 검.

“아니면 혹시 우리 정의로운 용사님께서는 세계가 위험에 빠지는 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좋아. 당장 해방하자.”

라일라가 키득거렸지만 지크는 애써 무시하고 세계수를 쳐다봤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같은 사상을 가진 건 아니지만, 자신을 여러모로 도와준 존재에게 보답을 해줄 정도의 인식 정도는 지크에게도 있었다.

게다가 지크도 회귀 능력에 대해 미련 같은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

“어떻게 하면 되지?”

“먼저 내가 제어 장치로 세계수의 마력을 최대한 풀어 놓을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수를 해방할 수 없어.”

클로원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세계수에 대한 제어가 풀리지 않도록 막강한 족쇄를 만들어 놨다. 그건 제어 장치로도 풀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억지로 족쇄를 뜯어내는 것.

“굉장히 힘들 거야. 그 세계수를 억누르기 위해 만든 족쇄니까. 보통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하지만 지금의 우리라면 가능해. 세계수도 계속 힘을 빌려주고 있고.”

윈두르를 통해 들어오는 강대한 마력은 아직 지크의 몸 안에서 쓰일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맡겨 둬라. 원래 때려 부수는 건 내 전문이니까.”

“믿음직스럽네.”

라일라는 지크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제어 장치 쪽으로 향했다.

지크는 훌쩍 세계수의 밑동 쪽으로 뛰어내렸다. 바로 옆에서 흐르는 용암의 뜨거운 열기 따위 지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했다.

지크는 세계수에 손을 대봤다. 막대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마력은 어딘가 꼬이고, 뒤틀려 있었다.

그는 그대로 세계수를 올려다봤다.

그의 인생을 꼬아 놓은 - 하지만 본인은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기 있기에 그다지 원망의 감정은 없는 - 브뤼셀 시스템의 근원.

그러나 세계수도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그저 이용만 당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우우우웅!

‘시작됐나.’

세계수 주변의 마력이 요동친다. 동시에 세계수 내의 마력도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라일라가 본격적으로 세계수의 족쇄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르릉!

유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진동이라면 섬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펑! 펑! 펑!

세계수 주변에서 마력이 폭발한다. 세계수가 분출하는 마력이 급증했다.

브뤼셀 시스템의 저항이 시작된 건 그때였다.

쿠웅!

사정없이 뻗어나가던 세계수의 마력이 그대로 멈췄다.

덫에 걸려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동물처럼 세계수의 마력이 몸부림쳤지만 그것을 막는 존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력의 벽.’

흘러나오는 세계수의 마력을 역이용하여 만든 벽이다. 세계수의 힘을 이용하기에 그 힘도 강력할 수밖에 없다.

지크는 윈두르를 빼 들었다.

드디어 자신의 해방이 눈앞까지 온 것이 기쁜 것일까. 윈두르가 몸을 떨었다.

우우우웅!

윈두르에 마력이 가득 들어찬다. 지크의 마력에 더해 아직까지 그의 몸에 머물러 있던 세계수의 마력도 가득 흘러들어 갔다.

지크는 마력을 감지했다. 세계수의 마력과 그것을 억누르는 시스템의 마력.

둘 다 지크의 마력보다 월등히 강하지만 두 마력 사이에도 힘의 강약은 존재했다.

강한 건 세계수의 마력. 약한 건 시스템의 마력.

다만 시스템의 마력은 브뤼셀 시스템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 마구잡이로 돌진만 하는 세계수의 마력을 효과적으로 억눌렀다.

지크는 정신을 집중해 시스템의 마력을 살폈다.

분명 정교하고 강력하기 짝이 없는 마력이지만 지금은 세계수의 마력과 싸우고 있는 중.

게다가 두 마력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지크가 다루는 마력 또한 무척 강력했으며, 더욱이 지크는 그 마력을 아주 세련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굳이 파괴할 필요도 없어. 살짝 구멍만 내면 돼.’

시스템의 마력은 댐이고 세계수의 마력은 호수다.

댐에 아주 조그마한 구멍만 뚫는다면 호수의 물은 그 구멍을 부수고 넓혀 결국 댐 그 자체를 붕괴시켜 버릴 것이다.

스윽!

지크가 윈두르를 들어 올렸다. 윈두르에 주입된 마력이 검 끝에 집중됐다.

투웅!

검 끝에서 마력이 쏘아졌다. 얼핏 보기엔 무척이나 가벼운 공격 같다.

그러나 그 공격에 투입된 마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콰득!

지크의 공격은 시스템의 마력에 구멍을 냈다.

너무도 작은 구멍. 하지만 세계수의 마력은 그 구멍 안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꿀렁!

시스템의 마력이 흔들렸다. 그것들은 계속 세계수의 마력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지크가 뚫어놓은 구멍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래도 그거 하나라면 어떻게 막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크가 그 하나만 뚫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계속된 윈두르의 공격이 시스템의 마력에 연신 구멍을 낸다.

