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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82화 (582/628)

제582화

탑의 흔들림은 격화되어 갔다. 아무리 건축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지금 탑이 붕괴를 앞두고 있단 걸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크 군.”

“네.”

“탑의 붕괴가 어쩔 수 없단 건 잘 알겠네. 그렇다면 이제 이 붕괴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방법 정도는 생각해 놨겠지?”

안 그래도 높은 탑이다. 게다가 그 구성 물질은 무거운 돌.

붕괴 시 추락하든 돌에 깔리든 막대한 위협이 주위 곳곳에 솟아오를 것이다.

“물론이죠.”

“오오, 역시 지크 군일세! 난 믿고 있었지. 그래, 어떤 방법인가?”

“탑이 무너지는 이유는 탑을 유지하고 있던 마력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탑 창문을 막고 있던 결계도 사라졌죠.”

“스스로 살아남으라는 말만은 말게. 그건 대책이라고 할 수 없어!”

“전 제 일행들을 무척 신뢰합니다.”

“그러니까 왜 자네와 관련되면 그 신뢰라는 단어가 그리 값싸게 느껴지는 거냔 말일세!”

투덜거리긴 했지만 윌위스도 못한단 소리는 하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마법사인 그에게 건물의 붕괴는 그리 대단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뭐, 우리야 얼마든지 탈출을 할 수 있으니 상관은 없다만, 저쪽은 정말로 다급한 모양이로군.”

윌위스는 울텔 쪽을 바라봤다.

탑이 격렬하게 흔들릴 때부터 그들을 유지시킬 마력이 끊긴 터라 그림자는 소멸해 있었다.

다른 몬스터와 언데드도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군다.

그러다 자신, 혹은 동료의 무기나 손톱, 독 같은 것에 피해를 받는 녀석들도 속출했다.

때문에 전투는 중단된 상태였다.

울텔의 직속 부하들은 지크 일행처럼 이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있었지만, 급변한 상황 속에 울텔이 갈팡질팡하고 있던 터라 그들도 일단 대기하는 중이었다.

“일단 탑의 붕괴로 자잘한 녀석들은 전부 죽을 겁니다.”

“그렇겠지.”

탑 안에 있는 녀석들은 물론이고 탑 바깥에 있는 녀석들도 상당한 피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탑이 산산이 분해되어 막대한 질량과 속도로 섬을 초토화시킬 테니까.

“그리고 저놈들은 살아남겠죠.”

“그것도 그렇고. 녀석들도 꽤 실력자니까.”

“녀석들이 살아남는다니. 정말로 짜증 나지 않습니까?”

“네, 굉장히 짜증 나요!”

루벨라가 큰 소리로 동의했다.

“저놈들이 공격을 멈췄다고 우리도 멈추란 법도 없죠?”

“없죠!”

마치 부모의 말을 성실히 따라하는 아이처럼 루벨라가 열심히 외쳤다. 다른 이들도 이견은 없었다.

“그럼 죽이죠.”

지크 일행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놈들을 쳐 죽이기 위한 것.

기회가 왔는데 망설일 필요는 없다.

지크 일행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울텔과 그 부하들에게 뛰어들었다.

무너지는 탑 안에서 다시 전투가 펼쳐졌다.

심하게 흔들리는 바닥과 탑이 기울어 점점 심해지는 경사.

그리고 위에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돌가루들까지.

전투하기 편한 현장은 아니었지만 두 진영 모두 실력자들이었기에 전투는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울텔의 부하들이 방패로 삼아야 할 것들이 사라졌다.

그림자는 소멸했고 몬스터와 언데드는 바닥을 구르기에 바쁘다. 당연히 전투의 균형추는 완벽하게 지크 일행 쪽으로 기울었다.

콰직!

“끄윽!”

틸의 대검이 로브 한 명을 어깻죽지부터 대각선으로 갈랐다.

로브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두 조각이 났다.

“…훗!”

