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88화 (588/628)

제588화

충격적인 엘레나의 말에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음….”

“어….”

“그런….”

쿠우우….

간신히 입 밖으로 내뱉은 것들도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들뿐.

그런 당혹감 속에서 한스가 입을 열었다.

“자세히 설명해 줘.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저 장치를 사용해 적합한 절차를 밟으면 라일라 님이 무사히 깨어나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세계수의 마력이 이상하게 뒤틀린 게 문제예요. 세계수의 마력을 제어하는 장치라고는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작동에 필요한 힘은 세계수의 마력을 끌어다 써요. 당연히 세계수의 마력이 뒤틀리면 장치에도 문제가 생기죠.”

“하지만 지금 라일라 님께서 새로운 방법을 보내 주셨잖아.”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이용해 반쯤 억지로 작동시키는 방법이에요. 당연히 안정성은 떨어져요.”

“불안정해서 라일라 님의 인격이 소멸할 수 있다는 건가?”

“실패한다면 외부에서 스승님을 강제로 깨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스 씨도 아시다시피 지금 스승님을 강제로 깨우면 현재 스승님의 인격은 소멸하죠.”

엘레나가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를 맡아야 하기에, 지크는 한스와 그 일행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라일라가 강제로 깨어날 시 인격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라일라 님이 보낸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정말로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뜻인데….”

“지크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됩니까?”

스녹이 제안했다. 다른 이들도 일리 있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크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지크에 대한 신뢰는 깊었다.

게다가 지금 지크의 파티엔 엘레나의 할아버지인 윌위스 드웨인도 있었다.

아무리 엘레나가 실질적으로 마법을 다루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마법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도, 아직 경험도 지식도 마법 수준도 윌위스에게 미치진 못한다.

그러나 그 방안도 뒤이은 엘레나의 말에 접어야 했다.

“스승님이 보내주신 정보에 따르면 지크 님도 지금 고전을 하고 있다고 해요.”

“고전? 계획대로 우리가 꽤 많은 적들을 끌어들였잖아. 순간이동진이 멈춘 걸 보면 탑으로 향하는 마력도 잘 끊어낸 것 같고. 설마 울텔이란 작자가 그 정도로 강한 존재란 말이야?”

“울텔이 아니에요. 그렌 제너드예요.”

“그렌 제너드? 그 찌질이가 왜 여기서 나와?”

분명 그렌 제너드는 굉장한 실력자지만, 지크가 그를 얼마나 철저하게 휘둘렀는지 본 한스는 그가 감히 지크를 고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세계수의 마력이 그에게 향하고 있다고 해요. 지금 그가 휘두를 수 있는 마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거예요. 지크 님의 그 방대한 마력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요.”

“그런가.”

저 정보 또한 라일라가 전해준 것일 터.

그녀가 저렇게 단호한 정보를 보냈다면 실제로 지크가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지크 님을 돕기 위해서라도 당신을 당장 깨워달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위험하다며?”

“…네.”

엘레나가 힘없이 말했다.

한스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일행의 리더는 그이다. 그리고 리더의 임무 중 하나는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

고민은 짧았다. 애초에 깊이 고민을 할 주제도 아니었다.

“엘레나.”

“네.”

“시도해 보자.”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하, 하지만….”

그녀의 망설임도 당연한 것이다. 경애해 마지않는 스승의 인격을 스스로가 부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스도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이 그녀의 상황에 빠져 있더라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더로서 그는 내린 결정을 밀고 나갔다.

“걱정 마, 엘레나.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더라도 라일라 님이 네게 불가능한 일을 시킬 리 없어. 넌 분명 가능할 거야.”

“그래도….”

“그리고 지금 방법이라고는 그것뿐이잖아. 혹시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이 안정되어서 라일라 님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게 될 것 같아?”

“…모르겠어요.”

라일라가 보내준 정보에 그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라일라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예전 클로원의 마지막 황제가 폭주했을 당시, 문제는 황제였을 뿐이고 브뤼셀 시스템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크가 그렌과 울텔을 막겠다고 시스템의 기반을 거의 헤집어놓은 상태가 아니던가.

이 상황에 시스템이 예전처럼 안정될 수 있을 거라고는 단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또 시스템이 이상하게 변해, 그때야말로 손도 댈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라라가 엘레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전 당신들과 그리 오래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라일라 씨가 당신에게 향하는 믿음 하나만은 확실히 보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재능 있다고 항상 말하기도 하셨고요. 당신이 당신의 스승님께 배워왔던 그 경험을 믿으세요.”

엘레나의 눈에 점점 결심이 어렸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레 스녹에게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꼭 지켜 줄게.”

쿠!

스녹의 어깨에서 한쪽 앞발을 들고 힘차게 소리치는 노웸을 보고 그녀가 살짝 웃었다.

“알겠어요. 할게요.”

“잘 생각했어.”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필요한 게 있어요.”

“뭐지? 당장 구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바로 구해오지.”

“일단 토르니움이 필요해요.”

“이거요?”

울텔이 섬을 점거하라 명령하며 부하에게 건네줬던 토르니움은 지금은 라라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세계에서 윈두르, 에스텔레이드가 아니라면 비교를 불허하는 명검에 검사로서 욕심이라도 날 법하건만, 라라는 너무도 쉽게 엘레나에게 토르니움을 넘겼다.

“그리고 두 분의 마력도 필요해요.”

