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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87화 (587/628)

제587화

콰아아앙!

연속적으로 닥쳐오는 마력의 파도.

계속에서 에스텔레이드의 빛이 파도를 가르고 베고 찔렀지만 마력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지크를 몰아붙였다.

《에스텔…레이…드…. 내…거…!》

“이미 소유권 넘어왔어! 이 시간선에선 처음부터 한스 거였다!”

콰아아아아앙!

“큭!”

지크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린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에스텔레이드를 잡고 다시 한번 그렌을 공격하려 했다.

후우웅!

그때 지크의 눈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작은 불덩이가 보였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난다.

협소한 마탑 안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하듯 윌위스의 화염 마법은 사방으로 그 방대한 불길을 펼쳐 제 모습을 뽐냈다.

레오나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하늘을 향해 겨냥했다. 그녀는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화염을 바라봤다.

화염에서 검은 무언가가 보인 것 같았다.

팅!

화살이 쏘아졌다. 마력을 머금은 화살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고, 무척이나 강맹했다.

틸도 화염 앞에 있는 인영을 확인했다.

덥석!

옆에 있는 커다란 탑의 파편에 손을 댄다. 사람의 대여섯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돌덩이가 마치 솜뭉치라도 되는 듯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틸은 돌덩이를 든 손을 뒤로 쭉 뻗었다.

쿠웅!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디뎌 발을 구른 후 그 반동을 모조리 이용해 돌덩이를 하늘로 던졌다.

후우우우웅!

시간을 거슬러가듯 돌덩이가 하늘로 쏘아진다. 그것의 목표도 화염 속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검은 그림자, 그렌이었다.

레오나의 화살과 틸의 돌덩이가 연신 그렌을 향해 솟아올랐다.

하나같이 무서운 힘을 품고 있어 제대로 맞았다간 가벼운 부상으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렌이 휘두른 손에 의해 그것들은 분쇄되고 파괴되며 튕겨나갔다.

그렌은 이번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화염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후우웅!

거친 마력의 바람이 주변을 휩쓴다. 계속해서 주변에 태울 것을 갈구하며 온도를 올려대고 있던 화염이 순식간에 걷혔다.

계속 그를 향해 쏘아지는 화살과 돌덩이도 적당히 휘적이는 손짓으로 모조리 무효화한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윌위스의 마법이 작렬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도 그렌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저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릴 뿐.

하지만 화염을 뚫고 지크가 에스텔레이드를 찔러 넣었을 때는 그렌도 조금 위협을 느꼈다. 역시 지크의 실력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조금이다.

콰아아앙!

화염 안에서 휘날리던 빛이 그렌의 마력에 찌그러져 사라진다. 그 충격파로 주변의 화염이 걷혔다.

그렌이 웃었다. 비틀리고 모멸적인 비웃음.

《내… 내가 더… 강하다….》

힘의 우위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비웃음이 지크에게 통할 리 없었다. 지크는 정확히 그렌의 비웃음보다 두 배 정도 더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네가 더 강하네. 그런데 이 구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마치 최후의 마왕을 토벌하려는 용사의 이야기 같잖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동료들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을 타도한다. 캬~! 이거 완전 정석적인 모험물이네!”

그렌의 미소가 지워졌다.

《요… 용사는 나… 나야…!》

“그래? 그런데 이 세상 그 누가 그걸 인정해주지? 네 동료는 어디 있고.”

《내… 동료… 아이네… 라라… 레오나… 엘레나….》

“네가 말한 동료들 말이야. 전부 내 동료인데? 라라랑 엘레나는 한스, 스녹과 함께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고 루벨라와 레오나는 저 아래서 싸우고 있잖아. 나와 함께. 너를 상대하며.”

지크는 고개를 젖혀 마치 저능한 인간을 깔보듯 그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네 동료는 어디 있다고?”

《내…내…내놔…아아아아아! 내 동료…야아아아아!》

“싫은데?”

콰아아아!

사방에서 마력이 지크를 향해 다가온다.

그에 맞서 검을 휘두른 지크였지만 아무래도 여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공중전은 힘들군.’

아무래도 발을 든든히 받쳐주는 지면이 있는 편이 검사에겐 유리했다.

애초에 고작 발밑에서 마력을 분출하는 것만으로도 공중에서 완벽한 검술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크의 정신 나간 실력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쿠우웅!

“크윽!”

하지만 그렌의 우격다짐식 공격이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또 한 번의 공격을 간신히 빗겨낸 지크.

퍼어어어엉!

아래에서 이번엔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다시 화살과 돌덩이가 그렌을 노렸다. 그렌의 관심이 그것들에 쏠렸다.

퍼엉!

지크는 그 빈틈을 노렸다. 공중을 거세게 차서 그렌에게 다가갔다.

그렌이 다시 마력의 덩어리 두 개를 동시에 집어던졌다.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콰득!

두 개의 마력 덩어리가 맞닿는 경계선을 정확하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에스텔레이드에 마력을 가득 불어넣었다.

키이이이이잉!

소름 돋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진다. 경계선을 노렸지만 그래도 막대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에스텔레이드가 빛을 뿜으며 울부짖는다.

콰지지직!

마력의 덩어리가 산산이 깨어져 나가 허공에 스며든다.

지크는 그대로 그렌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꽈앙!

‘방어막인가?’

에스텔레이드의 검 끝이 그렌의 몸과 손톱만큼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딱딱한 반탄력이 느껴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은 것처럼 어떤 방어 수단을 두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쿠우웅!

“크윽!”

그렌의 비명에 호응하듯 주변에 사나운 마력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바람의 결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치명적이다.

지크는 급히 되받아치기 시작했지만 모두 받아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힘이 강력해 검도 수월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사이 또 하나의 마력이 지크의 위에서 돌진해 내려왔다.