무뚝뚝한 틸답지 않게 그의 입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가 봐.”

“그럴 수밖에요. 저 벌레들이 얼마나 짜증 나게 전투를 했나요?”

공격은 전부 몬스터나 언데드, 그림자들에게 떠넘기고 그 뒤에서 깔짝깔짝 검을 찔러 넣는다든가 휘두른다든가 하며 얍삽하게 싸우던 놈들이다.

상대에 대한 분노는 둘째 치고 그 전투 방식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놈들을 시원하게 두 동강 낼 수 있게 됐으니, 틸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콰아앙!

“크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거대한 화염이 로브들 한 무더기를 통째로 삼킨다.

몇몇은 물을 뿜어내 막으려 했지만, 윌위스의 강력한 화염 마법은 물줄기 몇 개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오나의 화살도, 루벨라의 성력도 착실히 로브들을 밀어붙였다.

게다가 역시 가장 화려하게 날뛰는 건 지크였다.

실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무기도 에스텔레이드의 특성 때문에 가장 눈에 띄었다.

“주인님!”

부하 한 명이 다급하게 울텔을 불렀다. 이미 지크 일행은 무척이나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울텔은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여기서 싸우는 건 소용없다!’

부하들의 목숨을 희생하며 버티고는 있었지만 그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울텔은 결정을 내렸다.

“반은 여기 남아 저놈들의 발목을 최대한 잡아라! 나머지 반은 날 따라간다!”

“네!”

죽으라는 명령이지만 울텔의 부하들은 그에 반발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회귀로 쉽게 다룰 수 있는 녀석들을 선택해 세뇌 교육을 베풀었으니 당연했다.

그들은 울텔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형이었다.

“도망가려는 거야? 설마 아니지? 천하의 울텔이 그렌 제너드처럼 도망을 가거나 그러진 않을 거 아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넌 극히 희귀한 그렌 제너드보다 못한 놈이었지? 그렇다면 이해가 가긴 한다만 세계를 집어삼키겠다는 야망을 가지던 놈이 제 목숨 아깝다고 도망가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마치 운 좋게 커다란 힘을 손에 넣은 찌질이 같잖아!”

또다시 지크의 더러운 조롱이 들린다.

절로 이가 갈렸지만 지금 저 조롱에 발목을 잡힐 순 없었다.

‘탑이 무너지기 전에 꼭대기까지 가야 해! 내 반지라면 순간이동진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지금 울텔의 유일한 희망은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지크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한데 지금은 미래의 희망조차 거의 사라진 채 쥐새끼같이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되다니.

하지만 한탄할 새도 없다.

콰아아아아앙!

“어디 가, 울텔! 날 잡고 비밀을 끌어내려는 거 아니었어? 어서 잡아보라고! 자, 기분이다! 지금 날 잡는다면 고문이든 협박이든 필요 없이 내가 아는 걸 모조리 불어주겠어! 맹세하지! 이런 기회 흔치 않다고! 이런 기회를 놓치는 놈은 등신 중에서도 상등신 아니겠냐?”

지크의 조롱을 뒤로 흘리고 울텔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상층을 향해 뛰어갔다.

마치 지크의 조롱에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이.

그의 뒤를 반수의 로브들이 우르르 쫓아갔다.

“쩝, 갔네.”

서걱!

앞에 있는 로브 놈의 목을 썰어내며 지크는 울텔이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리 오래 바라보진 않았다.

“자,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합시다! 울텔이 사라졌으니 처리하기 더 쉬워졌을 테니까요.”

일행은 더욱 철저하고 가혹하게 로브 놈들을 몰아붙였다.

울텔에 대한 충성심만은 진짜인 듯, 그들은 정말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크 일행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 목숨을 잃는 로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리고 그 속도는 그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더욱 가속화됐다. 얼마 안 가 놈들은 전멸할 터. 이제 곧 울텔을 따라가 절망하는 놈의 목을 따주면 되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마력 반응에 뒤집어졌다.