“얼마든지 지원할게.”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스와 라라의 믿음직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엘레나는 마지막으로 스녹과 노웸을 쳐다봤다.

“노웸. 넌 둘의 마력을 받아 네 색깔을 입혀 공급해줘.”

쿠우!

“그리고 스녹. 넌 나와 함께 제어에 참가해야 해.”

“아, 괜찮을까? 난 그 제어 장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걱정 마. 길은 내가 알려줄 거야. 그리고 적어도 대지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데 네 감각은 분명 천재적이니까.”

스녹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엘레나는 뒤를 돌아 장치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암담하게만 보였던 기계 장치의 크기가 웬일인지 조금 작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하죠.”

경애하는 스승을 깨울 때가 되었다.

* * *

노웸은 평소의 귀여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커다란 전투 형태로 변해 있었다.

한스와 라라는 토르니움의 손잡이를 함께 거머쥐고 있었고, 토르니움의 검 끝은 땅에 늘어져 노웸의 발뒤꿈치와 맞닿아 있었다.

“두 분은 노웸에게 마력을 공급해 주세요. 제 말에 따라 공급하는 마력의 양을 조절해 주셔야 해요. 세세한 조정은 노웸이 할 수 있어 그렇게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진 않지만, 토르니움으로 증폭된 마력은 굉장히 거치니 두 분이 신경을 써야만 노웸이 편할 거예요.”

“알았어.”

“걱정 말렴. 최선을 다해줄게.”

한스가 확답하고 라라는 노웸의 빳빳한 털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크륵!

노웸이 거칠어진 목소리로 라라의 말에 답했다.

“노웸, 너는 두 사람의 마력을 대지 속성으로 변환시켜 다시 스녹에게 공급해 줘.”

크르륵!

짧게 대답한 노웸이 스녹의 머리 위에 자신의 머리를 턱 하고 얹었다.

“그리고 스녹.”

“응.”

“일단 내 마력의 뒤를 따라와 줘. 그리고 내가 지시할 때 동조해주면 돼. 알았지?”

“어, 열심히 해볼게.”

아무래도 마법이나 복잡한 장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터라 스녹의 대답은 좀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각오만큼은 뚜렷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거면 돼.”

다른 속성의 마력 제어는 젬병이지만, 누가 대지의 환수인 노웸의 계약자 아니랄까 봐 그의 대지 속성의 마력 제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거의 지크나 그보단 못해도 윌위스급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였다.

‘그 정도라면 토르니움으로 증폭된 두 사람의 마력을 제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시작하자.”

엘레나가 스녹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장치에 손을 댔다. 엘레나의 신호에 스녹도 제어 장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게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 장치!’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 말은 들었지만, 자신이 다루거나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도 했거니와 그다지 관심도 없던 터라 설마 이 중요한 장치의 제어에 자신이 한 팔 거들게 될 줄은 몰랐다.

때문에 스녹의 마음속에 자그마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게 무슨…!’

스녹은 마력 너머로 느껴지는 장치 안의 세계에 기겁을 했다.

무섭도록 복잡하다.

마치 갈림길을 지난 지 열 걸음도 되지 않아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오고, 그 갈림길을 지나니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오는 길이 무수히 이어지는 것 같다.

게다가 그 갈림길도 두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게 아니라 백, 이백 정도로 갈라져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통로에 마력을 보내서 제어를 하는 거라고?’

평소 라일라와 엘레나를 보며 마법사는 역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던 스녹이지만, 직접 장치에 손을 대보니 또다시 마법사의 두뇌에 대한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나는 절대 무리야.’

스녹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히 그에게는 든든한 길잡이가 있었다.

엘레나가 없었다면 마력을 집어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을 잃고 이상한 기능을 작동시키거나 장치를 고장내버릴 게 틀림없었다.

엘레나의 마력이 선행하고 스녹의 마력이 그 뒤를 따른다. 스녹은 잠시 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어라? 그런데 이 많은 통로에 돌아다니는 마력이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거대한 길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위를 단 한 명의 사람도 걸어 다니지 않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이래서 장치가 말을 듣지 않게 됐나?’

그러나 그 감상은 얼마 안 가 뒤바뀌었다.

“이건…!”

“너도 느껴지지?”

마력 너머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스녹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엘레나가 어째서 그토록 좌절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확실히 이해가 갔다.

그건 산이었다. 바다였고 태풍이었으며 회오리였다. 혹은 해일이나 지진일지도 몰랐다.

하여간 압도적인 자연의 장엄함을 품고 있는 존재라면 그게 무엇이든 저 너머로 느껴지는 존재와 비슷한 감각을 줄 것이었다.

그 정도로 느껴지는 세계수의 마력은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재앙을 불러오는 자연재해처럼 그것이 장치 안에서 날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걸 안정시켜야 해.”

“…저걸?”

지크와 라일라를 깊이 존경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용의조차 스녹에겐 있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는 것과 그게 실현 가능하다는 건 전혀 다른 말이다.

엘레나의 말은 몰아치는 태풍을 제거하고 터지는 화산을 틀어막자는 말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걱정 마. 저 움직임 자체를 박살 내야 한다는 뜻은 아냐.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지?”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저 움직임을 제어할 필요는 있어.”

그것도 어려울 것 같지만 더 이상 우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준비는 됐어. 언제든 말만 해.”

스녹의 말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스와 라라를 향해 말했다.

“마력을 공급해 주세요.”

승부에 나설 때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