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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94화 (594/628)

제594화

지크는 자신의 마법 상자를 윌위스에게 건넸다.

그리고 어느 한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는 여기 있습니다. 저쪽으로 똑바로 향한다면 우리들이 출발했던 곳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럽네만, 중요한 일인가?”

“위험하거나 한 일은 아닙니다. 지극히 사적인 일이죠. 하지만 지금의 제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알겠네. 귀환은 우리끼리 하지. 합류는 어디서 하겠나?”

“아마도 바로 전장으로 복귀할 듯합니다. 그리 늦을 것 같지도 않으니 밸리드 잔당을 쓸어버리는 건 같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우웅!

그 순간 지크 주변의 마력이 요동쳤다. 일행이 방금 전까지의 여유를 내던지고 바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지크가 막았다.

“절 부르려는 겁니다.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 설마 순간이동인가? 자네를 데려가기 위해 이런 엄청난 마력을 이용한 순간이동을 사용한다고? 정말로 중요한 일이긴 한 모양이군.”

혀를 한 번 내두른 윌위스는 지크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전장에서 보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게나.”

윌위스를 시작으로 다른 동료들도 지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쉽지만 승리의 축배는 나중에 들어야겠네요.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 와, 지크!”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동료들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마력이 최고로 고양됐다. 몸이 둥실 떠오르는 감각이 느껴진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지크의 시야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파란 하늘과 내려앉은 섬 그리고 밀고 들어오는 호수 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커다란 동공의 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주변에 그려져 옅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마법진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순간이동의 매개일 것이다.

그리고 전면에 그녀가 보였다. 마법진을 사용하여 지크를 불러들인 이.

“오랜만이야, 지크.”

라일라.

지크는 라일라에게 걸어갔다.

그녀의 뒤에 한스와 스녹, 엘레나, 라라가 서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도 지크의 모습에 뭔가를 느꼈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눈치 없는 스녹이 손을 들려다가 엘레나에게 제지당한 것이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지크가 라일라의 앞에 섰다. 그녀의 인간 같지 않은 미모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기가 어린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뽐내는 것 같기도 하다.

“에스텔레이드를 통해 네 행동을 봤어.”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예전에 네가 말했지? 반하게 만들어 보라고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엔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어때?”

아무래도 지크가 그녀에게 빠졌다는 사실이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기울여 지크를 올려다봤다.

“뭔가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아?”

그녀가 채근한다. ‘사랑한다’ 따위의 말을 요구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기만 지크에게 매달렸던 시절에 대한 귀여운 복수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지크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것일까. 라일라가 조금 당황했다.

“어, 어라? 왜 그래?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어? 아니면 혹시 내가 착각…했나?”

그럴 리가. 그녀는 시스템 안에서 분명히 보았다. 지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것을.

하지만 지크의 반응은 그녀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혹시 정말로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일까.

그녀의 당혹감이 점점 커질 때였다.

와락!

지크가 그녀를 꽉 껴안았다. 깜짝 놀란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지크의 입술이 라일라의 입술에 닿았다.

“읍!”

갑작스러운 감촉에 소리를 낸 것도 잠시. 라일라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녀의 팔이 지크의 몸을 꽉 붙들었다.

“어, 어, 어?”

놀란 스녹이 ‘어’ 소리를 연발하자 노웸이 그의 귀를 콱 물고 엘레나가 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한스와 라라가 서로 눈짓을 한 후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스녹과 엘레나를 데리고 조용히 그 공간을 나섰다.

지크와 라일라는 그렇게 한참을 입술을 겹친 채 있었다.

“하아!”

입술을 떼자 라일라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지크를 올려다본다.

“대답은 됐어?”

“…아직. 직접적인 말을 못 들었어.”

“사랑해.”

“……!”

반쯤 지크를 놀리기 위해 요구한 말이었다. 지크의 성격상 진지한 얼굴로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크는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분명 무척이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막상 원하던 말을 듣자 부끄러웠다. 라일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주체 못 하고 씰룩이는 입꼬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크의 품에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냄새나.”

“며칠 동안 전투를 하고 왔으니까. 그야 냄새 정도는 나지.”

“그래도 냄새나.”

하지만 라일라는 지크의 품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둘이 떨어진 건 입맞춤을 나눈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흠! 흠!”

라일라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첫 키스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크의 얼굴을 보기가 힘든지 그녀의 시선이 이리저리 뛰었다. 지크의 얼굴을 힐끔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길 얼마.

“어험!”

그녀가 마음을 다잡듯 크게 헛기침을 한 후, 지크를 쳐다봤다. 아직까지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긴 했지만 그녀는 성공적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이, 일단 일은 마저 끝내야지?”

다만 아직까지 목소리가 조금씩 튀는 감은 있었다.

“그래야지.”

지크와 라일라는 어깨를 나란히 한 후 마법진이 있는 공간을 벗어났다.

“탑에서 있었던 일의 설명이 필요해?”

“아니, 전부 다 봤으니까 괜찮아. 시스템에서 나온 이후에도 세계수의 마력을 이용해 계속 볼 수 있었거든.”

그녀가 살짝 손을 휘젓자 유적 안에 가득 차 있던 세계수의 마력이 흔들렸다.

시간을 되돌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세계수의 마력이니, 그녀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라면 충분히 시스템에 적용해 코어로 존재할 때처럼 검을 소유한 자의 정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윈두르를 통해 보내 온 힘도 네가 한 거야?”

“정확히 말하면 나와 세계수의 합작이야.”

이야기를 나눌수록 두근거리던 그녀의 마음도 차츰 진정이 되는지 목소리가 많이 편해졌다.