쿠우우우우우!

저릿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지크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거대한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쳐다봤다.

그들이 있는 곳보다 더 높은 탑의 상층부였다.

“…설마 울텔일까요?”

루벨라가 중얼거렸다. 울텔을 수식할 때 언제나 벌레 혹은 그 비슷한 미물과의 비교를 빠뜨리지 않던 그녀가 그의 이름에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는다.

그것으로 루벨라가 지금의 현상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지금 느껴지는 마력은 위협적이었다.

레오나도 윌위스도 틸도 그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러진 않을 겁니다. 놈이 저 정도의 수를 숨겨 놨었다면 이미 써먹었을 겁니다. 그리 당황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일도 아닐 것 같군요.”

지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위쪽을 바라봤다. 재수 없게도 짚이는 바가 하나 있었다.

‘분명 울텔이 그렌 제너드를 가둬놓은 곳이 상층이었지.’

* * *

“헉! 헉!”

울텔은 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지금까지의 전투에 더해 심하게 뜀박질을 하니 금방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도 본격적으로 몸을 쓰는 이는 아닌 까닭이다.

“제게 업히십시오!”

옆의 부하가 얼른 등을 내밀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울텔이지만 지금처럼 다급한 시간까지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헉! 헉! 그래.”

울텔이 부하의 등에 올라타려 할 때였다.

쿠우우우우우!

지크 일행이 느꼈던 마력 반응을 그들도 느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지점에서 그들이 훨씬 가깝다는 것이었다.

“이건…!”

“뭐, 뭐지?”

울텔의 명령이 아니라면 마치 인형처럼 입을 다물고 서 있던 로브들도 이 막대한 마력엔 당황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당혹감을 느낀다고 해도, 울텔이 느끼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그렌 제너드?”

마력의 폭풍이 소용돌이치는 곳은 분명 그렌을 가둬놓은 곳이었다.

하지만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이런 막대한 마력을 그 녀석이?’

녀석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제국의 유산을 이용해 실력을 키운다 해도 녀석의 한계는 결국 지크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런 엄청난 마력을 뿜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그럴 리 없어! 이건 다른 무언가에 의한 게 분명해!’

“주인님.”

옆에서 부하가 울텔의 의식을 일깨웠다.

“…일단 계속 올라간다.”

앞에 무엇이 있든 아직 그것이 위험이라고 확정된 건 아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지크 일행은 울텔에게 있어 완벽한 위험이다.

울텔의 명령에 따라 그들 일행은 다시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요동치는 마력은 계속됐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마력의 중심부가 탑의 상층부, 그것도 그렌을 가둬놓은 곳이라는 확신이 더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렌을 가둬놓은 층에 도달했다.

동시에 마력의 소용돌이 또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다른 층에서와는 달리 울텔과 부하들은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은 그렌을 가둬놓은 곳에 쏠려 있었다.

스르륵.

어떤 징조도 없이 그렌이 갇혀 있던 곳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울텔과 부하들의 긴장도가 최고조로 올라갔다.

터벅! 터벅!

안에서 누군가 나왔다.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렌 제너드.”

울텔이 조용히 그 이름을 내뱉었다.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일까. 그렌이 그를 바라봤다.

아니, 바라본 것 같다. 그의 얼굴이 울텔과 부하들을 향했다.

하지만 그렌의 눈은 그들을 담지 못했다. 그의 눈두덩이에는 빛을 품은 안구 대신 텅 빈 구멍 두 개만 덩그러니 있었으니까.

“우…에….”

울텔을 부르려 한 것일까. 하지만 잘린 혓바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나오는 건 뭔가를 웅얼거리는 소리일 뿐.

하지만 그의 행보는 명확했다.

우우우우웅!

막대한 마력이 그렌의 손 안에 모였다.

“마, 막아아아!”

울텔의 비명과도 같은 절규.

다음 순간, 커다란 굉음이 탑을 덮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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