그럼 세계수의 마력이 파고들며 구멍을 넓혔다.

얼마 안 가 시스템의 마력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다. 붕괴하기 전 댐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정도까지 망가진 댐의 최후는 한 가지밖에 없다.

퍼어어엉!

시스템의 마력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세계수의 마력은 환희하듯 쭉쭉 바깥쪽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그대로 세계수는 해방될 것 같았다.

그러나 지크의 얼굴에 있는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퍼어어어엉!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던 용암이 갑자기 치솟았다. 동시에 주변의 온도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리고 주변을 뒤덮는 엄청난 불의 마력.

세계수의 마력이 다시 주춤했다.

‘이게 2차 억제 체계인가. 클로원 녀석들, 정말로 세계수를 잃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말 그대로 섬 아니, 대지 밑에서 끓어 넘치는 막대한 양의 용암을 에너지원 삼아 세계수를 윽박지르는 체계다.

아직 모든 힘이 풀려난 게 아닌 세계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지크는 옆으로 달렸다. 세계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굳건한 섬을 지나 용암 위로 발을 내디뎠다.

‘뜨겁군.’

용암은 물론이고 2차 억제 체계가 발동해 불의 마력이 미친 듯이 날뛰는지라 천하의 지크도 상당한 뜨거움을 느꼈다. 조금만 지나면 지크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세계수와 조금 떨어진 용암 위에서 지크는 멈췄다. 윈두르를 위로 쭈욱 뻗은 채 마력을 흘려 넣었다. 윈두르로부터 마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옷이 타들어 간다.

그러나 지크는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의 마력이 규칙적으로 진동했다. 윈두르로부터 흘러들어 오는 세계수의 마력을 주변에 있는 불의 마력과 동조시킨다.

어떤 규칙도 질서도 없이 그저 미친 듯이 날뛰는 불의 마력과 세계수의 마력을 동조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지크는 그 엄청난 짓을 기어이 성공시켰다.

그다음은 라일라의 차례였다.

세계수의 마력과 막대한 불의 마력, 윈두르의 위치, 그리고 그녀가 다룰 수 있는 브뤼셀 시스템의 힘을 모조리 모아 그녀는 하나의 존재를 소환했다.

퍼어어어어어엉!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것이 용암으로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질량에 용암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일단 용암, 그것도 지금처럼 미쳐 날뛰는 용암에 떨어진 이상 깔끔하게 녹아내려 존재가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존재는 용암 위에서 오히려 자기 세상을 만난 듯 엄청난 존재감을 뿌려댔다.

그건 세계수의 분신 중 하나인 불의 나무였다.

‘좋았어!’

지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암에서 날뛰는 불의 마력은 분명 세계수를 압박했지만, 불의 나무는 그 속성상 불의 마력 안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존재감을 드높였다.

그리고 불의 나무의 기세가 올라갈수록, 바로 옆에 있는 세계수의 마력 또한 고양됐다.

지크는 이번엔 세계수를 중심으로 불의 나무의 반대편 쪽 용암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지금처럼 윈두르를 올려 세계수의 마력을 이번엔 불의 나무의 마력과 동조시켰다.

휘잉!

윈두르의 주변에서 살짝 바람이 인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허공에 바람의 나무가 나타났다. 그것은 주변에 막대한 폭풍을 생성해 과한 열기를 바깥으로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주변 온도가 유의미하게 내려갔다.

‘두 번째!’

불의 나무야 속성이 속성이니 용암에 뿌리를 내려도 상관없지만 다른 나무들은 죽지는 않아도 그 힘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허공에 떠 있을 수 있는 바람의 나무를 골랐다.

솔직히 조금 걱정되긴 했다. 불의 나무는 막대한 불의 마력 덕분에 아무래도 소환하기 쉬웠지만 다른 나무들은 달랐던 것이다.

다행히 세계수 본체와 분신 하나의 마력으로 충분히 다른 나무를 부를 수 있었다.

‘본체와 분신 두 개가 존재하는 이상 이젠 다른 분신들을 불러도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다음에 부를 건 당연히 그 나무다.

퍼어어엉!

세 번째 나무가 등장했다. 동시에 주변으로 엄청난 증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등장한 건 물의 나무였다. 그것이 일제히 가지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들이붓기 시작한 것이다. 뜨거운 증기는 바람의 나무의 폭풍에 바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용암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2차 억제 체계의 힘도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콰아아아아앙!

굳어가는 용암 위로 마지막 대지의 나무가 떨어졌다.

그것은 물의 나무에 의해 돌로 변한 것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열을 차단해갔다.

2차 억제 체계의 힘은 약해져 갔고 세계수의 힘은 강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지크의 몸으로 흘러들어 오는 힘도 강해졌다.

이 정도 힘이면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다.

지크는 발악하듯 여전히 세계수를 옥죄려 하는 2차 억제 체계를 향해 윈두르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충격이 섬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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