“예상치 못하게 그렌 제너드가 폭주를 해서 세계수의 마력을 빨아들였잖아?”

“솔직히 그놈이 그 공포를 이겨냈을 줄은 몰랐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렌 제너드를 가장 잘 알았던 울텔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너를 돕기 위해서는 네게도 세계수의 마력을 보내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정확한 생각이었어.”

실제로 지크는 그렌 제너드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제국도 세계수를 이용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했으니까.”

나무를 다섯 개로 나누고 드래곤도 산 채로 포획해야 했다.

게다가 나무 하나하나를 가공해 만든 그 정밀한 시스템은 또 어떤가.

“나름 네게 세계수의 마력을 보낼 마법진은 짤 수 있었지만 그것 또한 세계수의 마력이 있어야 작동이 가능했거든. 하지만 내 능력으로 세계수를 강제할 순 없었어. 게다가 당시 세계수는 그렌 제너드에게 마력을 빨리고 있기도 했고.”

“용케도 보냈군.”

“세계수를 설득했지.”

“설득?”

“네가 정말로 자유를 원하고 있다면 이번에 힘을 빌려달라고.”

“과연. 그래서 세계수가 힘을 빌려 준 건가?”

“그래. 아직 남아 있는 브뤼셀 시스템의 제약과 그렌 제너드에게로 마력이 유출되는 상황에서 내 말에 반응해주는 건 세계수에게도 상당히 무리한 일이었을 거야. 하지만 세계수는 기어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줬어.”

지크는 등에 메고 있는 윈두르의 손잡이를 살짝 매만졌다.

“녀석에겐 감사를 표해야겠군.”

누가 뭐래도 이번에 세계수의 조력이 없었다면 패하는 건 지크와 일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좋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저자세가 될 필요는 없어. 애초에 세계수가 자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네 덕분이니까.”

“그도 그런가.”

솔직히 지크의 안에서 세계수의 해방에 대한 순위는 꽤 낮았다.

지크가 브뤼셀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다닌 것은 세계수의 해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렌을 엿 먹이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러나 지크의 행동에 세계수가 굉장한 이득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세계수의 자유에 대한 의지 덕에 지크가 이득을 얻은 것처럼.

“어쨌든 당면의 목표는 모두 이뤘으니 만족해. 그렌 제너드, 그놈도 만족스럽게 죽였고.”

“용사처럼 말이지?”

“아, 젠장!”

소름이 돋는지 지크는 팔을 긁적였다.

“왜 그래? 그렌 제너드를 조롱할 때는 당당하게 네가 용사 역이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나름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괜찮아질 리가 있나. 아마 평생을 가도 익숙해지지 않을 거다.”

“그러기엔 어색함이 없어 보이던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정말로 사람들의 인식 그대로인 용사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

“끔찍한 소리.”

지크는 얼굴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짤랑거리는 라일라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 장치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곳엔 한스와 스녹, 엘레나와 라라가 모여 있었다.

“잘들 지냈냐?”

“지크 님!”

일행이 지크에게 다가왔다.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완벽하게. 남은 건 귀환해서 잔당들만 쓸어버리면 돼. 이건 잘 썼다.”

지크가 한스에게 에스텔레이드를 건넸다. 한스가 공손히 검을 받았다.

“토르니움은 네가 가지기로 한 거냐?”

지크의 시선이 라라의 손에 들린 토르니움에 향했다.

“아뇨, 일단 들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냥 너 가져. 어차피 여기 검 쓰는 사람 중에 자기 검이 없는 사람은 너뿐이잖냐.”

“…그런 식으로 정해도 되는 건가요?”

토르니움의 성능을 잘 알고 있는 라라로서는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시중에 내놓는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을 게 분명한 토르니움이다. 웬만한 가문에서는 가보로 지정하고 애지중지할 것이다.

한데 그런 걸 무슨 길 가다 주운 돌멩이를 주는 것처럼 넘기다니.

그러나 지크는 그녀의 당혹감을 이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반대하는 사람 있냐?”

나서는 이는 없었다.

“결정됐군.”

“…….”

분명 라라 자신에게 무척 이득인 일이건만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토르니움의 소유권을 그렇게 대충 정한 뒤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막대한 마력이 새어 나오는 어떤 구멍이 보인다.

“조금만 기다려라.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것마저 끝내고 섬을 나가자고.”

일행을 남기고 지크는 라일라와 함께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게 세계수로군.”

“너는 처음 보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위용.

주변을 둘러싼 용암 호수가 신비로움마저 불러일으킨다.

“저걸 해방시키면 끝나는 건가.”

“그래. 모든 게 끝나.”

멀고 먼 옛날. 클로원 제국의 황금 황제가 브뤼셀 시스템을 만든 이후 벌어진 모든 일들.

그것들의 방점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괜찮겠냐?”

“뭐가?”

“이 녀석을 해방하면 브뤼셀 시스템은 완벽하게 사라지는 거야. 클로원의 공주로서 아쉬움이 남진 않아? 회귀라는 게 보통 힘인 것도 아니고.”

“괜찮아.”

라일라는 딱 잘라 말했다.

“일단 난 클로원의 공주 세르피나가 아냐. 네가 지크 브레이브가 아닌 것처럼, 나는 라일라일 뿐이지. 그리고 브뤼셀 시스템 같은 비정상적인 힘을 사용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무엇보다도 말이야.”

라일라가 지크를 쳐다봤다.

“브뤼셀 시스템으로 회귀했을 때 기억이 남는 사람은 한 사람뿐. 내가 회귀를 한다면 나에 대한 네 기억은 모두 사라질 거야. 추억도 감정도 모두. 그건 싫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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