콰득!

지크의 몸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몸이 지면까지 빠르게 튕겨나갔다.

쿠웅!

다행히 정신을 잃거나 한 건 아닌지 그는 두 다리로 거칠게나마 착지할 수 있었다.

다만 타격이 없지는 않아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몸은 그렌의 공격으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지크 님!”

추락할 때 어떻게든 방향을 틀어 일행이 모인 곳으로 떨어질 수 있게 해놨다.

그리고 지금 일행 중에는 훌륭한 좀비 메이커가 있다.

우우웅!

루벨라의 성법에 지크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크는 몸을 일으켜 가볍게 사지를 움직여봤다.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듯 온몸에서 기운이 넘쳤다.

“감사합니다, 루벨라 님.”

“별말씀을요.”

루벨라의 뒤를 이어 다른 동료들도 지크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그렇게 당한 건 처음 보는 것 같군.”

“드웨인 님의 인페르노를 맞았을 때도 상당한 낭패를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말인가? 거짓말 말게. 내 비장의 마법을 그리 쉽사리 파훼시켰으면서 호들갑은. 게다가 지금 자네의 실력은 그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잖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력 덩어리가 일행을 덮쳤다. 일행은 합심해 마력 덩어리를 요격했다.

콰아아앙!

마력 덩어리가 폭발해 사라졌다.

“그 정도로 저 녀석이 강하단 거겠지.”

자신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그렌을 보며 레오나가 말했다.

“그래, 지크 군. 저놈이 얼마 전까지 찌질이였든 정신병 환자였든 지금은 어엿한 괴물딱지가 되어버렸네. 그리고 우린 저놈을 쓰러뜨려야 하지. 뭔가 방법이 있는가?”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놈을 다시 상대하게 되는 것 자체도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뭐, 흑막인 울텔조차 뒤통수를 맞아 죽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저런 것까지 예상하고 계획을 짜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 그저 힘으로 들이받을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그게 잘될지는 미지수였다.

그 지크조차 제대로 대항 못 하고 일방적으로 공격당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들이 숫자도 많고 능력의 조합도 괜찮으니 어찌어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련한 경험과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윌위스의 예상대로라면, 그럴 가능성은 무척이나 적어 보였다.

그 정도로 그렌이 공격을 할 때 느껴지는 마력은 그 궤를 달리 했다.

“일단 힘으로 버티긴 해야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일 필요도 없을 겁니다.”

“방법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요. 방법은 없지만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오오, 역시!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그래, 그 믿는 바가 뭔가?”

지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내뱉었다.

“인연…이라고나 할까요?”

“…내 충고하네만 자네에게 그런 말은 안 어울려. 오히려 그런 말을 내뱉는 인간들을 짓밟으며 ‘어디 한번 인연이란 걸 가져와봐라’라고 비웃는 게 더 어울릴 걸세.”

“개인적으로 저도 드웨인 님의 의견에 완벽히 공감합니다만, 그래도 그게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뭐 어떻습니까. 성격이 더럽더라도 공적만 보면 저만큼 영웅이란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잖습니까.”

“사실이라 뭐라 반박을 못 하겠군.”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다시 그렌의 공격이 시작됐다.

정말로 압도적인 위력.

하지만 지크 일행은 굴하지 않았다. 지크의 ‘믿는 바’라는 것이 실행되길 기다리며, 그들은 묵묵히 그렌의 공격을 방어해 나갔다.

* * *

엘레나는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 장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 멋대로 흐르기 시작한 세계수의 마력이 그녀의 제어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왜, 왜 이러지?”

연신 제어 장치에 마력을 넣어 세계수의 마력을 뒤틀어보려 한다.

하지만 고작 그녀의 작은 마력으로 어떻게 하기에는 세계수 마력의 흐름이 너무도 강했다.

쿠우!

작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엘레나의 곁에서 조용히 호위를 하고 있던 노웸이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 나갔다.

엘레나가 뒤를 돌아보자 귀환하는 일행이 보였다.

“수고했어, 엘레나. 계획대로 더 이상 마법진에서 적이 나오지 않아.”

순식간에 어깨로 올라온 노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슬슬 문지르며 스녹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고 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 뭔가 있었어?”

“스녹….”

엘레나는 급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일행의 얼굴도 서서히 굳어갔다.

“그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정확히 뭐지?”

한스가 물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절대 엘레나를 자극하지 않도록 그의 어조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스승님의 부활이 불가능해졌어요!”

심각한 일이다. 라일라는 엘레나뿐만이 아니라 한스와 스녹에게도 무척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스는 더더욱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것뿐이야? 다른 건 없어?”

“세계수의 마력이 예상과는 달리 흐르는 것도 문제예요! 저 마력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겠어요! 자칫하다간 세계에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킬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느껴진 세계수의 마력은 엄청났다.

한스는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 장치를 쳐다봤다가 엘레나의 손에 쥐어진 운명을 비트는 열쇠를 쳐다봤다

“라일라 님께서 뭔가 정보를 보내 주진 않으셨어?”

“아직 아무것도… 아!”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왔어요! 지금 보내셨어요!”

“뭐라고 보내셨지?”

“그… 일단 자기를 깨워달라고….”

“다른 방법을 알려주신 모양이지?”

“네.”

“좋아, 그럼 빨리 시작하자.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

“…왜 그래?”

엘레나의 눈이 가늘게 떨린다. 한스의 뒤쪽에 서 있던 라라가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꼭 쥐었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이 방법, 너무 위험해요.”

예상외의 사태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이니 위험도야 당연히 따라올 터.

하지만 엘레나가 저리 반응할 정도면 그 위험도는 상당한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위험하지?”

“…스승님의 인격이 소멸될지도 몰라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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